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 최전방의 시간을 찍는 여자

 

 

 

 

 

 

린지 아다리오 지음, 구계원 옮김

2020, 문학동네

 

시흥시중앙도서관

SA284345

신천역스마트도서관

 

668.48349

아22ㅊ

 

여성 종군기자 린지 아다리오의 사랑과 전쟁

 

 

최전선의 순간을 빛과 셔터로 담아내는 린지 아다리오

죽음을 감수할 만큼 뜨겁게 사랑하는 일과

살아 있음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일상에 관하여

 

"나는 일을 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가장 나다운 모습이 된다.

물론 다른 형태의 행복도 많겠지만,

이것이 나의 행복이다."

 

 

인내하는 목격자, 린지 아다리오. 세계의 전쟁과 인도주의적 위기를 기록한 여성 사진기자. 수단 반란군으로 가득찬 다르푸르의 트럭에 있든, 위험천만하기로 유명한 아프가니스탄 코렌갈계곡의 도랑에 있든, 우리는 연민이 담긴 그녀의 사진을 통해 아다리오가 목격한 것들의 힘을 마주하게 된다.

_오프라 윈프리('2010 오프라 윈프리가 선정한 여성 20인' 추천사)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회고록. 리비아, 다르푸르,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의 가장 위험한 곳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취재해온 여성 종군기자 린지 아다리오. 그녀의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의 마음은 요동칠 것이다.

_리즈 위더스푼(배우, 영화제작자)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진기자인 아다리오의 사진만큼이나 훌륭하다. 전 세계 가장 위험한 곳에서 납치되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녀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포착해왔다. 그녀는 기적 그 자체다. 이 책 또한 기적이다.

_팀 와이너(<뉴욕 타임스> 기자, 퓰리처상 수상 저널리스트)

 

 

린지 아다리오 Lynsey Addario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비는 여성 종군사진기자. 1973년 미국 코네티컷에서 태어났다. 1995년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199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를 시작으로 〈AP통신〉 〈뉴욕 타임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타임〉 등 여러 매체와 일했다.

전쟁지역의 여성 인권에 대해 취재하겠다고 마음먹은 아다리오는 2000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며 탈레반 치하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삶을 기록한다. 9ㆍ11테러 이후에도 이라크, 수단, 리비아, 시리아, 소말리아, 콩고 등에서 동시대의 분쟁과 인도주의적 위기현장을 취재했다. 2009년에는 〈뉴욕 타임스〉 취재팀과 함께 작업한 〈탈레바니스탄〉 시리즈로 국제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맥아더 펠로십’에 선정되어 50만 달러를 지원받아 미국의 명실상부한 종군사진기자로 자리하게 된다. 2010년에는 ‘오프라 윈프리가 선정한 여성 20인’에 이름을 올렸고, 2015년에는 엘 문도El Mundo 저널리즘상과 미국국제언론인센터ICFJ에서 수여하는 국제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또한 2016년에는 시리아, 우크라이나, 남수단의 전쟁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세 어린이들의 기록을 담은 〈난민The Displaced〉 시리즈로, 2018년에는 시리아 난민문제를 다룬 〈집을 찾아서Finding Home〉 시리즈로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종군사진기자가 된 이래로 그녀는 수많은 나라에서 사고를 당하며 목숨을 잃을 뻔했고, 함께 일하던 동료와 군인, 민간인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계속해나갔고, 이 기록을 묶어 『최전방의 시간을 찍는 여자』와 사진집 『전쟁과 사랑에 대하여Of Love & War』를 출간했다. 종군사진기자의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아다리오는 이후로도 영아사망, 청소년범죄, 미성년자 성폭행, 영양실조, 아프리카의 교육 등 여러 인권문제를 카메라에 담아내며, 사진으로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해 힘쓰고 있다.

 

 

옮긴이 구계원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도쿄일본어학교 일본어 고급코스를 졸업했다. 미국 몬테레이 국제대학원에서 통 번역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충돌하는 세계『생리의 힘『열두 가지 레시피『제가 투명인간인가요?『영국 육아의 비밀『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난센스『술취한 식물학자『사랑할 때 우리가 속삭이는 말들『화성 이주 프로젝트『옆집의 나르시시스트』 등이 있다.

 

 

차례     

 

프롤로그

 

 

1부

세계를 누비며

코네티컷, 뉴욕, 아르헨티나, 쿠바, 인도, 아프가니스탄

뉴욕에서는 아무도 두번째 기회를 주지 않아
아이는 몇 명이에요?
이제 전쟁이 시작된 거야

 

 

2부

9ㆍ11테러 이후의 몇 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당신 같은 미국인은 더이상 여기서 환영받지 못해
총알은 두렵지 않아
저 여자에게 해치지 않을 거라고 말해

 

 

3부

내 삶의 균형을 찾아

수단, 콩고, 이스탄불,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프랑스, 리비아

여성은 출생지의 피해자
당신 일을 해, 그리고 다 끝나면 돌아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 코렌갈계곡
운전사는 끝났어

 

 

4부

삶과 죽음

리비아, 뉴욕, 인도, 런던

너는 오늘밤 죽을 거야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여행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나의 아이, 루카스

 

 

에필로그
추천의 말

 

 

 

 

반란군이 기관총 폭격을 하는 카다피군 헬기를 향해 총을 발사하고 있다. 반란군은 카다피군에게서 라스라누프를 재탈환했지만, 다음날 빈 자와드에서 밀려나 다시 동쪽에 있는 라스누프로 향했다. 리비아 동부, 2011년 3월 6일.

 

 

 

반란군이 벵가지에서 싸울 지원군을 모집하고 있다. 2011년 3월 1일.

 

반란군 병사가 라스라누프의 한 병원 바깥쪽에서 부상당한 전우를 위로하고 있다. 2011년 3월 9일.

 

 

 

 

 

 

반란군 병사와 운전병이 폭탄과 전투기를 예상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2011년 3월 10일.

 

반란군 병사들은 라스라누프 근처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날 최전선을 앞으로 이동시켰다. 2011년 3월 11일.

 

 

 

 

우리가 포박되었던 곳에 떨어진 끈 풀린 내 운동화.

 

 

 

 

 

아버지 필립과 어머니 카밀.

 

 

 

 

 

수영하는 어린 시절의 린지.

 

 

 

 

 

가족사진. 1975년경.

 

 

 

 

아버지 필립과 브루스

 

 

 

 

집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는 쿠바의 한 부부. 1997년.

 

 

 

 

뉴욕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트랜스젠더. 1999년.

 

 

 

 

동틀 무렵 콜카타 거리에서 목욕하고 있는 인도 남자들. 2000년.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2000년 5~7월.

 

 

 

 

 

 

 

 

 

 

카불의 여성병원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고 있다. 2000년 5월.

 

 

 

 

 

 

 

페샤와르의 반미 시위. 2001년 10월.

 

 

 

 

 

 

 

 

파키스탄의 폐샤와르에서 코란을 배우고 암송하는 여성과 소녀들. 2001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지하드 여설 시리즈, 2001년 11월.

 

 

 

 

 

 

탈레반의 핵심거점인 칸다하르가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2001년 12월

 

 

 

 

 

 

 

탈레반이 몰락한 후의 칸다하르. 아프가니스탄 남성들이 스스로를 주지사로 선출한 셰르자이의 맨션을 둘러싸고 앉아 있다. 2001년 12월.

 

 

 

 

 

 

 

아프가니스탄 청년들이 탈레반 몰락 이후 최초로 공공장소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 2001년 12월.

 

 

 

 

 

 

미국이 쿠르드족 군인들과 연합하여 알 카에다와 연계되었다고 알려진 원리주의자 단체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가운데, 쿠르드족의 페시메르가 군대가 안사르 알 이슬람의 영토에서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이라크 북부 할랍자 근처. 2003년 3월 30일.

 

 

 

 

 

 

 

이라크 북부 할랍자 근처의 검문소에서 안사르 알 이슬람 테러단체가 감행한 차량폭탄테러 직후, 민간인과 쿠르드의 페시메르가 군인들이 중상을 입은 동료 군인을 차에 옮기고 있다. 2003년 3월 22일.

 

 

 

 

 

<뉴욕 타임스> 이장욱 기자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며칠 후에 키르쿠크의 미국-페시메르가 합동 군사기지의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거부당한 아버지와 다친 아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내 모습을 찍었다. 2003년 4월.

 

 

 

 

 

 

 

키르쿠크가 이라크 중앙 정부의 통치에서 해방된 후 페시메르가 병사들이 키르쿠크 정부 건물에 붙어 있는 전 이라크 지도자 후세인의 포스터를 훼손하고 있다. 2003년 4월 10일.

 

 

 

 

 

모술에 있는 이라크 전 지도자 후세인의 궁전 주변에 조성된 인공호수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2003년 4월 29일.

 

 

 

 

 

이라크 도시 티크리트가 공화국 수비대의 통치에서 해방된 날, 후세인의 궁전 앞에서 면도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미국 해군들. 2003년 4월 14일.

 

 

 

 

 

 

바그다드 남쪽의 집단 매장지에서 수습된 수많은 유해 사이를 걸어가던 이라크 남성이 벽에 기대 서 있다.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후 이라크 전역의 집단 매장지에서 수습된 수천 구의 유해는 과거 독재정권이 저지른 잔혹하고 끔찍한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2003년 5월 29일.

 

 

 

 

 

이른아침에 미군이 발라드 근처의 건물에서 발견된 이라크인을 억류하고 있다. 미군 정보부는 이 남자를 후세인을 지지하던 바스당 소속으로 지목했다. 제4보병사단의 미군들은 군사력을 과시하고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이라크측의 공격에 보복하기 위해 실시하는 대대적인 야간 공습과 순찰에 참여했다. 공습은 티그리스강을 따라 바스당의 근거지이자 후세인의 뿌리깊은 지지기반으로 추정되는 바그다드 북쪽의 티크리트까지 이어졌다. 2003년 6월 29일.

 

 

 

 

 

 

 

 

 

 

 

 

 

 

 

 

 

 

 

제4보병사단 제3여단 제68기갑연대의 제1대대. 소속 미군이 이라크 바그다드 북쪽 발라드 공군기지 근처를 야간 순찰하던 도중 이라크인들을 일시적으로 억류 및 수색하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직후, 한 이라크 민간인이 미군을 노리고 도로에 설치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원격조정 폭탄을 밟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폭발사고로 해당 이라크 민간인은 크게 다쳤다. 2003년 6월 27일.

 

 

 

 

 

 

 

 

 

 

 

 

 

 

 

 

 

 

 

 

 

 

 

 

 

 

 

 

 

 

 

 

 

 

 

 

 

 

 

 

 

 

 

 

 

 

 

 

 

 

 

 

 

 

 

 

 

 

 

 

 

 

 

 

 

 

 

 

 

 

 

 

스무 살 카힌도가 콩고 동부 북키부의 카냐바용가라는 마을에서 강간으로 태어난 두 아이와 함께 집에 앉아 있다. 카힌도는 본인이 르완다 병사들이라고 주장하는 여섯 명의 인테라함웨에게 납치되어 거의 3년간 갇혀 있었다. 납치범들은 지속적으로 카힌도를 강간했으며, 카힌도는 첫아이를 숲속에서 낳았고 탈출했을 때쯤에는 두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2008년 4월 12일.

 

 

 

 

 

 

 

비비안(28세, 남키부 거주)

 

● 비비안

 

비비안은 아이 셋을 낳았으나 아이들 중 한 명을 영양실조 또는 에이즈, 아니면 두 가지 모두의 이유로 막 잃은 상태였다. 비비안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다가 겪은 어려움과 최근에 딸을 잃은 고통을 털어놓았다. 어떤 여성이 비비안에게 산길을 따라 카사바cassava(탄수화물이 풍부한 열대지방의 구황작물) 가루를 운반하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비비안은 바로 그 산 속에서 남자 세 명을 만났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남자들은 3일 동안 비비안을 잡아놓고 여러 차례 강간햇다. 먼 곳에 갔다가 돌아온 남편은 비비안이 납치되어 강간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녀를 버렸다. 그후 비비안은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었으며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대나무처럼 삐쩍 마른 비비안은 임신 8개월이었는데 당장 다음날 배 속의 아이를 출산한다고 해도 산파 비용조차 지불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설탕조차 없었다. 비비안이 가진 것이라고는 남자들이 남겨놓은 질병뿐이었다. 나는 비비안에게 에이즈 치료약을 먹고 있느냐고 물었고, 비비안은 짙은 자주색 가방을 열어 알약 몇 개와 점심으로 먹을 감자 한 알을 보여주었다. 비비안은 이제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하고 잇었으며, 자신이 우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밝혔다.

 

 

 

뷰밀라(38세, 카니올라 거주)

 

● 뷰밀라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뷰밀라는 자고 있었다. 르완다 공용어인 키냐르완다어를 사용하는 남자들 아홉 명이 현관문을 발로 차서 연 다음 집으로 들어와서 옷과 밧줄로 뷰밀라와 아이들의 손을 묶고 도둑질을 했다. 뷰밀라의 남편은 집에 없었다. 침입자들은 뷰밀라의 손을 풀어준 다음, 훔친 물건들을 그녀의 등에 지워 산속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뷰밀라가 일주일 동안 언덕을 오르내리고 산속을 헤맨 끝에 탈진하여 쓰러지자 남자들은 그녀를 발로 찼다. 일행이 첫번째 반란군 검문소에 도착하자 일부는 군복, 일부는 운동복을 입은 남자들이 뷰밀라가 등에 지고 있던 짐을 풀어놓은 다음 거듭해서 강간했고, 몇몇 남자들이 그녀의 물건들을 가져갔다. 적어도 아홉 명이 넘는 남자들이 뷰밀라, 그리고 같은 시기에 끌려온 다른 여성들을 탁 트인 커다란 방에서 강간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여성들이 강간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반란군 지휘관은 뷰밀라를 자신의 '아내'로 점찍었고, 뷰밀라는 하루종일 강제로 지휘관의 집에서 지내야 했다. 그렇게 8개월 동안 수없이 강간을 당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뷰밀라의 몸에 동물처럼 끈을 묶은 뒤 강까지 따라갔다.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은 칼로 찔러 죽인 다음 다른 포로들에게 시체를 보여주었다. 결국 납치범들은 포로 한 명과 소 세 마리를 교환하기 위해 뷰밀라와 함께 억류되어 있던 남자 중 한 명을 다시 마을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한 명당 소 두 마리씩밖에 받지 못했고 납치범들은 뷰밀라를 비롯한 포로들에게 매질과 채찍질을 한 후 발로 타고 옷을 빼앗았다. 마침내 꺼져버리라는 이야기를 들은 포로들은 옷도 입지 못한 채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마을로 돌아왔다. 그 시점에 뷰밀라의 남편은 마을로 돌아와 있었고, 뷰밀라는 지휘관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남편은 르완다 후투족 무장단체인 인테라함웨의 아이를 임신한 뷰밀라레게 분노하여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제 뷰밀라가 원하는 것은 지극히 간단했다.

"제가 바라는 바는 그저 학교에서 제 아이들을 받아주는 것뿐입니다. 예전에는 가축을 길러서 학비를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정부는 모든 아이들의 학비 지원과 무료 교육을 약속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은 채 집으로 보내고 있어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면 콩고는 어떤 나라가 되겠어요?"

 

 

 

마펜도(22세, 버할레 거주)

 

 

● 마펜도

 

마펜도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마펜도가 집단강간을 당했고 그 이후,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병원 갈 돈과 교통수단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했다고 들었다. 사전에 연락을 하지 않고 찾아간 우리는 어머니, 자매들과 함께 오두막 밖에 앉아 있는 마펜도를 발견했다. 그녀는 온몸에 발진이 돋은 채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떨고 있었다. 한때는 아름답고 윤기가 돌았던 검은 피부는 발진으로얼룩덜룩해진 상태였다. 쇠약하고 뼈밖에 남지 않은 그녀는 나와 악수할 힘조차 짜내기 힘들어했다. 마펜도 역시 키냐르완다어를 사용하는 다섯 명의 군인들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해서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온 지 이제 5개월이 되던 때였다. 그 사건 이전에는 평생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남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는 것이라고는 남자들이 돌아가며 여러 차례 자신을 강간한 다음 병을 옮기고 몸 전체에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겼다는 것뿐이었다. 마펜도는 매트리스로 사용하는 나무판자에 누웠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터키 해안에서 나와 폴. 2007년 7월.

 

 

 

 

 

 

제173공수여단 배틀컴퍼니의 병사들이 코렌갈 전초기지의 대피소 근처에서 박격포 공격에 대응하고 있다.

 

 

 

 

 

 

 

 

 

 

 

 

 

 

 

아발란체 작전, 코렌갈계곡, 2007년 10월 18~23일.

 

 

 

 

 

 

아발란체 사태 작전. 커렌갈계곡. 2007년 10월 18~23일.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탈레바니스탄 시리즈. 2008년 7월.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탈레바니스탄 시리즈. 2008년 7월.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주의 산비탈에서 분만을 준비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누르 니사. 2009년 11월.

 

 

 

 

 

한 미국 해병대원의 죽음. 아프가니스탄 남부. 2010년

 

 

 

 

 

 

바그다드에서 3D 영화를 보는 이라크 사람들. 2010년

 

 

 

 

 

시에라리온에서 사망한 산모. 2010년.

 

 

 

 

 

 

리비아 동부에서 민중봉기가 세력을 얻는 가운데 벵가지의 주거지역에서 불타는 자동차를 둘러싸고 노는 아이들. 2011년 2월 28일.

 

 

 

 

 

튀니지로 인도되기 전, 트리폴리 주재 터키 대사관에서. 왼쪽부터 스티븐 패럴, 타일러 힉스, 터키 대사 레벤트 사힌카야, 나, 앤서니 샤디드.

 

 

 

 

 

소말리아 아이들이 탈수와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여성에게 비스킷을 먹이려 하고 있다. 이 여성은 소말리아의 오랜 가뭄을 피하여 케냐 국경을 넘은 후 이날 아침에 소말리아와 인접한 케냐 다다브의 난민캠프다. 그 당시 이미 수용인원을 크게 초과해 물, 위생용품, 식량, 주거지와 같은 필수 자원이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유입되는 새로운 난민들과도 배급품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이곳 난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2011년 8월 20일.

 

 

 

 

 

소말리아의 의사가 모가디슈의 바나디르병원에서 심각한 영양실조로 쇠약해진 18개월 된 아기 아바스의 심장 박동을 확인하고 있다. 이 병원의 대다수 병동은 바닥에 누워서 자는 환자들로 포화상태였다. 2011년 8월 25일.

 

 

 

 

 

아들 루카스 사이먼 데 벤데른, 2011년 12월 28일.

 

 

 

 

 

 

 

 

 

 

 

 

 

 

 

 

 

 

 

 

 

 

 

 

 

 

 

 

 

 

 

 

이 책에는 아다리오의 인생이 담겨 있다. 거대하고, 아름답고, 유일무이하다. 전 세계를 배경으로, 아다리오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하는 매우 특별한 모험에 착수한다.

_덱스터 필킨스(<뉴욕 타임스> 소속 종군기자)

 

 

타고난 재능으로 동시대와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아다리오는, 9 · 11테러라는 잔인한 사건 이후에 성장한 젊은 사진기자들의 선두에 서 있다. 그녀는 독보적인 추진력과 용기를 지녔을 뿐 아니라 인도적이며 풍부한 유머를 구사한다.

_존 리 앤더슨(<뉴요커> 소속 종군기자)

 

 

놀라울 정도로 영화적이다. 낯설고, 생각을 환기시켜주는 생생한 사진과 아름다운 기록이 담긴 책. 독자들이 좀더 렌즈를 가까이 대고 이 글을 읽는다면, 아다리오가 인간의 희생과 고통에 대한 웅대한 생각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바라보는 공감의 예술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_<보스턴 글로브>

 

 

회고록의 첫 장면은 단단한 주먹으로 날리는 강력한 펀치 같다. 아디리오는 여성의 성역할이 한정된 남성중심 국가에서 겪은 경험뿐 아니라 남성 동료들과 미군들에게서 존중받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만 했던 여성으로서의 좌절감을 조명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적군의 영토에서든, 정치를 논할 때든, 이것 저것 재지 않고 늘 앞장선다.

_<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풍부한 삽화가 담긴 회고록이자, 넓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직업적 소명으로 삼은 사진기자의 일기. 아다리오는 자신과 비슷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조차 알 수 없는 공포에 대한 시각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로써 사람들이 안락한 영역에서 벗어나 주변을 볼 수 있도록 쉬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전달한다.

_<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아다리오가 경험한 모험과 투쟁의 순간들. 발빠르게 세계의 갈등을 포착하는 종군기자가 살아낸 인생과 도전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

_<워싱턴 포스트>

 

 

아다리오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극도로 위험한 환경에서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주제를 찾아내고 포착했기 때문이다.

_<AP통신>

 

 

평범한 미용사 부부의 막내딸로 태어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진기자로 성장한 아다리오의 매혹적인 이야기. 아다리오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를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신나고, 동시에 힘든 일인지 철학적으로 보여준다.

_<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 수상자인 아다리오는 세계의 전쟁과 분쟁을 경험했던 여성 사진기자의 삶을 솔직히 묘사하며 저널리즘 분야에서 큰 업적을 달성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세계의 모든 전장에서 인간성을 발견하고 이를 사진으로 선사한다. 특히 아다리오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개인적 삶뿐 아니라 직업의 영역에서도 큰 영향을 주었음을 잘 전달하고 있다. 광신도를 다루든, 무척 까다로운 편집자를 다루든, 카메라를 지니고 살아가는 여성의 삶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잔인할 만큼 현실적이고, 그 어떤 고난에도 멈추지 않은 아다리오의 생생한 회고. 놀라울 정도로 우리의 영감을 고무시킨다.

_<커커스 리뷰>

 

 

사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아다리오의 글은 고통과 불의를 기록함으로써, 정치와 여론 형성에 잠재적 영향을 주는 종군사진기자의 역할을 조명하는 데 성공했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아다리오는 자신이 왜 이토록 위험한 일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왜 짜릿하지만 무서운 이 '특별한 직업'에서 '약속' '책임감' '소명'이라는 보람을 느낄 수밖에 없는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지금까지 얼마나 훌륭하게 일해왔는지 보여주는 아다리오의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책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_<북리스트>

 

 

 

 

 

 

 

 

 

 

 

 

 

 

 

 

 

 

 

 

 

 

 

 

 

 

 

 

 

 

 

 

 

 

 

Posted by 드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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