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기념관] 12

 

 

 

 

수출지원정책

 

우리나라 수출은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경제를 고도성장시킨 주요 원동력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정권 초 "불타고 도둑맞은 폐가를 인수한 것 같다"라고 말하며 나라를 꾸려갈 자본도, 자원도, 기술도, 인재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서 '수출만이 살길'임을 확신하고 국력을 집중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출증진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여 경제발전을 위한 수출지원정책들을 수립 및 실현해 나갔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1962년부터 대통령 주관하에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수출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풀고, 금융 및 세제 혜택과 수출 우수기업들을 우대하는 등 수출지원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 결과 1964년 11월 30일 드디어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정부는 매년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정하였다.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1964. 11. 30

 

수출진흥확대회의 녹취록

 

TIME : 3' 15"

 

 

··· 중략 ···

정부가 하는 일에 노파심으로 이런 것도 조심해야 된다. 이런데도 차관을 해야 된다. 이런 것도 좀 더 잘해야 된다, 하는 이런 충고같은 것은 좋지만은 전부 폐쇄적으로 안 된다 안 된다 소리···

지금부터 정부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되겠냐···

상공부 브리핑도 여러 가지 치밀한 금년도 계획에 대한 좋은 계획을 했습니다만, 전부 진일보해서 지금하고 있는 일에서 더욱 더 일보 앞으로 쑥쑥 나갈 수 있는 속력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뭔가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고 업계에서도 좀 더 그런데에 대해서 좀 더 노력을 많이 하시고, 물론 정부가 지원할 것은 하되 업계가 할 것은 연계가 좀 더 그야말로 소성(작은 성과)에 만족한다고 그러죠. 요정도 되었으니깐 됐다는 사고방식 가지고는 발전이 안됩니다. 남이 못한 걸 우리가 노력을 해서 뚫고 들어가는 그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개척적인 정신이 있어야지 솔직히 우리 국내에 일부 우리 경제를 아는 사람들이 말하기로 우리나라 10억불 한 것도 무리했고, 무리한 걸 억지로 했고, 밑바닥에 있는 먼지까지 다 쓸어다 팔고··· 밑바닥에 아무 것도 팔아먹을 게 없다고 하니···

이런 상식에 벗어난 소리를 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정반대로 본 겁니다.

지금까지는 무리했지만 10억불이라는 수출이 나갈 때까지 우리나라 산업에 어느 정도의 기반이 되었다고,

이제부터 쑥쑥 이제 살아나는 바탕이 되어 있지 않냐, 한국의 수출은 지금부터다. 이겁니다.

                                                                                                          1971년

                                                                                   수출진흥확대회의 중에서

 

증산   수출   건설

 

구로공단

 

1960년대와 1970년대 우리나라 경공업의 대명사였던 '구로공단'은 수많은 농촌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안고 모여든 곳이었다. 밤낮없이 땀흘려 일하던 그들은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수출산업의 역군이었다. 1967년 4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은 구로동 수출산업공업단지 준공식 축사에서 "허허벌판을 불도저로 밀어붙인다고 수출공장이 되겠냐며 의심한 사람도 많았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다. 정부는 이 단지를 25개 공장이 더 들어설 수 있도록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단에 입주한 업체 중 최초로 동남전기가 139,893달러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TV 수상기를 일본으로 수출하였다. 우리나라는 1971년에 수출 10억달러를 달성하고 1977년에는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게 되었는데 이 중 구로공단에서만 11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하는 등 구로공단은 우리나라 수출의 전진기지였다. 이후 정부는 첨단산업을 주도하는 도시형 산업단지로의 전환을 위해 2000년 9월 구로공단이라는 명칭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꾸고, 첨단IT업종의 산업단지로 탈바꿈하였다.

 

수출산업공단 건설현황

 

구로산업단지

  1단지 2단지 3단지
착공연도 1965 1967 1970
완공일 1967.4 1968.6 1973.11

소재지 : 서울시 구로구

 

부평산업단지

4단지 착공연도 1965
완공일 1969.10

소재지 : 인천 계양구

 

주안산업단지

  5단지 6단지
착공연도 1969 1973
완공일 1973.7 1974.11

소재지 : 인천 서구 · 남구

 

수출산업공업단지 준공을 기념하여 휘호를 쓰는 박정희 대통령 1967. 4. 1(위 왼쪽)

수출산업공업단지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1967. 4. 1(위 오른쪽)

구로공단 가발공장 1972(아래 왼쪽)

구로공단 크라운 전자 공장 1972(아래 오른쪽)

 

수출산업공업단지

 

1960년대 우리나라는 수출산업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자본 특히 재일교포들의 투자를 유치하여 국가 산업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먼저 행정적 뒷받침과 수출상품을 생산할 산업단지 조성이 시급하였다. 이에 정부는 1963년 3월 '수출산업촉진위원회'를 발족하고 1964년 6월 14일에는 '수출산업공업단지 개발조성법'을 제정하여 한국수출산업공단을 설립하였다. 수출전진기지로써 첫 산업단지는 구로구에 조성되었다. 총면적 14만 평 규모로 1965년 3월에 착공하여 1967년 4월에 완공하였다. 당시 입주실적은 1967년까지 재일교포 기업이 22개 업체, 국내기업이 18개 업체였다. 이후 한국수출공업단지는 개발과 확장을 거듭하여 제2단지(총면적 약 10만 평)와 제3단지(총면적 30만 평)가 추가로 지정되었고 인천의 부평과 주안에 제4, 5, 6단지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 계속

 

 

www.youtube.com/watch?v=-Vcd5UXJo_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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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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