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02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이한용, 2020

채륜서

 

시흥시중앙도서관

SA282790

정왕역스마트도서관

 

471.2

이92ㅇ

 

전곡선사박물관장이 알려주는 인류 진화의 34가지 흥미로운 비밀

 

"이거 그냥 짱돌 아니에요"

                                      "석기는 과학입니다."

 

"왜 쟤만 털이 없어요?"

                                     "쟤가 아니라 우리 조상님이에요."

 

"외계인이 지구에 남긴 표식입니다."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입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쏟아지는 질문에 구석기시대 유물의 과학성을 쉽고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선사박물관장이 있다. 고고학은 벽돌 하나만 밀면 새로운 세상이 나타나는 낭만이 아니라 하나의 증거라도 살뜰하게 채집하려는 집요함과 치밀함이라 말하면서도 인류 진화의 퍼즐을 맞추는 상상은 늘 짜릿하다며 웃는 고고학자다.

이 책은 그가 박물관장의 경험을 곁들여 인류 진화의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 설명부터 최신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즐겁고 유쾌하게 풀어냇다. 다양한 고고학 이야기로 70만 년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부 인류의 도구

▨ 동아시아 최초로 발견되어 세계구석기연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유물이 한국에 있다?

▨ 일본에서는 구석기연대를 7만 년에서 70만 년으로 뻥튀기한 날조사건이 있었다.

 

2부 인류의 기원

▨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명석한 두뇌가 아니라 튼튼한 두 다리다?

▨ 고고학 발굴현장에 호빗이 나타났다?

▨ 현생인류 중에도 전설의 난쟁이족이 있다?

 

3부 인류의 예술

▨ 물을 마시다가 사레에 들리는 것은 인류 진화의 부작용이다?

▨ 해시태그(#)의 기원은 7만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최초의 악기가 낸 소리는 애잔한 단조 음악이다?

 

지은이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으로 매년 한국에서 세계구석기심포지엄을 열고 주먹도끼를 직접 만들어 분석하는 실험연구를 한다. 고고학 유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며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에는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를 보내지만 직접 발로 뛰는 전문가로서 쓴소리를 할 때도 있다.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구석기고고학을 전공하였다. 1990년부터 전곡리발굴조사의 현장 실무를 맡았고 1993년부터 시작된 전곡리 구석기 축제의 기획과 운영에 초기부터 참여하였다.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연구원으로 전곡리유적의 학술연구에 힘썼다. 전곡선사박물관의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2008년 경기문화재단으로 자리를 옮겨 실무를 책임졌다. 2011년 박물관 개관 후부터 학예팀장의 역할을 맡아 2015년 4월부터 지금까지 전곡선사박물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8년에는 박물관 미술관 발전유공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30년째 전곡리 구석기 유적과 인연을 이어오며 ‘인류의 진화와 구석기문화의 이해를 통한 인류보편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전곡선사박물관의 설립 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실험고고학과 대중고고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고고학과 시민의 다리역할을 했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이 책을 썼다.

 

차례

 

1부 인류의 도구


석기는 과학입니다
흑요석 루트
아슐리안 in 전곡
주먹도끼의 비밀
석기 연대기
돌은 아름답다
족대의 추억
나는 바늘이로소이다
삼겹살은 내가 최고야
돌과 나무의 시대
무기여 잘 있거라
모닥불 피워놓고
구석기통신 난 오른손잡이야

2부 인류의 기원


사냥꾼? 사냥감?
두 발 걷기가 우리 몸에 남긴 변화
명석한 두뇌보다 튼튼한 두 다리
구워야 제맛
고기라도 먹자
알고 있나 루씨
왜 쟤만 털이 없나요?
오빠만 믿어
누가 네안데르탈인을 죽였는가?
호빗의 나라
왜 우리만 홀로 남게 되었을까?
화산재에 묻힌 진실
구석기통신 출생의 비밀

3부 인류의 예술


호모 뮤지시언시스
###의 시대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
91억 9,263만 1,770번
반인반수, 사자인간
동굴 속 미술관
구석기 비너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Music is Life
구석기시대 백남준
구석기통신 병 주고 약 주고

에필로그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는 일본의 고고학자로 독학으로 고고학을 배운 후 1972년부터 발굴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1981년 미야기현 자자라기(座散亂木) 유적에서 당시로서는 최고(最古)인 4만 수천년전의 석기를 발굴하고 이 후에도 그가 발굴하는 곳에서 항상 유물이 나와 '석기의 신' '신의 손'으로 불렸고 그가 발굴한 유적을 통해 일본의 인류역사가 7만-5만년 전에서 약 70만년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갔었다.

그러나 2000년 10월 그가 구석기 유적지에 석기를 파뭍는 모습이 몰래카메라에 포착돼 그 모습이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유적날조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후 일본 고고학협회는 2000년 11월 긴급위원회를 열고 후지무라 신이치를 협회의 명예를 손상한 이유로 제명했다. 그리고 유적 조작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2001년 5월 유적 재검증 조사단을 구성, 후지무라가 관여한 홋카이도(北海道)에서 간토(關東)지방에 이르는 180여 곳의 유적들의 진위여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그가 발굴한 총 180여곳의 유적 가운데 162개 구석기 전 · 중기 유적이 모두 날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일본의 인류 역사는 다시 비교적 확실한 유적이 존재하는 7만-5만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후지무라가 부이사장으로 있었던 일본의 도호쿠(東北) 구석기 문화 연구소는 후지무라가 관여한 74년 이후의 발굴 조사 내용을 재검증하고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내놓아 그가 발굴에 참여한 70년대부터 30여년간 유적을 날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일본의 중고교에서 후지무라씨가 발굴에 참여했던 미야기(宮城)현의 자자라기(座散亂木) 유적 등에 대한 기술이 삭제됐고 국가 사적 지정이 해제되었다. 또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관련 유적을 잇따라 등록 취소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후지무라 신이치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반월형석도

 

 

국적 > 시대 : 한국 > 청동기(靑銅器)
재질 : 석 > 화강암(花崗岩), 석 > 기타(其他)
크기 : 현재길이 6.4 너비 5.7 현재길이 7.8 너비 5.4
용도 · 기능 : 산업/생업 > 농업 > 수확탈곡 > 반월형석도(半月形石刀)
출토지 : 전라남도 고흥군
소장처 : 국립순천대학교 박물관
유물번호 : 순천대(순천대) 100043-000

<정의>

곡물의 이삭을 따기위해 사용된 반달처럼 생긴 돌칼. 반월형돌칼. 반달돌칼.

<발달과정/역사>

신석기시대 말기에 들어와 청동기시대에 다량 출토되고 있다. 반월형석도의 기원은 중국 앙소문화(仰韶文化)와 용산문화(龍山文化)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한반도에는 장방형석도로 대표되는 앙소계석도와 즐형(櫛形)을 기본으로 하는 용산계석도가 시기를 달리하여 파급되었다고 보고 있다. 반월형석도의 전파는 중국 화북농경문화의 유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처음에는 잡곡농사와 관련된 수확이고 벼농사와 본격적으로 결부된 것은 단주형석도와 삼각형석도가 성행한 시기 이후부터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수확구의 일종으로 반도 전역에 걸쳐 출토되고 있다. 주로 점판암계통의 석재를 이용하여 타원형이나 반월형 등의 편편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중앙부에 한두개의 구멍이 뚫려있다. 이 구멍 사이에 끈을 꿰어 끈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사용하였다. 반월형석도는 전체적인 형태와 인, 배부의 형태에 따라 구분되나 크게 장방형 및 삼각형석도가 있다. 장방형석도는 다른 형식의 석도와는 달리 양날이 지배적이고 구멍도 2개가 아니라 1인 경우가 많으며, 동북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삼각형석도는 두 개의 엇갈린 인부를 가진 점이 특징이고,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 남해안지역을 거쳐 일본 구주지방까지 분포하고 있다.

이 반월형석도는 2점 모두 편으로 정확한 형태는 파악할 수 없다. 두 점 모두 날은 한쪽방향으로 서 있으며, 구멍은 양방향에서 뚫었다. 구멍의 크기는 직경 0.6cm정도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반월형석도 (e뮤지엄)

 

마제석검

 

 

국적 > 시대 : 한국 > 청동기(靑銅器)
재질 : 석 > 기타(其他)
크기 : 길이 32.3 너비 5.4 두께 0.9
용도 · 기능 : 사회생활 > 의례생활 > 상장 >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출토지 ; 전라남도 여수시
소장처 : 국립순천대학교 박물관
유물번호 : 순천대(순천대) 100281-000

<정의>

갈아서 만든 돌칼.

<발달과정/역사>

마제석검은 주로 점판암이나 혈암으로 만든 검으로 찌르거나 베는 데 사용된 것으로 청동기시대 집터 및 분묘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 석검은 마제석촉, 반월형석도, 유구석부 등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유물이다. 한반도 지역이 그 중심 출토지역으로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비파형동검, 우리나라에서는 마제석검이 출토되고 있다. 석검은 오르도스식 동검, 요령식 동검, 또는 중국식 동검 등에서 복합적 힌트를 얻어 우선 실용검으로 출발하여 차츰 부장용의기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기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본 석검은 신분의 상징적인 기능과 칼의 기능, 장의적인 기능 등 용도에 따라 다양화되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석검은 버들잎모양의 검신 양 측면에 날이 세워져 있으며, 검신의 횡단면은 마름모꼴 또는 볼록렌즈형인 석기이다. 그 종류는 손잡이부분의 형태에 따라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손에 쥘수 있는 자루가 달린 유병식(有柄式)과 자루를 꽂을 수 있는 슴베가 붙은 유경식(有莖式)이 있다. 이는 다시 검신의 피홈, 자루의 단이나 마디, 슴베 끝의 홈과 같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세분되고 있다.

이 석검은 1호 지석묘 하부 동장벽 벽석 밖에서 봉부가 땅을 향하여 45도 정도 기운 상태에서 출토되었다. 완형의 일단병식 석검이다. 검신과 병부의 단이 뚜렷하다. 심부가 돌출되어 있고, 양 끝을 마연시켰으며, 병부와는 호를 그리며 연결되고 있다. 병두부 끝도 마연하였다. 심부의 폭은 8.8cm이고, 병두부의 폭은 10.1cm이다. 전체적으로 석결에 따라 무늬가 나타나 있다. 검신의 단면은 마름모형이고, 병부의 단면은 마름모꼴에 가까운 렌즈형이다. 이 석검은 남해안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유형으로 신부에 비해 심부나 병두부가 심하게 돌출되어 의기화된 석검으로 판단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마제석검 (e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주먹도끼

인류 진화의 비밀

 

주먹도끼(handaxe)는 구석기 시대의 많은 석기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인류 진화에 관해서 그 어느 석기보다도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하나의 석기로써 여러 가지 기능을 하도록 고안되어 있어, 주먹도끼는 마치 현대의 ‘맥가이버 칼’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거의 100만 년 이상 사용된, 구석기 시대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이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가?

 

주먹도끼의 제작자는 인류의 직계 조상인 곧선사람(Homo erectus)이다. 곧선사람 이전까지의 인류 조상들은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60만 년 전쯤에 출현한 곧선사람들은 불을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비로소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과 아시아로까지 삶의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곧선사람의 화석 출토 범위와 주먹도끼가 발견되는 지역의 범위는 대체로 일치한다. ‘곧선사람’이라는 학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완벽하게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자유로워진 그들의 두 손은 더욱 정교하게 진화되었고, 그로 인해 석기 제작 기술도 그 이전의 어떤 인류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났다. 주먹도끼는 이러한 인류의 진화를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도구인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주먹도끼 - 인류 진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국립중앙박물관, 김상태)

 

어떻게 만들었나?

 

연천 전곡리 출토 주먹도끼, 구석기시대, 길이 23.6cm

 

주먹도끼는 인간이 만들어 낸 최초의 규격화된 도구다. 대부분의 주먹도끼는 크든 작든 형태상으로 좌우와 앞 뒷면이 대칭을 이루며, 끝부분이 뾰족한 타원형이다. 주먹도끼의 이와 같은 형태적 정형성(定型性)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주먹도끼를 만들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석재의 선택 과정과 2단계의 제작 과정-성형과 잔손질-을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일한 모양의 석기를 반복적으로 복제해 내기 위해서는 만들고자 하는 대상을 미리 상정하고, 이를 머릿속에서 설계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즉 곧선사람은 앞일을 미리 계획하고, 계획에 따라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 수준이 발달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주먹도끼인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주먹도끼 - 인류 진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국립중앙박물관, 김상태)

 

주먹도끼는 단순히 도구인가?

 

주먹도끼의 모양은 균형 잡힌 대칭형이다. 주먹도끼의 제작에는 초보자로서는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난이도가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격지를 전면적으로 떼어내 납작하게 만들고, 가장자리를 따라 날카로운 날과 뾰족한 선단부를 형성하는데, 이는 강인한 느낌을 준다.

주먹도끼는 하나의 도구로 찢고, 자르고, 찍고, 땅을 파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고안되었다. 그러나 일부 주먹도끼는 기능 수행을 위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세련되고 정교하게 가공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거의 완벽하게 좌우대칭을 이루며, 마치 갈아낸 듯 고르게 정리되어 있는 주먹도끼는 도구라기보다는 흡사 한 점의 예술품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주먹도끼가 보여주는 평범한 도구 이상의 면모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주먹도끼의 제작에는 두 종류의 망치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먼저 1차 가공은 돌과 같은 단단한 망치로 전체적인 형태를 다듬고, 2차 가공으로 나무나 뼈와 같은 무른 망치로 정교하게 날 부분을 가공하는 것이다. 곧선사람들은 단단한 망치는 짧고 두터운 조각을, 무른 망치는 길고 얇은 조각을 떼어내는데 유효하다는 것을 경험적 지식으로 터득하였으며, 이러한 기초적인 역학적 지식을 석기 제작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주 금파리유적 출토 주먹도끼, 구석기시대, 길이 17.8cm

 

주먹도끼의 특질은 제작 기술보다는 그 완성된 형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크기가 다른 주먹도끼들이라 할지라도 길이/너비의 비율은 거의 일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선사람들이 기하학적 비율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정연하게 좌우를 대칭으로 만든 것과 길이/너비의 비율이 보여주는 일정한 기하학적 요소는 인간의 역사에서 최초로 확인되는 예술성의 맹아(萌芽)일뿐만 아니라, 유클리드 의 ‘기하학원론’에서 다루어진 기본 원리를 최초로 보여 준 예로 평가되기도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주먹도끼 - 인류 진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국립중앙박물관, 김상태)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주먹도끼는 우리나라의 거의 전 지역에서 발견된다. 다만 수량 면에서 중부지방에 주로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에 특히 연천 전곡리유적을 중심으로 한 임진 · 한탄강유역의 구석기유적에서 많이 발굴되고 있다.

주먹도끼의 석재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주로 규암이나 응회암, 화강암 등이 사용되었다. 이들 석재는 균질하지 못하여 정교한 가공이 쉽지 않고, 그로 인해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플린트(flint)로 만든 주먹도끼들에 비해 외형상 거칠고 투박한 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곧선사람들이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지질학적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성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적 조각품들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고대 그리이스의 섬세한 대리석제 조각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지만, 그것이 예술성의 수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다. 1940년대,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모비우스(H.L.Movius)는 동아시아지역에는 주먹도끼가 없으며, 그 대신 찍개가 중심을 이루는 석기문화를 갖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의 학설은 동아시아지역이 주먹도끼가 빈번히 발견되는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지역에 비해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열등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에서 상당량의 주먹도끼가 발견되었고, 중국에서도 최근 들어 많은 양의 주먹도끼가 출토됨으로써 모비우스의 학설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연천 전곡리유적 출토 주먹도끼, 구석기시대, 길이 16.9cm

 

임진 · 한탄강유역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주먹도끼 - 인류 진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국립중앙박물관, 김상태)

 

 

호모 에렉투스

[ 古人 , Homo erectus ]

호모 에렉투스 골격

 

인류 진화 상에서 호모 하빌리스호모 사피엔스의 중간 단계에 위치한 고인류 화석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구대륙에서 19세기 경부터 발견된다.

호모 에렉투스의 공식명칭은 쟈바원인의 발견 이후에 만들어졌다. 이들의 활동영역은 최근의 화석발견으로 인하여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약 150만년 전에는 아프리카, 유럽일대와 중국까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올두바이와 동부 투르카나 지역에서는 화석과 초기의 올도완 전통에서 직접 발전한 찍개중심의 석기군이 같이 발견되고 있으며, 약 150만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쟈바에서 발견된 일부 화석도 그 시기의 것으로 보이나 몇몇 화석은 약 70만년을 넘지 않는 중기 홍적세의 것이다. 단선진화론자인 브레이스는 이를 바탕으로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로부터 확산되어 동쪽으로는 빠르게, 북쪽과 서북쪽(유럽) 그리고 동북쪽(중국)으로는 서서히 확산되었을 것으로 본다.

1950~1960년대에 아프리카에서는 알제리의 터니파인, 올두바이 협곡의 Bed 2에서 호모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었다. 1970년대에 모로코의 살레, 동아프리카의 쿠비포라에서 완전한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에서 160만년 전의 것으로 알려진 KNM ER-3733 머리뼈 화석은 커다란 머리통과 가냘픈 머리선 및 옆니를 가지고 있지만, 전체모습은 중국 주구점(周口店)에서 출토된 화석과 유사하다.

영국과 프랑스의 연구자들은 화석의 연대 측정을 위해 전자스핀공명법과 열발광연대측정법이라 불리는 새로운 측정법을 적용하였다. 이 새로운 2가지 방법은 많은 암석에서 공통적인 특정 방사성동위원소의 붕괴에 토대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에서 발견된 호미니드 화석 중에 초기 플라이스토세인 160만년 전부터 중기 플라이스토세에 해당하는 화석의 분류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미니드는 시간의 선후에 따라 호모 에렉투스와 옛 호모 사피엔스로 구분하였으며, 유럽에서 발견된 중기 플라이스토세의 호미니드는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또는 옛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하였다. 아시아의 경우, 전기 · 중기 플라이스토세에 해당하는 호미니드의 진화상 위치 선정과 분류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화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에서 발견된 호미니드는 모두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경우 〈종의 단위〉에서 볼 때 생물학상 차이를 찾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인도네시아 학자들은 100만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자바에서는 시기에 따라 호모 에렉투스를 포함해서 여러 종류의 호미니드가 살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의 아프리카의 하다와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호미니드 화석의 연구에 따르면, 이른 시기의 호미니드 화석은 그 크기가 다양하며 성별에 의한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호미니드 화석은 모두가 단일종인 호모에렉투스로 분류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발견된 대표적인 화석으로는 자바인, 하이델베르그인, 북경원인,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의 Bed Ⅱ의 중간에서 발견된 두개골 OH9 · OH33, 올두바이 협곡 Bed Ⅳ, 케냐의 바링고(Baringo)호수, 모로코의 토마스 채석장(Thoman Quarry), 알제리의 테르니피네(Ternifine), 쾨니히스발트의 모죠케르토(Mojokerto) 어린이 등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인 독일 마우어(Mauer)와 헝가리 베르테스죌뢰스의 화석은 플라이스토세 중기 중엽 경으로 보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두뇌용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뇌용량보다 큰 평균 775~1,300㏄에 해당한다. 초기 호모 에렉투스의 두뇌용량은 남성은 대개 700~800㏄ 내외, 여성은 500~600㏄ 내외로서, 평균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비하여 약간 증가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플라이스토세 전기와 중기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을 비교할 때, 두뇌용량의 평균치는 843㏄에서 1,067㏄로 증가한다. 이는 현대 인간의 다양한 뇌용량의 하한선에 속한다. 한편 북경원인의 두뇌용량은 915~1,225㏄이고, 베르테스죌뢰스의 두뇌용량은 1,300㏄정도이다.

이 두뇌용량의 증가는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형태학적 능력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두뇌용량의 증가가 과연 두뇌실질부의 증가, 즉 두뇌능력의 증가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즉 신체규모가 커지면 두부도 커지게 되는 것이지 이것을 지능의 향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에 후두부의 하단과 전두엽 부위가 현저히 증가하는 것은, 신체상 어떤 변화보다도 두뇌용량의 증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이 부위의 발달은 감각과 균형기관의 관장 및 관찰 · 명령 · 분류작업의 관장능력의 발달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문화행위를 위한 복잡하고 복합적인 정신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해부학상으로는 현대 인간과 꼭 같지는 않지만 인류속 안에서는 현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이들은 존재하지 않으나 이들의 후손인 호모 사피엔스는 그들의 유전인자 안에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해부학상 특징은 호모 사피엔스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의 해부학상 특징 중 두개골 용량은 평균적으로 1,000㎖보다 적고 뇌를 에워싸며 낮은 외형이다. 초기 호모 에렉투스의 뇌는 그 선조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보다는 컸지만, 현생인류에 비하면 훨씬 작았다.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은 더 두꺼워졌고 이마부분은 작다. 턱은 조금 튀어나오고, 눈 위쪽에 두드러진 두덩이 있다. 앞이마는 낮고 평평하며 뒷머리에는 옹이점이 두텁게 발달해 있다. 위에서 볼 때 호모 에렉투스의 머리뼈는 넓적하며, 머리뼈 최대너비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 머리 위쪽에 최대너비가 있는데 비해, 호모에렉투스는 귓구멍 높이에 최대너비가 위치한다.

정수리뼈 또는 두개골의 벽은 다른 것에 비하여 얇다. 그 표면에 있는 주름무늬는 머리 근육 위쪽의 경계에 뒤를 향하여 아래쪽으로 굽은 모양이다. 두개골은 비교적 폭이 넓으며, 후두골의 뼈나 두개골 뒤의 구조는 날카롭게 구부러져 있다. 목 근육은 결부되어 있다. 이 근육결부 부분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호모 에렉투스가 광범위하다. 호모 에렉투스를 구별하는 다른 특징은 두개골의 아래쪽에서 명백히 관찰된다. 특히 아래턱 관절의 범위 안에서 그러하다. 낮은턱 그 자체는 깊고, 매우 튼튼하다. 그리고 턱언덕에 두드러진 발달이 부족하다.

이빨은 호모 하빌리스의 이빨만큼 크지는 않으나 호모 사피엔스의 것보다는 매우 크다. 투르카나 호수가에서 발견된 소년의 골격은 약 160만년 전의 초기 인류이며 해부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초기의 호모 에렉투스의 개체가 키가 크고 강건하며 억센 근육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사지뼈는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하며, 루시같은 A.아파렌시스나 호모 하빌리스처럼 팔이 길지 않다. 전체 몸 크기로 볼 때, 호모 에렉투스는 호모 하빌리스보다 크며 거의 현대인류와 비슷한 크기이다.

골반과 대퇴골의 상단부분은 현대인간의 형태와는 다소 다르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단계부터는 거의 완성된 직립보행의 특징이 나타난다.

성별차(性別差)로 인한 동종이형(同種異型)은 피테칸트로푸스군 단계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이전에 비해 크게 축소된다. 그것은 여성의 크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화석에서 뇌껍질과 사지의 긴뼈가 전보다 두꺼워지고, 관절부분은 보다 확장 · 강화되었으며, 근육이 붙어 있던 흔적이 자주 관찰된다. 따라서 보다 많은 힘을 사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안면 치아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것보다 다소 크지만, 피테칸트로푸스의 대구치는 오히려 현대인의 다양한 변이의 하한선에 해당될 정도로 줄어들며 턱도 작아진다. 이러한 변화는 바로 음식물 섭취의 과정에서 구강부가 받게 되는 스트레스 양의 감소, 즉 턱 및 치아 운동량의 현격한 감소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식물성보다는 씹기 쉬운 동물성 단백질을 더 섭취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로빈슨은 텔란트로푸스(Telanthropus)라 명명했던 스와트크란스 화석도 악골과 치아로 보아 이 범주에 넣고 있다. 이 화석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에렉투스의 과도기적인 형태를 보이는 최초의 증거였다.

이들은 주로 수렵생활을 하였으며 체계적으로 사냥을 하였다. 이러한 체계적인 사냥이 가능했던 것은 뇌용량의 증가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신체적인 변화, 뼈와 근육의 발달에서, 이들이 이전보다 더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동물을 사냥하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화석과 함께 발견되는 도구, 즉 잘 다듬어진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석기문화는 주먹도끼 전통의 아슐리안문화, 올도완문화 및 주구점(周口店) 유적을 중심한 자갈돌찍개 전통의 석기문화 등이다.

결국 호모 에렉투스의 단계에서는 도구제작의 본격화, 즉 석기의 다양화, 정제화, 그리고 석기 제작기술의 발달 양상이 보인다. 더불어 자연계에서 보다 능동적 주체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집단적 · 반복적 사냥이라는 새로운 생계기술로 가능하였다. 본격적인 야생동물의 사냥이라는 새로운 생계수단이 중요하게 되었음은 고고학 유적에서 발견되는 집단적 수렵행위와 관계되는 증거가 많아진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고고학적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 연구를 통해, 호모 에렉투스가 직접떼기와 간접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집단사냥의 확산은 언어의 발달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있다.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서 사냥에 나선 성원들 사이의 협동작업이 필요했으며 이를 위하여 원활한 의사소통이 요구되었다. 그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진정한 언어였는지는 논란이 되고 있으나 어떠한 형태이건 최소한 집단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기호언어(sign language)나 극히 간략한 소수의 어휘로 구성된 원시언어를 가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화석인류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주구점(周口店) 유적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헝가리, 남부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밝혀진 ‘불의 사용’이라는 것이다. 불을 직접 피울 줄 아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불의 사용은 음식조리, 도구제작, 활동시간 및 영역의 확대, 방어능력의 향상 등 그들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고, 그들의 체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그들의 체질적인 특징이나 경제활동으로 보아 인류진화단계에서 중요한 한 단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많은 학자들은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호모 속(屬)에 해당하는 인류형태의 조상으로 본다. 호모 에렉투스는 인골화석만으로도 전 세계적인 분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생활흔적, 즉 그들이 살면서 남겨놓은 고고학적 유물은 구대륙의 거의 전 지역에 확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의 증가와 점유지역의 확대에 따라 종내 집단의 수도 많아졌는데, 집단들이 시 · 공간적으로 서로 떨어져 호모 에렉투스 종내 집단 사이에는 유전자 표이와 선택으로 인하여 형질적 특징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유럽발견 호모 에렉투스와 중국발견 호모 에렉투스 사이에는 두개골과 안면부의 형태에서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적 형태의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각지의 에렉투스 집단의 기술수준과 적응양식은 기본적으로 동질적이었다고 추측된다. 집단사냥과 인구증가는 또한 이웃집단 사이에 상호 경쟁관계를 유발하였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에 따라 각 집단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적 범위(territoriality)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호모 에렉투스 [古人, Homo erectus] (고고학사전, 2001. 12.)

 

주먹도끼문화

[ 兩面核石器文化(양면핵석기문화) ]

 

요약 : 전기구석기인 아슐리안형(Acheulian形) 주먹도끼를 대표적인 특징유물로 하는 문화.

 

주먹도끼

 

주먹도끼는 전기구석기의 가장 특징적인 석기이다. 구석기인들은 처음에는 냇돌이나 돌덩이의 한쪽면을 때려 떼어서 날을 세운 찍개(chopper)와 양쪽면을 떼어서 날을 세운 찍개(chopping tool)를 썼지만, 이어서 손에 쥐기 좋도록 형태를 다듬은 주먹도끼로 발전시켰다. 주먹도끼는 전형적인 것과 비전형적인 것을 합하여 약 20종류가 있으며, 시대에 따라 각각 특징적인 것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형태로는 아베빌리안형(Abbevillian形) · 창끌형 · 타원형 · 행인형(杏仁形) · 넙치형 · 미코키안형(Micoquian形) 등이 있고, 석기 제작기술로는 아베빌리안과 아슐리안의 두 기(期)로 나뉜다. 이러한 주먹도끼는 짐승을 사냥하는 데는 물론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데 사용했고, 또한 땅을 파서 나무뿌리 등을 캐는 다목적용 석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H.모비우스 교수는 주먹도끼가 주로 사용되는 전기구석기시대를 주먹도끼 문화권과 자갈돌석기 문화권으로 구분하였다. 즉, 주먹도끼문화는 주로 아프리카 · 유럽 · 중근동 · 인도 · 자바 등 구대륙에서만 발견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와 중국 · 한국 · 일본 등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찍개로 대표되는 자갈돌석기문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8년 5월 경기 연천 전곡리(全谷里)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모비우스의 학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거로, 고인류의 문화적인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에 새로운 면을 제시하였고, 동아시아에서도 구석기공작에 대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중국도 주먹도끼의 형태가 일부 보이고 있으나, 주먹도끼문화의 범주에 들어갈 만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한국에서는 1979년부터 발굴이 시작된 연천 전곡리유적 제2지점의 지표 및 퇴적층에서 나온 석기가 주먹도끼(hand axe, biface) · 클리버 도끼 · 다각 원구(圓球)망치(Polyhedron) · 찍개 · 긁개 등으로 형태학적 · 통계학적 분석에 의해 유럽의 아슐리안 후기 석기문화를 크게 닮고 있어 동아시아에서는 최초의 확실한 손도끼 기술전통의 구석기문화로 주목받게 되었다. 전곡리 출토의 주먹도끼는 창끌형 · 행인형 · 타원형 · 넙치형 · 미코키안형 등 다양하고 전형적인 주먹도끼들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클라크 교수는 전곡리의 주먹도끼문화와 아프리카의 아슐리안 후기의 생고(Sango)문화 석기와의 유사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주먹도끼문화가 존속하던 시기는 지질학적으로 제4기(期) 지질시대인 홍적세와 충적세로, 약 50만년 전부터 10만년 전 사이이며, 아프리카에서는 이보다 훨씬 오래 전에 시작되어 약 100만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주먹도끼문화 [兩面核石器文化(양면핵석기문화)] (두산백과)

 

네안데르탈인

[ Neanderthal man ]

 

요약 : 사람속(homo genus)에 속하는 하나의 종으로 유럽과 아시아 서부에 살았다.

 

 

네안데르탈인의 매장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가진 최초의 네안데르탈인은 35만년 전 유럽에 나타났으며, 13만년 전에 이르러서 완전한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했다. 5만년 전 아시아에서 사라졌으며, 유럽에는 3만 3천년 내지 2만 4천년 전까지 살았다.

어원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이란 말은 1863년에 앵글로 아이리시(Anglo-Irish)의 해부학자 윌리엄 킹(William King)에 의해 명명되었다. 현재 네안데르탈인은 두가지 철자를 사용한다. 네안데르탈인이란 말은 독일의 네안데르(Neander)계곡에서 화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네안데르 뒤에 붙은 탈(thal)은 독일어로 계곡이란 뜻이다. 그 후 1901년에 독일어 ‘thal’ 은 ‘tal’로 철자가 바뀌어 독일어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을 ‘Neandertal’로 쓴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원래의 철자를 써서 ‘Neanderthal’로 표기한다.

발견

1856년 독일 네안데르계곡에서 발견된 화석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이 알려졌고, 그 후 그 전에 벨기에 엔기스(Engis)에서 1829년에, 지브롤터(Gibraltar)에서 1848년에 발견된 화석도 네안데르탈인으로 밝혀졌다. 네안데르계곡에서 발견된 화석은 네안데르탈인1(Neanderthal 1)으로 이름 불리며 두개골 상부, 두개의 대퇴부 뼈, 오른팔 뼈 3개, 왼팔 뼈 2개, 왼쪽 장골(ilium)의 일부, 어깨뼈 일부, 몇 개의 갈비뼈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발굴한 사람은 곰의 일부로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박물학자 플로트(Johann Karl Fuhlrott) 손에 들어갔고 그는 이것을 해부학자 샤프하우젠(Hermann Schaaffhausen)에게 보냈다. 이 발견은 1857에 발표되었다.

 

분류

오랜 기간 동안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을 사람속에 속하는 하나의 독립된 종으로 간주할지 아니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하는 아종(subspecies)으로 간주할지를 두고 토론해 왔다. 초기에는 별개의 종(種)으로 보고 ‘호모 네안데르탈엔시스(Homo neanderthalensis)’라는 학명으로 나타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亞種)인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sapiens neanderthalensis)’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졌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DNA(mitochondrial DNA)의 염기 서열을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서로 다른 종(種)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설도 생겨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우며 일부 인종들에게서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외양적 특징

네안데르탈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추위에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큰 머리, 짧지만 강인한 체격, 큰 코가 그것이다. 그들의 두뇌 크기는 현대인(modern humans)의 두뇌보다 크다고 추정된다. 네안데르탈인 남성의 키는 평균 1.65m이며, 여성은 1.53 내지 1.57m이다.

거주지역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독일 북부에서부터 남쪽의 이스라엘과 지중해 연안의 나라, 서쪽의 영국에서부터 동쪽의 우즈베키스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되지만 모든 곳, 같은 시기에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북쪽의 거주 경계는 날씨가 추울 때마다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추측되지만, 화석이 발견되는 지역이 북쪽 거주 경계를 정확히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중세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생각되는 것이 그 보다 더 북쪽인 북위 60° 지방까지 발견되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는 남부 시베리아까지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 및 도구

중기석기시대(Middle Paleolithic)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문화는 무스테리안 문화(Mousterian Culture)이며 네안데르탈인이 이끌었다. 무스테리안 문화의 석기 제작은 르발루아기법(Levallois technique)으로 대표된다. 또한 무스테린안 문화의 석기 제작은 하드해머보다는 소프트해머를 사용하여 제작됐다. 하드해머란 해머의 재질로 돌을 사용한 것을 말하고 소프트해머란 돌보다 덜 단단한 뼈나 나무, 동물의 뿔을 사용한 것을 말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쯤에는 무스테린안 문화보다 발전한 샤텔페로니안(Châtelperronian)시대를 열었다.

언어의 사용

네안데르탈인의 소리를 내는 기관에 대한 연구가 정확하지 않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1983년까지 복잡한 언어가 없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83년 이스라엘의 케바라동굴(Kebara Cave)에서 현대인의 것과 거의 같은 네안데르탈인의 설골(hyoid bone)이 발견되면서 네안데르탈인도 언어를 가졌을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설골은 혀의 근육조직과 후두를 연결해 주는 부분으로써 이 뼈의 존재는 네안데르탈인의 언어 사용이 해부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어를 가졌을 신경학적 가능성은 설하신경관(hypoglossal canal)의 형태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설하신경관은 현대인의 것과 비슷하거나 좀 더 크며, 오스트랄로피테신(australopithecine)과 침팬지 보다는 휠씬 크다. 설하신경관에는 혀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설하신경(hypoglossal nerve)이 있다. 이와 같은 점은 네안데르탈인의 목소리를 내는 능력은 현대인과 비슷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David DeGusta가 이끄는 University of California의 연구팀은 설하신경관의 크기와 목소리를 내는 능력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현존하는 많은 영장류와 오스트랄로피테신도 같거나 혹은 더 큰 설하신경관을 가졌음을 보여주었다.

네안데르탈인의 선조인 하이델베르크인(Homo heidelbergensis)의 외이와 중이의 형태로 미루어 볼 때 네안데르탈인의 소리에 대한 감각은 현대인과 비슷하고 침팬지와는 매우 다르다. 그들은 아마도 매우 여러 가지 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네안데르탈인 [Neanderthal man] (두산백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Australopithecus ]

 

요약 : 플라이오세에서 플라이스토세 초기에 걸쳐 존재하였던 최초의 화석인류로 1925년 R.A.다트가 남아프리카에서 출토한 유아두골(幼兒頭骨)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 africanus)라는 학명을 주었던 것이 속명의 시초이다. 주변의 식물을 채집하거나 육식동물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먹으면서 작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였다는 설이 정설인데 유인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다운 특징으로 도구 사용, 성에 따른 노동의 분담 등을 들 수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학명

Australopithecus

 

1925년 R.A.다트가 남아프리카에서 출토한 유아두골(幼兒頭骨)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 africanus)라는 학명을 주었던 것이 속명의 시초이다. 다트는 유인원화석인 줄 알고 이 이름을 붙였던 것이나 그후 수십 년을 지나는 동안에 이것을 화석인류인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는데, 학명은 그런 의미를 떠나서 최초의 명명을 존중하게 되어 있어 그대로 사용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가장 후대의 자료는 S.B.리키 부부가 동아프리카의 올두바이 협곡(Olduvai Gorge)에서 발견한 것으로서 진잔트로푸스보이세이(Zinjanthropus boisei)로 명명했다. 그후 별개의 인류화석 5체를 발굴하였는데, 호모하빌리스(Homo habilis : 능력있는 사람)라 명명하였고, 진잔트로푸스보다 진화한 것으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조상형이라 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일반적으로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로부스투스(A. robustus) 및 아프리카누스(A. africanus)의 3종으로 분류한다. 아파렌시스는 두개골의 구조상 현생인류보다는 이전의 유인원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두개골을 제외한 나머지 골격구조는 현생인류와 매우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어 직립보행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부스투스는 다른 종에 비해 두개골과 안면 형태 및 치아 구조가 거대하고 튼튼하다. 특히 먹이를 씹는 기능을 가진 어금니가 매우 크다는 점이 이 종의 특징인데, 극단적인 경우 그 크기는 현대인의 4배에 달한다. 큰 어금니에 비해 앞니와 송곳니는 작은 편으로 전체적인 치열 형태는 뒷부분이 크게 벌어진 포물선형을 이루고 있다.

아프리카누스는 아파렌시스와 로부스투스보다 현생인류와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누스는 로부스투스와 상당기간 공존하였지만 로부스투스보다 일찍 소멸하였는데, 이에 대하여는 아프리카누스의 일부가 사람속(屬)으로 일찍 진화하였기 때문이라는 가설과 이미 발생한 사람속과의 생존경쟁 속에서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소멸하였다는 가설이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주변의 식물을 채집하거나 육식동물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먹으면서 작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였다는 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이들은 유인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다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생활근거지의 확보, 성에 따른 노동의 분담, 의사소통의 수단, 친족관계 등의 문화적 요소를 지니고 생활하였으며,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점 등이다.

이들이 만들어 사용한 석기군을 흔히 올두바이 공작(Olduvai Industry)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석기는 자갈돌 끝을 간단히 가공한 석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기능적으로 전문화된 도구의 제작은 아직 뚜렷하지 않고 석기는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현생인류의 조상임에는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진화의 과정에 대하여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Australopithecus] (두산백과)

 

◇ 올도완(Oldowan) 석기


'올도완(Oldowan)석기'는 250만~170만년 전 초기 인류가 만들었던 돌도끼를 말한다. 올도완(Oldowan)은 최초의 석기가 발견된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딴 이름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브라질 상파울루대 공동연구팀은 10월 19일(현지 시각) "브라질 세하 다 카피바라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카푸친원숭이(꼬리감는원숭이)들이 돌과 돌을 부딪쳐 깨는 방식으로 뾰족한 석기(石器)를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원숭이가 만든 돌도끼는 '올도완 석기'와 흡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제공

 

연구팀은 카푸친원숭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던 중 여러 마리가 돌을 골라 깨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을 발견했다. 깨진 돌 111개를 모아 분석한 결과 이 중 절반 가량은 한쪽 면이 날카로운 형태로 초기 인류가 만들었던 올도완 석기와 흡사했다.

옥스퍼드대 토모스 프로핏 교수는 "원숭이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처음 돌도끼를 봤을 때 새로 발견된 올도완 석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은 돌을 깨는 원리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석영암이나 규암을 골라낸 다음 이를 바위에 대고 여러 차례 후려치는 방식으로 돌도끼를 만들었다. 인류의 조상들도 도구 제작에 석영암과 규암을 주로 이용했다. 허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진화 과정에서 뇌가 급격히 커진 인간만이 도구를 만든다는 확신이 깨진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처는 "이번 연구는 인류의 고고학적 기록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우선 지금까지 발굴된 초기 석기가 모두 인류가 만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 연구 성과 중 일부는 다시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재원 박사는 "사용처까지 확인된다면 고고학과 진화학계에 일대 혁명이 될 사건"이라며 "원숭이가 인간처럼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출처 : jobsN 블로그팀 잡스엔

 

 

호모 사피엔스

[ 新人 , Homo sapiens ]

 

호모 사피엔스 두개골

 

플라이스토세 중기 말엽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와 유사한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지만 몇몇 형질적 특징에서 현대인에 보다 가까이 접근한 고인류 화석이다. 이 새로운 종은 인도네시아, 중국, 아프리카, 유럽 등 구대륙 각지에서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였다. 이들이 등장한 최초의 시기는 40~25만년 전경이다. 즉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는 후기의 호모 에렉투스와 상당한 시간 동안 공존하였다.

이들 양 집단 사이에는 실상 화석의 형태나 문화내용에 있어서 그리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호모 속을 위의 두 종으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자의적이며 결과론적인 분류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경향을 계승하며 일정한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종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플라이스토세 중기 말의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에렉투스와 비교하여 두개골의 용량과 형태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는데, 안면부의 형태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치아의 구조는 호모 에렉투스와 유사하다. 아울러 사피엔스의 화석은 두개골 상단의 융기부(sagital keel)의 크기와 두개골의 두께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궁골의 융기정도는 호모 에렉투스에 비해 그리 줄어들지 않은 편이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과 치아의 특징은, 두뇌 각부 크기의 차별적 증가, 앞니 부위의 집중적 사용 및 어금니와 작은 어금니 부위의 중요성 감소라는 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사냥도구의 발달과 이 도구를 만들기 위한 기술적 발달 및 그 기술을 활용하여 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체 특정부위의 집중적 · 반복적 사용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미궁골과 비강부의 발달은 석기제작에 요구되는 근육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필연적 결과로 해석된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석기문화는 매우 세련되게 발전하며 다양해진다. 하지만 한가지 공통된 특징으로 묶자면 아슐리안 문화의 최후 단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도구는 점차 고정화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종류가 다양해지고 형태가 정제화 되어지며 기술형태학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표석기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발달된 사냥도구를 활용하여 그들이 처한 적절한 생태적 적소를 선택하여 발달된 사냥기술을 활용하였다. 예를 들어 영국 클락톤 유적에서 발견된 것처럼 과거의 사냥도구에 비하여 효율성이 높은 새로운 무기인 창을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대표적인 석기제작방법은 아슐리안 석기문화에 기원을 둔 르발루아 기법(Levallois technique)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인류가 석재를 선택하여 복잡한 박리과정을 체계적으로 밟아가며 르발루아 격지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곧 이들 집단 간의 기술적 전통을 밝혀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동일한 전통을 전승한다고 하는 것은 이들의 사고능력의 발달, 즉 인식체계의 조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문화진화를 가능하게 한 기초를 제공한다. 이것은 형질적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된다. 또한 주먹도끼로 대표되는 아슐리안 석기문화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석기문화 중에 하나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적은 아프리카와 유럽에 널리 확산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프랑스 니스의 테라 아마타(Tera Amata) 유적이다. 이 유적은 11개의 생활층이 정연하게 퇴적되어 있다. 각 문화층에 걸쳐 다수의 타원형 평면의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는 집의 골조를 세웠던 기둥구멍과 화덕자리가 있었으며 유물의 분포양상으로 볼 때, 도구를 제작하던 작업공간도 존재하였다. 도구는 주로 아슐리안석기문화의 것이며 창으로 쓰였을 첨두기 등도 발견되었다. 그밖에 페트랄로나(Petralona), 빌징스레벤(Bilzingsleben), 슈타인하임(Steinheim) 및 스완스콤(Swanscomb)의 호모 사피엔스 유적이 있다.

또 중요한 초기 사피엔스의 유적들 가운데 케냐의 올로게세일리에(Ologesailie)와 탄자니아의 이시밀라(Isimila) 유적은 인간행위가 전문화되고 분화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우선 서식처의 환경조건에 따라 뚜렷이 다른 석기군이 발견되는 점과 동일 생활면에서도 구석기시대인의 작업양식에 따라 상이한 종류의 도구가 각각 무리져 발견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같이 작업목적에 따라 도구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거나 그에 적당한 석기를 제작 사용하는 능력은 이미 이 시기에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이전 화석 단계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의 생계양식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서식처에서 얻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적응양식을 지닌 집단이었다. 약 30만년 전 플라이스토세 중기 말에 형성된 유적인 스페인의 토랄바 유적에서는, 인간집단이 불을 사용하여 매머드와 같은 큰 동물을 늪지에 몰아 사냥을 하고, 그곳에서 사체를 해체해서 생활 근거지로 되돌아오는 일련의 조직적인 행위방식을 추정할 수 있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예술행위나 상징행위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테라 아마타에서 발견된 안료덩어리는 아마도 신체를 장식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며, 페슈데라쥬(Pech de L’aze) 유적에서 발견된 석판조각을 통해 이들의 예술행위를 엿볼 수 있으며, 프랑스 라제레(Lazeret) 동굴 유적에서 그 얼굴 쪽이 동굴입구를 향하도록 늑대의 머리뼈를 1점씩 주거지의 출입구 부분에 배치한 행위는 상징행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격적인 언어의 구사와 예술행위가 시작되었을 높은 가능성, 구조물의 건축 및 고고학 자료에서 유추되는 고도로 조직화된 적응양식의 존재에서, 초기 사피엔스는 집단 내적으로 또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고도로 구조화·조직화된 양식의 사회적 행위를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들의 물질문화가 지닌 많은 특징은 그들의 사회조직이 아마도 많은 점에서 현대의 원시집단에 가까운 형태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들 사회에는 적어도 연령 혹은 개인적 능력에 따른 사회적 상하질서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호모 사피엔스 [新人, Homo sapiens] (고고학사전, 2001. 12.)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 Homo heidelbergensis ]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화석은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보고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분류되는 화석은 에티오피아의 보도(Bodo) 이외에 남아프리카의 엘란스폰테인(Elansfontein)과 허스동굴(cave of Hearths), 잠비아의 브로큰 힐(Broken Hill), 탄자니아의 누투(Ndutu)와 에야시(Eyasi), 케냐의 캅투린(Kapthurin), 에티오피아의 멜카쿤투레(Melkakuntre), 지부티의 와디 다가드레(Wadi Dagadle), 그리고 모로코의 케비바트(Kebibat)와 살레(Sale) 등에서 출토되었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분류된 호미니드의 화석은 유럽 전역에서도 출토되었다. 영국의 스완스콤(Swanscombe)과 폰트네위드(Pontnewydd), 그리고 프랑스의 몽마우린(Montmaurin), 아라고(Arago), 라자레(Lazaret), 쉐즈(La Chaise), 폰트쉐바드(Fonteche-vade), 비아쉬 쌩 바스트(Biache-Saint-Vasst), 스페인의 아타푸에르카(Atapuerica), 독일의 마우어(Mauer), 스타하임(Steinheim)과 빌징스레벤(Bilzingsleben), 헝가리의 베르테스죌레스(Vertesszollos), 그리고 그리스의 페트라로나(Petralona)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아시아에서 이른 시기의 호모 사피엔스(Early Homo sapiens)로 알려졌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범주에 속하는 화석은, 자바의 낭동(Ngandong=Solo)과 삼붕마찬(Sambungmachan)에서 보고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대리(大理), 허가요(許家窯), 마패(馬壩) 그리고 금우산(金牛山)에서 발견되었으며, 인도에서는 나르마다 계곡(Narmada Valley)에서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Homo heidelbergensis] (고고학사전, 2001. 12.)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나스

[ australopithecus africanus , アフリカオ-ストラロピテカス ]

 

아프리카에서 갱신세초기에 생존한 사람의 절멸종.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아프리카나스 [australopithecus africanus, アフリカオ-ストラロピテカス] (농업용어사전: 농촌진흥청)

 

호모하빌리스

 

요약 : 약 150만 년 전 홍적세에 살았던 인류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화석인류

 

외국어 표기

Homo habilis(영어)

호모하빌리스 | 출처: 시사상식사전

 

영국의 인류학자인 리키가 1964년에 동아프리카의 탕가니카에서 발견한 화석 인류로 약 150만 년 전 홍적세에 살았던 인류이다. 발견 당시 L.S.B. 리키, P. 터바이어스, J. 네이피어 등이 이 화석인류에 '손재주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 호모하빌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키는 약 130cm였으며 뇌용량은 약 600cc였다.
얼굴 각 부분의 비례는 표본마다 상당히 달라서 어떤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슷한 반면 어떤 것은 호모에렉투스와 비슷하다. 팔다리뼈를 보면 이들이 두 발로 능숙하게 걸어 다녔으며 정확한 손놀림으로 도구를 다룰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석과 함께 발견되는 조악한 도구를 통해서는 석기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현생인류의 진화 단계 | 출처: 시사상식사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호모하빌리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 Sahelanthropus Tchadensis ]

 

요약 : 중앙아프리카의 차드에서 600∼700만년 전의 지층을 통해 발견된 초기 인류화석.

 

2002년 프랑스의 고인류학 연구팀에 의해 두개골과 2개의 아래턱, 3개의 이빨 등 6점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학명은 '차드에 살았던 사헬이라는 인류'라는 뜻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이다. 투마이원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투마이란 차드어로 '삶의 희망'이라는 뜻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DNA를 이용한 연구로 인간은 침팬지와 유연관계에 있으며, 양자가 갈라진 것은 500만에서 600만년 전 사이인 것으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화석의 형태가 분명히 침팬지의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출현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 적어도 100만년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류학자들은 약 500만 년 전부터 최근까지의 인류의 진화과정을 이제까지 발견된 원인의 화석으로 추적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350만 년 전에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또 440만년 전에 출현하여 직립보행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아디피테쿠스 라미더스 등이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인류와 원숭이의 공동조상이 다양한 원인류(猿人類)로 갈라지기 시작한 700만년 전후의 인류화석은 이제까지는 발견된 것이 없었다. 따라서 700∼800만년 사이에 갈라진 원인류가 지금의 인류로 연결되어 온 것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했었다. 이번에 발견된 화석은 바로 700만년 전후,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조상에서 인류라는 종이 분기한 직후에 살았던 가장 오래 된 인류의 화석으로, 인류의 진화과정을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이밖에도 이번 화석의 발견으로 인류 발생지에 관한 학설도 재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발견된 인류 화석은 남오스트레일리아와 동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이번의 화석 발견은 700만년 전부터 중앙아프리카에도 고인류가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 [Sahelanthropus Tchadensis] (두산백과)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 Ardipithecus ramidus ]

 

요약 : 1992년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초기 유인원(類人猿) 화석의 학명으로써 라미두스 원인(猿人)이라는 뜻이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라미두스라고도 한다. 약 440만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화석은 두발걷기(bipedalism)로의 초기 진화 단계를 보여주고 있어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두발로 걸었다는 증거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인류의 출현과 진화

 

1992년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초기 유인원(類人猿) 화석의 학명으로써 라미두스 원인(猿人)이라는 뜻이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라미두스라고도 한다. 약 440만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화석은 두발걷기(bipedalism)로의 초기 진화 단계를 보여주고 있어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두발로 걸었다는 증거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1992년 12월 20일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통합생물학(Integrative Biology) 교수 화이트(White, Tim D,)는 에티오피아 아와쉬 강(Awash 江) 중류의 아라미스 유적지에서 오스트랄로피테신(australopithecines)과 다른 종류의 화석을 발견하였다. 이 화석은 1994년 화이트가 네이처지(誌)에 발표한 논문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에티오피아 아라미스로부터 초기 호미니드의 새로운 종 (Australopithecus ramidus, a New Species of Early Hominid from Aramis, Ethiopia)》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40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anamensis)와 같이 삼림지대에 살았지만 발견된 치아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작고 유인원의 치아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속명이 붙었다. 한편 1994년 도쿄대학 쓰와 겐(諏訪 元) 교수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발굴된 지역과 같은 곳에서 580만~520만년 전의 화석을 발견하였다.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의 아종(亞種)인 이 화석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카다바(Ardipithecu ramidus kadabba)라고 부른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Ardipithecus ramidus] (두산백과)

 

파란트로푸스

요약 : 플라이스토세(世) 전기에 주로 아프리카에 생존하고 있던 인류의 선조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일종이다. 최근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Australopithecus robustus)라고 부르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일종이다. 1938년 이후에 남아프리카의 크롬드라이, 스와르트크란스 등에서 발견되었다. 두개골이 크고 튼튼하며 어금니가 크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hecus africanus)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으나, 최근에 이것들이 속(屬)이 다를 정도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강해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Australopithecus robustus)라고 부르게 되었다.

1939년 자바에서 발견된 메간트로푸스 팔레오자바니쿠스(Meganthropus paleojavanicus)나 1955년 이후 동아프리카에서 출토된 진잔트로푸스보이세이(Zinjanthropus boisei)도 같은 종에 포함시키는 학자가 많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파란트로푸스 (두산백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요약 : 약 300만 년 전의 원시 인류로,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젊은 여성의 화석인 '루시'가 가장 유명하다.

 

학명

Australopithecus Afarensis

 

1974년 발견된 '루시' 화석(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약 300만 년 전의 원시 인류로, 지금까지 발견된 아파렌시스의 화석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루시(Lucy)이다. 루시라는 명칭은 발견 당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비틀즈의 노래가 흘러나와 붙여진 이름이다.

루시의 화석은 320만년 전에 살았던 25세의 여성으로, 키는 약 107cm · 몸무게는 28kg, 뼈가 변형된 것으로 보아 관절염을 앓았다는 점 등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루시의 무릎뼈는 인류가 두발걷기(직립보행)를 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면서, 인류의 기원을 320만 년 전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셀람

요약 : 330만년전 살았던 3살짜리 여자 아이의 화석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속한다.

 

원어명 : Selam

 

2000년 12월 10일 에티오피아 북동부 디키카(Dikika) 지역에서 발견된 인류 화석의 이름이다. 셀람은 에티오피아어로 평화라는 뜻으로 이 화석이 발견된 곳과 멀지 않은 지역에서 1974년 발견된 320만년전의 화석 루시(Lucy)와 같은 종으로 알려졌다.
이 화석을 발굴한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는 2006년 9월 20일 왼쪽 두개골 화석을 공개하고 2006년 9월 21일자 《네이처》에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5년 동안 셀람을 발굴하고 연구한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알렘세게드(Alemseged, Zeray,) 박사 연구팀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셀람이 루시보다 오래된 330만년전 화석이라고 밝혔다.

두개골과 몸통, 두 팔과 다리뼈 등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로 발견된 이 화석의 주인공인 3살배기 여자아이는 홍수로 떠내려가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며, 영장류와 인간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루시와 같이 직립보행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유인원처럼 긴 팔을 사용하여 나무를 타고 이동하였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침팬지의 것과 비슷한 설골(舌骨)이 발견되어 인두(咽頭)의 구조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셀람 (두산백과)

 

만달인

 

목차

  1. photo
  2. 2D Data
  3. 3D Data

등고선사진보기

 

2만 년 전 경에 지금의 북한 평양 근교 만달리(萬達里)에서 살았던 장년남자. 이 시대는 구석기 시대로서 그 동안 남한 지역에서도 공주의 석장리,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 등에서 구석기 유물은 발견되지만, 아직 인골은 발견된 적이 없었으나, 비록 적은 예이지만, 다행이 만달인 자료가 비교적 구체적이고, 또한 국제학회에서도 인정을 받는 인골이므로 이를 예전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 거주했던 사람으로 보고 복원해 본 것이다.

북한의 논문에 게재된 두개골의 사진과 칫수를 이용하여 복원두개골을 만들고, 이 복원두개골을 이용하여 복원상을 만든 것. 일견에 북미 인디언 닮은 인상을 풍기며, 현대인에 비하여 얼굴 길이가 짧은 대신 앞뒤로 길어 다부진 인상을 풍긴다. 우선, 두상을 보면 마루점이 높은 고구마두상이고, 이마가 뒤로 넘어져 있는 형이다. 이 두 가지 점은 현대 한국인의 특징과 도통하므로 이 만달인 같은 구석기인의 특징이 현대의 우리에게 어느 정도 계승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옆얼굴을 보면 뒤통수가 뾰족하고(미간에서 뒤통수까지의 직선 거리가 200mm에 달한다) 위쪽에 높게 붙어 있고 얼굴도 볼록형인데, 이런 두 가지 점은 현대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점이다.

현대 한국인은 뒤통수가 납작하고 또 뒤통수의 가장 돌출한 곳의 위치도 아래로 내려와 있다. 두개골의 눈구멍으로 보아 눈도 크지 않은데, 현대 한국인의 눈이 작은 것도 이런 용모인자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 때문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치아는 현대인처럼 윗니가 아랫니를 덮는 겸상교합이 아니고 아랫니와 윗니가 정확히 맞닿아 교합하므로 이가 마모되어 짧다. 측두골과 두정골의 만곡상태로 보아 왼쪽 어금니로 음식을 씹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 이렇게 왼쪽 저작형인 사람은 오른쪽 이마가 왼쪽보다 더 도드라져 있으며, 이 또한 한국인에게 많은 특징이다. 한편, 모발은 검은 색깔의 직모였을 가능성이 높고, 피부색은 검붉은 색으로 보는 편이 좋다. 입술 윤곽이 분명하지 않다.

참고할 자료: 등고선사진 및 정. 사. 측면 사진
전용가능: 한반도 전역, 무인

 

photo

두상사진

두상사진

두상사진

연령변화 좌측 - 청년 얼굴

연령변화 우측 - 노년 얼굴

 

2D Data

민두

민두

민두

착색두

착색두

착색두

모발부착

모발부착

모발부착

응용형

응용형

응용형

응용형

 

3D Data

scan

scan

scan

Model

Model

Model

map

map

map

Effect

Effect

Effect

Movie

Movie

Movie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만달인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인 얼굴 유형),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호모 에르가스터

[ Homo ergaster ]

 

투르카나 호수 동쪽 지역인 쿠비포라에서 출토된 화석으로, 호모 에렉투스의 대표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아시아 출토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어 호모 에르가스터(KNM ER-3733)로 분류되고 있다. ER-3733 화석은 여성으로 머리뼈의 이음새와 이빨의 마모 정도, 세 번째 어금니까지가 다 솟은 점으로 볼 때, 이 화석은 성숙한 어른의 머리뼈로 보인다. ER-3733 머리뼈는 낮은 머리통에 가운데 머리가 약간 솟아오르고 뒷머리뼈에 가로로 둥근 마디가 있으며 머리 최대너비가 머리 밑면에 위치한다.

두개골 용량은 850㏄로 중국의 주구점(周口店)에서 출토된 화석과 비슷하며 옆머리뼈 윤곽은 현생인류처럼 곡선이 아닌 곧게 내려온 모습이다. 이런 특징은 아시아 출토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에서 발견되는데,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하웰 등은 ER-3733을 호모 에렉투스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ER-3733 화석에서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출토된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특징도 관찰된다. 얇은 머리뼈나 각이 진 뒷머리, 그리고 눈두덩 뒤에 파인 부위 등은 아시아 출토 호모 에렉투스 화석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ER-3733 화석이 새로운 종인 호모 에르가스터로 재정립된 것이다.

호모 에르가스터에 속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화석으로는, 리차드 리키팀이 1984년에 투르카나 호수 서쪽의 나리오코톰에서 찾은 165만년 전 호모 에르가스터(WT-15000) 화석으로 나이는 대략 12살로 키는 160㎝정도이다. 뼈대의 특징을 근거로 남자아이임이 판명되었는데, 이 호미니드는 지금까지 발견된 이른 시기 호미니드 중 가장 완전하게 남은 화석이다. 몸의 모습과 사지뼈의 비율로 볼 때, 소년은 오늘날 아프리카 적도에 살고 있는 소년처럼 가는 몸매에 큰 키를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뼈는 거의 70개의 조각으로 부서졌는데 이빨을 제외하고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빨의 모습은 중국에서 출토된 호모 에렉투스의 이빨과 유사하다. 머리 최대너비는 머리밑쪽에 있으며 눈두덩 뒤에 파임이 있는데, 이런 특징은 호모 에렉투스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두개골 용량은 880㏄로 이 소년이 성장하였을 때의 두개골 용량은 990㏄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등뼈 솟기는 현생인류보다 더 길고, 신경굼이 좁기 때문에 목등뼈굼을 통과하는 신경의 수가 현생인류보다 적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좁은 굼 때문에 허파에서 입으로 보내지는 공기의 양이 줄어들어 화석의 주인공은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엉덩뼈가 좁기 때문에 현생인류보다 더 잘 걷고 잘 달렸을 것으로 보인다. 허벅지뼈의 목은 길고 오스트랄로피테신에서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렇듯 WT-15000 화석은 전체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현생인류와 같은 몸의 구조와 머리크기로 변해가고 있다.

호모 에르가스터(SK-847)의 화석은 남아프리카 스와르트크란스 동굴에서도 발견된다. 스와르트란스에서 호모가 살았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동굴에서는 석기와 불의 사용흔적이 발견되었고, 동굴에서 발견된 호미니드 화석의 95%가 강건해 보이는 오스트랄로피테신의 화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에서는 강건해 보이는 오스트랄로피테신이 연모를 만들고 불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스와르트크란스 동굴에서 발견된 석기와 불의 사용흔적은 이른 시기의 호모 에르가스터가 남긴 것으로 보여진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호모 에르가스터 [Homo ergaster] (고고학사전, 2001. 12.)

 

 

호모 루돌펜시스

요약 200만 년 전에 살았던 초기 원인(原人)

 

외국어 표기

Homo rudolfensis

 

호모 루돌펜시스 화석은 지난 1972년 리키 박사가 이끄는 쿠비포라연구단(KERP)이 케냐 루돌프 호수(현 투르카나호)에서 발견하였다. 당시 발견된 단 하나의 화석만으로는 이 화석이 별개의 인류종인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KNM-ER 1470' 등으로 불렸다. 이후 리키 박사팀은 2007∼2009년에 처음 화석을 발견한 곳과 멀지 않은 장소에서 약 178만∼195만 년 전 인류의 두개골과 턱뼈 2개 등 3개의 화석을 발견하였다. 리키 박사팀은 2012년 8월, 이 인간 화석을 분석한 결과, 직립원인인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종인 인류 화석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발굴지의 이름을 따서 호모 루돌펜시스란 이름이 붙였으며, 이를 뇌의 용량이 크고, 긴 형태의 넓적한 얼굴을 띠는 것이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번 연구는 현생인류가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에서 직립원인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곧바로 진화하였다는 기존 단선진화론을 뒤집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두 종 이상의 인류 조상이 동일 시기, 동일 지역에서 함께 존재하였다는 복수종이론을 지지하게 되었다. 실제 이번 연구 결과 현재의 케냐 지역에서 약 20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루돌펜시스, 그리고 호모 에르가스터 등 세 인류가 함께 살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편, 케냐의 쿠비 포라(Koobi Fora) 지역은 호모 루돌펜시스를 비롯해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등 다수의 고대 인류 화석이 발굴된 곳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호모루돌펜시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 Homo floresiensis ]

 

인도네시아 자바 섬 동쪽 적도 위의 섬인 플로레스 섬에서 2003년에 발견된 신종 인류 화석. 발견된 화석을 근거로 이들의 생활 연도를 추정한 결과 약 9만 5000년~1만 8000년 사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름은 발견지의 지명을 딴 것으로 ‘플로레스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키 약 1m, 뇌용량 약 380mL이다. 덩치가 작은 것은 식량과 자원이 부족한 곳에 적응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뇌용량이 침팬지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과거 자바 섬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에서 분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1만 8000년 전까지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했으리라 여겨지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Homo floresiensis] (과학용어사전, 2010. 4. 14., 뉴턴편집부, 현춘수)

 

 

필리핀에서 새로운 고인류 '호모 루조넨시스' 발견

 

요약 : 호주, 필리핀, 프랑스 연구진 등이 참여한 프로젝트팀은 필리핀에서 새로운 고인류 화석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 신종 인류에 '호모 루조넨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2019.04)

 

호주국립대의 필립 파이퍼 교수가 호모 루조넨시스의 뼈를 들고 있다. (Lannon Harley, ANU 제공)

 

필리핀에서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고인류 화석이 발견됐다. 화석을 연구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새로운 고인류에 '호모 루조넨시스'(Homo luzonensis)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이는 화석이 발견된 '루존 섬'의 이름에서 왔다.

국제연구진은 루존 섬의 칼라오 동굴(Callao Cave)에서 5만년 이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종의 인류 화석을 분석했다. 손가락뼈와 발가락뼈, 치아, 대퇴골 등이었는데, 이들은 최소 성인 두 명과 아이 한 명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뼈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보인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치아 크기가 매우 작다는 게 한 가지 사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필립 파이퍼 호주국립대(ANU) 교수는 "일반적으로 치아 크기는 포유류의 신체 크기를 반영하므로, 우리는 호모 루조넨시스가 상대적으로 작을 거라고 예상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아직은 얼마나 작을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몸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몇 가지 골격 요소를 더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뼈와 발뼈 끝은 굽어있어 나무를 타기에 좋은 특성을 보였다. 이는 200만년 이전에 아프리카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과 유사한 것이다.

파이퍼 교수는 "신종 인류가 섬에 살며 이런 특성을 얻은 건지, 아니면 조상으로부터 2백만년에 걸쳐 전해진 해부학적 특징인지가 의문으로 남는다"고 전했다.

또 호모 루조넨시스는 잘 알려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와 일부 골격 특성을 공유한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발견됐으며, 키가 겨우 1m 정도라 '호빗'으로도 불린다.

파이퍼 교수에 따르면 이번 발견은 동남아시아 전역의 인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돌파구를 제공한다.

프로젝트 팀에는 필리핀대,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프랑스 푸아티에대, 호주 그리피스대 등이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2019년 4월 10일자에 실렸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필리핀에서 새로운 고인류 '호모 루조넨시스' 발견 (유럽 주요 연구소)

 

 

데니소바인

[ Denisovan ]

 

데니소바인(Denisovan)은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Altai mountains)에 있는 데니소바 동굴(Denisova cave)에서 처음 발견된 고대 인류이다.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어금니와 새끼 손가락 마디 뼈에서 DNA를 추출하여 염기 서열을 분석한 결과, 현대 인류보다 네안데르탈인에 가깝지만 독립적인 고대 인류 계통으로 확인되었다. 현대인의 유전체와 비교한 결과, 호주와 파푸아 뉴기니 등 멜라네시아 원주민 유전체의 약 4-6%가 데니소바인에서 유래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즉 현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유라시아로 이동하면서 먼저 네안데르탈인과 혼혈을 이룬 후,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를 통해 이동한 현대 인류의 한 계통이 다시 데니소바인과 혼혈을 이루었다는 의미이다.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일부 뼈는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1세대 혼혈로 밝혀져, 인류의 이동과 진화 과정에서 다양한 혼혈이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목차

  1. 1.데니소바인의 발견과 분포
  2. 2.데니소바인과 현대인의 혼혈
  3. 3.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혼혈
  4. 4.관련용어
  5. 5.참고문헌

데니소바인의 발견과 분포

러시아의 남중부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에 있는 데니소바 동굴에서 고대 인류의 것으로 보이는 어금니, 손가락 마디 뼈, 다리 또는 팔 뼈 조각들이 1984 년부터 계속해서 발견되었다(그림 1).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 박사 연구팀은 어금니와 손가락 마디 뼈에서 DNA를 추출하여 고유전체학(Paleogenomics) 기법으로 분석하였다1). 고유전체학은 멸종한 고대 생물의 뼈와 사체에서 DNA를 추출하여 미토콘드리아와 핵의 유전체 서열을 분석하는 연구 분야이다. 어금니와 뼈의 유전체 서열을 분석한 결과, 현대 인류나 네안데르탈인과는 다른 새로운 계통의 고대 인류임이 밝혀졌고, 발견된 동굴의 이름을 따서 "데니소바인"으로 명명되었다. "데니소바 2", "데니소바 4", "데니소바 8"로 불리는 어금니들과, "데니소바 3"으로 불리는 손가락 마디 뼈, "데니소바 11"로 불리는 팔 또는 다리 뼈의 주인들은 약 3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티벳의 한 마을인 샤허(Xiahe)의 바이시야 카르스트 동굴(Baishiya karst cave)에서 1980 년에 발견되었던 턱뼈 조각의 단백질 서열을 분석한 결과 데니소바인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턱뼈의 주인은 약 16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데니소바인은 알타이 산맥, 티벳 고원, 인도차이나 반도 등까지 분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데니소바인은 현대 인류 계통보다는 네안데르탈인 계통에 가까우며, 네안데르탈인 계통과는 약 30만 년 전에, 현대 인류 계통과는 약 55만 년 전에 분지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1. 데니소바인의 분포와 시료. (A)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대략적인 활동 범위. 파랑색 화살표는 현대인의 이동 경로이며, 파랑색 원은 네안데르탈인과의 혼혈 사건을, 빨강색 원은 데니소바인과의 혼혈 사건을 의미한다. (B) 데니소바 동굴의 입구 모습. (C) 데니소바인의 어금니. (D) 데니소바인의 새끼손가락 뼈. (출처: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File:%D0%A2%D0%B0%D0%B8%D0%BD%D1%81%D1%82%D0%B2%D0%B5%D0%BD%D0%BD%D0%B0%D1%8F_%D0%BF%D0%B5%D1%89%D0%B5%D1%80%D0%B0.jpg, https://en.wikipedia.org/wiki/File:Denisova_Molar.jpg, https://en.wikipedia.org/wiki/File:Denisova_Phalanx_distalis.jpg)

 

데니소바인과 현대인의 혼혈

데니소바인과 현대인의 유전체 서열을 비교해 보면, 현대인 중에서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등 태평양에 거주하는 멜라네시아인들의 유전체의 약 4-6%는 데니소바인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1). 멜라네시아인을 제외한 다른 현대인에게서는 데니소바인 서열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현대 인류의 이동 중에 멜라네시아인 계통 조상들만이 제한적으로 데니소바인과 혼혈을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

아프리카에서 빠져나온 현대 인류의 조상들은 먼저 중동 지방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혼혈을 이루었다. 유럽과 아시아로 갈라져 이동하던 한 집단이 이동 경로에 살던 데니소바인과 혼혈을 이루고, 계속해서 이동하여 멜라네시아에 정착한 것으로 생각된다.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혼혈

"데니소바 11"로 불리는 팔 또는 다리 뼈의 조각에서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뼈의 주인은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혼혈 1세대인 것으로 밝혀졌다(그림 2). "데니소바 11"의 주인은 약 9만 년 전에 살았던 13세 정도의 소녀이며 "데니(Denny)"라는 애칭이 주어졌다. 유전체의 반은 데니소바인과, 나머지 반은 네안데르탈인과 유사하였다. 미토콘드리아 서열이 네안데르탈인의 것이어서, 아버지는 데니소바인, 어머니는 네안데르탈인으로 추정되었다. 데니소바 동굴이 있는 지역은 네안데르탈인의 뼈도 발견되기 때문에,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거주지가 겹쳐, 혼혈이 쉽게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데니소바인의 유전체에서는 미지의 고대 인류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서열을 가지고 있다. 많은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 오래 전에 살았던 현대 인류의 유전체 서열들을 서로 비교 분석한 결과, 인류의 이동과 진화 과정에서 여러 인류 계통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혼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림 2. "데니"의 뼈 조각과 인류의 혼혈. (A) "데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데니소바 11"의 뼈조각 (B) 현대인,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알려지지 않은 인류 계통 사이에는 종종 혼혈(점선)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출처: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위키피디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데니소바인 [Denisovan] (분자·세포생물학백과)

 

 

호모 에르가스테르

 

 

학명 호모 에르가스테르 Homo ergasther

 

호모 에르가스테르(Homo ergasther)는 동부 아프리카와 남부 아프리카에서 약 180만년 전~120만년 전의 제3기 플라이스토세 전기에 생존했던 사람속의 고인류이다. 1972년 영국의 인류학자 리처드 리키가 케냐의 루돌프 호수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초창기에는 호모 에렉투스의 아프리카 인종으로 여겨졌으나, 아프리카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된 종 중 초기의 종에서 다소 아시아 호모 에렉투스와는 두개골과 골격에서 다소 다른 점이 발견되어 초기의 종은 별도로 호모 에르가스터로 분류하였다. 현재까지 발견된 기록상 아프리카 밖으로 처음 이주한 인류로 추정되나 이론의 여지는 있다.

개요

 

호모 에르가스테르 복원상

 

1972년 리처드 리키케냐의 루돌프 호수(현 투르카나 호수)에서 발견한 화석들 중 투르카나 소년으로 알려진 남성 소년의 전신골격이 대표적인 화석이다. 13~18세 가량으로 추정되는 남성 소년의 화석은 발 부분을 제외한 전신 골격이 보존되어 있었으며, 이미 당시에 현생인류와 비슷한 키와 체형, 직립보행에 적합한 구조를 지녔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밖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테르크폰테인 동굴에서 발견된 텔란트로푸스 화석 중 초기의 화석은 호모 에르가스터로 잠정 분류된다. 여전히 다소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는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보다는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후기 호미니드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사피엔스 등의 직접적인 조상으로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즉, 이 종은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 계통에 해당한다고 평가받고 있다.

 

초기에 이들 화석은 호모 에렉투스의 아프리카 인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와의 두개골 형태나 체형의 차이점을 발견한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된 화석들 중의 일부를 1985년 호모 에르가스테르로 재분류하였다. 아틀란트로푸스나 아프리칸트로푸스 등 몇몇 화석을 제외하고는 호모 에르가스테르로 판명되었다.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가장 초기 사람속의 일종이며, 호모 에렉투스와는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호모 에렉투스의 선조로 보나, 호모 에렉투스와는 수만년간 공존한 것으로 여겨진다.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호모 하빌리스의 계통과 약 190만년전에서 180만년 전에 분기된 것으로 생각된다. 호모 에르가스터로 추정되는 화석이 조지아의 드마니시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화석은 호모 게오르기쿠스라는 다른 종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호모 하빌리스보다 더욱 진보된 석기를 사용하였으며 아슐 문화기에 살았고, 목소리를 통해 의사소통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조지아의 화석은 호모 하빌리스의 석기와 유사한 형태의 석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호모 에르가스테르의 키는 대략 6피트에서 6피트 2인치(180~189cm) 정도로 추정되며, 초기 호모 에르가스테르의 뇌용적은 700-900cm³, 후기 호모 에르가스테르의 뇌용적은 900-1100cm³이다.

출처 : 위키백과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여행본능

 

2008년 9월 늦은 밤 도착한 조지아(당시는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 러시아와 짧지만 격렬한 전쟁을 막 끝낸 트빌리시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군데군데 남아 있는 폭격의 흔적은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트빌리시까지 날아간 이유는 유명한 드마니시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드마니시인은 조지아의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으로 아프리카 바깥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인류로 알려져서 소위 말하는 첫 번째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때 아프리카를 벗어난 고인류로 여겨진다.

 

▲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조지아 국립박물관장 로드 키파니드제의 손에서 건네받은 드마시니인의 두개골은 180만년 전의 고인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보존 상태가 좋았다. 다음날 화석이 발견된 현장을 방문해 보니 화산 폭발 후 화산재에 묻히고 용암이 그 위를 다시 덮어 마치 석고붕대를 감아 놓은 것처럼 남게 되면서 오랜 세월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마니시인은 학자에 따라 호모에렉투스, 호모에르가스터로 부르다가 요즘은 호모지오지쿠스로 분류하기도 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대한 설명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 주는 방증이다.

오늘날 인류는 거의 전 지구에 넓게 퍼져 살고 있으며 약 70억명 달하는 엄청난 개체 수를 자랑하는 가장 성공한(?) 대형 유인원이다. 인류가 언제? 어떻게? 왜?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지구로 퍼져 나갔는지는 인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 중 하나다.
최초로 아프리카를 벗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고인류 호모에르가스터는 골격이 호리호리하고 키도 크다. 전곡선사박물관에 복원돼 있는 호모에르가스터는 털이 없이 매끈한 몸매를 자랑한다. 뜨거운 열기를 견뎌 내며 먼 길을 걷고 또 걸어 아프리카를 벗어나려면 이런 날렵한 신체 구조와 지구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도 오랫동안 달리는 지구력은 인류가 가진 가장 두려운 무기였다. 더위에 지친 짐승을 쫓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구멍을 한껏 열어 굵은 땀을 쏟아 내던 고인류의 질주 본능은 마라톤의 한계적 고통을 즐기는 현대인의 유전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구력으로 무장한 고인류는 한군데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저 산 너머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 또 다른 미지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 두근두근 호기심으로 그들은 그렇게 걷고 또 뛰었다. 그리고 이들의 후예들은 마침내 지구의 끝까지 가게 됐다. 먼 길을 떠났던 모험가 호모에르가스터의 유전자는 버킷리스트에서 항상 압도적 1위로 여행을 꼽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행에서 돌아와 짐을 풀면서 다시 떠나는 날을 꿈꾼다. 가히 여행 본능이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기차 타고 유럽 여행 가는 것을 희망 사항으로 손꼽는 사람들이 많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 출정할 때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떠나서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한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로’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서울역 터미널에서 ‘여행을 떠나요’를 떼창하며 유럽행 기차에 올라타 보는 상상을 해 본다.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했던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여행 본능을 되살려 이번 주말 어디든지 떠나 보자. 열심히 일한 우리는 떠날 자격이 있다. 그곳에서 또 새로운 희망을 품어 보자.

출처 : 서울신문 2018-05-26 22면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호모 뮤지시언시스

 

음악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한다. 차분한 노래를 들으면 생각을 하게 되고, 흥겨운 노래를 들으면 춤을 추게 된다. 음악은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감성적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음악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인데 이런 정서적 유대감은 인류가 사회적인 동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간에게 음악은 무엇인가? 왜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즐기는가? 음악은 생물학적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다움을 보여 주는 인류 진화의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말하는 능력, 즉 언어는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우리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다. 그래서 언어의 기원은 음악의 기원과도 연결된다. 노래를 부르려면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고 도구를 만드는 인간이 바로 노래하고 음악 하는 인간인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정교한 정보 교환을 위한 소리의 다양화는 생존능력 향상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생사와 관련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자기들만의 언어로 공유하는 집단이 바로 공동체다. 정확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톤이 다른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높낮이가 다른 소리를 내는 능력을 보다 정교화하는 과정은 인간의 언어가 발달하는 과정과 다름없다. 높낮이가 다르고 길이가 다른 소리, 그게 바로 노래다. 초기의 언어는 마치 합창의 허밍과도 같은 ‘흠흠흠’ 하는 소리에서 출발했다는 스티브 미슨의 주장은 그래서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정교한 의사소통은 사냥꾼 인간에게는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사납게 날뛰는 매머드를 향해 무작정 소리를 지르고 창을 던지며 무모하게 달려드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이보다는 사냥에 참여하는 구성원들 간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 어떻게 사냥감을 제압할 것인지를 서로 간의 충분하고도 효율적인 언어로 대화하며 협동하는 것이 사냥의 성공률을 높이는 기술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정교한 언어로 충분하고 정확하게 대화하는 능력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요한 능력이었다.

인간의 진화는 우리의 DNA가 세대를 거듭해 내려가면서 새로운 생명체로 재탄생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음악도 항상 새로워진다. 배우지 않아도 새로운 세대에는 새로운 음악이 이어지는 것이다. BTS의 노래가 전 지구에 울려 퍼지는 것도 새로운 음악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현대 인간은 행복해지려고, 그리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호모 뮤지시언시스다. DNA가 서로 연결되고 복합돼 새로운 진화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듯이 변화하는 음악도 진화가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인 것이다.

 

소통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흠흠흠’ 부드러운 허밍으로 노래하듯 대화하는 호모 뮤지시언시스로 가득한 여의도를 상상해 본다.

출처 : 서울신문 2019-05-29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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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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