명언 경구 - (4)

명언 경구 2020. 10. 30. 22:30

명언 경구 - (4)

 

 

61.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경이나 환경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에 대한 집중도이다

 

- 대니얼 길버트

 

 

62. The happy one prays for others

     while the unhappy one prays for himself

 

    행복한 사람은 남을 위해 기도하고

    불행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기도한다

 

 

63. 나는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는 존재다. 스스로 나를

     인정하기만 한다면

 

- 생텍쥐베리

 

 

64. 삶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끊임없이 느끼는 사람은

     행복한 삶의 비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 아이리스 머독

 

 

65. 깊은 강물은 돌을 던져도 흐려지지 않는다

 

- 톨스토이

 

 

66.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 마크 트웨인

 

 

67.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68. 우리는 모두 네모나게 태어나서 둥글게 죽는다

 

 

69. Life is like riding a bicycle

    To keep your balance you must keep moving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70. Never do anything when you are in a temper

     for you will do everything wrong

 

    화 났을 때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는 일마다

    잘못될 것이다

 

- 발타사르 그라시안

 

 

71. The foolish man seeks happiness in the distance,

     the wise grows it under his feet

 

    어리석은 사람은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발 밑에서 행복을 키워 간다

 

- James Oppenheim / 제임스 오펜하임

 

 

72. Think today and Speak tomorrow

 

    오늘 생각하고 내일 말하라

 

 

73. 이해하는 것이 먼저고 이해 받는 것은 나중이다

 

- 스티븐 코비

 

 

74. Time heals everything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한다

 

 

75.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며 지나간 후에는 친근한

     그리움만 남겨 놓는다

 

- 푸시킨

 

 

76. The first duty of love is to listen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귀 기울이는 것이다

 

- 폴 틸리히

 

 

77. The magic of first love is our ignorance that it

     can ever end

 

    첫사랑이 신비로운 것은 우리가 그것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 Benjamin Disrali / 벤자민 디즈렐리

 

 

78. 당신이 되고 싶었던 어떤 존재가 되기에는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

 

- 조지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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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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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경구 - (3)

명언 경구 2020. 10. 30. 22:03

명언 경구 - (3)

 

 

41. A man travels the world over

    in search of what he needs

    and returns home to find it

 

   사람은 필요한 것을 찾아 온 세상을 헤매지만

   집에 돌아와서야 그것을 발견한다

 

- George Moore / 조지 무어

 

 

42. 한번 실패와 영원한 실패를 혼동하지 말라

 

- 스콧 피츠제럴드

 

 

43.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언 4 : 23

 

 

44. 시간은 모든 슬픔을 치유한다

 

- 키케로

 

 

45. Those who maintain a clear sense of purpose in life

     are strengthened by hardship

 

     삶의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고난을 통해 더욱 강인해진다

 

 

46. If you love someone, the greatest gift you

     can give them is your presence

 

     만약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당신의 존재입니다

 

 

47. 한송이 꽃의 기적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바뀔 것이다

 

- 프루스트

 

 

48. In the book of life

     the answers are not in the back!

 

     인생이라는 책에는 결코 정답이 뒤에 있지 않아!

 

- Charlie Brown / 찰리 브라운

 

 

49. You can't shake hands with a clenched fist

 

    주먹을 쥐고 있으면 악수를 할 수 없다

 

- Indira Gandhi / 인디라 간디

 

 

50. 모두를 사랑하되 소수의 사람을 믿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마라

 

- 셰익스피어

 

 

51. 이 또한 지나가리라

 

 

52. Who, being loved, is poor?

 

    사랑받는 이들 중에서 불쌍한 사람이 있는가?

 

 

53.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함의 깊이에 달려 있다

 

- 존 밀러

 

 

54. He who knows he has had enough is rich

 

    충분히 가졌음을 아는 자가 부자이다

 

- Loo Tzu / 노자

 

 

55. Be an ally to those who are suffering

 

    고통받는 자들의 친구가 되라

 

 

56. He who would travel happily must travel light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 Antoine de Saint-Exupery / 생텍쥐베리

 

 

57. 오늘이라는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 단테

 

 

58.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같게 하려고 자신의 4분의 3을 포기한다

 

- 쇼펜하우어

 

 

59. 그대의 하루하루를 그대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라

 

- 호타리우스

 

 

60.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열심히 듣는 것이다

 

- 디즈 레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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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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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께 바치는 무영가(無影歌)

 

말 못한 아픔들이 40만의 바람이 되어 시화문을 타고 여민관을 스쳐 지났습니다.

좌우를 두고 정처 없던 그들은 여민관을 지나 갈래길에 가만히 닿았고 녹지원의 반송 아래, 낙엽이 되어 내려앉았습니다.

그곳의 가을은 어떻습니까?

격렬했던 마음들은 광장의 붉은 눈동자와 푸른 새벽 그리고 반송의 오래된 숨결을 기억합니다.
낡은 장롱 속 켜켜이 쌓아둔 이불의 내음처럼 그리운 마음에, 낙엽은 더욱 보채려 바스락댐이 그렇게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글을 써내려감에 때로는 심장을 뜯어내어 스스로 바라보는 듯합니다. 제 안에 아픔이 깊어, 되려 아픔을 주려 한 까닭입니다.

두려운 마음에 손이 떨려 글을 이어나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겨낼 것입니다. 눈을 바로 떠 숨을 크게 들이마심은 남은 말들이 태산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권리가 다른 하나의 권리를 막아서면 안 됩니다. 한쪽에 모든 힘을 가하면 양쪽이 모두 무너집니다. 권리와 권리가 만나 춤을 추듯 어우러져야 합니다. 정치는 본디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지도자는 첨예한 대립의 칼날 위에 홀로 춤을 추듯, 위태롭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과 노조,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대인과 임차인, 다주택자와 무주택자, 계층과 계층, 각자 외로우나 결국 한 몸과 같으니 헤아림을 같이 하시고 한쪽을 해하려거든 차라리 함께 멸하시어 그 흔적마저 없애야 할 것입니다.


매사에 진심으로 임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구렁이가 되어 담벼락을 타고 넘을 줄도 알고 성난 황소가 되어 담을 부셔야 할 때도 있음을 스스로 아셔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사람 뒤에 숨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처세를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국민은 각자 다르니 한곳에 몰아넣으면 안 됩니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이 진정한 통합입니다. 다르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오, 밟아 없앨 것도 아닙니다. 그 접점을 찾고자 눈을 감아 고뇌하고 밤을 밝혀 신음하니, 대통령의 낮과 밤은 따로 없는 것입니다.


2차 재난지원금을 의결하셨습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위주의 구제책이었고 업종별로 위중함을 달리하셨습니다. 아쉬움도 있으나 좋은 일입니다. 아름다운 그림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여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보편적, 선별적 복지를 아우르는 차등적 복지를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모두가 고통받는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모두가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를 점차 다르게 하시라는 뜻입니다. 계층과 계층을 절단하는 단면이 아닌 완만한 경사를 지어 재정 또한 아끼셔야 합니다.


기본 소득을 논하기 전, 사회 취약계층을 먼저 살피셔야 합니다. 분배 정책을 논하기 전, 재정의 건전성을 먼저 살피셔야 합니다. 재정을 한 계층에게 강요한 고통의 산물이 아닌, 기업의 이익 창출과 고용의 확대에서 나오는 경제 순환의 산물로 채우셔야 합니다. 정치가 이념을 품어도 경제는 원리로써 지켜져야 합니다.


공권력의 살아있음을 보여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국가공권력은 강하고 엄정해야 합니다. 다만 일선의 경찰관들과 구급대원들의 공권력을 먼저 살피셔야 하며 이러한 공권력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자 국민이 낳은 자식입니다. 큰 틀에서 외교를 논하고 국정 운영의 방향을 굳건히 하시되, 국민의 사소함까지 살피시어 내정의 기틀을 세우셔야 합니다.


형법을 개정하시어 5대 범죄와 재산범죄의 법정형을 높이시고 판사의 작량감경을 제한하시어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를 간음한 자가 반성문과 전관 변호인의 덕으로 다시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없도록, 여당의 의원들을 재촉하시어 발의를 논의토록 하셔야 합니다. 길거리의 정의는 책상머리의 인권과 결코 같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이 나라의 청소년들을 범죄자의 길로 내몰고, 같은 학생이 다른 학생을 던지고 때리고 빼앗아 죽여 없앰을 조장하는 소년법을 개정하셔야 합니다. 범죄소년과 촉법소년의 연령 기준을 하향 조정하시고 죄명별로 보호처분을 제외해 법의 보호 아래, 청소년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안전한 하굣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청소년 보호법에는 양벌규정을 두시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시고 영세상인들의 생존권 또한 지켜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민생이며 이 땅의 아이들을 지키는 어머니의 길이자 어머니들을 위한 길입니다.


노력한 대로 보상받는 세상을 청년들 앞에 펼쳐주셔야 합니다. 잘못된 평등이 순수한 공정을 해하지 않도록 제도를 재정비 하셔야 합니다. 정시 비중을 더욱 확대하시어 권력과 재력이 아닌, 실력 위주의 대입제도를 공고히 하셔야 합니다.

 

사법고시를 부활하시어 가난한 자의 법복이 낡은 법전과 함께 빛날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대통령님께서 가난을 딛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가난한 자가 소외된 자의 참된 인권을 제 가난에 비춰 살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공기업과 공무원의 채용 과정을 다시 살피시어 피땀 흘려 노력한 청년들이 역차별 앞에 짓밟혀 울지 않게 해주시고 늦은 밤, 전등의 스위치를 가까스로 내리고 찾아온 적막과 어둠 안에 그들의 미소만이라도 밝게 빛날 수 있도록 지켜주셔야 합니다.


국보 1호는 바로 아이들이니 학대받고 소외당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하셔야 합니다. 모든 아이가 부유한 집에서 성장하지는 못하더라도, 모두가 영양가 있는 세 끼 식사를 해결하고 모두가 따스한 손길 아래 편안히 잠자리에 들어 공룡 꿈을 꾸게 해주셔야 합니다.

 

모두가 사랑받고, 모두가 심신에 상처를 입지 않으며, 어떤 누구도 저들끼리 설익은 라면을 끓이다 목숨을 잃지 않도록, 먼저 돌아간 예쁜 동생의 영혼을 병상의 형이 위로하지 않도록, 과자를 찾는 아이의 영혼이 더는 편의점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부디 온 힘을 다해주셔야 합니다.


스스로 태양이 되어 군림하시면 안됩니다. 음지와 양지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국민이 별이니 밤하늘이 되어 이들을 밝혀 주소서. 큰 별이 작은 별의 빛을 해하거든 더욱 어두워지시어 작은 별 또한 찬란히 빛나게 하소서.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글에는 그림자가 없듯 남겨지는 것 또한 없습니다. 마지막 고언을 담은 이 글이 북악산 자락으로 몸을 돌려 날아오르는 그 순간에, 이미 그 뜻을 다 했으니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인의 장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그 흔적만을 쫓아 여윈 글을 맺습니다.


확률이 아닌 확신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며 이천이십년 가을, 塵人 조은산이 40만의 염원을 담아 이 글을 바칩니다.

 

 

 

"대통령님, 어디 계십니까"…'시무7조' 靑 답변에 '무영가'

 

 

 

 

 

 

 

Posted by 드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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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4 교양 서양미술

 

 

 

 

샤를 블랑 지음 | 정철 옮김 | 하진희 감수

2020, 인문산책

 

시흥시중앙도서관

SA284190

 

650.1

블292ㅅ

 

 

마 침 내   발 견 한   회 화 의   문 법

 

Grammaire des Arts du Dessin

 

프랑스 최고의 미술평론가,

 

샤를 블랑의 미술이야기

 

 

"가장 위대한 화가는

자신의 사유의 땅으로,

그가 상상한 궁전이나 들판으로

우리를 이끌고,

거기에서 신들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화가는 자연을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바라보고,

비평가는 자연을 화가들의 마음에 따라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비유한다.

 

법은 명령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잘 따르지 않고,

도덕은 강요하는 것이기에 귀담아 듣지 않으나,

예술은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에 우리를 설득할 줄 안다.

 

화가는 어떠한 형태로도 표현된 적이 없는 생각들을 움직여서

천둥소리가 귀를 때리듯이 우리의 영혼을 자극한다.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방된 자연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상상된 것이다.

 

 

지은이

샤를 블랑 (Charles Blanc, 1813~1882)

 

19세기 프랑스 당대 최고의 미술평론가.

프랑스 학술원 및 예술원의 회원으로서 예술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프랑스 대학에서 미학 및 역사 교수를 역임했다. 초기에는 역사학자이자 정치가였던 그의 형 루이 블랑(Louis Blanc)이 주관하는 여러 언론에 비평문을 기고했고, 《예술 잡지 Gazette des beaux-arts》 등의 편집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 저서로서 이 책의 원저인 《데생 예술의 문법 : 건축, 조각, 회화 Grammaire des arts du dessin : Architecture, Sculpture, Peinture》(1867)의 〈회화편〉에서는 색의 3원색과 이를 기초로 한 색상환, 보색, 유채색과 무채색의 개념 등의 이론을 처음으로 정립했고, 이는 19세기에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한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파리에서 베네치아로 De Paris a Venise》(1828)

《호기심의 보물 Le tresor de la curiosite》(1857~1858, 2 vols.)

《모든 화파 화가들의 역사 Histoire des peintres de toutes les ecoles》(1861)

《렘브란트 전작 Loeuvre complet de Rembrandt》(1873, 2 vols.)

《앵그르, 그의 생애와 작품들 Ingres, sa vie et ses ouvrages》(1870)

《장신구와 의상 예술 Lart dans la parure et dans vetement》(1875)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 Les artists de mon temps》(1876)

《장식 예술의 문법 Grammaire des arts decoratifs》(1881)

이외에 다수의 저서가 있다.

 

 

역자

정철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1983년 KOTRA에 입사해 유럽 지역 조사 작업을 담당했으며, 다섯 차례 해외 근무를 통해 파리, 리옹, 헬싱키, 브뤼셀, 암스테르담에서 무역관장을 역임했다. 35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2018년 정년퇴임했다. 유럽에서 근무하면서 그 인연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던 중 이 책을 조우하고 3년 동안의 번역 작업을 거쳐 국내에 처음으로 샤를 블랑의 이론을 소개하게 되었다. 역서로는 〈조선의 참 유학자이자 담대한 크리스천들〉, 〈메가체인지〉 등이 있다.

 

 

감수

하진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과 인도 비스바바라티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학과 대학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인도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 〈인도 미술에 홀리다〉, 〈아잔타 미술로 떠나는 불교여행〉, 〈천상에서 내려온 갠지스 강〉, 〈샨티니케탄, 평화를 부르는 타고르의 교육도시〉 등이 있고, 역서로는 〈인도의 신화〉 등이 있다.

 

 

 

차례

 

저자의 말 : 회화 미학의 교양을 위하여

 


1 독립                    10 자연


2 설득                    11 빛


3 한계                    12 명암


4 표현                    13 색상


5 숭고함                  14 터치


6 구상                    15 다양성


7 통일성                16 생명력


8 원근법                17 스타일


9 제스처                18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 간략한 서양미술사 / 찾아보기 / 그림 목록

 

 

 

 

 

메인데르트 호베마,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 1689년, 캔버스에 호일, 104×141cm, 내셔널갤러리 소장 (영국 런던)

 

 

빈센트 반 고흐, <타라스콩으로 가는 길 위에서의 화가>, 1888년 소실됨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브리오슈 빵>, 1763년, 캔버스에 오일, 47×56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프랑스 파리)

 

 

 

 

 

1868년 오텔 드루오에서의 미술품 경매 장면

 

 

 

 

 

<레다와 백조 Leda and the Swan>, A.D. 1년, 폼페이 프레스코 벽화

 

백조의 형상을 한 제우스 신이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를 임신시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신화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그림에도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2018년 발견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는데, 20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선명한 색감과 그림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

 

독립

 

 

회화는

자연의 모든 실재를 수단으로

영혼의 모든 개념을

하나의 통일된 표면 위에서

형태와 색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라파엘로 산치오, <갈라테아의 승리>, 1514년, 프레스코화

 

 

 

 

 

 

밀로의 비너스(Vénus de Milo), B.C. 2세기~B.C. 1세기 초, 그리스

 

 

 

 

 

헤라르트 테르뷔르흐, <편지를 쓰는 여성>, 1655년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Jean Baptiste Simeon Chardin), <순무를 다듬는 여인 Woman Cleaning Turnips>, 1738년

 

샤르댕의 그림은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내적인 평화와 정직을 조언해주고 있다.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을 통해 실제 현실에서는 잡을 수 없는 분위기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은 도덕적 가치까지도 표현한다.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비중 있는 정물화가로 인정받았던 샤르댕은 후에 세잔의 정물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2

 

설득

 

 

회화는 어떤 유용성이나 도덕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서도

그 장면의 위엄성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고양시킬 수 있고,

가시적인 교훈을 통해

인간을 교화시킬 수 있다.

 

 

 

 

 

 

프랑수아 마리우스 그라네. <사보나롤라의 심문>, 1843년

 

 

 

 

 

장 바티스트 그뢰즈, <부서진 주전자>, 18세기

 

 

 

 

 

피에테르 코르네리츠 반 슬링헬란트, <앵무새를 들고 있는 소녀>, 17세기

 

 

 

 

 

가브리엘 메취, <청어가 있는 점심식사>, 17세기

 

 

 

 

"의심할 여지없이 예술가는 그 시대의 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시대를 따르는 사람이거나 인기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어떤 자비로운 신이 젖먹이를 엄마 젖가슴에서 일찍 떼어내서 보다 적령(適齡)의 여자의 젖을 먹여 멀리 떨어진 그리스의 하늘 아래서 성년으로 키워냈다고 하자. 그가 낯선 사람이 되어 현 시대로 돌아온다면, 그의 등장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가멤논의 아들처럼 그 존재를 정화시키기 위해 무서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는 현재로부터 그의 소재들을 받아들일 것이 확실하지만, 그 소재들의 형태는 보다 고상한 시대로부터, 심지어 시간을 벗어나 그 자신의 본질의 절대성과 불편의 통일성으로부터 형태를 빌려올 것이다. 그 뒤에 자신이 천상의 순수한 창공으로부터 태어났음을 이슈화하면서 부패한 세대와 시대에도 결코 더럽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임을 계속해서 흘려보낸다. 그의 소재들, 즉 허상은 기품을 받은 것처럼 불명예스러울지 모르지만, 형태는 항상 순수하여 그것의 변덕스러움을 피할 수 있다. 이미 오래전 1세기의 로마인들은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어왔다. 하지만 황제들의 입상들은 항상 우뚝 서 있었고, 사원은 신들을 조롱하는 사람들 눈에 여전히 신성하게 남아 있었으며, 네로 황제와 콤모두스 황제의 악행에 대항해 문제제기를 했던 대피처의 건물들은 고귀한 스타일로 남아 있다. 인류가 존엄성을 잃어버릴 때 그 존엄성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예술이다. 진실은 계속해서 환상 속에서 살아 있고, 그 복제품은 어느 날 모델을 복원시키는 데 이용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 《미학 교육에 관한 편지 Letter sur l'Education esthetique》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세비야의 물장수 The Waterseller of Seville>, 1620년

 

 

 

진실이 크면 클수록 거짓은 그만큼 더 우리를 배신하게 되듯이 대상의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에 더 배신감을 느낀다. 이 그림에서는 물잔과 항아리를 실제와 너무 똑같게 묘사해서 갈증을 풀어주는 듯 잠시 동안이라도 감상자에게 착각을 일으킨다.

 

 

 

 

 

3

 

한계

 

 

회화는 물질적인 모방이 제약하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으나,

허구는 뒤로 물러나고

정신만은 더 커지는 것이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브리오슈 빵>, 1763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술 마시는 사람>, 1629년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일부분, 1485년

 

 

엄숙한 기독교 신앙이 지배하던 시기에 보티첼리는 신화 속 여신의 누드화를 그렸는데, 이 작품은 인간의 아름다움으로 비로소 눈을 돌리게 한 역사적인 작품이 되었고, 보티첼리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정받았다.

 

 

 

 

 

 

4

 

표현

 

 

회화는 표현의 예술이라 할지라도

단순히 표현 예술로만 국한시킬 수 없다.

회화는 스타일로 인물을 이상화시키면서,

다시 말해 생생한 개성 속에서

전형적인 참 모습을 되찾음으로써

아름다움으로 표현을 가다듬을 수 있다.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B.C. 175~B.C. 150년

 

 

 

 

 

산드로 보티첼리, <아테나 여신과 켄타우로스>, 1482년

 

 

 

 

 

라파엘로 산치오, <절름발이의 치유>, 1515년, 템페라화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막달리나 마리아 앞에 나타난 예수 Christ Appearing to Mary Magdalene>, 1651년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사용하여 물감의 농도와 빛의 역할을 실험했다. 렘브란트의 그림들은 밝은 부분이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그 주위와 배경에 어두운 부분이 넓게 배치되어, 마치 어둠 속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것처럼 밝은 부분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특징이 있다.

 

 

 

 

 

5

 

숭고함

 

 

회화는 숭고하게 고양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회화 자체의

고유 수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화가의 창의력에 의한 것이다.

 

 

 

 

렘브란트 반 레인, <엠마오의 만찬>, 1628년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고,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사라졌다."

- 성경

 

 

 

 

니콜라 푸생, <아르카디아의 목동들>, 1638~1640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Lady with an Ermine>, 1489~1490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그림을 '역동적인 초상화 양식'이라 지칭하였다. 돌아서는 여인과 담비의 동작을 통해 화면 우측의 공간으로부터 누군가가 접근하여 주의를 끌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전달된다.

 

 

 

 

 

6

 

구상

 

 

화가는 주제를 생각해내거나

첫 이미지를 고안할 때부터

회화 고유의 특별한 표현 수단을

고려해야 한다.

 

 

 

 

 

다비트 테니르스,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원숭이들>, 1660년

 

 

 

 

아드리안 브라우머, <싸움질하는 농부들>, 1631~1635년

 

 

 

 

 

<볼테르의 계단>, 18세기

 

 

 

 

 

폴 슈나바르, <역사의 철학>, 1850년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500년

 

 

 

 

 

렘브란트 반 레인, <자화상>, 1659년

 

 

 

 

 

 

"회화는 질투심 많은 여신이어서 아낌없이 자신에게 헌신해줄 연인들을 바라고 있다."

- 미켈란젤로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소크라테스의 죽음 The Death of Socrates>, 1787년

 

 

 

피라미드형 구성이 명확하지 않다면 수평적인 방향이 화면을 장악하거나, 아니면 피라미드형 구성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면 수직적인 방향이 화면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7

 

통일성

 

 

화가가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첫 번째 방법은 배열이다.

 

 

 

 

 

"사지를 절단하는 형벌은 그 형벌의 대상자인 범죄자를 거의 압도하지 않는다."

- 호라티우스(Horace, B.C. 65~B.C. 8)의 시 구절

 

 

 

 

피에르 폴 프뤼동, <범죄자를 쫓는 정의와 징벌의 여신>, 1808년

 

 

 

 

 

"먼저 나를 감동케 하라. 나를 놀라게 하라. 나를 고뇌케 하라. 나를 전율케 하고 울게 하며 떨게 하라. 나를 분노케하라. 그러고 나서 너는 네가 할 수 있다면 내 눈을 즐겁게 하라."

-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조반니 벨리니, <왕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1487년

 

 

 

 

 

티치아노 베첼리오,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1565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그리스도의 세례>, 1472~1475년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성 세례자 요한의 탄생>, 1486~1490년

 

 

 

 

 

피에트로 페루지노,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예수>, 1481~1482년

 

 

 

 

라파엘로 산치오, <디스푸타, 성체에 대한 토론>, 1509~1510년

(♣ 디스푸타Disputa는 '논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 미술에서는 '성찬(성체)', '무구수태', '삼위일체' 등 중요한 신학상의 문제를 논하는 성직자, 성인, 교부(敎父) 등의 집회도를 말한다.)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1510~1511년

 

 

 

 

니콜라 푸생, <유다미다스의 유언>, 1643~1644년

 

 

 

 

 

외스타슈 르 쉬외르, <성 부르노의 삶 : 레이몽 디오크레스의 죽음>, 1645~1648년

 

 

 

 

 

니콜라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1637년

 

 

 

 

 

니콜라 푸생, <구출된 어린 피루스>, 1634년

 

 

 

 

 

렘브란트 반 레인, <100플로린 동전>, 1646~1650년

 

 

 

 

라파엘로 산치오, <예수의 변모>, 1516~1520년

 

 

 

 

 

라파엘로 산치오, <시스티나 성모>, 1513~1514년

 

 

 

 

 

"우리는 화가에게 '피라미드형으로 구성하시오, 구멍을 막으시오, 비어있는 곳을 남겨두지 마시오, 각과 평행선 구도를 피하시오, 콘트라스트를 찾으시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의 느낌에 따라 구성하시오. 그러나 당신의 조합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당신이 선택하고 느꼈을지 모르는 통일성으로 선과 그룹, 대중의 무리들, 방향, 크기를 갖추도록 하시오'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 몽타베르(Jacques Nicolas Paillot de Montabert, 1771~1849), 《회화총론Traite Complet de Peinture》에서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짐>, 1612~1614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 리비아에게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읽어주는 베르길리우스>, 1811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 리비아에게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읽어주는 베르길리우스>, 1864년

 

 

 

 

 

외스타슈 르 쉬외르(Eustache Le Sueur), <성 브루노의 삶 : 기도하는 성 브루노 Life of St. Bruno : St. Bruno at Prayer>, 1645~1648년

 

 

 

르 쉬외르는 그림의 구석에 시점을 몰아둠으로써 세속적인 시선과 떨어져 있으며, 은둔 수도자가 세상일을 보지 못하게 가려주는 베일을 살짝 들어 올려주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8

 

원근법

 

 

그림을 구성하는 화가가

원근법을 확실히 알고 있고

그것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법칙들을 지킨다는 것은

일부 감각에 호소해야 할 부분도

포함하고 있다.

 

 

 

 

 

마사초, <성 삼위일체>, 1427년

르네상스 시기에 처음으로 원근법을 사용하여 3차원적 공간감을 창출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파울로 우첼로, <산 로마노 전투>, 1440년경

마사초의 후계자로 평생 원근법에 몰두한 우첼로는 선 원근법으로 공간적 깊이를 표현하였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케르메스>, 1635년

 

 

 

 

파울로 베로네세, <가나의 결혼식>, 1563년

 

 

 

 

 

자크 루이 다비드, <테니스코트의 서약>, 1794년

 

 

 

 

 

앙투안 장 그로, <아일라우 전투의 나폴레옹>, 1808년

 

 

 

 

 

"일부는 앉아 있고 일부는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방을 그림으로 그리려면, 수평선을 어떤 서 있는 사람의 높이로 맞추어야 한다. 이 경우 그림을 보는 관객은 그림 속 인물 옆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림 속에 앉아 있는 두세 사람만 표현한다면 수평선의 높이는 앉아 있는 사람의 눈높이로 맞추는 것이 좋다. 잠시 주의를 기울여 바라본다면, 관객은 그림 속 인물들 옆에 같이 앉아서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 속 인물 중 한 사람이 서 있는 어떤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머리를 약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앞의 예에서와 같이 서 있는 사람의 높이로 수평선을 맞추어야 한다."

 

- 요셉 아데마르(Joseph Adhemar, 1797~1862), 저서 《원근법 논문 부록Supplement to the Treatise upon Perspective》에서

 

 

 

 

 

안드레아 만테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승리> 중 일부, 1488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5~1497년,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 (이탈리아 밀라노)

 

 

 

 

 

니콜라 푸생, <솔로몬의 심판>, 1649년

 

 

 

 

외스타슈 르 쉬외르, <에페소스에서 설교하는 성 바오로>, 1649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호메로스의 신격화>, 1827년

 

 

 

 

외스타슈 르 쉬외르, <성 브루노의 삶 : 나눔>, 1645~1648년

 

 

 

 

라파엘로 산치오, <헬리오도로스의 추방>, 1511~1513년

 

 

 

 

 

"좁은 거리에 있는 집의 정면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는 반대편 벽에서부터의 거리에 따라 그 건물 정면을 그리려고 해서는 안 되며, 상상의 거리를 앞에 두고 그려야 한다. 즉 보다 넓은 거리, 집 정면 높이의 3배 정도의 거리를 상정하고 그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림 속의 인물들이 비틀거리거나 뒤로 넘어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 지오반 파올로 로마초(Gian Paolo Lomazzo, 1538~1592), 저서 《그림 예술의 논문Trattato della Pittura》에서 발타자르 페루치(Balthasar Peruzzi, 1481~1536)와 라파엘로는 위와 같이 생각했다고 기록

 

 

 

 

 

"우리가 어떤 가정을 하든 다섯 발짝 떨어져 어떤 사람을 보는 각도는 열발짝 떨어져 보는 각도보다 항시 두 배 정도 크며, 이러한 문제는 기하학도 수학도 풀 수 없는 것이다."

 

- 볼테르(Voltaire), 저서 《뉴턴의 철학Philosophy of Newton》에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레다의 두부 습작 Studies for the Head of Leda>, 1530년

 

 

<레다와 백조 Leda and the Swan>를 그리기 전에 그린 데생으로, 레다의 머리에 빛이 비춰지는 조명을 생각하고 그렸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수많은 여성들을 그릴 때 남성 모델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 속 수많은 여성들도 남성처럼 근육이 있음을 볼 수 잇다.

 

 

 

 

 

9

 

제스처

 

 

단지 데생으로 국한시켜 그림의 구성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든,

아니면 스케치를 채색하는 것이든 간에

화가는 데생을 통해서

각 인물들의 자세. 몸짓, 동작을

명확히 함으로써만 표현에 들어간다.

 

 

 

 

 

 

"뭐라고! 즉석에서 그린다! 다시 말해 스케치와 마무리를 동시에 하고, 단박에 상상력과 판단력을 충족시키며, 단숨에 그린다고! 그것은 아마 인간이 일상의 언어로 신들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재능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그 재능의 노력을 감추려 할 것인가? 그런 놀라운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즉석에서 그린다는 것은 수정이나 변화 없이 빠르게 처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다 마쳤을 때 어떻게 보일지 미리 현명하게 검토해보는 스케치 없이 즉흥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화가들 중 가장 감동시킬 줄 안다고 알려진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1518~1594)나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와 같은 화가에게 있어서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특별히 루벤스의 경우 예술가의 생각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손질이라는 이 최고의 노동이, 그들의 힘과 확고함으로부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의심치 않고 믿는 것과 같이 흥미롭게도 화가의 창조 열의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노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는 그림의 윤곽을 처음 잡을 때 이미 전체적인 구상 안에 가장 중요한 작업이 있응 것이며, 여러 부분의 배열 속에 재능이 극대화되어 발휘되는 것으로, 이는 진실로 화가가 최선을 다하는 작업이다."

 

-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

 

 

 

 

무덤 안치 장면을 그린 라파엘로의 스케치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37~1541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중 '천벌을 받는 사람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중 '구원을 받는 사람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중 '마리아와 예수'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중 '나팔을 불고 있는 천사들'음과 같이 생각했다고 기록

 

 

 

 

미켈란젤로, <이사야 예언자>, 1508~1512년

 

 

 

 

미켈란젤로, <쿠마에 무녀>, 1508~1512년

 

 

 

 

미켈란젤로, <델포이 무녀>, 1508~1512년

 

 

 

 

미켈란젤로, <페르시아 무녀>, 1508~1512년

 

 

 

 

미켈란젤로, <리비아 무녀>, 1508~1512년

 

 

 

미켈란젤로, <예레미아 예언자>, 1508~1512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스케치 일부분

 

 

 

 

자크 칼로, <음식을 준비하는 집시들>, 1621년

 

 

 

 

니콜라 투생 샤를레, <동정>, 석판화, 1819년

 

 

 

 

외스타슈 르 쉬외르, <교황의 편지를 읽고 있는 성 브루노>, 1645~1648년

 

 

 

램브란트 반 레인, <이삭의 희생>, 1635년

 

 

 

 

 

렘브란트 반 레인, <아브라함의 희생>, 1655년

 

 

 

 

렘브란트 반 레인, <눈 먼 토비>, 1651년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마르쿠스 섹스투스의 귀환>, 1799년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1817년

 

 

 

 

"우리가 그렇게 마시면서 성대한 식사를 하며 감탄하고 있는 동안, 한 노예가 은으로 된 해골을 가져왔는데, 그 해골은 마디마디와 척추가 모든 방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해골을 테이블 위에 놓고 움직이는 사지를 여러 차례 이리저리 돌려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면서 트리말시온(trimalcion)은 '불쌍한 인간이여! 이게 바로 우리가 아닌가!'하고 외쳤다."

 

- 페트로니우스(Gaius Petronius Arbiter, 27~66)의 풍자극에

 

 

 

기원전 1,000년경의 그리스 항아리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이삭 줍기 Gleaners>, 1857년

 

 

자연주의 화가로 알려진 밀레는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생활과 주변의 자연 풍경을 주로 그렸다. 이 작품은 파리 근교 바르비종의 풍경을 담은 그림으로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땅에 떨어진 이삭 줍는 모습을 담았다.

 

 

 

 

 

10

 

자연

 

 

구성이 일단 결정되고

제스처와 동작의 모습을 잡았다면,

화가는 그가 표현해야 하는 형태에

그의 이상(理想)에 맞는 그럴듯함과

자연스러움을 주기 위해

모델과 협의한다.

 

 

 

 

안토니오 다 코레조, <제우스와 이오>, 1531~1532년

 

 

 

 

미켈란젤로, <에리트레아 무녀>, 1508~1512년

 

 

 

 

마인데르트 호베마,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 1689년

 

 

 

 

클로드 로랭, <로마 주변의 풍경>, 1639년

 

 

 

 

니콜라 푸생, <평온한 풍경>, 1650~1651년

 

 

 

 

"이는 여전히 정확한 개념과 어떤 지고(至高)의 예술을 창조하는 영역에 속한다. 왜냐하면 초보 학습 시작 단계에서 우리는 건축학이 여러 실용적인 방법을 갖추고 있는 병기고처럼 생각할 수 있고, 보다 높은 단계의 학습 초기에서는 건축학이 구성의 모든 원칙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학은 모든 미술 작품에 어떤 기초와 어떤 틀을 제공하고 있다. 건축학은 조형물에 균형 개념을 제시한다. 건축학은 안정된 선(線) 속에서 그림이 될 만한 생각이 자리 잡도록 하는데, 그 이유는 건축학이라는 것이 무엇을 고착시키고 안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건축학을 배움으로써 회화에서 어떤 장면이 비틀거리거나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없이 그 장면이 활기차도록 덩어리와 움직임, 생명과 감정까지도 자리 잡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예전에 어떤 훌륭한 조각가가 데생 교육에 관해 이야기한 매우 중요하고 유명한 어느 강의에서

 

 

 

 

 

"이러한 특징들을 긁어모으면서 기분이 고조된 조각가는 미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美)을 창조한다."

 

- 무명의 시인이 어떤 옛 화가 한 명을 두고 읊은 시 구절

 

 

 

 

라파엘로 산치오, <파르나소스>, 1509~1511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설명하는 오이디푸스>, 1808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샘>, 1856년

 

 

 

 

라파엘로 산치오, <성 가족>, 1518년

 

 

 

폴 들라로슈, <제인 그레이의 처형>, 1833년

 

 

 

 

샤를 조셰프 나투아르, <프시케의 화장실>, 1735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인상 : 해돋이 Impression : Sunrise>, 1872년

 

 

인상주의, 인상파의 이름을 알리는 중요한 작품으로, 빛과 그림자 효과를 통해 인상을 전하려고 했다. 이 작품이 전시되었던 첫 번째 인상주의 전시회는 대충 그린 듯한 느낌 때문에 당대에는 온갖 야유와 비난으로 시달렸다.

 

 

 

 

11

 

 

 

화가는 그가 택한 형태를 확인한 뒤에

빛과 색상으로써 그가 생각한 바를

도덕적으로 표현하고,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함으로써

작품을 마무리한다.

 

 

 

 

메디치가 로렌초(Lorenzo) 무덤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생각하는 사람>, 1531년

 

 

 

 

조반니 발리오(Giovanni Baglione),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 1602년

( 극명한 구성의 명암법, 키아로스쿠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피테르 파울 루벤스, <자화상>, 1639년

( 루벤스는 렘브란트와 대척점에서 있으면서 또 다른 명암법을 보여주었다.)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Johannes Jan Vermeer),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년경

 

 

빛을 통해서 인물이 갖고 있는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을 투명하고 맑게 극대화시켰다. 목선 아래쪽으로 갈수록 어둡게 떨어지는 명암은 진주귀걸이를 더 영롱하게 비추는 효과를 보여준다.

 

 

 

 

12

 

명암

 

 

명암은 어떤 형태를 도드라지게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전달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덕적 아름다움의 법칙과

자연 진리의 법규를 따르고 있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8~1819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1517년

 

 

 

 

아담 엘스하이머, <이집트로의 탈출>, 1609년

 

 

 

 

레오나르드 브라머, <동방박사의 예배>, 1628~1630년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 <군인과 소녀>, 1621년

 

 

 

 

지로데, <프랑스 영웅들의 영혼을 맞이하는 오시안>, 1801년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의심 많은 도마>, 1601~1602년

 

 

 

 

 

발랑탱 드 볼로냐,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1620~1622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 <마리 드 메디치 대관식>, 1622~1625년

 

 

 

 

"전면적으로 비추는 빛은 부분적이고, 적은 양의 빛보다 인물을 보다 우아하게 만들어준다. 그 이유는 넓고 강한 빛은 물체의 도드라짐을 감싸주고 끌어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그 빛이 비춰주는 작품은 멀리서도 우아하게 살아나게 된다. 반면에 좁은 빛 아래서 그려진 그림은 어두운 부분이 많아서 멀리서 보면 밋밋한 것처럼 보인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저서 《회화론Treatise on Painting》의 363장에서

 

 

 

 

 

렘브란트 반 레인, <명상에 잠긴 철학자>, 1632년

 

 

 

 

렘브란트 반 레인, <책을 보는 철학자>, 1645년

 

 

 

 

렘브란트 반 레인, <야경>, 1642년

 

 

 

 

"로마의 젊은 처녀들은 결혼을 서약한 다음 판테온의 원형 홀에 신랑에 의해 처음으로 일반인들 앞에 나타난다. 이곳은 둥근 천장 중앙의 유일하게 열린 부분을 통해서만 햇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위에서 내리 비추는 빛이 가장 선호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여자들이 여기에서 최고의 심판관이며, 그녀들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똑바른 자세로 서 있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신랑만이 자연스럽다. 그는 위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빛은 그의 얼굴을 우아함으로 돋보이게 하고, 키를 무척 커 보이게 한다."

 

- 요한 요하임 빙켈만(Johann Joachim Winkelmann, 1717~1768), 저서 《고대인들의 건축적요Remarks upon the Architecture of the Ancients》에서

 

 

 

안토니오 다 코레조, <신성한 밤>, 1529~1530년

 

 

 

 

조슈아 레이놀즈, <뱀프파일드 초상화>, 1776년

 

 

 

 

"베네치아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베네치아의 대가들이 따랐던 원칙을 이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을 택했다. 나는 그들의 그림에서 특별한 빛과 그림자(음영)의 효과를 알아차리고서 노트 한 장을 뜯어서 그림 속에 있는 것과 같은 순서와 같은 방법으로 종이 전체를 검은색 연필로 서서히 칠하면서 종이의 하얀 부분을 빛으로 표현하도록 했다. 몇 번 실험해 본 후에 나는 종이가 항상 거의 비슷한 면적으로 칠해져 잇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대가들의 일반적인 관행은 주된 밝은 부분과 2차적인 밝은 부분의 빛에 그림의 4분의 1 이상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분의 1은 어두운 부분에 할당하고, 나머지는 반농담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덩어리로 크게 연필 칠을 한 종이, 어떻게 보면 거칠게 얼룩덜룩한 이 종이를 눈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 두고 보면,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방식에 놀라게 된다. 즉 관객들은 빛과 그림자의 뛰어난 배분이 가져오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그림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역사적인 주제든 아니면 풍경이든 초상화든 정물화든 간에 상관없이 빠짐없이 나타나는 즐거움인데, 그 이유는 동일한 원칙이 모든 분야의 회화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 1723~1792)

 

 

 

 

 

"우리는 날마다 길거리에서, 야외에서, 충만한 햇빛 속에서 강렬하게 빛을 받고 있는 어떤 아이들의 눈부신 살색에 감탄한다. 이 광채는 신선한 그들의 머리 위에 어떠한 어둡고 짙은 그림자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분명하고 아우르며 뚜렷한 입체감이 있다. 또한 모든 것이 연하고 신선하나, 너무 부드럽지 않고 너무 흐릿한 것은 조금도 없다···. 그러한 효과를 모방하기 위해 화가는 빛의 광채를 배가시켜야 하고, 그늘의 어두움을 높여서는 안 된다."

 

 

-자크 니콜라 파이요 드 몽타베르(Jacques Nicolas Paillot de Montabert, 1771~1849), 저서 《회화개론Traite de Peinture》에서 루벤스를 염두에 두고

 

 

 

 

안토니 반 다이크, <자화상>, 1620~1621년

 

 

 

 

티치아노 베첼리오, <장갑 낀 남자>, 1520~1523년경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1822년

 

 

 

 

안 루이 지로데, <잠자는 엔디미온>, 1791년

 

 

 

 

프랑수아 마리우스 그라네, <로마 카푸친 수도원 내부>, 1818년

 

 

 

 

장 바티스트 위카르,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읽어주는 베르길리우스>, 1790~1793년

 

 

 

 

렘브란트 반 레인, <토비아와 그 가족을 떠나는 천사>, 1637년

 

 

 

 

렘브란트 반 레인, <신성한 가족>, 1640년

 

 

 

 

클로드 로랭, <사무엘의 축성을 받는 다윗>, 1647년

 

 

 

 

프란치스코 프란치아, <검은 옷을 입은 청년>, 1510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밤의 카페 테라스 Cafe Terrace at Night>, 1888년

 

 

반 고흐는 샤를 블랑의 색채이론에 따라 보색 관계로 화면을 구성했다. 이 작품은 청색 하늘과 보색관계인 노란색을 대비함으로써 색을 통해 단순한 색의 재현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려는 것이었다.

 

 

 

 

13

 

색상

 

 

색상은 다른 예술 중에서도

특히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로서,

화가는 반드시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색상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1880년판 색상환 도표

 

 

 

6색 색상환

 

 

 

 

12색 색상환

 

 

 

 

 

"캔버스에 한 색을 칠하면, 붓이 지나간 자리에 그 색이 칠해지는 것 이외에도 그 주변에 보색의 후광이 생긴다. 예를 들어 빨간색 원을 그렸다면 그 주위에 옅은 초록색 잔영이 생기며, 빨간색으로부터 그 잔영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진다. 마찬가지 이유로 오렌지색 원 주위에는 파란색의 후광으로 둘러싸여지며, 노란색 원 주위에는 보라색 후광이 나타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 셰르뢸

 

 

 

 

"1829년 4월 어느 날씨 좋은 날, 철학자 괴테와 정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만개한 노란색 크로커스 꽃을 보게 되었는데, 이때 바닥으로 앉아 다시 바라보니 보라색 자국이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어느 날 들라크루아가 노란색 옷 장식을 그리는 데 열중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가 원하는 노란색을 찾지 못해 실망하고 있었다. 그는 '루벤스나 베로네세와 같은 화가들은 어떻게 그 아름답고 빛나는 노란색을 찾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루브르 박물관을 가기로 하고 마차를 불렀다. 1830년 당시 파리에는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진 이륜마차들이 무척 많았다. 이들 마차 중 하나가 들라크루아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마차에 타려는 순간 멈춰 서서 마차의 노란색이 그늘진 곳에 보라색 잔영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 곧장 그는 마차를 돌려보내고 크게 감동하여 돌아와서는 일단 그가 발견한 법칙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법칙이란 그늘진 곳에는 색의 보완이 항상 미미하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햇빛이 그다지 강하지 않을 때 그 현상은 특히 강하게 나타나고, 괴테가 말한 것처럼 우리 눈은 배경에 맞는 보색을 보게 된다."

 

- 요한 페터 에커만(Johann Peter Eckermann, 1792~1854), 저서 《괴테와의 대화Conversations of Goethe》에서

 

 

 

 

 

"우리가 햇빛이 잘 들어오는 아파트에 있고, 창문은 빨간색 커튼이 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커튼 위에 지름 3~4밀리미터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을 받기 위해 조금 떨어져 하얀 종이를 받친다면, 이 햇살은 하얀 종이 위에 초록색 자국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커튼이 초록색이라면 빨간색 자국이 나타날 것이다."

 

- 가스파르 몽주(Gaspard Monge, 1746~1818), 저서 《기하학 서술Geometric Descriptive》에서

 

 

 

외젠 들라크루아, <단테의 배>, 1822년

 

 

 

 

외젠 들라크루아, <성 세례자 요한의 죽음>, 1838년

 

 

 

 

외젠 들라크루아, <돈 주앙의 난파선>, 1840년

 

 

 

 

외젠 들라크루아, 1845년, 뢱상부르 궁 도서관 천장화

 

 

 

 

외젠 들라크루아, <알제의 여인들>, 1834년

 

 

 

 

"붉은 강낭콩이든 아니면 파란 청금석이나 옥색 터키석이든 간에 색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동양의 화가들은 그 색상이 더 반짝이도록 했는데, 이는 그 자체로 음영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좀 더 강렬하게 만들기 위해, 무미건조하고 단조롭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 마디로 이러한 진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진동 없이는 어떤 색도 눈으로 봐줄 수 없는 색이 되어 버리는데, 이는 같은 조건 하에서 어떤 소리도 이러한 진동 없이는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어 버리는 것과 같다."

 

- 보몽, 《르뷔 데 되 몽드Revnu des Deux Mondes》에서

 

 

 

 

외젠 들라크루아, <바다를 대하고 연설하는 데모스테네스>, 1859년

 

 

 

 

외젠 들라크루아,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1840년

 

 

 

 

페테로 파울 루벤스, <사랑의 정원>, 1630~1631년

 

 

 

페테로 파울 루벤스, <최후의 심판>, 1614~1617년

 

 

 

 

외젠 들라크루아, <무덤의 그리스도>, 1848년

 

 

 

 

외젠 들라크루아, <모로코의 유대인 결혼식>, 1839년

 

 

 

 

외젠 들라크루아, <트라얀의 정의>, 1840년

 

 

 

 

외젠 들라크루아, <키오스 섬의 학살>, 1824년

 

 

 

촐 세잔(Paul Cezanne), <사과와 오렌지 Apple and Oranges>, 1899sus

 

 

세잔의 정물화 가운데 가장 화려함을 자랑하는 작품 중 하나로, 소파 위에 놓인 흰색 식탁보는 과일을 더욱 빛나고 도드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작은 색면들이 겹쳐지면서 대상은 입체감을 갖게 된다.

 

 

 

 

 

14

 

터치

 

 

터치의 특징,

곧 물질적 실행의 질은

화가에게 마지막 표현의 수단이다.

 

 

 

 

 

티치아노 베첼리오, <성 베드로의 순교>, 1585년

 

 

 

티치아노 베첼리오, <성모 승천>, 1516~1518년

 

 

 

 

안토니오 다 코레조, <레디와 백조>, 1530년

 

 

 

니콜라 푸생, <레베카와 그 동료들>, 1648년

 

 

 

 

후세페 데 리베라, <성 오누프리우스>, 1630년

 

 

 

 

 

안토니 반 다이크, <자화상>, 1620~1621년

 

 

 

 

장 일 레스투, <성령강림>, 1732년

 

 

 

 

프랑수아 부세,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1756년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모르페우스와 아리리스>, 1811년

 

 

 

 

헤라르트 테르뷔르흐, <편지 읽는 여인>, 1660~1662년

 

 

 

 

가브리엘 메취, <편지 읽는 여인>, 1665년

 

 

 

 

가브리엘 메취, <아픈 아이>, 1663~1664년

 

 

 

 

장 바티스트 그뢰즈, <비둘기를 안고 있는 소녀>, 연도 미상

 

 

 

 

다비트 테니르스, <실내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1637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베 짜는 여자>, 1655년

 

 

 

발타자르 데너, <늙은 여인의 초상>, 1721년 이전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1886년

 

 

쇠라는 물감을 섞는 대신 색을 원색의 미세한 점들로 분할하는 방법, 즉 '분할주의' 혹은 '점묘법'을 고안해냈다. 인상주의가 색과 빛을 대체로 동일시했다면, 쇠라는 색과 빛의 성질이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인상주의와는 다른 신인상주의를 창조했는데, 이는 '물리적' 혼합 대신에 안구 위에서 섞는 '시각 혼합'을 제안한 샤를블랑의 색채론을 연구하고 활용할 것이다.

 

 

 

 

 

15

 

다양성

 

 

회화와 어떤 관습들은 다양하며,

내적인 특성이든 장식적인 특성이든

그리는 작품에 따라서,

그리고 화가가 채워야 하는

표면의 성격에 따라서

다양해야만 한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1511~1512년,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고대 로마의 회화 양식을 보여주는 폼페이의 프레스코화 벽화

 

 

 

 

"석회반죽 면이 아직 마르지 않은 동안에 석회의 탄산칼슘은 안료를 빨아들이고 스며들게 하며, 완전히 반투명한 니스처럼 두께감이 없는 진짜 결정체 같은 것으로 그것의 표면을 형성한다. 이 피막은 그림을 손상키는 모든 외부적인 요인으로부터 그림을 보호하게 된다. 튼튼한 벽에 이렇게 그려진 그림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견고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이러한 그림은 말하자면 습기의 영향과 같이 불순한 기후의 공기 속에서도 변치 않는 내구성을 지니게 된다."

 

- 프랑수아 아나톨 그루이에(Francois Anatole Gruyer, 1825~1909), 저서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에 대한 시론Essai sur les fresques de Raphael》에서

 

 

 

 

 

프레스코화로는 조금도 다시 손댈 필요가 없다.

맨 처음에 다 처리되어야 한다.

 

- 극작가 시인 몰리에르(Moliere, 1622~1673) 프레스코화에 대해

 

 

 

 

 

피에르 미냐르, 파리의 발 드그라스 궁전 천장화, 1663년, 프레스코화

 

 

 

이폴리트 플랑드랭,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1846년, 파리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 벽화

 

 

 

 

안드레아 만테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승리> 중 일부, 1482~1492년

 

 

 

 

한스 멤링, <성 우르술라 성골함>, 1489년

 

 

 

안토니오 다 코레조, <성모 승천>, 1526~1530년, 두오모 성당 돔 천장화 (이탈리아 피렌체)

 

 

 

 

 

줄리오 로마노, <넵투누스와 물의 요정>, 1528년

 

 

 

 

라파엘로 산치오, <신들의 향연>(위쪽)과 <신들의 회의>(아래쪽), 1517~1518년

 

 

 

 

"파르마(Parma)의 산 조반니(San Giovanni) 예배당을 프레스코화로 장식하면서 안토니오 다 코레조(Antonio da Correggio)의 붓은 벽을 뚫고 하늘로 무한히 열려 있는 것처럼, 그래서 마치 자신이 딛고 있는 들판을 없애버린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면서 견고한 표면에 대칭의 통로만을 그려 넣고, 가상 건축물의 장식물로 가장자리 틀을 장식했던 미켈란젤로보다 더 대담하게 코레조는 실제 건축물이 없어져 보이게 끔 하는 것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빈 공간으로 그 건축물을 대신하고, 끝없는 이 공간의 한 중앙에 불규칙적인 선형으로 무한히 많은 무리들이 매달려 있으면서 가장 어려운 수직 원근법에 따라 서로서로 둥글게 말려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 앙리 들라보르도(Henri Delaborde, 1811~1899, 예술 평론가), 저서 《현대 예술에 대한 잡기Melanges sur l'art contemporain》에서

 

 

 

 

안토니오 다 코레조, <예수 승천>, 1520~1521년, 산 조반니 성당 천장화 (이탈리아 피렌체)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년

 

 

 

 

 

"그림에 칠해진 오일 분자들이 쌓이고, 마르면서 증발로 인해 오일 분자들의 흔적들이 낳는다. 표면으로 나타날 때 오일 분자는 이미 말라버린 분자에 의해 형성된 얇은 막이나 증발을 막아주는 불침투성의 니스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오일 분자들은 물감의 경계 부분에서 이탈하려는 진행에 막혀 기름층을 형성하고, 이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농축되어 그림을 누렇게 변색시킨다."

 

- 토반하인 남자(Charles, Baron de Taubenhein, 1769~?), 저서 《밀랍 유화에 대하여De la Peinture a l'huile-cire》에서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9년

 

 

 

 

엘리자베트 루이즈 비제 르 브룅, <밀짚모자를 쓴 폴리냑 공작부인>, 1782년

 

 

 

 

 

모리스 켕탱 드 라 투르,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1722~1765년

 

 

 

 

 

"(라 투르는) 그로(Gros)와 지로데(Girodet), 게랭(Guerin), 그리고 나, 모두 'G'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우리 화가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이보다 나은 점을 조금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 프랑수아 제라르(Francois Gerard, 1770~1837), 라 투르가 초벌칠을 한 두상을 보여주면서

 

 

 

 

조르주 루제, <나폴레옹 1세와 마리 루이즈의 결혼식>, 1811년

 

 

 

 

 

"에나멜화는 공기, 물, 열기, 추위, 습기, 먼지를 포함해서 유화를 손상시킬 수 있는 모든 요인들로부터 안전하다. 따라서 걸작들의 보존을 위해 대량으로 칠해지는 에나멜은 헤아릴 수 없는 장점이 있다."

 

- 루이 뒤시유(Louis Dussieux, 1815~1894), 저서 《에나멜 역사의 연구Recherche sur l'histoire de l'Email》에서

 

 

 

 

 

"색상 염료를 가루로 빻아진 유리와 섞어서 불로 녹이면 반짝거림은 변하지 않는다. 유리가 액체로 변하면서 염료의 미립자를 둘러싸고 에나멜 위에 이 미립자를 고착시키게 된다. 불의 작용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러한 작품은 프레스코화나 아교풀 화(peinture a l'eau encollee)와 같이 보인다. 이러한 상태에서 아무런 탈 없이 다시 손질이 가해질 수 있다···."

 

- 피에르 쥘 졸리베(Pierre Jules Jollivet, 1794~1871), 저서 《용암 위의 에나멜화Peinture en Email sur lave》에서

 

 

 

 

레오나르 리모쟁, <그리스도 수난도>, 1553년

 

 

 

"인간의 기술에 있어서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고, 시각적으로 보기에 이보다 더 예쁘고 놀라우며, 내구성과 정교함에 있어서 이보다 더 값진 것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 영상으로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물을 보여주는 (에나멜) 그림이 아닌가!"

 

- 자크 니콜라 파이요 드 몽타베르(Jacques Nicolas Paillot de Montabert, 1771~1849)

 

 

 

 

장 페니코, <갈보리 산 가는 길>, 1525~1535년

 

 

 

 

레오나르 리모쟁, <아이네아스>, 1540년

 

 

 

 

장 프티토, <헨리에타 마리아 여왕 초상>, 1660년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18세기, 과슈화

 

 

 

 

알렉상드르 가브리엘 드캉, <전통 의상을 입고 앉아 있는 여인>, 19세기

 

 

 

 

 

랭부르 형제,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중 1월과 6월, 1412~1416년

 

 

 

 

예한 푸케, <프랑스 연대기> 중

'필립 왕에게 에드워드 3세의 헌정' 장면, 1455~1460년

 

 

 

 

자크 니콜라 파이요 드 몽타베르,

<마멜루크의 루스탐 초상>, 1806년

( 마멜루크Mameluk는 이슬람 세계의 노예군을 말함)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수채화와 같이 빨리 지워져버릴 때에만 무관심한 남자의 마음속에 남는다. (그러나) 어떤 연인의 마음속에서는 이 이미지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불의 힘에 의해 고착된다. 그것이 바로 납화이다. 시간도 결코 그것을 지울 수 없다."

 

- 플루타르코스(Plutarch, 45~120)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굴 Oysters>, 1862년

 

 

똑같은 정물을 그리더라도 어떤 화가는 단지 자연을 모방할 뿐이고, 또 다른 화가는 자연을 모방하면서도 해석하고 선택하며 정리한다. 그것이 장인과 예술가를 구분하는 차이이다. 마네는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전환되는 시기에 중추적 역할을 했으며, 그의 그림은 단순한 선 처리와 강한 필치, 풍부한 색채감이 특징이다.

 

 

 

 

 

16

 

생명력

 

 

회화의 영역이

자연 전체로 확대된다 할지라도

회화 예술에는 상대적이든 또는 절대적이든,

지역적인 또는 범세계적인 의미에 따라서

단계적인 서열이 있다.

 

 

 

 

 

앙리 오라스 롤랑 들라포르트, <정물>, 1765년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부엌 정물>, 1732년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자두가 있는 그릇>, 1728년

 

 

 

 

 

 

카스파르 네츠허르, <음악 레슨>, 1664~1665년

 

 

 

 

카스파르 네츠허르, <구애> 1665

 

 

 

 

가브리엘 메취, <음악을 작곡하는 여성과 호기심 많은 남자>, 1662~1663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 Farm Garden with Sunflowers>, 1907년

 

 

화면을 가득 채운 꽃과 녹색, 노랑, 빨강, 흰색 등 명도 대비는 풍부함을 느끼게 한다. 클림트는 아르누보 계역의 장식적인 양식을 선호하며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했다. 그의 그림들은 '색채로 표현된 슈베르트의 음악'이라 불리며,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다.

 

 

 

 

17

 

스타일

 

 

회화의 다양한 장르가

열등한 형태에 속하느냐,

아니면 우월한 형태에 속하느냐 하는 것은

모방과 스타일 중 어느 것이

주된 역할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얀 데 헤엠, <샴페인 잔과 파이가 있는 아침식사 정물>, 1642년

 

 

 

 

라헬 라위스, <꽃이 있는 정물>, 1664~1665년

 

 

 

 

렘브란트 반 레인, <큰 나무가 있는 초가집>, 1641년

 

 

 

 

실로몬 반 라위스달, <곡물밭 풍경>, 1638년

 

 

 

 

니콜라스 피터스존 베르헴, <세 사람의 목동 무리>, 1656년

 

 

 

 

니콜라 푸생, <이상향의 풍경>, 1645~1650년

 

 

 

 

클로드 로랭, <석양>, 1646~1647년

 

 

 

 

 

클레드 로랭, <석양의 항구>, 1639년

 

 

 

 

빌럼 반 더 펠더, <풍랑>, 1660년

 

 

 

 

라자르 브뤼인데, <낚시꾼이 있는 호수 풍경>, 18세기

 

 

 

얀 피트, <큰 개, 난쟁이와 소년>, 1652년

 

 

 

 

멜키오르 돈데코테르, <닭과 오리>, 17세기

 

 

 

 

 

파울루스 포테르, <어린 황소>, 1647년

 

 

 

 

 

필립 바우베르만, <백마>, 1646년

 

 

 

 

 

프란스 스니데르스, <사슴 사냥>, 17세기

 

 

 

 

 

앙투안 장 그로, <아부키르 전투>, 1807년

 

 

 

 

앙투안 장 그로, <아일라우 전투>, 1807년

 

 

 

 

라파엘로 산치오, <콘스탄티누스 전투>, 1517~1524년

 

 

 

 

샤를 르 브룅, <알렉산드로스 전투>, 1673년

 

 

 

 

오라스 베르네, <소모지에라 전투>, 1816년

 

 

 

 

 

오거스트 라페, <나폴레옹의 근위병들>, 1836년

 

 

 

 

조슈아 레이놀즈, <사라 캠프벨의 초상>, 1778년

 

 

 

 

이아생트 리고, <루이 14세의 초상>, 1701년

 

 

 

 

프랑수아 제라르, <레카미에 부인 초상>, 1805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브로글리 공주>, 1851년

 

 

 

 

한스 홀바인, <헨리 8세의 초상>, 1537년

 

 

 

 

조슈아 레이놀즈, <존슨 박사>, 1770년

 

 

 

 

조슈아 레이놀즈, <그란비 후작 존 매너스>, 1766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베르탱 씨 초상>, 1832년

 

 

 

 

 

"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진중하면서도 부드러운 얼굴 모습, 짐작컨대 16세기의 모든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고, 에라스무스의 비웃는 듯한 입술이 아니면서도 그와 같이 고대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 모습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홀바인의 이 초상화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영혼이 이처럼 얼굴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결코 없었다."

 

- 폴 만츠(Paul Mantz)

 

 

 

 

안토니스 모르, <메리 여왕의 초상>, 1554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 1659년

 

 

 

 

 

아드리안 반 오스타데, <마을 학교>, 1662년

 

 

 

 

아드리안 반 오스타데,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화가>, 1663년

 

 

 

 

폴 시냐크(Paul Signac),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 In the Time of Harmony>, 1893~1895년

 

 

조르주 쇠라를 이어 신인상주의(점묘주의)를 이끌었던 폴 시냐크는 색채 분할은 체계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빛과 색채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하며 모자이크화 된 작은 직사각형의 색점들을 통해 그림을 그렸는데, 이 밝은 색점들은 감각적이고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리듬감을 주었다. 또한 특유의 붓 터치감은 세심한 균형감을 줌으로써 현대적 감각을 돋보이게 했다. 1886년 시냐크는 파리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났고, 1887년 두 사람은 정기적으로 파리 외곽의 아니에르 쉬르 센느(Asnieres-sur-Seine)에 가서 강의 풍경과 카페 등을 그렸다. 이때 반 고흐는 시냐크의 느슨한 기법에 감탄했고, 짧고 굵은 스트로크로 화면을 채우는 반 고흐의 기법에 영향을 미쳤다. 폴 시냐크의 작품들은 후대의 입체파와 야수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18

 

에필로그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방된 자연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상상된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타라스콩으로 가는 길 위에서의 화가 Painter on the Road to Tarascon>, 1888년

 

 

이 작품은 1888년 반 고흐가 프랑스 아를(Arles)에 머물고 있을 당시 그려진 작품으로 이를 북동쪽 교외에 있는 몽마주르(Montmajour) 수도원을 지나 타라스콩(Tarascon)으로 걸어가는 반 고흐의 자화상이다. 전신이 그려진 빈센트 반 고흐의 유일한 자화상이라고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아이리스 Irises>, 1890년

 

 

노란색 배경과 아이리스 꽃의 대조적 색깔이 강한 효과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샤를 블랑의 보색 대비를 바탕으로 하여 충실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아이리스는 원래 자주색에 가깝게 색칠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붉은색이 바래면서 푸른색 꽃잎으로 보인다고 한다.

 

 

 

 

♧ 간략한 서양미술사

 

 

 

선사시대 미술

 

문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인류는 벽화 등을 그리며 미술 활동을 해왔다. 기원전 2만 년 전 알타미아 동굴 벽화나 라스코 동굴 벽화 등은 그 대표적 예이다.

 

 

 

고대 이집트 미술

 

태양 숭배, 절대왕권주의 중심이었던 이집트 문명은 피라미드 등을 통해 영혼불멸의 사상을 믿었다. 그 결과 얼굴과 발은 측면을 그리고 몸은 정면을 그리는 전형적인 틀이 생겨났다.

 

 

 

고대 그리스 미술

 

조화와 균형을 중심으로 신전 건축이 주를 이루었고, 황금 비례라는 이상적인 미(美)를 추구한 신들의 조각상을 많이 만들었다. 대표작으로는 밀로의 비너스, 파르테논 신전 등이 있다.

 

 

 

고대 로마 미술

 

미(美)의 기준에 있어 기능성과 실용성, 합리성을 중시하였다. 콜로세움 극장, 카리칼라 황제의 목욕탕과 같은 건축물과 카이사르 흉상,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입상 등이 있다.

 

 

 

중세 미술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15세기 초까지 약 천 년 동안의 미술을 말한다. 기독교 중심의 세계가 형성되면서 종교적 필요에 따라 주문 제작되었다. 중세 미술은 크게 비잔틴-로마네스크-고딕 미술 3단계로 변화한다.

 

 

 

르네상스 미술

 

'재생', '부활'이라는 뜻의 '르네상스'는 인간 정신의 회복을 바탕으로 중세의 기독교 신앙 위주의 미술에서 인간 위주의 미술로 전환한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전반 전성기를 맞이한다. 또한 이 시대에 유화가 발명되어 원근법을 회화에 적용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이 있다.

 

 

 

바로크 미술

 

17세기에는 루터의 종교개혁과 절대 왕권이 성립하였고, 대표적 건축물로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이 잇다. 회화에서는 역동적이면서 빛을 통한 강한 색채 대비를 추구했다. 대표적 작가로는 루벤스, 렘브란트, 베르니니, 카라바조 등이 활동했다.

 

 

 

로코코 미술

 

루이 15세가 통치하는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성행했던 미술 사조다. 18세기까지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이고 감각적인 성향이 사치스러운 궁전이나 교회를 장식하는 데 널리 유행하였다. 대표적 작가로는 와토, 프라고나르, 부셰 등이 활동했다.

 

 

 

신고전주의 미술

 

18세기 계몽주의 여파로 귀족층이 몰락하면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주의 양식이 부활하게 된다. 대표적 작가로는 다비드, 앵그르 등이 있다.

 

 

 

낭만주의 미술

 

18세기 중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산업혁명, 미국의 독립, 나폴레옹의 전쟁 등 급변하는 시기에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며 등장하였다. 죽음, 전쟁, 광기를 표현하거나 극적인 사건을 주로 다루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제리코, 들라크루아 등이 있다.

 

 

 

자연주의 미술

 

19세기 중엽 낭만주의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 하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작가들이 등장한다. 대표적 작품으노는 밀레의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 등이 있다.

 

 

 

사실주의 미술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달은 시민 평등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평범한 일상과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고발, 도시 근로자를 소재로 삼았다. 대상의 세부 특징까지 정확히 재현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사조다. 대표적 작가로는 쿠르베, 도미에 등이 있다.

 

 

 

인상주의 미술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중요한 회화운동. 당시 아카데미 화가들은 귀족의 초상화나 신흥 부르주아층의 누드화 등을 그렸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러한 퇴폐적 관행에서 탈피하여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실적 묘사를 던져 버리고, 야외에서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였다. 모네의 《인상 : 해돋이》(1872)는 인상파의 출발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후 이들 인상주의는 현대미술 즉 모더니즘의 태동에 영향을 미쳤다.

 

 

 

신인상주의 미술

 

점묘파라 불리며, 모자이크화 된 작은 직사각형의 색점들을 통해 그림을 그렸다. 이 밝은 색점들은 감각적이고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리듬감을 주었다. 인상주의가 경험적이고 감각적이라고 한다면, 신인상주의는 분석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 화가로는 쇠라, 시냐크, 피사로 등이 있다. 특히 시냐크의 작품들은 후대의 입체파와 야수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짧고 굵은 스트로크로 화면을 채우는 반 고흐의 기법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후기 인상주의 미술

 

대략 1890년에서 1905년 사이 프랑스 미술의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인상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찰나의 순간에 주목한 인상주의와는 달리 후기 인상주의는 작가만의 주관과 경험 등 화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기 시작하여 화가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어떤 시점으로 보느냐의 주관성에 주목했다. 대표적 작가로는 반 고흐, 고갱, 세잔, 로트렉, 드가 등이 있다.

 

 

 

야수주의 미술

 

20세기 주류인 아방가르드의 사조로서 현대미술의 신호탄과 같았다. 후기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명암과 색채를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 감성에 따라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했다. 대표적 작가인 마티스는 피카소와 함께 회화에 위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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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진 만평]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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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진 만평]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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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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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1

2019년 10월 21일

 

 

 

시정연설

2019년 10월 23일

 

 

 

국무회의

2019년 10월 28일

 

 

 

지도자의 변심

2019년 11월 06일

 

 

 

청와대의 밤

2019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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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공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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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조 지무쇼 편저 | 진노 마사후미 감수 | 최미숙 옮김

2020, 다산초당

 

시흥시중앙도서관

SA284176

신천역스마트도서관

 

909

조78ㅅ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수천 년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도시 이야기를 통해 한눈에 펼쳐내다!

 

 


 

1 DAY · 1 CITY · 30 DAYS · 30 CITIES

 

하루 한 도시

가볍게 펼쳐 언제든 시작하는

세계사 공부!

 

세계 문명을 좌우한 로마, 아테네, 파리는 물론

장안, 앙코르, 교토까지

30개 도시와 함께 떠나는 세계사 여행

 

이 책은 기원전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세계사를 총 30개 도시의 역사를 통해 단순하고 명쾌하게 풀어냅니다. 세계사는 도시 문명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세계 주요 도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모습에 이르렀는지 살펴보는 것은 세계사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세계사의 큰 축을 담당하는 도시들을 비롯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도시들까지 폭넓게 다루었고, 각 도시의 전문가들이 꼭 알아야 할 핵심 지식을 엄선하고 감수했습니다.

하루 한 도시 역사 여행을 마쳐나가다 보면, 도시의 역사적 배경을 훑었다는 성취감과 함께 어느새 세계사의 기본 지식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도시의 모습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와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재 국가     이라크공화국

 

         인      구      도시 현존하지 않음

 

 


 

 

 

엮은이

조 지무쇼造事務所

 

‘쉽게, 재미있게, 정확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85년에 창립한 기획·편집 집단이다. 역사를 중심으로 문화, 종교, 생활 실용까지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전문 지식에서 꼭 알아야 할 핵심만을 추려 단순 명쾌하게 풀어내자는 목표를 가지고 의기투합했다. 다수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국내에도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한눈에 꿰뚫는 전쟁사 도감』,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황제의 세계사』, 『신화대전』 등이 번역, 출판되었다.

 

 

감수자

진노 마사후미神野正史

 

세계사 강의로 유명한 인기 강사. 일본 내 유명 입시학원인 가와이주쿠학원의 세계사 과목을 담당하고 있고, 방송, 저술, 온라인 강의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세계사의 재미를 대중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고 국내에도 『세계사 수업』, 『역사로 읽는 세계』, 『숙청으로 보는 세계사』가 번역, 출판되었다.

 

 

옮긴이

최미숙

 

숙명여대 대학원 한국사학과 석사 졸업. 꾸준히 ‘함께 책 읽기’를 하며,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해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시각을 갖추려 노력 중이다.
현재 글밥 아카데미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한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한번에 끝내는 세계사』, 『역사로 읽는 세계』, 『역사로 읽는 경제』, 『미래 연표』 등이 있다.

 

 

CONTENTS

 

 

들어가는 글


30개 도시 세계지도

 



01 바빌론___성서에 이름을 남긴 고대의 요충지
   ㆍ 우루크


02 예루살렘___고난의 역사가 새겨진 성지


03 아테네___민주정을 꽃피운 문화와 학문의 도시


04 알렉산드리아___헬레니즘문화가 탄생한 학술 도시


05 테오티우아칸___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은 ‘신들의 도시’


06 로마___몇 번이고 되살아난 ‘영원의 도시’
   ㆍ 바티칸


07 콘스탄티노플___유럽과 아시아가 맞닿은 요충지


08 장안___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거듭한 수도의 대명사


09 바그다드___이슬람제국의 최전성기를 구축한 ‘평안의 도시’


10 교토___일본의 중심이었던 ‘천년의 수도’


11 사마르칸트___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요충지


12 앙코르___웅장하고 아름다운 사원을 품은 밀림 속 도시


13 튀니스___3000년의 역사를 품은 지중해의 십자로


14 베이징___지방도시에서 중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역대의 수도


15 믈라카___세계유산과 일상이 혼재하는 오래된 항구도시

 

16 모스크바___대삼림에 건설된 ‘제3의 로마’


17 이스파한___‘세계의 절반’이라고 불린 고원의 고도


18 베네치아___무역으로 지중해를 석권한 ‘물의 도시’


19 델리___다문화가 혼재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ㆍ 뭄바이


20 상트페테르부르크___표트르대제가 건설한 ‘유럽으로 열린 창’


21 파리___세계로 전파된 프랑스 문화의 발신지


22 암스테르담___프로테스탄트 상인이 만들어낸 무역도시


23 런던___19세기에 ‘세계의 중심’이 된 도시


24 뉴욕___초강국 미국을 상징하는 메가시티
   ㆍ 워싱턴 D.C.


25 빈___합스부르크 가문이 일군 ‘음악의 도시’
   ㆍ 프라하


26 리우데자네이루___열대의 미항에 건설된 뉴타운
   ㆍ 상파울루


27 시드니___리아스식 해안에 조성된 항만도시


28 싱가포르___아시아 부국으로 자리 잡은 도시국가


29 상하이___경제발전의 기치를 내걸고 급성장한 항만도시
   ㆍ 홍콩


30 두바이___사막지대에 출현한 근미래 도시

 

도판 출처 및 지도 참고문헌

 

 

 

 

 

 

 

 

WORLD HISTORY

01

 

바빌론

Babylon

 

성서에 이름을 남긴

고대의 요충지

 

많은 사람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 전설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전설에 의하면, 당시 크게 번성했던 고대도시 바벨(바빌론)의 왕이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탑을 쌓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진 바빌론신전의 석탑은 약 90미터의 어마어마한 높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황량한 사막이 펼쳐진 메소포타미아 평원에 수천 년 전, 무엇이 존재했을까?

 

 

현재 국가      이라크공화국

 

       인       구      도시 현존하지 않음

 

 

 

 

 

 

함무라비 법전비

 

 

 

 

 

신바빌로니아왕국과 그 주변국  바빌론은 유프라테스강의 하류지역에 위치하였다.

 

 

 

 

 

바빌론의 구조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건설한 남북 왕궁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바빌론의 공중정원  일설에 따르면 피라미드형의 계단식으로 되어 있고, 풀, 꽃,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아 마치 삼림으로 뒤덮인 작은 산과 같았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대왕

 

 

 

 

 

이라크 우르의 지구라트

 

 

 

우루크(Uruk)

 

인류 최초의 문자 기록을 남긴 도시

우루크는 바빌론이 건설되기 훨씬 전에 수메르인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건설한 최대 도시국가다. 『구약성서』에는 '에레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현재의 이라크 국명이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우루크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부터 사람들이 모여 산 흔적이 있으며, 기원전 3000년경에 설형문자의 원형인 그림문자로 농작물의 수확량이나 가축 수 등을 점토판에 기록했다.

우루크인이 사용한 문자와 지명, 직업과 같은 어휘는 바빌로니아를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다양한 민족에게 전해져 2000년 이상 사용되었다.

가장 번성했던 시기 우루크의 면적은 약 2.5제곱킬로미터 정도이고, 인구는 여러 설이 있지만 2만 ~ 4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우루크인은 하늘의 신과 여신, 아누와 이난나를 숭배했고 바빌론과 마찬가지로 신전과 지구라트를 건설했다.

 

 

 

 

WORLD HISTORY

02

 

예루살렘

Jerusalem

 

고난의 역사가

새겨진 성지

 

현존하는 대도시들 중에서도 특히 유구한 역사를 지닌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적인 성지로 유명하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분쟁의 무대가 되어왔다.

고대 유대인들이 세운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구약성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도시가 건설된 이후 예루살렘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로마제국,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거쳤다.

 

 

현재 국가     이스라엘

 

                    인      구      약 92만 명(2019년 기준)

 

 

 

 

 

 

가나안에서 돌아온 정탐꾼을 맞이하는 모세  『구약성서』에 따르면 가나안으로 떠나라는 야훼의 명을 받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12명의 정탐꾼을 보내 그곳이 살만한 땅인지 알아보았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위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왕국의 중간에 위치하면서도 어떤 유대 부족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가 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 노예를 해방시키는 키루스 2세  키루스 2세는 특유의 관용정책으로 유대인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고 신성한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허락했다.

 

 

 

 

 

통곡의 벽

 

 

 

 

 

예루살렘을 정복한 십자군

 

 

 

 

 

현재 예루살렘의 중심 시가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예루살렘 쟁탈전이 벌어졌고, 그 결과 이 도시에는 다양한 민족의 유적이 존재한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당시

 

 

 

 

 

다마스쿠스 문

 

 

 

 

 

성스테파노 문

 

 

 

 

 

다윗의 묘

 

 

 

 

 

 

WORLD HISTORY

03

 

아테네

Athens

 

민주정을 꽃피운 문화와

학문의 도시

 

고대 그리스 시대에 고대 민주정을 완성한 아테네. 이곳에서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 교류하며 철학, 문학, 건축 등 학문을 발달시키고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리스에 존재한 많은 도시국가 중에서 아테네가 특히 민주정을 발전시키고 크게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국가    그리스공화국

                인       구    약 315만 명(2019년 기준)

 

 

 

 

 

아테네 통치를 두고 싸우는 포세이돈과 아테나

 

 

 

 

 

현재의 파르테논 신전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위치지도

 

기원전 5세기경 에게해 주변  고대 그리스세계는 여러 차례 대제국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의 침략을 받았다.

 

 

 

 

 

 

마라톤 전투  아테네군이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군을 무찌른 이 전투에서 올림픽 경기의 마라톤 경주가 유래되었다.

 

 

 

 

복원된 트리에레스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종교적, 군사적 역할을 담당했고 아고라는 정치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장소였다.

 

 

 

 

 

 

고대 아고라 유적지

 

 

 

 

 

소크라테스 흉상

 

 

 

 

 

플라톤 흉상

 

 

 

 

 

디오니소스 극장

 

 

 

 

 

카이로네이아전투  이 전투를 통해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지배권을 손에 넣었고, 이는 훗날 마케도니아를 물려받은 알렉산드로스가 대제국을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WORLD HISTORY

04

 

알렉산드리아

Alexandria

 

헬레니즘문화가 탄생한

학술도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베트남의 호찌민 등 위인의 이름에서 유래한 도시는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는 무려 2300년 이상의 기나긴 역사를 자랑한다.

동지중해에 접한 이 도시에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학술을 전하는 거대한 도서관이 건설되어 많은 학자가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지(知)의 성과는 중세 이전에 사라져버렸다.

 

 

현재 국가     이집트아랍공화국

 

          인       구     약 518만 명(2019년 기준)

 

 

 

 

 

 

 

 

알렉산드리아의 위치  이집트왕국의 왕도는 나일강 연안에 위치했지만 알렉산드리아는 하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  파로스섬으로 이어지는 둑을 경계로 두 개의 항구로 나뉘어 기능했다.

 

 

 

 

 

무세이온에서 모신 아홉 명의 무사이  무세이온은 본래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그리스 여신들인 무사이를 모시던 곳이었지만,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은 신전 기능과 더불어 학술기관의 역할도 담당했다.

 

 

 

 

 

파로스섬의 대등대를 묘사한 회화

 

 

 

 

 

밀라노대성당에서 테오도시우스의 출입을 막는 암브로시우스  그리스도교가 국교화되고 난 후, 현실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가 성직자에게 굴복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라비 파샤

 

 

 

 

 

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WORLD HISTORY

05

 

테오티우아칸

Teotihuacan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은

'신들의 도시'

 

아시아와 유럽 문화권에서 멀리 떨어진 아메리카대륙에도 대도시는 존재했다. 거대한 피라미드가 세워진 고원의 도시 테오티우아칸.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8세기경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왕조의 기록이 없는 탓에 도시의 성립배경, 생활모습, 쇠퇴과정까지 모두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현재 국가     멕시코공화국

       인       구    도시 현존하지 않음

 

 

 

 

태양의 피라미드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달의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의 구조  도시 구조를 살펴보면 당시 지배계층이 고도의 천문학 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WORLD HISTORY

06

 

로마

Rome

 

몇 번이고 되살아난

'영원의 도시'

 

역사적으로 최고의 영화를 누렸던 로마제국의 수도답게 로마는 당대의 최신기술을 활용해서 상하수도와 공중목욕탕을 건설했다. 이러한 시설은 무엇보다 로마 시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로마제국이 붕괴된 후에 로마는 가톨릭교회의 소재지로 규모와 지위가 축소되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또다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현재 국가     이탈리아공화국

 

             인       구    약 423만 명(2019년 기준)

 

 

 

 

 

세르비우스 성벽

 

 

 

 

 

카이사르의 죽음  그가 죽기 직전 한 말로 널리 알려진 "브루투스, 너마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서 나오는 대사로, 역사적 사실로서의 근거는 없다.

 

 

 

 

 

콜로세움 내부

 

 

 

 

 

1세기경 로마 시가지  원로원의사당 등의 건물이 세워졌던 포로로마노는 정치의 중심지였다.

 

 

 

 

 

 

 

마르틴 루터

 

 

 

 

 

 

현재의 로마 시가  시간이 흐르면서 테베레강의 양쪽으로 도심이 점점 확대되었다.

 

 

 

 

 

 

바티칸 전경

 

 

 

 

바티칸(Vatican City)

 

가톨릭교회의 총본산이 위치한 도시국가

면적 0.44제곱킬로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알려져 있는 도시국가 바티칸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26년, 이탈리아와 로마교황청 사이에 '라테라노 조약'이 체결되어 국가로서 독립을 승인받은 후 비로소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바티칸의 국가 원수는 로마교황이다. 초대교황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제자인 성 베드로가 추존되었다.

사실 바티칸시 자체의 역사는 매우 유구하다. 756년에 카롤링거왕조의 피핀 3세가 바티칸을 포함한 라벤나 지역을 헌납했을 때부터 로마 가톨릭교회의 총본산으로 자리 잡은 긴 역사를 가졌다.

394년, 성 베드로의 묘 위에 성당이 세워졌고 그 후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 이곳이 세계 최대의 그리스도교 건축물인 성베드로대성당이다. 이 대성당 옆에는 바티칸궁전이 있는데, 여기에 로마교황이 거주하고 있다.

 

 

 

 

 

WORLD HISTORY

 

07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

 

 

유럽과 아시아가

맞닿은 요충지

 

 

 

현재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은 고대 로마제국, 동로마제국, 오스만제국 등 각 시대별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세 대국이 수도로 삼은 곳이다.

그리스인이 처음 건설한 이 도시는 2700년에 가까운 역사 속에서 로마제국의 내분, 십자군 원정, 이슬람세력의 침공 등 수많은 전란을 겪으며 유럽과 아시아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도시로 성장했다.

 

 

 

현재 국가     터키공화국

 

                    인       구     약 1500만 명(2019년 기준)

 

 

 

 

 

이스탄불의 위치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보스포루스해협의 양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발렌스 수도교

 

 

 

 

 

공의회가 열렸던 아야이레네성당

 

 

 

 

 

아야소피아성당

 

 

 

 

 

톱카프궁전

 

 

 

 

술레이만 1세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현재 이스탄불의 중심가  구시가지에는 궁전과 모스크 등 역사상 중요한 건축물이 많다.

 

 

 

 

 

 

WORLD HISTORY

 

08

 

 

장안

長安

 

 

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거듭한

수도의 대명사

 

 

 

현재 산시성 시안시인 장안은 전한 시대부터 오랫동안 수많은 중국왕조의 수도 역할을 했다. 치밀한 도시계획하에 정돈된 장안은 당대 최고의 거대도시로,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주나라, 진나라의 도읍도 자리했던 장안 일대에는 당나라가 멸망할 때까지의 중국사가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광대한 중국 영토 중에서도 장안과 그 주변지역이 수도로 거듭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국가     중화인민공화국

 

              인       구     약 1200만 명(2019년 기준)

 

 

 

 

 

진시황제

 

 

 

 

 

병마용갱

 

 

 

 

 

웨이수이강 주변에 자리 잡은 도읍지  주나라에서 당나라에 이르는 여러 왕조가 웨이수이강과 그 지류 주변 도시를 수도로 정했다.

 

 

 

 

 

장안의 구조  장안성은 고대중국의 풍수사상을 토대로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

 

 

 

 

 

종루

 

 

 

 

 

고루

 

 

 

 

 

 

시안사건 당시의 장쉐량(왼쪽)과 장제스(오른쪽)

 

 

 

 

 

 

 

WORLD HISTORY

 

09

 

 

바그다드

Baghdad

 

 

이슬람제국의 최전성기를

구축한 '평안의 도시'

 

 

 

대부분 사막인 아랍 땅에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잇는 운하로 둘러싸인 바그다드는 동서의 다양한 사람과 상품이 모이는 수상도시로 발전했다.

아바스왕조의 수도로 번성한 바그다드는 이후 몽골제국을 비롯한 영국, 미국 등 강대국에 번갈아 침략당하기도 했지만, 현재 이라크의 수도이며 중동의 대표적인 대도시로 손꼽힌다.

 

 

 

현재 국가     이라크공화국

                인       구     약 722만 명(2019년 기준)

 

 

 

 

 

아바스왕조와 그 주변국  바그다드는 콘스탄티노플, 장안과 같은 대도시와 비슷한 시기에 번성했다.

 

 

 

 

 

 

8~12세기의 바그다드 시가지  궁전은 티그리스강 서쪽에서 점차 동쪽으로 옮겨갔다.

 

 

 

 

 

 

『천일야화』 원본

 

 

 

 

 

1958년 이라크 혁명 당시

 

 

 

 

 

 

WORLD HISTORY

 

10

 

 

교토

京都

 

 

일본의 중심이었던

'천년의 수도'

 

 

지금은 유명한 관광도시로서의 측면이 부각되고 있지만, 교토는 794년 시작된 헤이안시대부터 오랫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교토는 헤이안시대에 천황을 중심으로 귀족정치가 행해진 곳이고, 무로마치시대에는 무가정권의 중심지였다. 수도라는 이유로 역사적으로 수많은 정쟁의 격전지가 되었지만, 이 도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번영을 이루었다.

 

 

현재 국가     일본국

 

                        인       구     약 150만 명(2019년 기준)

 

 

 

 

 

간무 천황

 

 

 

 

 

헤이안쿄의 구조  헤이안쿄도 장안과 같이 황제의 궁을 도시 북쪽에 건설했는데, 이런 구조를 '북궐형(北闕形) 도시'라고 한다.

 

 

 

 

 

오닌의 난

 

 

 

 

금각사

 

 

 

 

료안지

 

 

 

 

 

 

WORLD HISTORY

 

11

 

 

사마르칸트

Samarkand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요충지

 

 

유라시아대륙의 중앙에서는 크고 작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많은 도시가 발전했는데, 이 도시들은 실크로드 무역망의 중계지로서 번성했다. 그중 하나인 사마르칸트는 중국대륙의 당나라, 이슬람의 아바스왕조 등 여러 대국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15세기 티무르왕조 시대에는 인도 북부부터 터키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지배했는데, 당시 사마르칸트는 이슬람문화권의 중심지였다.

 

 

현재 국가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인      구      약 32만 명(2019년 기준)

 

 

 

 

 

현장법사

 

 

 

 

 

티무르왕 동상

 

 

 

 

 

15세기경 티무르왕조와 그 주변국  몽골족 출신 이슬람교도였던 티무르는 티무르왕조를 창건하고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정했다.

 

 

 

 

 

구르 에미르

 

 

 

 

19세기 후반의 사마르칸트 신시가지  도시 중심지가 황폐한 아프라시압 언덕에서 남서쪽 레기스탄 광장으로 바뀌었다.

 

 

 

 

 

울루그 벡이 세운 이슬람 신학교

 

 

 

 

 

 

WORLD HISTORY

 

12

 

 

앙코르

Angkor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원을 품은

밀림 속 도시

 

 

캄보디아의 대표적 관광명소 앙코르와트를 품고 있는 거대한 앙코르 유적은 과거 크메르왕국의 수도이자 신앙의 땅이었다.

밀림에 묻힌 석조 사원은 왕의 독실한 신앙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왕국이 얼마나 반영했었는지, 그 문화적 수준이 얼마나 높았었는지 알려준다.

 

 

현재 국가     캄보디아왕국

 

       인       구    도시 현존하지 않음

 

 

 

 

 

앙코르와트

 

 

 

 

 

앙코르의 위치  앙코르 유적군은 캄보디아 북부의 씨엠립주에 자리하고 있다.

 

 

 

 

 

앙코르 유적군  동서 바라이 주변으로 역대 왕들이 건설한 수도와 사원이 있다.

 

 

 

 

앙리 무오가 그린 앙코르와트

 

 

 

 

 

WORLD HISTORY

 

13

 

 

튀니스

Tunis

 

 

3000년의 역사를 품은

지중해의 십자로

 

 

수차례 주인이 바뀐 도시는 많지만, 지중해의 요충지 튀니지에서는 유난히 많은 세력이 얽히고설켜 반목했다. 튀니스 동쪽 근교의 도시국가 카르타고는 다양한 민족의 지배를 받았고 근대에는 프랑스 세력권에 편입되었다. 각 시대의 다양한 유적과 건축물을 볼 수 있는 튀니스는 오늘날 아프리카대륙의 대표적인 국제도시로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현재 국가     튀니지공화국

 

              인       구     약 69만 명(2019년 기준)

 

 

 

 

 

아랍의 봄 당시 튀니지 시위 현장

 

 

 

 

 

튀니스의 위치  튀니스부터 시칠리아섬까지의 최단거리는 약 120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이베리아 반도부터 피레네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까지 쳐들어가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밀어붙인 일은 한니발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지투나 모스크

 

 

 

 

 

알제리에 세워진 이븐 할둔 동상

 

 

 

 

 

현재 튀니스의 중심 시가지  구시가지 메디나에서는 주변의 현대적인 모습과 대조적인, 옛 정취가 담긴 거리 풍경을 볼 수 있다.

 

 

 

 

 

 

WORLD HISTORY

 

14

 

 

베이징

北京

 

 

지방도시에서 중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역대의 수도

 

 

세계 최대의 인구와 광대한 면적을 자랑하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는 옛 황제가 생활하던 고궁을 에워싸듯이 근대 건축물과 낡은 집들이 섞여 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어지럽게 뒤섞인 속에서도 베이징은 나날이 발전해 가는 모습이다. 베이징은 언제 어떻게 중국의 수도가 되었고 어떠한 역사를 거쳐왔을까?

 

 

현재 국가     중화인민공화국

 

              인       구     약 2000만 명(2019년 기준)

 

 

 

 

 

복원된 베이징 원인 흉상

 

 

 

 

 

쿠빌라이 칸

 

 

 

 

 

자금성

 

 

 

 

 

베이징의 구조  명과 청의 황제는 천제를 모셨으며, 천단을 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2차 아편전쟁 때의 팔리카오전투

 

 

 

 

 

1949년 중국인민해방군의 베이징 입성을 환영하는 행사가 열린 천안문

 

 

 

 

 

 

베이징 전경

 

 

 

 

 

WORLD HISTORY

 

15

 

 

믈라카

Melaka

 

 

세계유산과 일상이 혼재하는

오래된 항구도시

 

 

믈라카는 한때 말레이반도 대부분을 지배하던 믈라카왕국의 왕도이자 동서무역의 중계기지로서 번창했지만 이후 지배자가 잇따라 바뀌며 수도의 기능을 상실했다.

현재의 믈라카는 동서 문화가 혼재한 역사적인 거리가 세계유산으로 등록되는 등 다채롭고 활기찬 관광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국가     말레이시아

 

                 인       구     약 50만 명(2019년 기준)

 

 

 

 

 

믈라카의 위치  믈라카는 믈라카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의 중요한 기항지였다.

 

 

 

 

 

믈라카 풍경

 

 

 

 

 

 

현재 믈라카의 중심 시가지  믈라카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아직 산티아고 요새의 성문과 대포 등이 남아 있다.

 

 

 

 

 

 

WORLD HISTORY

 

16

 

 

모스크바

Moscow

 

 

대삼림에 건설된

'제3의 로마'

 

 

러시아는 때로 단일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대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16세기 이후 동방정교 문화권의 중심지를 자임해왔다.

18세기에는 수도의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20세기에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수도라는 지위와 더불어 ‘세계 사회주의의 중심지’라는 새로운 지위를 얻었다. 이 도시는 흔히 유럽의 변경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사실 무척이나 다채로운 역사를 지닌 국제도시다.

 

 

현재 국가     러시아연방

 

                    인       구     약 1250만 명(2019년 기준)

 

 

 

 

 

류리크

 

 

 

 

 

모스크바공국의 국기와 국장

 

 

 

 

 

크렘린과 우측으로 보이는 우스펜스키대성당

 

 

 

 

성바실리대성당

 

 

 

 

러시아 원정을 떠나는 나폴레옹  이 전쟁의 완패를 계기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몰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812년 조국 전쟁'이라 부른다.

 

 

 

 

블라디미르 레닌

 

 

 

 

현재 모스크바의 중심 시가지  크렘린을 중심으로 시가지의 주요 도로가 방사상으로 확장되었다.

 

 

 

 

 

모스크바대학

 

 

 

 

 

WORLD HISTORY

 

17

 

 

이스파한

Isfahan

 

 

'세계의 절반'이라고 불린

고원의 고도

 

 

16~17세기, 중동의 대부분 지역은 투르크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 가운데 이란의 사파비왕조는 독자적인 페르시아문화를 지켰다.

사파비왕조의 문화가 새겨진 이스파한에는 넓은 광장을 중심으로 열리는 활기찬 바자르가 있고, 유럽과 인도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이 도시가 품은 푸른 타일로 뒤덮인 이슬람 사원과 아름다운 신학교의 건축미는 현대에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신비로운 고도의 분위기를 풍긴다.

 

 

현재 국가     이란이슬람공화국

 

          인       구     약 155만 명(2019년 기준)

 

 

 

 

이스마일 1세

 

 

 

 

 

이맘 모스크

 

 

 

 

 

현재 이스파한의 중심 시가지  계획적으로 도로를 반듯하게 정비한 신시가지에 비해 구시가지는 직선도로가 적다.

 

 

 

 

 

WORLD HISTORY

 

18

 

 

베네치아

Venice

 

 

무역으로 지중해를 석권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관광도시다. 과거 베네치아는 무역으로 발전해서 당시의 대도시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하고 일대를 지배하는 도시국가로 우뚝 섰다. 베네치아는 어떻게 한정된 토지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현재 국가     이탈리아공화국

 

                인       구     약 5만 1000명(2019년 기준)

 

 

 

 

 

 

베네치아의 위치  베네치아는 다리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 마르코 유해의 피신  전승에 의하면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쳤고, 놀란 이교도들이 혼비백산하는 틈을 타 신자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교회로 옮겼다고 한다.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정복

 

 

 

 

 

베네치아 풍경

 

 

 

 

 

 

현재 베네치아 본섬  베네치아 본섬에는 현재에도 많은 운하와 수로 그리고 역사적인 건축물이 남아 있다.

 

 

 

 

 

 

WORLD HISTORY

 

19

 

 

델리

Delhi

 

 

다문화가 혼재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델리는 전통적인 토착 힌두문화를 바탕으로 외부의 침입세력, 즉 13세기 이후의 이슬람왕조와 19세기 이후의 영국에 의해 발전해왔다. 이슬람 건축과 힌두 건축이 어우러져 있는, 근대적인 계획도시 뉴델리를 포함한 델리 지역은 말 그대로 인도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가     인도공화국

 

                    인       구     약 2100만 명(2019년 기준)

 

 

 

 

 

쿠트브미나르와 철기둥

 

 

 

 

 

무굴제국 시대의 델리  현재와 비교해 랄 킬라와 야무나강 사이 거리가 더 가까웠다.

 

 

 

 

 

랄 킬라

 

 

 

 

 

자마 마스지드

 

 

 

 

 

 

샤자한

 

 

 

 

 

아그라의 타지마할

 

 

 

 

 

현재 델리의 중심 시가지  영국 식민지 시대에 올드렐리의 남서쪽에 뉴델리가 건설되었다.

 

 

 

 

 

뭄바이(Mumbai)

 

영국 주도로 개발된 상공업의 중심지

아라비아해에 면한 뭄바이는 현재 델리에 필적하는 대도시로, 인구는 1800만 명이 넘는다.

원래는 해안에 일곱 개의 섬이 밀집한 작은 어촌지역이었는데, 1534년에 포르투갈이 이곳에 성채를 쌓고 교역거점을 건설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포르투갈어로 '좋은 항구'라는 뜻의 '붐바이'로 불렸지만 이후 영국인에 의해 '붐베이'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1995년에 힌두교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옛 이름인 '뭄바이'로 개칭했다. 1661년에 영국에 양도했던 이 도시는 중동이나 유럽 방면으로 나가기 용이한 입지조건 때문에 동인도회사의 거점이 되었다. 19세기에 영국자본에 의해 방적산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1891년에는 인구 82만 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인도가 독립한 후에도 뭄바이는 상공업의 중심 도시로 발달했다. 현재는 인도의 최대 재벌인 타타그룹을 포함한 여러 대기업의 본사, 증권거래소와 같은 중요한 금융기관이 모인 인도 최대의 경제도시다.

 

 

 

 

 

 

WORLD HISTORY

 

20

 

 

상트페테르부르크

Saint Petersburg

 

 

표트르대제가 건설한

'유럽으로 열린 창'

 

 

내륙의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러시아에서 18세기에 새롭게 조성된 항구도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유럽문화를 동경하는 황제의 꿈이 담긴 뉴타운인 셈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전과 교회는 표트르대제가 초대한 이탈리아 건축가에 의해 세워졌다. 20세기 이후 모스크바가 근대적인 도시로 발전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금도 제정시대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현재 국가     러시아연방

 

                  인       구     약 543만 명(2019년 기준)

 

 

 

 

 

 

상트페테르부르크 위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핀란드만의 가장 안쪽인 네바강 하구에 위치한다.

 

 

 

 

 

 

현재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표트르 대제

 

 

 

 

 

 

여름궁전

 

 

 

 

 

겨울궁전

 

 

 

 

 

청동기마상

 

 

 

 

데카브리스트의 난

 

 

 

 

 

피의 일요일 사건  이 사건은 '1905년 러시아 혁명'이라고 불린 전국 규모의 반정부 운동의 시작으로 간주된다. 이때 시작된 공산주의 운동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거리를 청소하는 시민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 시가지  운하가 도심을 휘감고 흐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WORLD HISTORY

 

21

 

 

파리

Paris

 

 

세계로 전파된

프랑스문화의 발신지

 

 

프랑스왕국이 성립한 것은 9세기지만 파리가 줄곧 그 수도의 자리를 지켰던 것은 아니다. 16~17세기 프랑스 왕들은 영내를 이동하며 지냈는데, 18세기 말까지 이어진 부르봉왕조는 베르사유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을 때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때 시민들 사이에서 자유로운 문화가 발전했지만,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이 자리 잡은 것은 혁명과 전란이 휘몰아친 19세기가 되고 나서다.

 

 

 

현재 국가     프랑스공화국

 

               인       구     약 210만 명(2019년 기준)

 

 

 

 

파리시족이 사용한 금화

 

 

 

 

노트르담대성당

 

 

 

 

파리대학

 

 

 

 

 

루브르박물관

 

 

 

 

오를레앙전투에서의 잔다르크  오를레앙의 성처녀라고도 불리는 잔 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아 백년전쟁에 참전해 프랑스군의 승리를 이끌었다.

 

 

 

 

 

흑사병이 창궐한 마르세유  흑사병 이전의 세계 인구는 4억 5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14세기를 거치며 거의 1억 명이 줄었다. 인구가 흑사병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는 데는 17세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퐁네프 다리

 

 

 

 

 

보주 광장

 

 

 

 

프랑스혁명

 

 

 

 

파리 국립극장

 

 

 

 

나폴레옹 3세

 

 

 

 

 

파리의 구역과 명소의 위치  시테섬을 중심으로 점차 도시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① 루브르박물관 ①④ 시테섬 ①⑥ 퐁네프 다리 ③④ 보주 광장 ④ 노트르담대성당 ④ 바스티유 광장 ⑦ 에펠탑 ⑧ 상젤리제 거리 ⑨ 파리오페라좌(가르니에궁) ⑰ 개선문 (숫자는 구역번호)

 

 

 

 

 

1889년에 촬영한 에펠탑

 

 

 

 

 

68운동  청년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기성세대와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저항해 프랑스를 뿌리 끝까지 뒤흔든 '68운동'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변혁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WORLD HISTORY

 

22

 

 

암스테르담

Amsterdam

 

 

프로테스탄트 상인이

만들어낸 무역도시

 

 

암스테르담은 교역권 확대를 배경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17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도시 중 하나로서 황금기를 맞이했다. 물론 그 영광에 이르기 위해 간척으로 토지를 넓히고 오랜 세월 동안 홍수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과거의 황금기에도 현재도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왕국의 수도로서 성장하고 있다.

 

 

현재 국가     네덜란드왕국

 

               인       구    약 114만 명(2019년 기준)

 

 

 

 

풍차 마을

 

 

 

 

 

암스테르담의 위치  암스테르담항의 선박들은 자위더르 방조제를 통해 북해로 드나든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일본에 거주하는 네덜란드인을 묘사한 회화

 

 

 

 

네덜란드왕실왕궁

 

 

 

 

암스테르담의 구시가지  암스테르담 중앙역은 과거에 항구였던 곳에 위치하고 있다.

 

 

 

 

 

WORLD HISTORY

 

23

 

 

런던

London

 

 

19세기에

'세계의 중심'이 된 도시

 

 

세계에 군림하던 '대영제국'이 성립하기 이전부터 런던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시는 서서히 규모를 확대했고, 마침내 대영제국의 수도에 어울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재해를 극복하고 계획적으로 도시를 개조하기 위한 힘겨운 노력이 있었다.

 

 

 

                         현재 국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연합왕국(영국)

 

인       구     약 918만 명(2019년 기준)

 

 

 

 

 

스테인드글라스에 묘사된 애설스탠왕

 

 

 

 

웨스트민스터사원

 

 

 

 

 

17세기의 런던 시내  이 무렵 웨스트민스터지구는 이미 정치의 중심지였다.

 

 

 

 

 

웨스트민스터궁전

 

 

 

 

버킹엄궁전

 

 

 

 

런던 대화재

 

 

 

 

 

런던만국박람회가 열린 수정궁  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건물인 '수정궁'은 유리와 강철로만 지어졌고, 가로 124미터에 세로 564미터로 약 6만 7000제곱미터의 대지 위에 30만 장의 유리와 4500톤의 주철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1936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 런던의 중심 시가지  런던의 특별행정구역 '시티'는 금융 중심지로 영국중앙은행과 런던증권거래소가 이곳에 있다.

 

 

 

 

 

1952년 당시 런던

 

 

 

 

 

브리튼전투 당시 런던 상공의 독일 전투기

 

 

 

 

 

 

WORLD HISTORY

 

24

 

 

뉴욕

New York

 

 

초강국 미국을

상징하는 메가시티

 

 

고층빌딩이 경쟁하듯 높이 솟아 있고 바둑판같은 격자무늬 도로가 쭉쭉 뻗어 있는 뉴욕. 자타공인 세계적인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하지만 뉴욕은 19세기 초만 해도 현재와 같은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만큼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뉴욕이 인구 10만의 소도시에서 오늘날과 같이 미국 최대의 메가시티로 변모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시장의 선견지명과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     미합중국

 

                     인       구     약 860만 명(2019년 기준)

 

 

 

 

 

베일을 벗은 자유의 여신상

 

 

 

 

월 스트리트

 

 

 

 

올리버 크롬웰

 

 

 

 

보스턴 차 사건

 

 

 

 

 

 

드위트 클린턴

 

 

 

 

뉴욕시의 다섯 개 자치구  브롱스크만이 본토에 위치하고 나머지 구는 모두 섬 혹은 섬의 일부이다.

 

 

 

 

 

맨해튼 전경

 

 

 

 

맨해튼의 중심부  맨해튼은 섬의 중앙에서 남쪽으로 유명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다.

 

 

 

 

 

 

워싱턴 D.C.(Washington, D.C.)

 

'건국의 아버지'를 기념한 수도

워싱턴주와 혼동하기 쉬운 미합중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정식명칭은 '워싱턴콜롬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다.

워싱턴주가 캐나다와 국경을 접한 서해안 태평양 연안에 있는 데 비해, 워싱턴 D.C.는 동해안쪽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이 도시는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은 특별구다.

'워싱턴'은 짐작하다시피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사람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서 유래했고, '콜롬비아'는 흔히 아메리카대륙의 발견자로 간주되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따웠다.

1790년에 조지 워싱턴이 이곳에 새로운 수도 건설을 제안했다. 그에 따라 프랑스인 건축가의 지휘하에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을 정리하고, 거기에 대각선 모양으로 관통하는 도로를 계획했다.

이 도시계획은 1800년에 완성되었고, 워싱턴 D.C.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WORLD HISTORY

 

25

 

 

Vienna

 

합스부르크 가문이 일군

'음악의 도시'

 

 

유럽의 민족분포는 대체로 북서 게르만어권(독일), 남서 라틴어권(이탈리아), 러시아를 비롯한 동부 슬라브어권으로 크게 나뉘는데, 빈은 이 세 지역의 중간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빈은 13세기에 합스부르크가(家)의 본거지가 된 후 신성로마제국의 수도가 된다. 다양한 민족이 모여든 빈에서 특히 18세기 이후 많은 음악가, 예술가, 학자가 배출되었다.

 

 

현재 국가     오스트리아공화국

 

          인       구     약 192만 명(2019년 기준)

 

 

 

 

 

카를대제

 

 

 

 

슈테판대성당

 

 

 

 

빈대학

 

 

 

 

14세기의 빈  빈은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도시 중심과 외곽에 성벽을 쌓았다.

 

 

 

 

1차 빈공방전

 

 

 

 

쇤부른궁전

 

 

 

 

베토벤

 

 

 

빈 국립 오페라극장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현재 빈의 중심 시가지  과거에 설치된 성벽들은 도시개발을 할 때 철거되었다. 외곽 성벽 자리에는 순환도로 링슈트라세가 들어섰다.

 

 

 

 

블타바강과 카를교

 

 

 

 

프라하

 

중세의 모습이 감도는 '북쪽의 로마'

합스부르크가가 15세기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독점하기 전까지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 프라하다.

8세기경부터 블타바강(독일어로 몰다우강)이 가로지르는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동서 유럽 통상의 요충지로 번성했다. 이 지역을 다스리던 보헤미아의 왕이 1355년에 신성로마제국의 카를4세로 즉위했다.

이 시기 프라하에는 515미터 길이의 카를교와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프라하대학 그리고 교회 등이 건설되었다. 당시 프라하는 유럽 각지에서 상인과 학자가 모여들었고, '백탑의 거리', '황금의 프라하', '북쪽의 로마'라고 불렀던 융성한 도시였다.

17세기 이후 이곳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18세기에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치세에 공업지대로 발전했다. 1918년에는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가 되었고, 1993년에 동부 슬로바키아가 분리해 나간 후에도 여전히 체코의 수도로 남아 있다.

 

 

 

 

 

WORLD HISTORY

 

26

 

 

리우데자네이루

Rio de Janeiro

 

 

열대의 미항에 건설된

뉴타운

 

 

 

삼바리듬에 맞춰 열정적으로 춤추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니발은 브라질을 상징하는 축제로 인기가 높다.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뒤섞인 리우데자네이루는 삼바를 비롯해 여러 독자적인 문화를 낳았다.

16세기에 개척된 이 도시는 남미대륙에서 생산되는 금은과 커피의 수출항으로서 발전했다. 하지만 19세기 초에는 종주국인 포르투갈의 수도가 되는 극적인 운명을 맞기도 했다.

 

 

 

현재 국가     브라질연방공화국

 

          인       구     약 650만 명(2019년 기준)

 

 

 

포르투갈 · 브라질 · 알가르브 연합왕국의 판도  이 왕국의 영토는 유럽,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세 대륙에 걸쳐 있었다.

 

 

 

 

 

리오데자네이루 전경

 

 

 

 

카니발 현장

 

 

 

현재 리우데자네이루의 중심 시가지  리우브랑코 대로를 중심으로 고층빌딩, 은행, 호텔 등 주요 건물이 많다.

 

 

 

 

 

상파울루(Sao Paulo)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이는 대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서쪽으로 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상파울루는 남반구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다. 표고 750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위도가 거의 비슷한 라우데자네이루보다 조금 더 시원한 편이다. 인구는 약 1100만 명이다.

상파울루는 포르투갈인이 1554년에 도시의 기초를 닦은 뒤에도 한참 잠자고 있다가, 19세기 중기에 커피재배가 브라질의 기간산업이 된 이후에 급속하게 발전했다. 1890년대에는 인구가 약 6만 명에서 약 24만 명으로 증가했고, 20세기에 리우데자네이루를 능가하는 브라질 제일의 공업지대가 되었다.

상파울루의 특징은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우러진 도시라는 점이다. 포르투갈계뿐만이 아니라 이탈리아계, 독일계 외에 중국인과 아랍인 등 아시아계 이주민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1900년 전후부터 이민을 온 일본계 주민이 현재 약 100만 명에 달한다. 동남부의 리베르다지 지역에는 일본과 중국 출신이 많은 동양인 거리가 형성되어 한자 간판을 내건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WORLD HISTORY

 

27

 

 

시드니

Sydney

 

 

리아스식 해안에 조성된

항만도시

 

 

남반구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인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 개척의 역사를 함께해왔다. 이주민이 만든 이 아름다운 항만은 19세기 이후 태평양에서 대영제국의 중요한 거점이 된다.

큰 전쟁과는 관계가 없었을 것 같은 시드니지만 유일하게 이 도시를 직접 공격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와의 싸움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완전한 독립을 결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국가     오스트레일리아연방

 

      인       구    약 486만 명(2019년 기준)

 

 

 

 

아서 필립

 

 

 

 

데니슨 요새

 

 

 

 

하버브리지

 

 

 

 

일본의 공격에 대비할 것을 경고하는 포스터

 

 

 

 

시드니오페라하우스

 

 

 

 

현재의 시드니 중심 시가지  시드니가 위치한 대륙의 남동부는 지진이 적어 해안 가까이에 초고층빌딩이 많다.

 

 

 

 

 

WORLD HISTORY

 

28

 

 

싱가포르

Singapore

 

 

아시아 부국으로 자리 잡은

도시국가

 

 

아무 자원도 갖지 못한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독립한 지 50여 년 만에 '세계의 금융센터'가 될 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는 싱가포르의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의 강력한 리더십과 엄격한 통제하에서 추진된 도시계획이 있다.

 

 

현재 국가     싱가포르공화국

 

            인      구     약 564만 명(2019년 기준)

 

 

 

 

머라이언

 

 

 

 

토마스 래플스

 

 

 

 

싱가포르의 위치  말라카해협의 출입구에 위치한 상가포르는 인도, 동아시아 교역거점을 찾던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리콴유

 

 

 

 

현재의 싱가포르  싱가포르 남부의 센턴웨이에는 금융기관이 많이 모여 있다.

 

 

 

 

WORLD HISTORY

 

29

 

 

상하이

上海

 

 

경제발전의 기치를 내걸고

급성장한 항만도시

 

 

황허강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강인 양쯔강 하구 일대에 위치한 상하이는 세계 제일의 화물취급량을 자랑하는 상하이항을 보유한 세계 유수의 경제도시다.

옛 조계지(租界地)에서 발전한 상하이는 현재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수도인 베이징보다 인구가 더 많다. 어느덧 중국 해양진출의 상징으로까지 우뚝 올라선 급성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현재 국가     중화인민공화국

 

              인       구    약 2632만 명(2019년 기준)

 

 

 

 

상하이 전경

 

 

 

19세기의 상하이  현재 상하이의 중심 시가지에는 서구 열강의 조계지가 있었다.

 

 

 

 

중일전쟁

 

 

 

현재의 상하이  상하이는 양쯔강 하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항구를 건설했다.

 

 

 

 

 

홍콩(香港)

 

중국화가 될수록 약해지는 존재감

옛날에 작은 항구마을이었던 홍콩은 향나무의 집적지여서 '홍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아편전쟁 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크게 발전했다.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영화와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산업이 발전하고 독자적인 문화가 구축됐다.

현재 홍콩은 북쪽 해안을 형성하고 있는 주룽반도, 그 북쪽에서 중국 본토까지 길게 뻗어있는 신지에, 항구의 남쪽에 위치한 홍콩섬, 홍콩국제공항이 위치한 란타우섬을 비롯한 250개가 넘는 외진 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약 1000제곱킬로미터의 토지에 700만 명 이상이 사는 인구 밀집지다. 1997년에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동시에 '1국가 2제도'가 적용되어 50년간 고도의 자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최근 홍콩정부의 친중정책에 대해 홍콩 시민이 반대운동을 펼치며 종종 충돌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상하이의 발전과 함께 홍콩의 존재감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세계적으로 경제 · 교역 · 관광의 명소로 유명한 도시임에는 변함이 없다.

인근 마카오 역시 1999년에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되어 카지노와 화려한 리조트호텔 등 이국적인 매력을 즐길 수 있는 관광도시로 자리 잡았다.

 

 

 

 

WORLD HISTORY

 

30

 

 

두바이

Dubai

 

 

사막지대에 출현한

근미래 도시

 

 

두바이는 외자획득을 위한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화려한 고급리조트로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 도시는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초고층빌딩이 빽빽한 최첨단 디자인도시로 급속히 탈바꿈했다. 사막지대가 많은 중동국가 대부분은 석유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두바이가 석유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개혁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국가     아랍에미리트 연합국(UAE)

 

인      구     약 333만 명(2019년 기준)

 

 

 

 

두바이의 위치  대부분의 국토가 사막인 두바이는 페르시아만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했다.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

 

 

 

 

버즈 칼리파

 

 

 

 

현재 두바이의 중심 시가지  두바이의 국제공항과 국제항구에는 전 세계에서 사람과 물자가 모여든다.

 

 

 

 

팜 주메이라(왼쪽)와 더 월드(오른쪽)

 

 

 

 

 

 

 

 

 

 

 

 

 

 

 

 

 

 

Posted by 드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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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경구 - (2)

명언 경구 2020. 10. 22. 07:13

명언 경구 - (2)

 

21. Who, being loved, is poor?

 

    사랑받는 이들 중에서 불쌍한 사람이 있는가?

 

 

22. If you can concentrate always on the present,

     you'll be a happy man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 Paulo Cuelho / 파울로 코엘료

 

 

23. Laughter is

     the sun that drives winter from the human race

 

    웃음은 인류로부터 겨울을 몰아내는 태양이다

 

- Victor hugo / 빅토르 위고

 

 

24. A man travels the world over

     in search of what he needs

     and returns home to find it

 

    사람은 필요한 것을 찾아 온 세상을 헤매지만

    집에 돌아와서야 그것을 발견한다

 

- George Moor / 조지 무어

 

 

25. 행복은 추구하는게 아니라 동행하는 것이다

 

 

26. Music washes away from the soul the dust

    of everyday life

 

    음악은 일상의 먼지를 영혼으로부터 씻어낸다

 

- Red Auerbach

 

 

27.True life is lived when tiny changes occur

 

    작은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

 

- Leo Tolstoy / 레오 톨스토이

 

 

28. Love is

     above all else, the gift of oneself

 

    사랑은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선물이다

 

-Jean Anouilh / 장 아누이

 

 

29. 참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30. 삶의 지혜는 듣는 데서, 삶의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

 

 

31. Love does

     not consist in gazing at each other

     but in looking together in the same direction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 생 텍쥐베리

 

 

32. Things do not change

     we change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변할 뿐이다

 

- Henry David Thoreau / 헨리 데이비드 소로

 

 

33. LIfe is

     as fleeting as the morning dew

 

    인생은 아침이슬처럼 덧 없이 사라진다

 

 

34. There is

     nothing worth more than this day

 

    오늘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없다

 

- Goethe / 괴테

 

 

35. 당신이 되고 싶었던 어떤 존재가 되기에는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

 

- 조지 엘리엇

 

 

36. 걱정과 조바심으로 보낸 하루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지는 선물과 같다

 

 

37. 신은 예비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 때로는 길을

     잃게도 한다

 

 

38.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ameone else's life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데

     낭비하지 말라

 

- Steve Jobs / 스티브 잡스

 

 

39. Who would be born must first destroy a world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 Demian, Hermann Hesse / 데미안, 헤르만 헤세

 

 

40. 평생 우리는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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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경구 - (1)

명언 경구 2020. 10. 22. 07:00

명언 경구 - (1)

 

1. When one door of happiness closes, another on opens ;

   but often we look so long at the closed door

   that we do not see the one which has opened for us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 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은 못 보곤 한다.

 

- Helen Keller / 헬렌 켈러

 

 

2. The time to relax is when you don't have for it

 

  바빠서 여유가 없을 때야말로 쉬어야 할 때이다

 

- Socrates / 소크라테스

 

 

3. People become

   what they expect themselves to become

 

  사람은 자신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대로 된다

 

- Mahatma Gandhi / 마하트마 간디

 

 

4. This, too, shall pass away!

 

- Lanta Wilson Smith / 렌타 윌슨 스미스

 

 

5. Be with someone

   who is proud to have you

 

  당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하라

 

 

6.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

 

- 칼융

 

 

7.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편안한 의자를 찾지 못한다

 

- 벤자민 프랭클린

 

 

8. We are not owners here, we are just passing through

 

  우리는 여기 주인이 아닙니다. 그저 스쳐갈 뿐입니다

 

- Out of africa / 아웃 오브 아프리카

 

 

9.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 티베트 속담

 

 

10. 한 번 실패와 영원한 실패를 혼동하지 말라

 

- 스콧 피츠제럴드

 

 

11. Life is what happens to you

     while you are busy making other plans

 

    인생이란 네가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쁠 때

    너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 존 레논

 

 

12. The Smallest deed is

     better than the greatest intention

 

    가장 작은 행동이라도 가장 위대한 의도보다 더 낫다

 

- 존 버로스

 

 

13. The best and most beautiful things in the world

     can not be seen or even touched,

     They must be felt with the heart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것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 헬렌 켈러

 

 

14. Man errs so long as he strives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Goethe / 괴테

 

 

15. The world is full of suffering

     but it is also full of people overcoming it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 헬렌 켈러

 

 

16. He who would travel happily must travel light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 Antoine de Saint-Exupery / 생텍쥐페리

 

 

17. Patience accomplishes its object,

     while hurry speeds to its ruin

 

    인내는 목적을 달성시키지만 조급함은 파멸을 재촉한다

 

- 사디

 

 

18. Only you can make you happy

 

    자신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19. The first duty of love is to listen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귀 기울이는 것이다

 

- 폴 틸리히

 

 

20. If you love someone, the greatest gift tou can

     give them is tour presence

 

    만약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당신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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