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기념관] 27
웃고
뛰놀자
그리고
하늘을 보며
생각하고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
1974. 9. 5
육영수
영원한 국모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는 1925년 11월 29일 충청북도 옥천에서 아버지 육종관陸鍾寬과 어머니 이경령李慶齡 사이의 차녀로 출생하였다.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를 나와 서울배화여고(16회)를 졸업한 후 옥천여자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6 · 25전쟁 기간 중인 1950년 12월 12일 당시 육군 중령이던 박정희와 대구에서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고, 영부인으로서 11년간 대통령을 내조하였다.
ㅇ여부인 시절 전국의 고아원, 양로원, 나환자촌을 방문하여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회관, 도서관 건립 등에 힘썼으며 불우이웃을 위한 바자회와 일선 장병들을 위해 손수 위문품을 만들어 보내기도 하였다.
하루 수십 통의 민원 서신에도 일일이 답장을 보내며 국민들과 늘 아픔을 함께하였다. 세 자녀에겐 언제나 성실, 노력, 최선을 강조하였고, 스스로에게는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 들은 얘기를 대통령에게 바로 전달하고, 청와대 살림을 중류 가정 정도로 하는 것을 철저하게 지켰다.
소녀시절부터 꽃을 좋아한 육영수 여사는 특히 흰 목련을 좋아하여
해마다 봄이면 목련꽃 아래서 사진을 즐겨찍곤 하였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불의의 흉탄을 맞고 6시간 대수술을 받았지만 49세를 일기로 끝내 서거하였다.
國威宣揚 국위선양
1966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께서 유양수 필리핀 대사에게 '국위선양' 친필 휘호 하사
나는 일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한다.
도시 건설도 내가 직접 살필 것이며,
농춘의 경지耕地 정리도 내가 직접 나가서 할 것이다.
산간의 조림造琳에도 내가 앞장설 것이며,
전천 후 농토 조성에도 내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어업전진기지나 공장건설에도 더욱 부지런히 찾아다녀
그 진도를 격려할 것이며, 기공 · 준공식에도 쉬지 않고 참석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자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착수하여 자립의 길을 단축시켜 나갈 것이다.
1967년 4월 15일
제6대 대통령 선거 방송연설
나는 물론 인간인 이상 나라를 다스리는 데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당대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일하지 않았고,
후세 사가史家들이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일해 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다른 나라 부럽지 않게
떳떳이 잘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난 일이 없다.
1977년 봄
기자와의 환담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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