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하루에 세 번 다니는 산골에서 자랐다. 스무 살에 전남 영광에서 군산으로 왔다. 결혼하고, 밥벌이를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쓴다. 『우리, 독립청춘』, 『소년의 레시피』,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 동화 『내 꿈은 조퇴』를 썼다.
차례
시작하며 · ‘군산 도슨트’ 배지영 군산의 짧은 역사 · 변화를 포용할 줄 아는 열정의 도시
01 시간여행마을 - 반듯한 도로 위 다시 기억하는 역사 02 옛 군산세관 -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통과한 대한민국 세관 03 경암동 철길마을 - 동네 골목을 지나는 시속 10km 기차 04 키티의상실 - 군산 패션을 이끄는 70대 디자이너 05 초원사진관 - 다시 추억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 06 이성당 - 76년을 지켜온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 07 신흥동 일본식 가옥 -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적산가옥 08 동국사 - 소녀상이 세워진 일본식 사찰 09 근대역사박물관 - 매년 100만 명이 찾는 군산의 자랑 10 이영춘 가옥 - 한국의 슈바이처, 국내 1호 의학박사의 꿈 11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 12 빈해원 - 문화재에서 즐기는 군산 짬뽕 투어 13 일도당 - 기술이 자부심, 78년 전통의 도장집 14 항도호텔 - 근대의 풍경을 간직한 군산 1호 호텔 15 신토불이통닭 - 촌스럽고 다정한 군산의 참새방앗간 16 한길문고 - 문화를 만드는 군산 터줏대감 17 수송동 - 수수했던 도시의 화려한 환골탈태 18 군산상고 - 9회 말 투아웃의 역전 신화 19 월명공원 - 벚꽃 절경부터 빼어난 설경까지 다 가진 동산 20 나포 십자뜰 - 전 세계 오직 하나뿐인 철새 군무 21 대야시장 - 군산 유일 오일장, 시골 장터의 살아 있는 맛 22 임피역 - 일제 수탈의 통로에서 기차가 다니지 않는 간이역으로 23 오산상회 - 옛 포구를 사랑한 섬 소년의 카페 24 신시도 - 섬을 육지로 만든 새만금 방조제 25 선유도 - 도시에서 섬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26 옥구저수지 - 눈물의 역사가 서린 천만 톤 간척저수지 27 청암산 - 사람 손길 타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28 은파호수공원 - 수백 년 역사가 흐르는 은빛 물결
고군산군도와 고군산대교 푸른 바다 위 여러 개의 섬이 산처럼 솟아 있다. 돛 모양을 형상화한 다리는 신도시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로 2016년에 완공했다. 군산(群山)은 수십 개의 섬이 산처럼 솟아 있다고 붙은 이름이었다. 육지에 이름을 내어준 지금은 옛군산이라는 뜻의 고군산군도로 불린다.
시마타니 금고 발산초등학교 뒤뜰에 놓인 금고는 학교 건물만큼 웅장한 크기를 자랑한다. 콘크리트로 지은 금고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운 흔적 없이 건재하다. 반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녹슨 오랜 세월을 가늠케 한다. 시마타니 금고는 국가등록문화재 제182호로 지정했다.
01 시간여행마을
반듯한 도로 위 다시 기억하는 역사
일본사람들이 자꾸 밀려들면서 군산은 더 분주해지고 활기에 넘치고 있었다. 인력거를 부르는 일본말이 이쪽저쪽에서 울려대고, 큰길이며 골목마다 게다짝 끌리는 소리들이 무슨 장단을 맞추듯이 이어지고, 크고 작은 집들을 지어대느라고 사방이 떠들썩한 공사판이었다.
-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2권에 나오는 군산 모습
1910년 원도심 모습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닦인 격자형 도로는 일본인이 터전을 잡으며 계획적으로 만든 도시의 모습이다. 군산진 자리에 일본 영사관을 두고 종으로는 1조통에서 9조통까지, 횡으로는 전주통(현재 영화동), 본전통(현재 해망로) 등의 일본 도시 가로명을 붙여 도시를 형성했다.
시간여행축제 퍼레이드 시간여행축제는 근대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창의적인 축제로 꼽히며 전국의 많은 관람객에게 사랑받고 있다.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잊혀가던 원도심은 이 축제로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군산항쟁관 2층의 작은 목조건물로 지어진 적산가옥을 고쳐 만든 군산항쟁관은 직선 형태의 일본식 가옥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곳에서는 임피장터 3 · 1운동부터 옛 군산경찰서 앞 항쟁운동까지 군산 항쟁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02 옛 군산세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통과한 대한민국 세관
일제강점기의 군산세관 군산세관 건물 앞에 쌀가마가 가득 쌓여 있다. 왼쪽이 군산세관 본관 건물, 오른쪽이 부속 건물이다. 세관은 군산에서 많은 쌀을 실어 가던 일본 상인들의 요구로 지어졌다. 가져가던 쌀이 한 번에 실을 수 없는 양이라 세관 근처에 쌀 창고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군산세관의 현재 독일인이 설계하여 유럽 양식으로 지은 군산세관은 당시 벨기에에서 수입한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5호로 옛 서울역,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우리 군산시는 안중근 의사의 고향도, 의거 장소도, 순국 장소도 아니지만, 근대역사교육의 도시라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작은 공간이나마 안중근 의사의 희생정신과 대한독립에의 열망을 전하고자 이(뤼순감옥) 전시장을 조성하였습니다.
03 경암동 철길마을
동네 골목을 지나는 시속 10km 기차
마을을 지나는 기차 하루 두 번 지나는 기차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마을을 찾았다. 멀리 기차가 보일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사람들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잠깐 비켰다가 기차의 뒷모습을 촬영하고서야 자리를 떠났다.
철길마을에 조성된 추억의 거리 마을을 지나는 기차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늘면서 생활이 불편해진 사람들은 하나둘 철길마을을 떠났다. 그 후 마을에 모형 기차를 두어 옛 풍경을 재현했고, 주민들이 살던 마을에는 옛 문방구, 옛 교복 대여점 등의 가게가 들어서며 시간여행의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04 키티의상실
군산 패션을 이끄는 70대 디자이너
키티의상실 주인 유인덕 씨 전라북도 여성 최초로 파리에 갔을 만큼 열정 많은 디자이너는 지금도 키티의상실을 지키며 옷을 만들고 있다.
파리에서 사 온 패턴들 의상실 곳곳엔 유인덕 씨가 40년간 파리를 오가며 사 온 패턴들이 가득하다. 그녀는 세계 패션 시장의 흐름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해 유행을 타지 않고 세련된 키티만의 의상을 만들기로 소문이 났다.
키티의 현재 모습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키티는 현재 단골손님들에게 여전한 맞춤옷 가게이자, 며느리에겐 디자인 수업 교실이 되고 있다.
05 초원사진관
다시 추억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
초원사진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였던 사진관 건물 옆에는 여자 주인공이 타고 다녔던 주차단속 차량까지 전시해 전시해 영화의 추억을 한층을 한층 더 풍성히 되살리고 잇다. 원래 차고였던 것을 허물고 지은 사진관은 가끔 진짜로 착각해 손님이 찾아오기도 했다.
초원사진관 내부 모습 다시 복원한 초원사진관 내부의 한 벽면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명장면과 명대사로 꾸며져 있다.
06 이성당
76년 지켜온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
이성당 조식세트 샌드위치와 샐러드, 스프, 커피 등 미국식 아침 식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성당 조식세트는 알찬 구성에 저렴한 가격, 빠지지 않는 맛으로 꾸준히 사랑받으며 군산시민과 여행자들의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있다.
이성당의 옛 모습(위)과 현재 모습(아래) 건물 벽에 '이즈모야 본점(出雲屋本店)'이라는 간판을 걸고 1910년 문을 연 이즈모야 과자점은 화과자 전문점으로 시작해, 돈가스 등의 식사까지 팔며 성황을 누렸다. 이석우 씨가 같은 자리에 '이성당'을 차린 것은 해방 후인 1945년. 이성당만의 역사가 올해로 76년에 이른다.
이성당 단팥빵 매장에 들어서면 가득 쌓인 단팥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빵에 꽉 찬 팥앙금이 매력인 이성당 단팥빵은 70년간 이성당을 지킨 대표 메뉴이자 최고 인기 메뉴다.
07 신흥동 일본식 가옥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적산가옥
신흥동 일본식 가옥 당시 초가집의 둥근 지붕과 곡선 형태의 처마를 가졌던 우리나라 집들과 다르게 일본식 가옥은 전체적으로 직선 형태를 띠고 있어 한눈에 구분되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의 내부 일본식 가옥의 특징대로 다다미를 깐 바닥에 벽장인 오시이레와 장식장인 도코노마가 보인다. 창문 역할을 하는 고창도 일본식 가옥의 특징 중 하나다.
08 동국사
소녀상이 세워진 일본식 사찰
동국사 대웅전 에도시대 건축양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동국사의 원래 이름은 금강선사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동국사 대웅전은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로 등록돼 있다.
일본 불교는 국가권력에 영합해 태평양 전쟁에 가담하고 수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인권침해, 문화 멸시, 일본 문화 강요 등 커다란 상처를 남긴 점을 참회하면서 사죄드린다.
- 참사문비
참사문비 앞 소녀상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군산시민과 일본 조동종 스님이 함께 세운 동국사 평화의 소녀상 모습. 뒤로 보이는 검은 비석이 한글과 일본어로 된 참사문비다. 이 소녀상은 참사문비 앞에 선 것도 유일, 사찰에 세운 소녀상으로도 유일하다.
동국사 대나무 숲 동국사 뒤편에는 사찰의 100년 역사와 함께한 100년 된 대나무 숲이 있다. 작은 숲이지만 관광객에게 또 하나의 관광 명소로 소문나 있다.
09 근대역사박물관
매년 100만 명이 찾는 군산의 자랑
근대역사박물관 2011년 처음 문을 연 근대역사박물관은 해양물류역사관, 어린이박물관, 근대생활관과 기획전시실 등 다양한 주제로 군산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또 사료를 전시하는 본관 외 다양한 문화 공연 시설과 문화 놀이 공간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근대역사박물관 근대생활관 근대생활관은 학교, 쌀가게, 고무신가게 등 1930년대의 영동 거리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관람과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시관이다.
근대역사박물관 벽면의 감사 편지 근대생활관에 재현해 놓은 영명학교 교실 한쪽 벽면은 독립운동가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로 가득 차 있다. 영명학교는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인 3 · 5운동의 출발점이 된 곳이다.
10 이영춘 가옥
한국의 슈바이처, 국내 1호 의학박사의 꿈
이영춘 가옥 이영춘 기옥은 도쿄에 사는 구마모토 리헤이가 약탈한 군산 쌀을 거두러올 때 묵었던 별장이다. 당시 조선총독부 관저와 맞먹는 건축비를 들여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영춘 가옥 내부 화려한 샹들리에와 헤링본 스타일 티크 나무 바닥, 세련된 붙박이식 책장까지, 서양식으로 꾸민 이영춘 가옥의 응접실은 100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이영춘 박사 국내 의학박사 1호인 이영춘 박사가 아이를 진료하고 있다. 농촌위생연구소를 설립하고 의료보험의 효시인 의료조합사업을 실시하는 등 우리나라 의료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그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11 군산 3 · 1운동 100주년 기념관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
영명학교의 옛 모습 1903년 미국인 선교사 전킨이 세운 영명학교는 3 · 5만세운동의 역사가 쓰인 곳이다. 영명학교의 교사와 학생, 시인들은 영명학교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 3,500매를 복사하고 태극기 수백 장을 그려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학상덜이 앞장 스고 부두 지꾼덜이 따라나섰는디, 그 기세가 아조 무섭드만이라, 왜놈덜이 살짝만 견디려도 확불이 불을 기세든디요."
-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6권 중
군산 3 · 1운동 100주년 기념관 한강 이남 최초로 만세운동을 했던 구암 동산에 세워진 기념관은 옛 군산 영명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
태극기 탁본 체험 군산 3 · 1운동 100주년 기념관에는 체험교육관이 따로 마련돼 있어 탁본, 게임, 기념촬영 등 독립운동과 관련한 디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12 빈해원
문화재에서 즐기는 군산 짬뽕 투어
2층에서 내려 본 빈해원 내부 벽과 기둥부터 난간과 조명까지 모두 중국식으로 정성껏 지었다. 중국 객잔을 닮은 내부는 테이블이 놓인 1층의 홀과 20여 개의 룸이 있는 2층으로 나뉘어 있다.
빈해원의 별미청탕면 뽀얀 국물에 홍합, 오징어, 새우 등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별미청탕면은 '하얀 해물 짬뽕', '백짬뽕'으로도 불린다. 흔히 알려진 짬뽕과 달리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으로 인기다.
1950년대 초부터 화교인 왕근석 씨에 의해 창업되어 대를 이어온 중국 음식점으로서 1~2층이 개방된 내부공간이 특징적이다. 근대기 군산에 정착했던 화교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로서 가치를 갖고 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빈해원의 현재 모습 올해로 개업 70주년의 빈해원은 196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이 건물은 화교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역사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723호로 지정되었다.
13 일도당
기술이 자부심, 78년 전통의 도장집
일도당의 주인 손남석 씨 일도당을 처음 연 손인기 씨의 셋째 아들 남석 씨가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건 1976년이었다.
일도당의 현재 1943년 처음 문을 연 일도당은 70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았다. 아버지 손인기 씨에서 아들 손남석 씨, 다시 그의 아들 손정배 씨까지 3대째 기업을 잇고 있다.
손도장을 깎는 손(위)과 도장 깎는 칼(아래) 손인기 씨가 가업을 잇기 시작한 지 4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손도장을 찾는 사람이 많다. 기계가 아닌 사람 손끝에서 한 자 한 자 완성되는 수제도장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14 항도호텔
근대의 풍경을 간직한 군산 1호 호텔
항도호텔의 현재 모습 호텔이라기에 아담해 보이는 항도호텔의 3층 건물은 1960년대 처음 지을 당시 군산 1호 호텔로 큰 화제가 되었다. 옛 모습은 그대로 살리고 깔끔함은 높인 리모델링으로 최근 특별한 테마의 숙소로 각광받고 있다.
항도목욕탕의 현재 모습 항도호텔 목욕탕은 고급 호텔 사우나보다는 동네 놀이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지금도 투숙객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동네 목욕탕으로 자주 찾는다. 항도호텔 투숙객은 목욕탕을 무료로 쓸 수 있다.
15 신토불이통닭
촌스럽고 다정한 군산의 참새방앗간
신토불이통닭 주인 손균홍, 양근옥 씨 부부 1995년 신토불이이통닭을 개업한 부부는 26년째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하루 평균 매출 5만 원이었던 통닭집은 부부의 노력과 끊임없는 도전으로 줄 서서 먹는 맛집으로 성장했다.
신토불이통닭의 양념똥집튀김 신토불이만의 별미로 꼽히는 '별미양념똥집'은 부부가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아 개발한 메뉴다. 바삭하게 튀긴 닭통집을 비법 간장소스로 버무려 맛과 느끼함을 모두 잡았다.
신토불이통닭집의 전기구이통닭 가게 입구 바로 옆 전기구이오븐에서 전기구이통닭이 노릇노릇 익고 있다. 길을 걷다가도 훤히 볼 수 있는 이 광경은 신토불이통닭을 찾는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맛을 약속함과 동시에 지나는 많은 사람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16 한길문고
문화를 만드는 군산 터줏대감
한길문고에 진열된 작가 사인 한길문고의 벽면서가 한편에는 서점을 방문한 유명작가의 사인이 책과 함께 진열돼 있다. 한길문고는 강연회,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작가 초빙 행사를 통해 시민이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100인의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모습 선착순 100명의 도전자와 함께 진행한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는 1시간 동안 엉덩이를 떼지 않고 책을 읽으면 최저시급을 제공하는 이색 이벤트다. 한길문고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으로 시민과 함께하고 있다.
17 수송동
수수했던 도시의 화려한 환골탈태
18 군산상고
9회 말 투아웃의 역전 신화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우승한 군산상고 야구부 1972년 군산상고는 마지막 공격에서 역전을 따내며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뒀다. 당시 군산에는 수많은 축하 현수막이 걸렸다.
최관수 감독과 야구부원 군산상고 야구부원들과 나란히 기념사진을 찍은 최관수 감독. 1970년 군산상고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한 최관수 감독은 전국 대회 우승 6회, 준우승 5회를 이끌며 군산 야구의 영웅이 되었다.
군산상고(위)와 야구의 거리(아래) 군산상고의 운동장을 내려 보면 야구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붉은 흙과 잔디로 덮인 필드가 야구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는 것 같다. 학교 정문부터 군산상고 네거리까지 이어진 '야구의 거리'는 야구스타 사진과 다양한 조형물, 군산 야구 역사 현판 등을 통해 군산 야구의 특별한 추억을 만날 수 있다.
19 월명공원
벚꽃 절경부터 빼어난 설경까지 다 가진 동산
월명공원의 벚꽃 흐드러진 벚꽃 사이로 월명공원의 상징인 수시탑이 보인다. 월명공원의 벚꽃 절경은 군산으로 관광을 오는 첫 번째 이유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
월명호수 1912년 식수 공급을 위해 만든 수원지였으나 공급을 중단하면서 호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도심 속 산 위에 위치한 호수로, 호수를 둘러 놓인 산책로는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할 수 있는 산책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월명호수의 겨울 눈 쌓인 월명호수 위로 나무 데크로 만든 산책로가 멀리 보인다. 월명공원의 설경은 벚꽃 풍경만큼 아름답다고 소문나 있다. 특히 호수와 눈 덮인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기 위해 산책로를 찾는 사람이 많다.
20 나포 십자뜰
전 세계 오직 하나뿐인 철새 군무
물 위에 떠 있는 가창오리 떼 밤에 먹이 활동을 시작하는 가창오리는 낮에 주로 물 위에서 잠을 잔다. 물 위에 빼곡히 모인 가창오리 떼는 강 위의 검은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창오리 군무 어스름 지는 해를 배경으로 날아오른 가창오리 떼가 군무를 펼치며 장관을 연출한다. BBC에서는 이 장면을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세계 자연의 경이로운 순간'으로 선정했다.
21 대야시장
군산 유일 오일장, 시골 장터의 살아 있는 맛
대야전통시장 모습 군산 유일한 오일장인 대야시장은 1965년에 처음 서기 시작했다. 손님을 찾아 도로 양편에 물건을 펼쳐 장사를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입구에 커다란 간판까지 생겼다. 매월 장이 서는 날도 간판에 쓰여 있다.
대야시장 국수 대야시장의 국숫집들은 이미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국수 한 그릇에 3,000~3,5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 감탄을 부르는 맛으로 일부러 찾아 오는 사람도 많다.
22 임피역
일제 수탈의 통로에서 기차가 다니지 않는 간이역으로
임피역 한때 임피 지역의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학생, 직장인, 농부, 장사꾼 등 다양한 사람으로 북적였던 임피역은 2008년 모든 열차 운행을 중단한 후, 고즈넉한 간이역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임피역 내부 운행이 멈춘 임피역은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채만식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바탕으로 만든 조형물로 1930년대 임피역 모습을 재현해 두었다.
임피역사 재래식 화장실 임피역의 재래식 화장실은 1936년 간이역이었던 임피역이 보통역으로 승격하며 지어졌다. 칸막이 없는 소병 시설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이곳은 임피역과 함께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23 오산상회
옛 포구를 사랑한 섬 소년의 카페
카페 오산상회 오산상회는 버려져 있던 선구점을 그대로 활용해 만든 콘셉트 카페다. 섬에서 태어나 선구점에서 일했던 최동민 씨가 처음 이곳에 카페를 열겠다고 했을 때 모두는 실패를 예상했다.
오산상회 내부 오산상회 내부는 패션에서 해체돼 버려진 선구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해 꾸몄다. 카운터 가운데 보이는 닻은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무게가 1톤에 이른다.
24 신시도
섬을 육지로 만든 새만금 방조제
대각산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 고군산군도는 신시도, 선유도, 무녀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를 함께 일컫는다. 특히 최치원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대각산 정상은 서해 다도해의 비경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새만금 방조제 군산시와 고군산군도, 부안군을 연결하는 방조제로 착공 후 19년이 지난 2010년 준공하였다. 길이 33.9km로 세계 최장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새만금방조제의 건설로 신시도는 고군산군도 중 처음으로 육지와 여결되었다.
25 선유도
도시에서 섬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선유도에는 숭산행궁이라는 관청과 외국사신을 영접하는 객사건물 그리고 군산정이라는 정자와 관청건물 10여 칸이 있었으며 자복사라는 절과 함께 오룡묘라는 사당이 있었다. 군산정이라는 정자는 두 봉우리를 의지하고 있는 데 그 두 봉우리는 나란히 우뚝 서 있어 절벽을 이루고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다.
- 『선화봉사 고려도경』
망주봉에서 바라본 선유낙조 서해의 눈부신 비경 중 하나로 꼽힌다는 고군산군도의 중심에는 선유도가 있다. 경치가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고 알려진 선유도 망주봉은 낙조가 특히 아름다워 서해 낙조 중 으뜸으로 꼽힌다.
선유도에 물들다 전경 선유도에서 나고 자란 임동준 씨는 할머니가 사시던 40년 된 한옥을 리모델링해 펜션과 카페를 만들었다. 세련된 분위기로 재탄생한 한옥 마당에서는 바라를 배경으로 한 음악회와 선유도 역사 강의 등이 열리기도 한다.
26 옥구저수지
눈물의 역사가 서린 천만 톤 간척저수지
옥구저수지 수평선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게 펼쳐진 옥구저수지. 제방 길이 6km가 넘는 저수지는 담수된 물이 무려 1,250만 톤에 이른다. 날이 좋은 날 옥구저수지는 하늘을 그대로 반영해 장관을 연출한다.
옥구저수지 옆 기찻길 저수지 옆 선로는 1953년 UN군이 군산비행장 보급품 수송을 위해 만들었으나, 2년 후부터 여객열차인 옥구선을 운행했다. 70년대부터 화물열차만 다니다 2006년부터는 모든 열차의 운행이 중단되었다.
27 청암산
사람 손길 타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청암산 옥산저수지 이제는 군산호수가 된 옥산저수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벼농사를 위해 논을 수장시켜 만들었다. 이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통행이 금지되고 본연의 모습으로 보호되었다.
왕버들 나무 군락지 왕버들 나무가 너른 호수를 다 가릴 만큼 웅장하게 뻗어 있다. 왕버들 나무는 물을 좋아해 물 가까이 서식하는 경우가 많다. 청암산에는 특히 호수에 잠기거나 물속에서 자라는 왕버들 나무도 있어 이색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등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느다.
28 은파호수공원
수백 년 역사가 흐르는 은빛 물결
은파호수공원의 미제저수지 은파호수공원은 '미제지'라는 이름으로 490년 전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구불구불한 지형이 도드라지는 독특한 모양의 미제저수지는 모양에 관련한 설화도 많다.
물빛다리 길이 370m의 물빛다리는 다리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따로 찾을 만큼 은파호구공원의 상징이 되었다. 조명이 커지면 호수와 어우러져 멋진 야경을 선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은파호수공원의 벚꽃길 봄이면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6km에 달하는 산책로에 벚꽃이 만개한다. 만개한 벚꽃과 호수의 반영이 어우러져 장관을 선물하는 은파호수공원은 군산 벚꽃 명소이자 국내 벚꽃 여행지로 손꼽힌다.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그 여름의 초상>이 당선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소설 쓰는 일을 접고 동화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소설 《인간은 별에 갈 수 없다》 《천궁거사》 등과, 동화 《슬픈 종소리》 《멋지다 썩은 떡》 《김 구천구백이》 《잘한다 오광명》 《마법사 똥맨》 등이 있으며, 《단군의 조선》 《고구려》 《아, 발해》등 우리 역사 이야기를 풀어쓰기도 했다. 여행에세이 《해남 가는 길》을 쓴 것을 나이 들어서 모처럼 잘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린이 김의규
미국 Academy of Art University를 졸업한 후 계원조형예술대학과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샌프란시스코 AAC Spring Show 그랑프리와 우경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진 바 있다. 그림 작업뿐 아니라 미니픽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양들의 낙원, 늑대벌판 한가운데 있다》 등의 책을 펴냈다.
오늘 밤 오경시五更時를 함지咸池에 머무르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扶桑에다 매달으면
불쌍하신 우리 부친을 일시라도 더 모시련마는
우리 부녀 이별이야 내가 영영 죽어 놓으면
부친의 얼굴을 언제나 다시 보리.
천지가 사정이 없어 이윽고 닭이 꼬끼오 우니
닭아, 닭아, 닭아 울지 마라.
닭아, 닭아, 닭아 울지를 말아라.
반야진관半夜秦關의 맹상군孟嘗君이 아니로다.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설치 않으나 앞 못 보는 우리 아버지를
어이 잊고 가더란 말이냐.
닭아, 닭아, 닭아 울지를 마라.
닭아, 닭아, 닭아······!
-판소리 「심청가」 중
범피중류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한 창해이며 탕탕한 물결이라
백빈주白瀕洲 갈매기는 홍요안紅蓼岸으로 날아들고
삼강三江의 기러기는 한수漢水로 돌아온다.
-판소리 「심청가」 중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 이광웅, <목숨을 걸고>
원교의 글씨체는 획이 가늘고 빳빳하여 화강암의 골기骨氣를 느끼게 하는데, 추사의 글씨는 획이 살지고 윤기가 나는 상반된 마감을 보여 준다. 쉽게 말해서 원교체는 손칼국수의 국숫발 같고, 추사체는 탕수육이나 난자완스를 연상케 하는 그런 맛과 멋이 있는 것이었다.
전쟁은 문명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있었다고 말해지지만 정말 우리 인류의 선조들은 전쟁을 많이 치렀고 또 싸움하기를 좋아했던 것일까? 문명이 시작되기 전이라면 그것은 바로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자연상태에 보다 가까운 시대였을 것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02
1940년대부터 본격적인 인류학, 고고학적 연구가 시작된 이래 원시인들은 평화스럽게 살았다는 견해는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지속적인 다수설(多數說)이었다. 이 학설은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전쟁은 희귀했고, 전쟁이 발발한다 해도 그것은 그다지 해악(害惡)이 심각한 일도 아니었으며, 중요한 사건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 견해를 추종하는 학자들은 원시 사회의 전쟁은 의례(儀禮)적 성격이 강했으며, 인명 피해도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고, 공격의 효과도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고 보았다.
원시 전쟁에 관한 유명한 연구자들인 터니 하이[Harry H. Turney-High. Primitive War : Its Practise and Concepts (2nd ed ; Columbia :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ress, 1971)] 교수와 퀸시 라이트 교수는 원시 시대의 전쟁(primitive warfare)을 개념화시킨 학자들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09-110
Peace Savage Theory
율리우스력 Julian calendar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제정해 기원전 45년부터 시행한 양력(陽曆) 역법이다.
율리우스력의 1년은 365일 또는 366일(4년에 한 번)이다.
Margaret Mead (1901-1978)
Anthropologist
미국의 인류학자
인류학자 마가렛트 미드(Margaret Mead) 여사는 '전쟁이란 인간이 발명한 것일 뿐 인간성에 내재하는 것은 아니다(Warfare is Only an Invention - Not a Biological Necessity)'라는 제목의 유명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논문에서 미드 여사는 아프리카의 피그미와 북극권의 에스키모들은 아예 전쟁이란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는 전쟁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들은 전쟁을 발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2020.5.30) by 이춘근 p. 110
"There ts further needed a belief that social invention is possible and the invention of new methods which will render warfare as outdated as the tractor is making the plow, or the motor car the horse and buggy.
A form of behavior becomes outdated only when something else takes its place, and in order to inveat forms of behavior which will make war obsolete, it is a first requirement to believe that an invention is possible."
'Warfare Is Only an Invention - Not a Biological Necessity'
'전쟁이란 발명품일 뿐이다 - 생물학적 필연은 아니다'
(과학적 발명처럼) 사회적 발명도 가능하다
(사회 제도 중 하나인) 전쟁은 못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마치 트랙터가 쟁기를 대체하고 자동화가 말을 대체한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행동도 그럴 수 잇다. 전쟁은 완전히 쓸모없이 만들 수 있다
그런 제도를 발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첫 번째 요구사항이다
Mead, Margaret. "Warfare is Only an Invention - Not a Biological Necessity."
In The Dolphin Reader, 2nd edition, Ed. Douglas Hunt.
Boston : Houghton Mifflin Company, 1990. 415-421
Richard Leakey (1944~)
Palaeoanthropologist, Conservationist, Politician
고고 인류학자, 환경보호주의자, 정치인
Origins (1977) by Richard E, Leakey & Roger Lewin
오리진 (1983) 역 김광억
리차드 리키(Richard Leakey) 등 고고인류학자들은 초기의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보아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 『전쟁과 국제정치』(2020.5.30) by 이춘근 p. 99
인간이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회, 또는 인공적인 요소들이 가미되기 이전의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 사람들은 더욱 행복했으리라고 보는 견해는 18세기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 Rousseau, 1712~1778)에 의해 대표된다. 반대 견해, 즉 인간의 자연상태를 비참한 상태로 보는 정치 철학은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로 대표된다.
······
그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고독하고, 가난하고, 더럽고, 잔인하고, 오래 살 수 없는(solitary, poor, nasty, brutish, short)' 상태라고 묘사하였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07-108
Jean Jacque Rousseau (1712~1778)
philosopher, writer, and composer
Raymond Dart (1893-1988)
Anatomist, Anthropologist
해부학자, 고고학자
1924년 인류학자 레이몬드 다트(Raymond Dart)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 남쪽의 원숭이라는 뜻)라 명명된 원시인류의 해골을 발견했고 그 원시인류의 삶을 분석한 바 있었다. 레이몬드 다트의 주장에 의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육식가였고, 식인종이었으며, 무기를 가진 사냥꾼이었다.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는 사슴의 뒷다리 또는 앞다리 벼로 만든 것이었다. 이처럼 원시 인류가 폭력적이었다는 주장은 다트의 제자이며 차후 더욱 유명한 학자가 된 로버트 아드리(Robert Ardrey)에 의해서 재확인되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9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두개골들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많이 발굴 되었고, 이들을 조사한 결과 그 죽음이 폭력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는 경우가 여럿 발견되었다.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여러 가지 증거에 의해 학자들은 적어도 구석기 시대 끝 무렵에 조직화된 전쟁의 양상이 나타난 것으로 판단한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9
Australopithecus
Robert Ardrey (1908-1980)
Anthropologist (playwright, screenwriter)
인류학자(前 극작가)
African Genesis by Robert Ardrey
: A Personal Investigation into the Animal Origins and Nature of Man (1961)
The Great Delusion by John J. Mearsheimer
: Liberal Dreams and International Realities (2018. 9. 25)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 이춘근 역
: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에 대한 공격적 현실주의의 비판 (2020. 12. 30)
현재까지 발굴된 자료만 가지고는 이 두 가지 주장 중 어느 주장이 더욱 타당한가를 판정 내릴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연구 결과에 의거할 때 인간의 인간을 향한 폭력적 살상 행위는 정말로 오래 전 나타난 일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9
歷史 역사
1.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2.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
先史
역사(歷史) 이전
Cave painting of a dun horse (equine) at Lascaux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
Konrad Lorenz (1903-1989)
Austrian zoologist, ethologist, and ornithologist
동물행동학자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1973)
ethology
동물행동학(動物行動學)
동물행동학자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40만 년~60만 년 전에 살았던 북경원인(시난드로프스)들은 불을 보관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 불로서 자기 형제들을 구워 먹을 줄도 알았다고 한다. 불을 사용한 최초의 흔적 옆에는 사지가 절단되고 불에 태워진 북경 원인의 그슬린 뼈가 놓여 있었다. 보다 현재의 인류에 근접한 약 7만 년 전에 거주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은 창을 발명하였다. 그들이 창을 가지고 전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골반 부분에 창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어져 있는 네안데르탈인의 뼈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현생 인류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크로마뇽인들은 구석기의 끝 무렵인 기원전 35,000년 내지 기원전 12,000년 무렵에 생존하였는데 크로마뇽인들은 많은 동굴벽화를 남겨 놓은 예술적인 인간들이기도 했다. 크로마뇽인들의 동굴벽화는 그들이 촉이 달린 창으로 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크로마뇽인들이 이처럼 발달된 창을 가지고 전쟁을 벌였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들을 주로 동물의 그림을 많이 남겨 놓았고 사람의 그림은 별로 없는데 사람의 그림은 대부분이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9-100
On Aggression (1963) by Konrad Lorenz
공격성에 관하여 (1989. 6. 10) 송준만 역
Swan
백조(白鳥)
black swan 검은 백조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
미국의 뉴욕대학교 교수인 탈레브(Taleb, N. N.)가 월가의 허상을 파헤친 동명의 책을 출간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
1960년 현재의 이집트와 수단 국경선 부근의 한 묘지에서 원시인들의 시체 59구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발굴된 해골의 약 40% 정도는 머리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해골의 작은 구멍들은 화살에 의한 것이 아닌가 추정되었다. 남녀 시체 4구에는 실제로 뼛속에 화살촉의 자국도 남아 있었다. 나머지 시체 모두도 부상을 당한 결과 사망한 것이라 생각되며 팔뼈가 부러진 몇 구의 시체는 아마도 공격을 팔로서 막으려 했었기 때문인 것 같아 보인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01
The condition of man
··· is a condition of war of everyone against everyone,
··· The life of man 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인간의 조건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는]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인하며, 짧다"
Thomas Hobbes (1588~1679)
English philosopher
잉글랜드 왕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최초의 민주적 사회계약론자
Leviathan
칼라하리 사막(Kalahari desert)의 부시맨(Bushman) 종족
다른 종족과 전쟁을 거의 벌이지 않는 종족들은 엉뚱하게도 자신들 내부에서 살인 사건이 대단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예로서 전쟁을 거의 벌이지 않는 종족인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Bushman)종족의 경우 종족 내 살인 사건 발생비율은 1920년부터 1955년간 미국의 살인 사건 발생률의 4배, 그리고 유럽 주요 산업 국가들의 살인 사건 발생률의 20~80배에 이르는 것이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12
역시 대단히 평화적인 에스키모 종족의 한 부분인 카퍼 에스키모족 15가구와 초대면을 한 학자들은 그곳의 성인 남자는 모두가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잇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족 간에 전쟁을 하지 않았다고 그들을 '평화적인 야만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은 원시 사회의 경우에도 거의 보편적(universal)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밝혀졌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12-113
고고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약 700명 내지 1,500명 정도가 무리를 이루어 살기 시작함으로서 최초의 인간 공동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이들 떼거리의 두목은 그다지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외부의 적과 싸움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내부에서 서로 싸움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었을 것이다. 엠버(Ember) 교수는 인간의 정치 조직이 내란(자기네들끼리 서로 싸우기)을 벌이려면 적어도 무리의 숫자가 21,000명 정도는 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Carol R. Ember, 1978. "Men's Fear of sex with Woman." William Eckhardt, Civilizations, Empires and Wars : A Quantitative History of War (Jefferson. NC., McFarland & Company, Inc, 1992)]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03
Carol R. Ember
오터바인(Keith F. Otterbein) 교수가 주도한 50개의 원시 부족에 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원시부족들 중 66%는 거의 끊임없이 전쟁을 하며 살았다. [Keith F. Otterbein, The Evolution of War : A Cross-cultural Study (New Haven : Human Relations Area Files Press, 1970)]
원시인들의 전쟁 빈도
정치조직유형
끊임없음
자주
드물게
전체숫자
국가
4
6
0
10
종족(chiefdom)
3
2
1
6
부족(tribe)
20
2
3
25
떼거리(band)
3
5
1
9
합계
30
15
5
50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15
Keith F. Otterbein (1936~2015)
Anthropologist, Professor
인류학자, 교수
The evolution of War by Keith F. Otterbein
: A cross-cultural study (1970)
The Anthropology of War (2009) by Keith F. Otterbein
How War Began (2004) by Keith F. Otterbein
Norman Cousins (1915~1990)
American political journalist, Author,
Professor, and world peace advocate
Saturday Review of Literature
(1920년부터 1986년까지 발행됐던 미국의 주간 잡지)
Former editors : Norman Cousins (1940~1971)
Frequency : Weekly
Circulation : 660,000 (1971)
Founder : Henry Seidel Canby
First issue : 1920
Final issue : June 1986
전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 또는 저술가들은 인류의 역사에 전쟁이 수도 없이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통계자료를 사용하여 극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는가에 관한 계량적 분석의 효시는 Saturday Review의 저널리스트였던 노만 커즌스(Norman Cousins)의 1954년도 논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커즌스는 기원전 3600년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소 약 14,500회의 전쟁이 발발했고, 기원전 3600년에서 서기 1954년에 이르는 기간 중, 세상 어디에도 전쟁이 없었던 해는 단 292년에 불과했으며, 전쟁의 직 · 간접적 영향으로 인해 약 35억의 인류가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하였다. [Francis A. Beer, 1981에서 재인용] 이 통계에 의한다면 지난 5,600년 동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연평균 2.6회의 전쟁이 발생한 것이며, 이 기간을 살아온 185세대의 인간 역사에서 일생동안 진정한 평화를 경험한 세대는 단지 10세대밖에 되지 않는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26
비어 교수는 보다 체계적인 자료들을 이용하여 인류 역사 5,600년의 전쟁을 분석하고자 했는데 비어 교수는 우선 전쟁의 역사에는 특정한 경향성이 없다고 가정하고, 즉 시대에 따라 전쟁의 발발 빈도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가정한 후, 리차드슨(Lewis F. Richardson)의 전쟁 데이터와 싱거, 스몰 교수의 '전쟁 요인 관련 연구계획의 전쟁 데이터(COW Project Data)를 역사에 대입시켜 보앗다. 그 결과 비어 교수는 기원전 3600년부터 계산한다면 적어도 13,600~13,650회의 전쟁이 발발했을 것이라는 계산 결과를 도출해 내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27-128
Pitirim Sorokin (1889~1968)
Sociologist
(러시아 북부 투리아 코미 출신의) 미국 사회학자
시간적으로 보아 인류 역사의 90%는 전쟁의 역사로서 인류문명 발생 이후 대략 15,000회의 전쟁이 지구 방방곡곡에서 발발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적어도 20억 이상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29
전쟁의 빈도에 관한 계량적 연구
연구자 연구범위
연구대상기간
전쟁 발발 빈도
세계차원
라이트
1480~1941
주요전쟁 200회 이상
싱거, 스몰
1816~1965
대전쟁 93회
리비
1495~1975
강대국전쟁 119회
지역차원
소로킨
1100~1925
862회의 유럽전쟁
싱거, 스몰
1816~1965
유럽
각종전쟁 177회
서반구
51회
아프리카
12회
중동
47회
아시아
55회
세계 : 국제전 및 내전
리처드슨
1820~1949
317회의 치명적 싸움
싱거, 스몰
1816~1965
367회의 국제전 및 내전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31
퀸시 라이트 교수가 연구한 세기별 전쟁의 빈도를 표로 나타낸 것이다.
세기
16세기
17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
전쟁빈도
64
64
38
79
29
* 라이트의 자료는 1480년부터 1941년까지 발생한 전쟁 모두를 기록하고 잇다. 20세기의 경우는 1941년까지 발발한 전쟁 회수를 표시한 것이다. [Quincy A. Wright, A Study of War, pp. 641~646.]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29
1816년 이후의 서구 중심의 국제 정치사는 유럽 역사 수천 년 중 가장 평화스러운 시기였다는 점에서 전쟁연구를 위한 적절한 기간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American Civil War 미국 남북 전쟁 (1861. 4. 12~1865. 5. 9)
미국 남북전쟁은 미국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1861년 4월,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주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형성하며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한 뒤,
아메리카 남부 연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 포격을 시작으로 1865년까지 4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 결과 남부 연합군이 패했고,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103만 명의 사상자(당시 인구의 3%)가 발생했고, 사상자 중 62만 명은 군인이었으며 그 가운데 2/3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남북전쟁은 미국이 지금껏 참여한 모든 전쟁에서의 사망자 수와 맞먹는 수많은 미국인들의 죽음을 초래했다.
전쟁을 유발한 원인과 그 타당성 여부는 물론이고, 남북 전쟁이라는 그 명칭 자체도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되는 소재이다.
by Kurz & Allison (1878), depicting the scene of at Burnside's Bridge
Battle of Antietam
앤티텀 전투 (미국 남북전쟁의 일부)
또는 샤프스버그 전투 (Battle of sharpsburg : 남부에서 부르는 명칭)
미국 남북전쟁 중반 1862년 9월 17일 메릴랜드전역의 일환으로 메릴랜드주 샤프스버그 근처 및 앤티텀 클리크(강을 말함)에서 벌어진 것으로 북부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로는 남북전쟁 최초 주요 회전(會戰)이었다.
양군 합쳐 약 23,000명의 손실이 발생해 합중국 역사상 단일 전투로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전투이기도 하다.
Inter-State War # 1
Franco-Spanish War of 1823
Non-State War # 1594
Hema-Lendu War of 1999~2005
Warfare and Armed Conflicts by Michael Clodfelter
: A Statistical Encyclopedia of Casualty and Other Figures, 1492~2015 (2017 : 초판 1992)
Encyclopedia of Conflicts Since World war II (2006. 12. 15 / 초판 1999)
by James Ciment
The Harper Encyclopedia of Militaey History
: From 3500 B. C. to the Present (1993. 4. 1)
by R. Ernest Dupuy, Trevor N. Dupuy, Harper Collins
Jack S. Levy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t Rutgers University
War in the Modern Great Power System 1495~1975 (1983. 10. 2)
by Jack S. Levy
또한 리비 자신도 지적하듯이 앞에서 제시된 싱거와 스몰의 데이터는 연구대상 기간이 전쟁의 패턴을 연구하기에는 너무나 짧고, 특히 1816년 이후의 서구 중심의 국제 정치사는 유럽 역사 수천 년 중 가장 평화스러운 시기였다는 점에서 전쟁연구를 위한 적절한 기간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잇었다. 리비의 자료는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154
Explaining War by J. David Singer and Associates
: Selected Papers from the Correlates of War Project (1979)
Historical Trends 역사적인 트렌드
Alliance Configuration and War 동맹과 전쟁
Systemic Polarization and Occurrence and Duration 패권과 전쟁 발발 및 전쟁 지속시간
Capability Distribution, Uncertainty, and Major Power War 국력분포, 불확실성 및 강대국들의 전쟁
Population Density and War Proneness of European Nations 인구밀도와 전쟁
Arms Race and Escalation 군비경쟁과 확전
Behavioral Indicators and of War Proneness in Bilateral Conflicts 양국간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이는 행동지표
Dr. R. Harrison Wagner
Professor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中國的 (儒敎的) 國際政治 秩序 아래서의 戰爭에 관한 硏究
중국적 (유교적) 국제 정치 질서 아래서의 전쟁에 관한 연구
'War in the Confucian International Order'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August 1988
↓
"유교적 국제질서가
서양의 강대국 국제체제 보다는 평화로웠다"
Table V-4. Comparison of the Amount of War
Confucian I. O (유교적 국제질서)
Modern G. P System (서양 강대국 국제 체제)
Total Duration War Years Peace Years Intervals of New Wars Number Wars beginning Wars under way
우리는 법적인 강제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베풀어지는 박애만을 인정한다. 자발적이지 않은 박애는 있을 수 없다. 법으로 박애를 선포하는 것은 박애를 절멸시키는 것이다. 법이 인간에게 정의로움을 강요할 수 있지만, 자기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제1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제2장 법
제3장 재산권과 법
제4장 정의와 박애
제5장 국가
프레데릭 바스티아 Frederic Bastiat
1801년 프랑스 남서부의 베이요느에서 출생, 당시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세이Jean Baptist Say의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1830년 고향인 무그론Mugron에서 판사로 임명되었다가 후에 지방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1844년에는 보호관세의 부당성에 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845년 논문모음집 『경제적 궤변Sophisme Economique』을 출간했고, 같은 해 프랑스와 벨기에간의 자유무역을 주창하기 위해 자유무역협회 창립에 관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으나, 1850년 지병인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김정호 Chung-Ho Kim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수료)을 거쳐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숭실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지문제와 회사법 등에 대한 자유주의적, 법경제학적 분석에 매진해왔다. 자유기업원 원장과 연세대학교 특임교수를 역임했다. 주요저서로는 〈왜 우리는 비싼 땅에서 비좁게 살까〉, 〈토지세의 경제학: 미신과 현실〉, 〈한국의 토지이용규제〉, 〈대한민국 기업의 탄생〉, 〈갈등하는 본능〉 등이 있다.
차 례
영역판 서문
서문
제1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1. 깨어진 창
2. 동원해제
3. 조세
4. 극장과 예술
5. 공공사업
6. 중간상
7. 무역에 대한 규제
8. 기계
9. 신용
10. 알제리아 문제
11. 절약과 사치
12. 노동의 권리와 이윤에 대한 권리
제2장 법
법의 타락
인간의 본성
재산과 약탈
부세
페넬론
몽테스키외
루소
레이날
마블리
콩디악
제3장 재산권과 법
제4장 정의와 박애
제5장 국 가
바스티아의 일생
역자후기
색인
제1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What Is Seen and What Is Not Seen
역사에는 두 종류의 결과가 있다. 하나는 즉시 인식될 수 있는 즉각적인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당장은 잘 안 보이지만 오랜 기간을 두고 나타나는 장기적 결과이다. 이 두 가지의 결과는 서로 상출될 경우가 많다. 전자는 인간의 단기적 지혜로부터 나오고 후자는 장기적인 지혜로부터 나온다. 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끝난 후에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간이 사라진 뒤에 나타난다. 신의 지혜를 거부하고 싶다면 거부하라. 신의 역사와 그의 말씀을 믿고 싶지 않다면 마음대로 하라. 보통사람들이 섭리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들이 환경의 작용이니 이성의 작용이니 하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일이 끝난 후에 돌이켜본다면, 도덕이니 정의니 하는 이름으로 처음부터 계획되고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신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샤토브리앙 Vicomte Francois de Chateaubriand, 『무덤에서의 회상』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세운 철학사상 체계.
사회 계급의 관계와 사회적 충돌에 초점을 둔 사회적 분석의 방법이자 세계관인데, 역사전개를 유물사관론적으로 해석하며, 사회변동을 변증법적 견해로 해석한다.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은 경제 및 사회정치적 탐구를 하고 이를 자본주의 전개에 대한 분석 및 비평과 체제상의 경제 변화내의 계급투쟁의 역할에 적용한다.
2)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국제정치관
이상주의 대 현실주이라는 분류 외에도 국제정치를 보는 또 다른 관점들 중 대표적인 것이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인데 이 관점들은 국제정치의 경제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한다는 특색이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국가들의 자유로운 무역 거래, 국가들의 민주화가 세계평화의 조건이라고 믿는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무역, 국가들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전혀 평화의 조건이리고 간주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제국주의야말로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과학의 거의 전 분야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 관점이지만 국제정치와 전쟁 연구에서는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는 국제관계보다는 국내정치에 더 큰 초점을 맞추었고 국가 간의 전쟁보다는 국내의 혁명에 더 큰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 중에서 국제정치에 기여한 거의 유일한 학문적인 기여는 레닌이 서술한 『제국주의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81~82
Vladimir Lenin (1870~1924)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Влади́мир Ильи́ч Ле́нин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위원평의회 주석
(1922. 12. 30~1924. 1. 21)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인민위원평의회 주석
(1917. 11. 8~1924. 1. 21)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1917) by Vladimir Lenin
제국주의론 (1986) 역 남상일
Marxism and International Relations by Vendulka Kubalkova and Albert Cruickshank
마르크스주의와 국제관계론 (1990) 역 김성주
마르크스주의와 국제관계는 서로 쉽게 융합될 수 없는 분야들이다.
와이프(Martin Wight)가 분명히 밝힌 것처럼
국제관계론은 다음과 같은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즉
"체계적인 국제관계 이론의 발전을 위해
마르크스 · 레닌 · 스탈린 가운데 그 누구도 이렇다 할 만한 기여를 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은
그나마 체계적인 국제관계 이론에 가장 근접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도 국제정치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공산주의가 도래 할 수 있다는 신념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나름대로의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공산주의는 역사상 도덕의 최고 절정을 이루는 것이 된다.
물론 이같은 신념을 갖지 않는다면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논리체계는 크게 손상될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거의 군말없이 사회주의 사상을 포기하였다.
"Socialism only works in two places
: Heaven where they don't need it and
hell where they already have it.
"사회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천국이다
그곳은 사회주의가 필요없는 곳이다.
다른 한 곳은 지옥이다.
그곳은 이미 사회주의가 존재했던 곳이다."
Ronald Wilson Reagan (1911~2004)
美 제40대 대통령
40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1981. 1. 20~1989. 1. 20)
Grand Theory 대이론 또는 거대이론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힘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2,400년전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이렇게 요약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두려웠고, 아테네의
힘이 더 커지기 전 전쟁을 일으켜 두려움을 해소 시키려 했던 것이다.
Thucydides (기원전 465년경~기원전 400년경)
고대 그리스 아테나이의 역사가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기원전 411년까지 싸운 전쟁을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저술가이며,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The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Kenneth N. Waltz (1924~2013)
American political scientist, professor
Man, the State, and War by Kenneth N. Waltz
: A Theoretical Analysis (1959)
인간, 국가, 전쟁
: 전쟁의 원인에 대한 이론적 고찰
(3) 전쟁과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3차원
국제정치와 전쟁을 분석하는 유명한 방법이 '3차원 분석(Three Levels of Analysis)'이라는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제2세대, 즉 방어적 현실주의 혹은 구조적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학자인 케네츠 월츠(Kenneth N. Waltz) 교수는 『인간, 국가, 전쟁』이라는 그의 유명한 저서에서 전쟁은 인간 개인의 수준, 국가의 수준, 국제체제의 수준에서 연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부분 학자들이 이 방법을 개별적으로, 혹은 혼합적으로 사용하여 하나의 전쟁 혹은 수많은 전쟁을 복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82
Levels of Analysis Problem
전쟁과 국제정치
05
전쟁 연구의 현황
전쟁 연구의 현황
(1) 전쟁 연구의 선구자들
전쟁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있어 온 정치적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지난 수 천년동안 모든 학자들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어 왔으며, 전쟁의 연구에 관한 문헌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계 최대의 전자 서점 아마존(Amazon.com)에 들어가서 전쟁(War)에 관한 책을 탐색해 보면 전쟁이란 단어가 포함된 책이 무려 10만 권이 넘는다. 그러나 이 중에는 범죄와의 '전쟁'도 포함되고, '전쟁과 사랑'이라는 문학 작품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란 단어가 책의 제목에 포함된 책 중에 현재 팔리고 있는 책이 10만 권도 넘는다는 사실은 전쟁 연구, 혹은 전쟁에 대한 관심의 광범함을 나타내주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전쟁에 관한 학술적 연구의 주류는 국제정치학, 역사학 그리고 군사학적인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전쟁 연구의 가장 큰 목표는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즉 Why War?의 문제다. Why War?의 문제에 답하는 일은 결국 '어떻게 전쟁을 방지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대답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전쟁의 원인을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과학적, 그리고 체계적인 전쟁연구가 시작된 것은 그다지 역사가 길지 않다. 즉 평화학으로서의 전쟁 연구의 역사는 그 역사가 아주 짧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로소 평화를 위한 학문으로서의 전쟁연구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88~89
그러나 전통적인 전쟁연구는 보다 목적론적이고 철학적이긴 했으나 과학적이지는 못하였다. 전쟁이 전쟁을 진행하는 양측 나라의 시민들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었고 그 이전의 전쟁은 주로 군주, 왕(prince) 또는 전문 직업군(professional soldiers)들의 고유 영역이었다. 이때까지 전쟁은 군주들의 스포츠 정도로 생각되기도 햇다. 그러나 전쟁이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것으로 바뀐 프랑스혁명(1789) 이후 시대에는 국민이 전쟁을 담당하는 주체가 되었고 피해의 대표적인 주체도 역시 일반 시민들이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동기에서 전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두 차례의 참혹한 전쟁을 겪은 20세기 중엽 비로소 시작되었다.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 교수는 유럽의 전쟁사를 전쟁을 직접 담당햇던 사회 계급을 기준으로 전쟁의 역사를 서술한 서적을 집필한 바 있는데, 중세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기사들, 용병들, 상인들, 전문 직업군들에 의해서 수행되어 오다가, 프랑스 혁명기를 거쳐 비로소 전쟁은 '민족(국민) 간의 싸움(Wars of the Nations)'으로 발달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Michael Howard, War in European History,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Updated ed., 2009) : 안두환(역) 『유럽 역사속의 전쟁』, 서울 : 글항아리, 2015)]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1
전쟁 큰 비참함, 프랑스 화가 자크 칼로(Jacques Callot)의 그림, 1632년작
30년 전쟁 Thirty Years' War (1618. 5. 23~1648. 5. 15 / 장소 : 유럽, 주로 독일)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이다.
유럽의 전쟁뿐만 아니라 인류전쟁사에서 가장 잔혹하고 사망자가 가장 많은 800만 명이었다.
Sir Michael E. Howard (1922~2019)
British military historian, Professor
영국의 군사역사학자, 교수
War in European History (1976. 7. 22) by Michael Howard
유럽사 속의 전쟁
차례
초판 서문
2009년판 서문
제1장 기사들의 전쟁
제2장 용병들의 전쟁
제3장 상인들의 전쟁
제4장 전문가들의 전쟁
제5장 혁명의 전쟁
제6장 국민들의 전쟁
제7장 기술자들의 전쟁
전쟁의 성격이 민족국가 간의 전쟁이 된 시점을 중심으로 전쟁의 원인에 관한 연구가 보다 광범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나폴레옹의 전쟁 수행 및 프랑스의 국민군의 '폭발적인 힘'에 감명을 받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현대 전쟁의 진면목에 관한 최고의 분석이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1~92
On War (1832) by carl von Clausewitz
전쟁론
대표적인 전쟁 연구 세 가지
(1) 시카고 대학의 전쟁 연구
시카고 대학의 퀸시 라이트(Quincy Wright) 교수는 본시 국제법을 전공한 학자로서 평생 동안 1,100편의 논문을 비롯, 수많은 저서를 출간한 다작의 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저작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942년에 초판이 발간되었고 1965년 제2판이 발행된 『전쟁의 연구 (A Study of War)』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연구』를 저술하기 위한 작업은 1926년에 시작되었고 1942년까지 16년 동안 진행되었다. 라이트 교수는 물론 수많은 그의 제자들이 동참한 작업의 결과였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2
Quincy Wright (1890~1970)
Political Scientist 정치학자
A Study of War (1942) by Quincy Wright
이 연구는 전쟁처럼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해결책이 강구되어질 수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했고 라이트 교수는 이러한 작업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전쟁의 연구』는 '근대 문명 속의 전쟁 (Wars in Modern Civilization)'이라고 명명된 1480년부터 1940년에 이르기까지 발발했던 278회의 전쟁 전체에 관한 귀납적 연구였다. 경험적, 계량적 연구인 동시에 규범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시카고 대학교의 전쟁 연구는 현대의 평화 연구 운동 (Peace Research Movement)의 선구지라고 불리기에 족하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3
Lewis Fry Richardson (1881~1953)
English mathematician, physicist, meteorologist, psychologist
영국의 수학자, 물리학자, 기상학자, 심리학자
(2) 루이스 리차드슨 (Lewis Fry Richardson)
루이스 리차드슨 (Lewis Fry Richardson)의 전쟁 연구는 개인적인 업적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과학적 연구에 중추가 된 역작들이었다. 리차드슨은 물리학, 기상학 등을 전공하였고 젊은 시절 자연 과학 업무에 종사한 사람으로 물리학, 기상학 연구에 관한 그의 업적은 학계에서도 퍽 잘 알려졌다. 과학자인 리차드슨은 1차 대전 당시 프랑스 보병 제16사단의 앰뷸런스 부대에서 근무햇고, 특히 그의 처남 두 명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전쟁이란 인간사회 내의 불쾌한 질병'이란 신념을 갖게 햇고 전쟁연구에 몰두하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3
젊은 시절 과학에 종사했던 리차드슨은 1920년대에는 심리학 연구에 정열을 바쳤고 심리학 분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40년 그는 오로지 전쟁만을 연구하기 위하여 사회생활로부터 은퇴하였는데 이 무렵은 바로 퀸시 라이트의 전쟁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있던 때였다. 리차드슨의 연구 결과는 그의 사후 두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한 권은 제목이 특이한 『치명적 싸움들의 통계학 (Statistics of Deadly Quarrels)』이란 책으로 퀸시 라이트가 편집해서 출판하였고 다른 한권은 군비경쟁에 관한 책으로서 『무기와 불안정 (Arms and Insecurity)』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94
Statistics of Deadly Quarrels (1960)
by Lewin F. Richardson / Editor Quincy Wright & C. C. Lienau
Deadly Quarrels by David Wilkinson
: Lewin F. Richardson and the Statistical Study of War (1980)
1) 전쟁 사망자 수의 대부분은 극소수의 대전쟁에서 유발되었다.
2) 대부분의 전쟁은 통제 불능 상태로 확전되지는 않으며,
소규모, 단기적, 그리고 배타적(exclusive)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주로 강대국들이 전쟁의 대부분을 치렀으며,
피해의 대부분이 여기서 유발되었다.
4) 인종적, 문화적 차이가 커질수록
두 집단 간에 전쟁발발 가능성도 높아진다.
(3)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의 전쟁 관련 요인 연구 계획(The Correlates of War Project)
세 번째 과학적 전쟁 연구의 최대규모 프로젝트는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의 전쟁 관련 요인 연구계획(The Correlates of War Project)이다.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과의 싱거(J. David Singer) 교수와 웨인 주립대학 역사학과의 스몰(Melvin Small) 교수의 주도에 의해 이룩된 미국 최대의 전쟁 연구 프로젝트로서 전쟁에 관한 연구 업적은 물론 전쟁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들도 가장 많이 배출한 과학적 전쟁 연구의 메카가 되었다.
전통이 살아있고, 신이 빚어놓은 자연과 문화와 역사의 땅 화순은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공룡발자국 화석, CNN이 선정한 세량지, 굽이굽이 절경을 만들어낸 화순적벽, 절경이 있는 곳에 함께 있는 수많은 정자,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사찰,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자연의 절경과 역사의 현장을 지켜오고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천불천탑의 사찰인 운주사와 쌍봉사가 있고,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이 되고, 공룡발자국화석이 발견되면서 화순으로 답사오는 방문객이 많아졌다.
화순의 곳곳을 되짚어 보니 이 작은 도시에 이렇게 많은 보물들이 남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문화재와 절경과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다.
공룡이 살았던 흔적, 언덕마다 펼쳐진 고인돌, 기암절벽에 병풍처럼 수놓은 적벽, 천불천탑과 와불, 고단함을 풀어주는 온천, 사람들이 왁자지껄 흥정하는 전통시장 등 화순에 가면 모두 만날 수 있는 곳들이다. 이제 화순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보자.
- 머리말 중에서
문기주
화순 출신. 도곡중학교 8회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세량지와 세상의 시름을 멈추게 하는 화순적벽의 아름다움과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유적지와 천불천탑과 와불, 민초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운주사 등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유산의 고장인 화순(도곡면 덕곡리(덕산마을))에서 태어난 저자는 1991년 한국문인협회 동인지에 「소리」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였다. 중견 기업의 CEO이고, 평론가, 언론인, 사회 활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린피아 홈쇼핑 대표와 세파월드 운영 기획(주) 회장, 디에스 산업 개발(주) 회장, 그리고 무등 피엔씨(주)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유림 AMC(주) 회장, 우근 AMC(주) 회장, 희합 AMC(주) 회장, (주)크로앙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일간경기 회장, 한국기자연합회 총재, 시사랑 회장, 사회 야구 블로버드 초대 회장, 이스턴 프라임대학교 명예박사 및 동문회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수상으로는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경제발전 부분), 한국을 빛낸 사회봉사 대상, 소비자 연맹 쇼핑부분 대상, 대한민국 환경부 장관상, 아태 평화 봉사 대상, 국제평화공헌대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문인협회 동인지 발표(소리ㆍ인생)』, 『우리 함께 가자 이 길을!』, 『문기주의 경제 이야기』, 『인생을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등이 있다.
| 차례 |
- 머리말
1 화순으로 가는 길은 아늑하다
- 사람이 살아 숨쉬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나다 / 화순 전통시장 황금들녁의 아늑함을 품고 있다 / 덕산마을 호남 의병 활동의 거점지 / 쌍산항일의병 유적지 5.18 민주항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다 / 너릿재옛길, 화순역 동화나라, 작은 숲속 마을에 가다 / 소아르갤러리 살아 있는 화석으로 홍수를 이겨내다 / 야사리 은행나무
2 화순으로 가는 길은 유구하다
- 전설이 전통이 되고, 문화가 되다
화순에 공룡들이 뛰어다닌다 / 공룡발자국화석산지 천불천탑에 담은 기도를 듣고 와불이여, 일어나소서 / 운주사 목탑의 집에 부처님을 모시다 / 쌍봉사 해맑은 미소로 마음을 위로하다 / 벽나리 민불 단풍나무숲 깊숙이 전설이 전해져 온다 / 유마사 세계 고인돌의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다 /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간절한 기도를 함께하는 배롱나무가 붉게 물들다 / 만연사
3 화순으로 가는 길은 간절하다
- 그곳에 역사를 움직인 인물이 있다
관을 두껍게 만들지 말라. 먼 길 가기 어렵다 / 조광조 적려 유허비 방랑 시인의 삶을 마무리하다 / 김삿갓종명지 양심적인 지식인, 화순에서 학문을 쌓다 / 정약용유적지(만연사, 동림사, 정약용선생독서비) 능주의 교육을 담당하다 / 능주향교 뜻을 함께한 두 벗을 기리다 / 죽수서원 임진왜란에서 화순을 구하다 / 충의사 벼슬은 잃었지만 자연을 가슴에 품다 / 학포당
4 화순으로 가는 길은 힐링이다
- 산과 계곡의 조화가 화폭에 담기다
신이 붓을 휘둘러 절경을 그리다 / 화순적벽 CNN이 선정한 저수지 사시사철 모습을 바꾸다 / 세량지 철쭉공원으로 이름을 떨치다 / 수만리 철쭉공원 무등산을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두르다 / 무등산(이서 규봉암, 지공너덜, 입석대) 숲멍으로 마음을 치유하다 / 연둔리 숲정이 온천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다 / 도곡온천, 화순온천 경전선 철로와 시대를 함께하는 시를 읊는다 / 영벽정 세속의 때를 벗어던지다 / 물염정 마을 속에 한국의 전통정원이 자리하다 / 임대정원림 호수 안 작은 섬, 정자에 앉으니 무릉도원이다 / 환산정 힐링과 웰빙의 도시, 화순이 좋다 / 화순(화순군청)
화순고인돌전통시장
의병성의 일부
의병 막사가 있던 장소
만세바위와 유황굴의 모습
화순역
화순역 광장 옆에 5 . 18민중항쟁 비석이 세워져 있다.
소아르갤러리
마당에 설치된 조형물의 동글동글한 얼굴이 왠지 친근감을 준다.
돼지를 끌고 기분 좋게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활기차 보인다.
야사리 은행나무
야사리 은행나무의 뿌리 중 일부가 밖으로 드러나 있다.
오랜 세월 조금씩 조금씩 자라면서 나무는 여러 모양을 만들어낸다.
야사리 은행나무는 계절마다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화순에서 뛰어놀았을 공룡들의 모습이 귀여워보인다.
공룡이 밟고 지나간 흔적이 화석으로 남아 있다.
온천을 발굴하려던 채석장에서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유네스코에서 지질공원으로 지정하였다.
운주사 와불 - 천불천탑에 담은 기도를 듣고 와불이여, 일어나소서
운주사는 배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9층 석탑이 돛대 역할을 한다.
불상이 꽉 들어찬 석조불감.
운주사 입구인 일주문과 대웅전 모습.
운주사 곳곳에 탑과 불상이 놓여있다. 천불천탑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호떡탑이라는 별명이 붙은 원형다층석탑과 항아리리탑이라는 별명이 붙은 원구형석탑.
쌍봉사
사천왕의 모습.
3층 목탑처럼 생긴 대웅전.
철감선사탑비로 철감선사에 대한 내용이 적힌 비석은 없어지고 거북이 모양의 귀부와 용 모습을 한 이수만 남아 있다.
철감선사탑
벽나리 민불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용대 선수의 이름을 붙인 이용대체육관.
미소 짓고 있는 벽나리 민불
유마사
유마사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
'모후산유마사'라고 쓰여 있는 일주문
유마사 해련부도
유마사의 대웅전을 대신하고 있는 관음전
일주문 옆에 계곡이 흐르고 그곳에 유마사 보안교가 있다.
관청바위 고인돌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 바위로 알려진 핑매바위
만연사 동종과 나한전의 모습
일렬로 늘어선 만연사 장독대의 모습이 정갈하다.
조광조 적려 유허비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 정문
조광조의 넋을 위로하고 뜻을 알리기 위해 세운 유허비
조광조가 살았던 초가집
유허비의 모습으로, 조광조의 처음과 끝이 모두 담겨 있다.
조광조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과 영정각 안에 있는 조광조의 영정, 아래는 정홍래가 그린 조광조의 영정이다.
김삿갓종명지
김삿갓공원
김삿갓공원에 있는 김삿갓의 시비
김삿갓공원에는 김삿갓 동상과 돌에 시를 써서 전시하고 있다.
김삿갓공원에는 김삿갓이 쓴 시를 돌에 새겨 전시하고 있다.
대나무 시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제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장에서 사고 팔기는 세월대로
만사가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그림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낯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죽 한 그릇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주막에서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요강
네가 있어 깊은 밤에도 사립문 번거롭게 여닫지 않아
사람과 이웃하여 잠자리 벗이 되었구나.
술 취한 사내는 너를 가져다 무릎 꿇고
아름다운 여인네는 널 끼고 앉아 살며시 옷자락을 걷네.
단단한 그 모습은 구리산 형국이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비단폭포를 연상케 하네.
비바람 치는 새벽에 가장 공이 많으니
한가한 성품 기르며 사람을 살찌게 하네.
스무나무 아래(二十樹下)
스무(二十, 시무)나무 아래에 앉은
서른(三十, 서러운) 나그네가
마흔(四十,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五十) 밥을 먹는구나.
인간 세상에서 어찌 일흔(七十,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서른(三十, 설익은) 밥을 먹으리라.
정약용이 동림사에서 글을 읽으며 오갔던 만연사 모습
동림사가 있었던 곳에 동림사지 표지석이 남아 있다.
동림사지 표지석 앞에 있는 도로 건너편에 정약용의 독서비가 세워져 있다.
능주향교
능주향교 앞마당 주차장 한쪽에 늘어서 있는 비석들
능주향교의 모습
능주향교 입구에 서 있는 홍살문과 그 뒤로 향교 정문이 보인다.
죽수서원
죽수서원은 산 기슭에 있으며 위에서 정문을 내려다 본 모습이다.
죽수서원의 모습
죽수서원에 남아 있는 건물
도학을 숭상하여(崇道學)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人心)
성인과 현자를 본받아(法聖賢)
지극한 정치를 일으키도록 하세(興至治)
- 양팽손이 조광조의 초상화 밑에 적어놓은 글
서원이 원래 있던 땅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인 '죽수서원원지복원비'
충의사
논개부인 영정각
촉석루 위에 있는 세 장사는
한 잔 술로 웃으면서 장강의 물을 가리키네.
장강 물은 도도히 흘러가니
저 물이 마르지 않는 한 우리 혼은 죽지 않으리라.
- 최경회(김천일, 고종후와 함께 촉석루에 올라 읊은 시)
충의공 최경회 장군 동상
논개부인 영정각과 사당으로 가는 의열문인데 '전라문'이라고 쓰여 있다.
충의사의 모습
학포당
학포당 현판
學圃讚山水圖(학포찬 산수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그림은 학포 양팽손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가 지금은 작자 미상으로 연구중인 작품이다.
그림 오른쪽 위에 글을 쓰고 학포(양팽손)가 쓰다라는 뜻의 '학포사(學圃寫)'라는 글씨가 써 있고, 인장에는 '양팽손장(梁彭孫藏)'이라고 쓰여 있다.
화순적벽
환산정 앞에 펼쳐진 서성적벽
화순적벽
가을 강 모래밭에 오솔길 또렷하고
계곡 어구 비취빛 산에서는 구름이 일듯
새벽녘 시냇물에는 연지 빛이 잠기고
맑은 날 바위벽에는 비단 무늬 흔들흔들
수령의 한가한 놀이에선 누가 흥겨운가
시골 사람 무리지어 밭 갈고 낚시하네
외진 곳 안온한 산수가 사랑스러워라
이름 흘려 알리려 하지 않기에
- 다산 정약용, '적벽 정자에서 노닐며'
몰염정 근처에 있는 창랑적벽의 모습
세량지
아름다운 저수지로 외국에까지 소문난 세량지
물길 따라 올라가면 세량지에 닿는다.
제방 위에 있는 원두막에서 바라본 세량지의 모습과 세량지 밑에 만들어 놓은 연못의 가을 풍경 모습
CNN이 선정한 50곳에 뽑힌 세량지는 사시사철 옷을 바꿔입느다.
수만리 철쭉공원
수만리 철쭉공원 인근에 숲길을 걸으며 힐링할 수 있는 만연산 오감연결길이 있다.
이서 규봉암
무등산 일대에 펼쳐진 주상절리
이상한 모양의 돌들은 이름 붙이기가 어렵더니
올라와서 바라보니 모든 것이 공평하구나
바위 모양은 비단을 잘라 세운 득하고
봉우리 모습은 옥을 다듬어 세운 듯하다
명승을 밟으니 세상 티끌이 사라지고
그윽한 곳에 이르니 도의 참뜻 더해지네
어떻게 세상 인연 털어버릴까
가부좌로 앉아 영생의 길을 배운다.
- 김극기, '한시 규봉암'
무등산 일대에 펼쳐진 주상절리
주상절리를 잘 보여주고 있는 기암절벽
연둔리 숲정이
화순 온천
도고온천
화순온천이 있는 화순금호리조트
영벽정 강가에 있는 비석
지금도 이곳에는 시인들이 모여 함께 시를 이야기한다.
물염정 옆에 있는 물염적벽
물염정에는 김삿갓 시비가 있다.
물염정 옆에 펼쳐져 있는 물염적벽
임대정원림
원림에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임대정에 다다른다.
사애 선생이 지팡이 짚고 자주 들르던 곳이라는 뜻의 '사애선생장구지소'라 새겨진 돌이 있다. 사애 선생은 민주현을 말한다.
임대정 정자
환산정
환산정에서 본 서암적벽
환산정 앞에 문은 있으나 담이나 울타리가 없다.
환산정으로 들어가는 다리와 환산정의 기둥의 주련 모습
환산정의 정면 모습
화순군청 표지석
화순군청
화순군 마스코트는 국화를 자유롭고 발랄하게 표현하였고, 보조마스코트1은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을 소재로 하였다. 보조마스코트2는 운주사의 와불을 소재로 하여 친근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만약 '1995년 한 해 동안 세계 도처에서 57개의 전쟁이 발생했다'고 말한다면 무엇이 전쟁인지?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계산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학술 서적, 신문 등에서 전쟁의 통계자료를 자주 발표하는데 전쟁에 대한 정확한 정의 없이 자료만을 예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쟁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발발 횟수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을 정의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64
Arthur Ferrill's Definition of WAR
아더 훼릴의 '전쟁'의 정의
고대의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있어서
보통의 '싸움질'과 '전쟁'을 구분하는 기본적인 기준은
대오(隊伍)를 맞추어 행군하는 군대의 조직이 존재했는가의 여부와
원초적인 전략, 전술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되었는가의 여부다.
줄을 지어 명령에 따라 행군하는 병사들이 있었는가?
이들은 명령에 따라, 전쟁의 기초적인 원칙에 따라 전투를 벌였는가? 등이
전쟁과 패싸움을 판별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즉 전쟁은 제도화된 조직들 사이에 야기되는 싸움인 것이다.
특히 군대라는 조직의 존재와 전략, 전술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전쟁이란 개인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행위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 『전쟁의 기원』 by Arther Ferrill / 이춘근 역
: 석기 시대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까지(2019.7.20)
隊伍
군대(軍隊) 행렬(行列)의 줄
이 세상에는 전쟁이라고 불리는 사건들이 정말로 많다. 나라들이 싸우는 것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데 무리가 없지만 전쟁이라는 용어는 '국가들 사이의 폭력적 갈등'이라는 한정된 의미 이외에 너무도 광범하게 쓰이고 있다. 전쟁이란 용어가 이토록 널리 쓰이다 보니 전쟁을 연구한 학술 서적에서도 '전쟁이란 무엇이다'라고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64
"전쟁은 지옥이다"
War is Hell
William Tecumseh Sherman(1820~1891)
미국의 군인
미국 남북 전쟁 때 북군의 장군 이었으며,
전쟁 시 남부의 물자 및 시설에 최대한 타격을 가하는 전술인
이른바 전면전을 응용한 장군으로
현대전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며,
그의 이름을 딴 전차(M4 셔먼)와 배(제너럴 셔먼 호)도 존재한다.
Sir B. H. Liddell Hart
(Basil Henry Liddell Hart, 1895~1970)
British soldier, Military historian, Military theorist
British military theorist and historian B. H. Liddell Hart declared that
Sherman was "the first modern general"
B. H. 리델 하트는 "셔먼 장군은 최초의 현대 장군이다"라고 선언
<그림 : 1864년 11월 15일, 미국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 당시 북군의 장군 Sherman이 아틀란타를 불태우는 모습>
Scorched Earth Policy(전쟁에서) 초토화 정책
: 전쟁에 있어 적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략이다.
초토화 작전의 유명한 사례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오시프 대행진 등이 있으며, 넓은 의미에서 청야전술도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신석기 시대의 전쟁.
이 스페인 동굴벽화가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인간에 대항하여 싸움을 한 역사는
신석기 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음을 증명한다.
'네 명의 병사'가 '세 명의 병사'를 향해
측면 공격을 하는 모습을 유의해서 보라.
이것은 아마도 전투에서
'포위 작전'에 관한 최초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보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전쟁이란 단순한 군대의 조직, 전략, 전술이 존재했느냐의 여부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전쟁을 정의하는 데는 우선 다음의 두 가지 기준이 필수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첫째는 전쟁이라는 행위에 참여하는 행위자(actor)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즉 싸움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다.
둘째는 전쟁이라고 불려질 수 있는 행위의 전개 과정 및 결과에 관한 기준이다. 즉 폭력의 규모가 어느 정도는 되어야 그것을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65~66
그런데 민족국가라고 말하기 어려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민족국가인 이스라엘이 벌이는 싸움은 전쟁인가 아닌가? 베트콩과 미군의 싸움은 전쟁이었는가?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히딘 반군과 소련군의 싸움은 전쟁이라고 불러야 했을까? '독립적 정치단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기에 야기되는 문제들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66
내란 內亂
명사 1. 나라 안에서 정권을 차지할 목적으로 벌어지는 큰 싸움
2. 일정한 조직 내부의 다툼
Civil War
내전(內戰)
Correlates of War (COW) project
전쟁 관련 변수 연구계획
J. David Singer (1925~2009)
American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Melvin Small (1939~)
Professor emeritus of history at Wayne State University in Detroit
귀납추론(歸納推論, induction) 또는 귀납법(歸納法)
관찰과 경험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수집한 자료에서 비롯된 성향, 관련성을 가지고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
이 자료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 두 교수와 연구진은 전투 현장에서 1,000명 이상이 전사한 사건들을 전쟁으로 분류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귀납적 과정을 거쳐 1,000명의 전투 사망자라는 기준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대단히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1,000명 미만이 전사했기 때문에 전쟁이라고 기록되지 못한 사건은 없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69~70
어떤 사람들은 세계의 인구가 늘어났는데도 계속 1,000명이라는 기준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문제 역시 수집된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1,000명이란 기준을 과거나 현재에 같이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해서 나오게 된 결과다. 전쟁에서의 인명 피해 규모는 인구의 전체 숫자와 별로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그래서 150년 전의 전쟁이나 오늘의 전쟁이나 모두 '1,000명의 전사자'라는 동일 기준을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70
Pioneer
(특정 지식 문화 부문의) 개척자, (거친 땅을 일구는) 개척자
과거에는 군사력을 동원하는 데 몇 달이 걸렸고, 또 전쟁터(戰場)까지 이동하는 데도 몇 달씩 걸렸는데 그처럼 군사력을 동원하고도 전투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사건의 정치적 비중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경우도 전쟁이라고 불러야 할 때가 있지 않겠는가?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70
군사력을 동원하고도 전투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도 전쟁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래서 퀸시 라이트[Quincy Wright, A Study of War (2nd ed. ; Chicago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5)] 교수는 비록 전투와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5만 명 이상의 병력이 전장에 배치된 사건을 전쟁으로 간주하고 있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70
Dan Smith (1951~0
Director of SIPRI (2015~)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The State of War and Peace Altas (1997) by Dan Smith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댄 스미스(Dan Smith)의 전쟁 자료집 『세계의 전쟁과 평화 지도』 1997년 판에 의하면 1993년 한 해 동안 세계 도처에서 57개의 전쟁이 발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 경우 어떤 사건을 전쟁으로 간주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57개의 전쟁을 찾아냈는지를 알 수가 없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71
댄 스미스의 자료도 역시 구체적으로 전쟁을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유명한 기준 즉 1,000명의 전투 전사자 기준에 따라 전쟁의 숫자를 세어보았을 것이다. 전쟁이란 당사자 중 한편이 국가인 정치집단 사이에서 야기된 무력 충돌로 전투 사망자 1,000명을 발생시킨 사건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겠다. 신문에 금년도에 전쟁이 몇 회 발발했다고 쓰여 있는 경우 대개 이 같은 전쟁 정의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자료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겠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71~72
전쟁과 평화 그리고 국제정치를 보는 관점
1. 이상주의 理想主義 (Utopianism, Idealism)
2. 현실주의 現實主義 (Realism, Real Politik)
Thomas More (1478~1535)
잉글랜드 왕국의 법률가, 저술가,
사상가, 정치가이자 기독교의 성인
Utopia (1516) by Thomas More
<암브로시우스 홀바인의 목판화가 실린 1518년판 《유토피아(utopia)》>
이상주의의 영어 표현으로 Utopianism이란 영어가 사용되는데 토마스 모아(Thomas More)의 책에서 따온 이름이다. 유토피아의 원래 뜻은 '세상에 없는 곳(Nowhere, No Place)'을 의미한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74
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28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美 제28대 대통령 (1913~1921)
13th President of the Princeton University
美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 (1902. 10. 25~1910. 10. 21)
(1890년~ 법률학과 정치경제학의 교수)
좋은 국제기구(윌슨 대통령이 제안했던 국제연맹)는 평화를 보장하는 수단이 되며 좋은 국제법, 좋은 외교 제도를 확립하면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만나서 악수하고, 회의하고, 평화 협정을 체결할 경우 전쟁은 회피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국가들을 도덕적일 수 있는 실체라고 믿는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74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 self-determination)
각 민족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그 귀속과 정치 조직, 운명을 결정하고 타 민족이나 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을 천명한 집단적 권리를 뜻한다.
전쟁과 평화 그리고 국제정치를 보는 관점
1. 理想主義 이상주의 (Utopianism, Idealism)
인간 세상에서 전쟁(戰爭)의 소멸과 영구 평화(永久 平和)는 가능하다
Kant
Spinoza
Rousseau
孟子
(Kant, Spinoza, Rousseau, 孟子 맹자)
국제법, 외교, 국제기구의 역할을 강조하며 인간성의 선함을 믿는다
현대 국제정치학에서는 Liberakism, 혹은 Institutionalism 등의 학파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두요 주장을 요약하면 :
모든 국가들이 민주주의가 된다면 세계의 평화는 가능하다
(Democratic Peace Theory)
모든 나라들이 자유 무역을 한다면 국제 평화는 가능하다
훌륭한 국제기구는 평화의 조건이다
전쟁은 무엇인가 잘못된 일이다
군비축소, 외교협상, 평화선언 등을 통해 평화는 가능하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전쟁하지 않는다"
Democratic Peace Theory
(민주적 평화론)
George W. Bush (1946~)
43rd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제43대 美 대통령 (2001. 1. 20~2009. 1. 20)
부전조약 不戰條約 켈로그-브리앙 조약
Treaty for the Renunciation of War Kellogg-Briand Pact
(or Pact of Paris, officially General Treaty for Renunciation of War as an Instrument of National Policy)
1928년 8월 27일 미국의 국방장관 프랭크 켈로그(Frank Billings Kellogg)와
프랑스 외무부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Aristide Briand)의 발기에 의하여
파리에서 15개 국이 체결한 전쟁 규탄 조약이다.
국제 협약으로, 서명국들은 전쟁을 사용하기 말 것을 약속했다.
Thomas Hobbes (1588~1679)
English philosopher
잉글랜드 왕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최초의 민주적 사회계약론자
The condition of man
··· is a condition of war of everyone against everyone
··· The life of man 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인간의 조건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는]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인하며, 짧다"
Leviathan (1651. 4)
Immanuel Kant (1724~1804)
German philosopher and
one of the central Enlightenment thinkers
독일의 철학자이자 계몽주의 중심의 사상가
Perpetual Peace
: A Philosophical Sketch (1795) 《영구 평화론》
"모든 나라가 공화국*(Republic)이 될 경우
국가들 사이에는 평화가 올 것이다"
* 현재 민주주의 국가
2. 現實主義 현실주의 (Realism, Real Politik)
국가들은 힘을 추구하고, 국가 이익에 의거해서 행동하지
도덕적 원칙에 의해서 행동하지 않는다.
E. H. Carr (Edward Hallett Carr, 1892~1982)
영국의 정치학자 · 역사가
What Is History? (1961) by E. H. Carr
역사란 무엇인가? (1966)
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 (1939)
20년의 위기
Reinhold Niebuhr (1892~1971)
개신교 신학자 · 기독교 윤리학자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1932)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유명한 저술
인간성의 선함을 믿지 않는다 (이익을 추구한다)
인간의 권력욕구는 본능적이다
국제사회는 무정부적 속성(anarchy)을 가지며 비도덕적(immoral) 속성을 가진다
국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생존(survival)에 급급하다
생존은 최고의 국가이익이며, 국제정치는 권력정치(Power Politics)다
국가들은 모두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을 추구한다
국가이익이란 : 국가의 생존, 경제발전, 권력확보, 자존심의 확보를 의미한다.
국가 이익 4가지
1. Security 2. Power 3. Prosperity 4. Prestige
현실주의는 ··· '현실적' 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를 보는 하나의 학설의 이름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1세대
Hans J. Morgenthau (1904~1980)
독일계 - 미국인 국제정치학자
Politics Among Nations by Hans Morgenthau
: The Struggle for Power and Peace (1948 초판)
국가간의 정치 (역) 이호재, 엄태암 (2014)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3세대
John J. Mearsheimer (1947~)
American political scientist and international relations scholar
국제정치학자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2001, 2014)
by John J. Mearsheimer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 미중 패권전쟁의 시대 (2017. 5. 31) (역) 이춘근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2세대
Kenneth N. Waltz (1924~2013)
American political scientist
국제정치학자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1979)
by Kenneth N. Waltz
국내정치이론 (2000) (역) 박건영
세가지 현실주의의 유사점과 차이점
고전적 현실주의 (제1세대 현실주의) Classical Realism
구조적 현실주의 (제2세대 현실주의) Structural Realism 혹은 Defensive Realism)
공격적 현실주의 (제3세대 현실주의) Offensive Realism
국가들이 왜 권력을 위해 경쟁을 벌이는가? What Causes States to Compete for Power?
국가 속에 내재한 권력을 향한 본능 때문에
국제체제의 구조 때문에
국제체제의 구조 때문에
국가들은 얼마나 많은 힘을 가지기 원하는가? How Much Power Do States Want?
가능한 최대한, 국가의 상대적 힘의 비중의 극대화, 패권장악이 궁극적 목표
현재보다 더 강한 국력, 이웃나라들과 균형을 이룩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
가능한 한 막강한 국력, 국력의 상대적 비중을 극대화, 패권국이 되는 것이 목표
대표적 학자
Hans J. Morgenthau
Kenneth N. Waltz
John J. Mearsheimer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80
Offensive Realism 공격적 현실주의
(제3세대 현실주의)
국가의 도덕과 개인의 도덕은 같을 수 없다. 그래서 현실주의 국제정치 학자들은 어떤 국가를 좋은 나라, 미운 나라 등으로 판단하는 대신 모든 나라는 생존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정치적 단위로 본다. 살아남는 것이 국가이익의 최선이며 국가들은 그 목적을 위해 분투한다고 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하며 힘을 기르기 위해 이웃 나라를 정복하기도 하고, 전쟁도 발발한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래서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과 힘(Power)인 것이다. 필자는 현실주의자이며 이 책은 당연히 현실주의적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집필된 책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잇는데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이론, 혹은 누구는 현실주의 국제정치 학자라고 말할 때 현실이라는 용어는 형용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 『전쟁과 국제정치』 (2020.5.30) by 이춘근 p. 77
Power Politics
다음의 인물들은 모두 자기 나라의 전쟁의 영웅들이다. 이들은 호전적인 사람들이었나?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1965)
나폴레옹(Napoleon, 1808~1873)
이들은 각각 역사상의 강대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의 힘을 이용,
자국의 국력과 자신의 영광을 추구했던 권력지향적 인물들이었다.
A. J. P. Tayler (1906~1990)
19세기와 20세기 유럽 외교를 전문으로 하는 영국 역사가
(사진 : December 16, 1984)
Mikhhail Gorbachev (1931~) Margaret Hilda Thatcher (1925~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