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기념관] 27

 

 

 

웃고

뛰놀자

그리고

하늘을 보며

생각하고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

 

1974. 9. 5

  육영수

 

영원한 국모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는 1925년 11월 29일 충청북도 옥천에서 아버지 육종관陸鍾寬과 어머니 이경령李慶齡 사이의 차녀로 출생하였다.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를 나와 서울배화여고(16회)를 졸업한 후 옥천여자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6 · 25전쟁 기간 중인 1950년 12월 12일 당시 육군 중령이던 박정희와 대구에서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고, 영부인으로서 11년간 대통령을 내조하였다.

 

ㅇ여부인 시절 전국의 고아원, 양로원, 나환자촌을 방문하여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회관, 도서관 건립 등에 힘썼으며 불우이웃을 위한 바자회와 일선 장병들을 위해 손수 위문품을 만들어 보내기도 하였다.

하루 수십 통의 민원 서신에도 일일이 답장을 보내며 국민들과 늘 아픔을 함께하였다. 세 자녀에겐 언제나 성실, 노력, 최선을 강조하였고, 스스로에게는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 들은 얘기를 대통령에게 바로 전달하고, 청와대 살림을 중류 가정 정도로 하는 것을 철저하게 지켰다.

소녀시절부터 꽃을 좋아한 육영수 여사는 특히 흰 목련을 좋아하여

해마다 봄이면 목련꽃 아래서 사진을 즐겨찍곤 하였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불의의 흉탄을 맞고 6시간 대수술을 받았지만 49세를 일기로 끝내 서거하였다.

 

國威宣揚 국위선양

1966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께서 유양수 필리핀 대사에게 '국위선양' 친필 휘호 하사

 

나는 일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한다.

도시 건설도 내가 직접 살필 것이며,

농춘의 경지耕地 정리도 내가 직접 나가서 할 것이다.

산간의 조림造琳에도 내가 앞장설 것이며,

전천 후 농토 조성에도 내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어업전진기지나 공장건설에도 더욱 부지런히 찾아다녀

그 진도를 격려할 것이며, 기공 · 준공식에도 쉬지 않고 참석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자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착수하여 자립의 길을 단축시켜 나갈 것이다.

 

1967년 4월 15일

제6대 대통령 선거 방송연설

 

나는 물론 인간인 이상 나라를 다스리는 데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당대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일하지 않았고,

후세 사가史家들이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일해 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다른 나라 부럽지 않게

떳떳이 잘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난 일이 없다.

 

1977년 봄

기자와의 환담

 

 

 

 

 

- 계속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8 完  (1) 2021.03.1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6  (0) 2021.03.1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5  (0) 2021.03.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4  (0) 2021.03.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3  (0) 2021.03.15
Posted by 드무1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6

 

 

 

갑오동학혁명기념탑건립위원회에서 수여한 감사장 1963. 10. 3

 

영주 수해복구에 대한 영주군민일동이 보낸 감사패 1963. 7. 11

 

엘살바도르 훈장 1968(왼쪽)

보이스카우트에서 증정한 메달(오른쪽)

 

대만에서 증정한 채옥대훈장(왼쪽)

세네갈 훈장 1979. 6. 23(오른쪽)

 

특등십자대공로훈장

  서독 대통령이 증정한 최고훈장 1964

 

태국에서 증전한 메달

 

무궁화 대훈장

 

말레이시아 훈장

 

가봉훈장(왼쪽)

일등경운훈장(오른쪽)

   대만에서 증정한 훈장

 

라이온즈클럽 메달(왼쪽)

콜롬비아 훈장(가운데)

세계대학총장회의(IAUP) 훈장 1968. 6. 20(오른쪽)

 

모로코 핫산국왕이 선물한 샴쉬르(초승달도)

 

이탈리아에서 증정한 기념패 1978. 11(왼쪽)

태국 방콕시에서 증정한 기념열쇠 1966. 2. 10(가운데)

미국의회 의원배치 1975. 10. 27(오른쪽)

   Dale Milford 미국 텍사스주 하원의원이 대통령 예방 시 서한과 함께 접수된 배치

 

필리핀 마닐라 베트남전 참전 7개국 정산회담 기념배지 1966

 

멕시코에서 발행한 명예박사증

 

니제르 공화국 훈장증서 1974. 1. 31

 

미국 워싱턴에서 증정한 기념열쇠 1965. 5. 17

 

미국 해군 제독 T. H. MOORER의 만년필 세트(왼쪽)

쿠웨이트 기념주화 1976(오른쪽)

 

대만에서 선물한 족자와 족자 해설집 1975

 

 

 

 

 

- 계속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8 完  (1) 2021.03.1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7  (0) 2021.03.1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5  (0) 2021.03.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4  (0) 2021.03.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3  (0) 2021.03.15
Posted by 드무1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5

 

 

 

「유우엔」군 사령부 발표에 의하면 이날 북괴병 만행의 발단은 3명의 「유우엔」군 측 장교와 경비병들이 이날 오전 5명이 KSC(한국노무단) 노무자들을 에스코오트, 「돌아오지 않는 다리」남쪽에위치한 「유우엔」군 측 사령부 제3경비초소부터35~40야아드 떨어진 곳의 나무가지를 치고 있을 때 2명의 북괴군 장교와 수 명의 경비병들이 작업현장에 나타나면서 비롯됐다.

 

이들은 간단한 의견교환 후에 「유우엔」군 측에 나무가지 치는 작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명의 북괴장교는 나뭇가지 치는 것에 이의가 없음을 표시했다. 그런데 그 후 북괴군 경비병 30여 명이 자동차로 현장에 증원돼 몰려 왔으며 그 중의 한 북괴군 장교는 "저 놈들을 죽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북괴 경비병들이 합세해서 기습해 왔으며 현장에 있던 미군과 한국군은 너무 순식간이라 전혀 무방비상태에서 대항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 때가 오전 10시 45분경, 2명의 미육군 장교들은 도끼와 곡괭이 도끼자루로 기습하는 3여 명의 北傀(북괴) 경비병들에 의해 「머리에 중상을 입고 짓밟혀」 살해됐으며 공동경비구역에 배속된 한국군 사병 1명이 짓밟혀 부상, 서울에 있는 미육군병원에 입원했다. 또 1명의 한국군 장교와 4명의 미군, 그리고 3명의 한국군 사병들이 찰과상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유우엔」군 측 자동차 3대가 파괴됐다.

 

「유우엔」군 사령부는 이번 사망자는 정전위원회가 열리는 장소인 공동감시구역에서의 첫 번째 희생자라고 말했다.

 

한편 부상당한 한국군은 金(김)문환 대위(경상), 裵(배)재복 상병(중상), 전병호 상병(중상), 정병수 상병(경상) 등으로 알려졌다.

 

韓日問題(한일문제)

綜合討論(종합토론) 시리즈

 

동아일보 1964. 04. 16

 

(1) 데모 主動學生(주동학생)들의 主張(주장)

    왜 韓 · 日會談(한 · 일회담)을 反對(반대)했나

 

··· 중략 ···

 

그러면 박 정권의 이와 같은 對日(대일) 자세를 어떻게 고쳐야하고, 또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할 경우라도 경제적 침략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떤 선행요건이 필요한가?

 

"지금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있지만 帝國主義的(제국주의적)이란 본질엔 옛과 다를 바 없다"

학생들의 對日觀(대일관)은 이렇게 사뭇 경계조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박 정권은 對日外交(대일외교)를 추진함에 있어 우리 민족의 利害(이해)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고 또 일본자본이 밀려닥치기 전에 국내 유휴자본을 생산부문에 동원하고, 민족자본을 육성하여 經濟的 自立體制(경제적 자립체제)를 가누어야한다는 한 학생의 말에 다른 학생들 모두가 異論(이론)을 내지 않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보잘 것 없는 우리 자본은 일본 자금에 삼켜져버려 예외없이 買販資本化(매판자본화)할 것이라는게 그들의 걱정이었다.

 

韓日會談(한일회담)의 여러 懸案(현안) 중 학생들이 가장 관심이 큰 것은 역시 平和線(평화선).

 

평화선이 우리의 主權線(주권선)이며 국제법상 適法性(적법성)이 있는 것으로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데 학생들의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 중략 ···

 

越南派兵(월남파병) 違憲(위헌)

名分論(명분론) 얽혀

 

동아일보 1965. 01. 08

 

◇ 연말 이래 계속된 엄격한 보도체제가 해제되고 「越南派兵(월남파병)」을 정부가 공식발표한 8일 국회 주변은 파병의 國會同意(국회동의) 여부라는 관문을 앞두고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 묻힌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미 작년 12월 31일자로 정부 측의 同意要請書(동의요청서)를 접수한 국회는 그간 與野院內總務會談(여야원내총무회담)과 各(각) 黨(당) 議員總會(의원총회) 등을 열었으나 아무런 결론을 얻지 못했는데 이 문제가 정부 발표로 정식 노출되자 여야 가릴 것 없이 "너무나 중대한 문제"라는 데는 입을 모았으나 違憲論(위헌론) · 越南戰擴大促進劑論(월남전 확대 촉진제론) · 名分論(명분론) · 實利論(실리론) 등 여러 갈래로 그 반응이 가지가지.

 

민주당 유성권 원내총무는 個人意見(개인의견) 임을 전제, "국군은 국토방위의 신설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헌법에 규정했는데 越南派兵(월남파병)이 국토방위의 범주에 들기 어렵다"고 위헌론을 피력했고, 차지철 의원(공화)은 "완전 敵對行爲(적대행위)의 대상이 되는 이번 파병으로 우리 장병이 희생당했을 경우, 유가족들이 국회 앞에서 「데모」라도 벌이고 울부짖으면 共同防衛(공동방위)라는 명분만으로 납득되겠느냐"고 名分論(명분론)을 내세웠다. 그런가 하면 파병대가로 얻는 多角的(다각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實利論(실리론)도 나오고···

 

우리는 언제나 당신이 옆에

 

있다 믿고 있어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당신이 그리우면

 

언제나 또 찾아오겠소

 

고이 잠드오

 

또 찾아오고 또 찾아올테니

 

 

1974년 9월 30일

『당신이 그리우면』 자작시 중에서

 

박정희

 

거제군 장목면 주민들이 보낸 감사패 1973. 7. 7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수여한 감사장 1964. 6. 14

 

대한적십자사 총재로부터 받은 포상장 1963. 10. 30

 

태능국제수영장명예회원증

   사단법인 대한체육회 소속 태능국제수영장에서 대통령 내외를 명예회원으로 임명한 회원증 1970. 3. 23

 

스웨덴 명예기장 금메달 증서 1970. 6. 6

 

사단법인 대한소년단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추대장 1962. 4. 26

 

 

 

 

- 계속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7  (0) 2021.03.1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6  (0) 2021.03.1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4  (0) 2021.03.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3  (0) 2021.03.15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2  (0) 2021.03.14
Posted by 드무1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4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오늘날 우리 야당과 같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야당으로부터 오히려 독재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진짜 국민 여러분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969년 10월 10일

특별담화문

 

학생들은 이 나라의 내일의 주인공이지

오늘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1974년 1월

연두기자회견

 

비판과 시련 Criticisms and ordeals

 

新民黨(신민당)의 項目別(항목별)

政策批判(정책비판) 내용

 

동아일보 1968. 01. 16

 

1. 統計數字(통계숫자)의 조작에 대해 = 66年度(연도)의 13.7%를 상회했다는 경제성장률이나 올해의 목표인 12.4%의 세계최상위의 성장률은 현실경제의 실질 성장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공화당정권은 물가지수의 조작뿐 아니라 통화량과 諸般生産高(제반생산고)의 통계까지도 조작하고 있다.

 

1. 물가안정에 대해 = 공공요금의 대폭 인상 등으로 물가폭등을 선도하고 있는 정부가 어떻게 물가안정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물가안정이냐 2차 5개년 계획의 중지냐 중 양자택일을 해야할 것이다.

 

1.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 국가재정 형편상 투자의 순위를 생각하고 高速道路(고속도로)에 소요되는 수백억 원의 자금이 있다면 農産物價格安定(농산물가격안정)과 중소기업육성자금 및 국민학교의 敎室難(교실난)부터 시급히 해소해야 될 것이다.

 

1. 第二(제이)의 경제에 대해 = 윤리적 문제를 굳이 經濟(경제)라고 표현한다면 하나의 개념유희에 불과하는 진의는 다른데 있는 것 같다.

 

서울에 武裝間諜(무장간첩)

 

경향신문 1968. 01. 22

 

蔡治安局長(채치안국장) 발표

5명 射殺(사살) · 1명 生捕(생포)

어젯밤 紫霞門(자하문)에 31명 침투 警察(경찰)과 교전 후에 逃走(도주)

崔鐘路署長(최종로서장) 殉職(순직), 民間人(민간인) 5명도

모두 25세 가량 靑年(청년)

灰色(회색) 코트에 까만 籠球靴(농구화)

 

일요일인 21일 밤 10시 쯤 서울 시내에 31명의 무장간첩이 侵入(침입), 긴급 출동한 軍(군)과 警察(경찰)이 작전을 펴 무장간첩 5명을 사살, 1명을 생포하고 무기 다수를 노획했다. (22일 정오 현재 치안국 발표) 이 날의 교전에서 서울종로경찰서장 崔圭植(최규식) 총경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경찰관 2명이 부상했다. 이날 또 무장간첩들은 수류탄과 기관총을 亂射(난사), 민간인 5명을 숨지게 하고 1명을 부상케 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이날 밤 10시 쯤 기관단총 수류탄 권총 등으로 무장한 괴한들은 15명씩 길 양편으로 늘어서 서울 洗劍亭(세검정)에서 淸雲(청운)동 쪽으로 침입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관 임시검문소에서 검문을 받게 되자 기관단총 등을 난사하며 수류탄을 던지는 등 기습을 감행, 交戰(교전)이 벌어졌다. 간첩작전지휘본부는 軍(군)과 警察(경찰) 병력과 헬리콥터 등 장비를 동원, 긴급히 작전을 폈으며 밤새워 조명탄을 밝히며 交戰(교전)을 벌였다. 무장간첩들은 즉각분산, 북한산 쪽으로 달아났다. 軍警(군경)은 22일 정오 현재 북한산을 완전포위 체포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關聯記事(관련기사) 7면에

 

◇ 殉職(순직)한 警察官(경찰관)

 

   崔圭植(최규식) 총경 (37 · 종로서장)

 

◇ 負傷(부상)한 警察官(경찰관)

 

   朴(박) 훈태 순경(종로수사계)

   鄭(정) 종수 순경(기동대원)

 

◇ 희생된 民間人(민간인)

 

   尹(윤) 점순 (여 · 22 · 성산동 64)

   이용선 (남 · 31 · 체신부 근무 홍제동 175의 5) 김형기 (남 · 17 · 모고교 재학 중)

   洪(홍) 우경 (남 · 29) 정사영 (남 · 45 · 景福中(경복중) 수위)

 

◇ 重傷民間人 (중상민간인)

 

   장대진 (50 · 청운동 37)

   파주 · 고양 7時(시) 通禁(통금)

 

치안국은 22일 상오 무장괴한들이 북상도피 중인 경기도 파주와 고양군 일대의 야간통금시간을 하오 7시부터 상오 6시까지 연장하고 민간인의 산악지대 출입을 금한다고 밝혔다.

 


間諜(간첩) 人相着衣(인상착의)


이날 치안국에서 발표한 무장괴한들의 인상착의는 다음과 같다.

 

① 31명의 괴한 전원이 25~26세 가량의 청년

② 짙은 회색 신사복 코트를 입은 괴한은 코트 속에는 계급장 없는 괴뢰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③ 흰 고무줄을 두른 흑색 농구화(제조처 미상)를 신고 있다.

④ 외투 속에 권총 · 기관총 · 수류탄 및 실탄으로 무장하고 있다.

 

美艦(미함) 푸에블로 號(호) 拉北(납북)

 

경향신문 1968. 01. 24

 

어제 下午(하오) 東海上(동해상) 40킬로 公海(공해)서

北傀艇(북괴정) · 미그 機(기)의 威脅(위협) 받고 將兵(장병) 등 83명 元山(원산)으로

 

[워싱턴 = 로이터 同和(동화)] 美(미) 국방성은 9백6톤급 美(미) 해군정보수집 보조함 「푸에블로」호가 23일 하오 1시 45분(한국시간) 승무원 83명(장교 6명 · 사병 75명 · 민간인 2명)을 태운 채 北韓(북한) 해안 밖 40km 거리의 東海(동해) 공해상에서 北傀(북괴)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나포되어 北韓(북한)의 元山(원산)항에 끌려갔다고 발표했다.

[關係記事(관계기사) 3면에]

 

국방성은 「푸에블로」 情報艦(정보함)이 이날 정오께(한국시간) 맨 처음 北傀(북괴) 哨戒艇(초계정) 1척으로부터 "정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는 위협을 받고나서 얼마 후 현장에 나타난 다른 北傀(북괴) 哨戒艇(초계정) 3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아래 납북되어 갔다고 밝혔다.

 

이날 이 美軍情報艦(미군정보함)이 나포된 해상은 東經(동경) 127도 54.3분 北緯(북위) 39도 25분으로 北韓 海岸(북한 해안)에서 약 40km 떨어진 東海(동해)의 공해상이었다.

「푸에블로」 號(호)는 이날 하오 1시 4분(한국시간) 北傀(북괴) 武裝軍(무장군)이 이 情報艦上(정보함상)에 승선했다는 무전연락을 보내왔으며 그리고 나서 25분 뒤 元山港(원산항)으로 따라오라는 北傀(북괴)의 명령을 받았다고 알리고 2시 32분(한국시간) 『無電(무전)을 끊는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왔다. 국방성 관리들은 公海上(공해상)의 拿捕(나포) 과정에서 무기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총격전이 일어났다는 示唆(시사)도 없다고 말했다.

 

蔚珍(울진)에 武裝共匪(무장공비)

 

중앙일보 1968. 11. 06

 

대 간첩대책본부는 4일에 이어 5일, 또 다시 약 30명 내외로 추산되는 무장공비가 지난 2일 밤 동해로부터 경북 울진군 북면에 불법침투,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이 발생하여 현재 군 · 경과 향토예비군이 합동포위작전을 펴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 동 발표는 무장공비들은 부락민 3명을 죽이고 1명에게 상처를 입혔으며 위조지폐 수십 만원을 주민들에게 뿌렸음을 밝혔다. 이와 아울러 대 간첩대책본부는 4일 정오부터 울진을 중심으로 강원도 일부와 경북일부지역에 을종사태를 선포하고 포위망을 좁히고 있음을 발표했다.

최근에 발표된 일련의 북괴 도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북괴는 그 규모와 성격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의 만행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 같다. 금년 1월 21일 31명의 무장공비가 서울을 침입한 사건이 있었지만, 최근의 북괴도발의 규모와 성격은 단일지점이 아니라 '전후방' 여러 곳에서 때를 같이해서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북괴침투의 ① 해안경계 상태의 탐색 ② 산악지대의 밀거지 설치 ③ 유격전 전개 및 양민살해 ④ 민심 및 경제 혼란과 주요 산업시설의 파괴 ⑤ 반 정부의식의 조장에 있다고 요약되고

있으나 북괴침투의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그 성격에 있어 지역적으로 「게릴라」 전을 전개하고 양민을 마구 살상하며 민 · 심의 동요와 방위의 분산을 책동하고, 나아가서는 「거점」을 확보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역연하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의 국가안전보장과 치안확보의 중대성을 새삼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5일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 「유엔」 측 수석대표 「우드워드」 소장은 지난 15일간 51차례나 북괴의 침범이 있어 사태는 휴전 후 최악의 상태임을 지적했지만 요컨대 북괴의 대남침투공세는 지금 상태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욱 강화되리란 점이다.

 

開發制限(개발제한)

지역설정에 反撥(반발)

 

경향신문 1971. 09. 01

 

건설부가 서울 중심부에서 반경 15㎞를 기준하여 2㎞ 내지 10㎞ 폭의 지역을 그린벨트 지역으로 설정, 개발을 제한함으로써 이 지역의 토지소유주들이 사유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일 건설부에 의하면 서울특별시의 무제한 발전을 막고 균형된 개발을 위해 선진국의 예에 따라 지난 7월 30일 建設部告示(건설부고시) 447호로 서울 주변에 타원형으로 벨트지역을 설정, 일체의 건물 신축과 단지조성, 개간 등을 금지시켰다.

이 告示(고시)에 따라 반경 15㎞를 중심하여 폭 2 내지 10㎞ 범위 내에 들어있는 토지는 현재 형태대로 보존, 토지소유주라 하더라도 토지의 원형 변경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존 건물의 개축, 10평 이내의 증축 이외에는 신규건축허가 조차 못하게 되었다.

이 告示(고시) 때문에 住宅公社(주택공사)가 始興郡西面(시흥군서면)에 조성하기로 했던 30만 평의 택지조성사업이 중지될 형편에 있으며 수협중앙회의 주택조합에서 직원용으로 조성한 소사 근처의 택지 약 5만 평도 황무지로 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변두리에 부동산투자를 한 사람들은 건설부의 이와 같은 조치는 헌법에 보장된 私有財産權(사유재산권)의 침해라고 주장, 반발하고 있다.

建設部告示(건설부고시)에 따라 開發(개발)이 제한된 地域(지역)의 총면적은 4백 54.2㎢에 달하고 있는데 그 대상 지역은 다음과 같다.

 

<甲 · 乙種(갑 · 을종) 사태란>

 

▲ 甲種(갑종) 사태 = 북한 괴뢰의 무장 간첩이 침투하여 부분적인 기습파괴 및 살상행위를 가장 함에 있어 경찰력만으로 또는 일부 소수군 병력의 단기간 지원으로 치안을 회복할 수 있는 경우.

 

▲ 乙種(을종) 사태 = 甲種(갑종) 사태에 부가하여 전국적으로 일부 지역에 무장간첩 행위가 질적 · 양적으로 증가하여 경찰병력만으로 치안확보가 곤란한 것으로 판단되어 군 후방부대 병력 또는 일부 전방 전투 병력을 그 지역에 상당기간 투입하여 대 간첩작전을 수행하게 되는경우.

 

與野(여야) 論評(논평) 발표

 

동아일보 1972. 07. 04

 

여야는 南北(남북) 공동성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 공화당 신동식 대변인 = 祖國統一(조국통일)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각오한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勇斷(용단)과 결의에 온 국민은 엄숙하게 이를 달아들여야 할 줄 안다.

분단 25년의 歷史(역사)는 우리에게 착잡과 비애 그리고 분노와 흥분의 점철이었기 때문에 共和黨(공화단) 의원들은 기쁨과 신중한 분위기에 싸여 있음을 솔직이 고백한다.

 

국제정치의 흐름과 現實政治(현실정치)의 냉엄함을 재삼인식하고 오로지 국가지도자에 대한 믿음과 정치질서의 안정과 번영의 大道(대도)에 일사불란하게 매진해야 할 것이다.

 

▲ 신민당 김수한 대변인 =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이처럼 중대한 문제에 대해 국회는 물론 여야당에 하등의 사전 협의 없이 박 정권의 일방적인 밀담으로 이뤄졌음을 용납 못할 일이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에게 非常事態(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보위법 처리 등으로 북괴의 도발에 의한 위기의식을 조성, 민권을 탄압하면서 정부 내의 특정인이 북괴와 이런 회담과 합의를 하고 있음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며 이번의 합의 내용은 지금까지의 우리의 國體(국체) 및 국가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천만한 부분이 허다하다.

 

北傀軍(북괴군),

板門店(판문점)서

美軍將校(미군장교)

2名(명) 慘殺(찬살)

 

동아일보 1976. 08. 19

 

도끼 · 곡괭이 휘두르며 白晝(백주)의 蠻行(만행)

韓(한) · 美軍(미군) 9名(명)도 重輕傷(중경상)

共同警備區域(공동경비구역) 內(내)의 作業(작업)에 트집

是非(시비)하는 척하니 30餘(여) 名(명0이 奇襲(기습)

 

18일 오전 10시 45분경 板門店(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노무자들의 작업을 감독 경비하던 「유우엔」군 측 소속 경비병들에게 北傀(북괴) 경비병 약 30명이 도끼와 곡괭이 등을 휘두르며 기습,미군장교 2명이 피살되고 카투사 5명과 미군 4명 등 「유우엔」군 측 경비병 9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유우엔」군차량3대가파손됐다.

이날 「유우엔」군 측 경비병들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남쪽 「유우엔」군 측 제3경비초소 근처에서 관례에 따라 한국인 노무자들이 이곳에 자란 나무가지를 치는 작업을 에스코오트하고 있었는데 北傀(북괴) 경비장교 2명과 경비병 수 명이 나타나 작업 중지를 요구했고 얼마 후 北傀(북괴) 경비병 30여 명이 자동차로 몰려와 "죽여라"고 소리치며 기습했다고 이날 오후 「유우엔」군사령부는발표했다. 「유우엔」군사령부는피살된미군장교의신원은유족들에게통고될때까지보류됐다고밝혔는데사망자는중대장 「모니피스」大尉(대위)와소대장 「바렉슨」中尉(중위)인것으로알려졌다.

[關聯記事(관련기사) 2, 3, 7면]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6  (0) 2021.03.1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5  (0) 2021.03.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3  (0) 2021.03.15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2  (0)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1  (0) 2021.03.14
Posted by 드무1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3

 

 

 

평화통일의 비전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 사회 · 문화 · 군사적으로 우리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적화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을 원칙으로 하는 8 · 15평화통일 구상선언을 발표하였다. 또한 '민주주의와 공산체제 중 어느 체제가 더 잘 사는지 경쟁하기'라며 평화적 체제경쟁을 제의하였다. 이 선언을 계기로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렸고 1972년 7 · 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주요 내용은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긴장완화를 바탕으로 자주적이며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이루어내자는 합의였다. 이후 1973년 6 · 2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으로 북한에 유엔 동시가입도 촉구하였다. 이는 고도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인식 아래 평화적 남북통일을 위해서라면 북한을 포용하는 평화통일 외교정책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번번이 북한의 무성의와 일방적인 거부로 인해 대통령의 제안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자유우방국 및 제3세계국가와의 정상외교

 

1964. 12. 06 서독 방문(뤼브케 대통령, 에르하르트 총리와 회담)

1966. 02. 07 동남아시아 4개국 순방(말레이시아, 태국, 홍콩, 대만)

        10. 24 필리핀 마닐라에서 월남 참전 7개국 정상회담

1967. 04. 03 태국 수상 타놈 키티카초른 방한

        04. 06 호주 헤롤드 홀트 총리 방한

1968. 05. 18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 방한

        09. 16 호주 방문(고튼 총리와 정상회담)

        09. 20 뉴질랜드 홀리오크 총리 방한

1969. 04. 30 말레이시아 국왕 나시루딘 방한

        05. 27 월남 구엔 반 티우 대통령 방한

        10. 28 니제르 디오리 하마니 대통령 방한

1970. 09. 28 엘살바도르 대통령 방한

1971. 07. 01 일본 사토 총리 방한

1973. 04. 12 월남 티우 대통령 방한

1975. 07. 05 가봉 봉고 대통령 방한

1976. 04.20 뉴질랜드 멀둔 총리 방한

1978. 08. 22 지부티공화국 압둘라 모하마드 카밀 수상

        09. 22 스와질랜드 수상 방한

1979. 04. 23 세네갈 셍고르 대통령 방한

        10. 19 싱사포르 리콴유 수상 방한

 

재임기간 외교활동

박정희 대통령은 지본도 기술도 없는 우리나라가 빠른 시일 내에 산업화를 이루고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였다.따라서 우리의 확고한 개발의지를 보여주고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다각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서독,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등에 대한교섭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은 물론 유럽, 아프리카, 북미, 중남미 등 각 지역에 통상사절단을 파견하였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은 개방과 개혁의 기치를 내세워 자유우방국가를 직접 방문하여 원조와 차관 제공을 요청하였다. 이에 자유우방국가들은 조국근대화와 부국강병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힘쓰는 대통령의 헌신적인 노력에 기대 이상으로 적극 협조해 주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들이 제공한 자본과 기술, 경영의식을 활용하여 과학기술과 방위산업, 철강산업, 다목적댐 건설 등 자립경제와 자주국방 건설을 위한 핵심사업을 구상하였다. 이렇듯 다각도로 이루어진 대통령의 외교활동은 의례적인 친선방문이 아닌 국익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리외교였다.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의장과 케네디 대통령 1961.11. 1(왼쪽)

뉴질랜드 홀리오크 총리와 박정희 대통령 1968. 9. 19(오른쪽)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1세 방한 1968. 5. 18

 

한미동맹 Go Together!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 · 미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초로 형성된 것으로 6 · 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건한 한미동맹에 의한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하고 방위산업 및 전력 증강 사업에 의한 무기와 장비를 갖춰 자주 국방태세를 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한미동맹은 1968년 1 · 21 청와대 기습사건과 미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이후 양국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매년 개최하였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합동참모의장이 참석하는 한미군사위원회회의MCM를 설치하여 북한의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였다. 또한 전시 한미 양국의 작전부대를 통합 · 지휘할 한미연합군사령부CFC를 설치하고 팀 스피리트TS 훈련과 을지 포커스렌즈UFL 연습 등을 매년 정례적으로 실시하여 유사시 미 본토의 증원 병력이 즉각 개입할 수 있도록 한미동맹을 강화하는데 주력하였다.

 

한미안보협의회의 1968~1979

구분 일시 장소 양국대표(국방장 · 차관) 주요내용
한국 미국
제1차 '68. 5. 27~28 워싱턴 최영희 클리포드(Clifford) 장관 북한의 위협 주목,
한국의 대간첩작전 강화 등
제2차 '69. 6. 3~4 서울 임충식 패카드(Packard) 차관 한국 방위문제, M-16 소총 공장 설치 등
제3차 '70. 7. 21~22 호놀룰루 정래혁 패카드(Packard) 차관 강력한 맹방 확인
S-2형 해군 초계기 공여 합의
제4차 '71. 7. 12~13 서울 정래혁 레어드(Laird) 장관 한국군 현대화 추진 만족,
자주 국방 능력 지속
제5차 '72. 6. 26~27 콜로라도 유재흥 레어드(Laird) 장관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 성과 검토 등
제6차 '73. 9. 12~13 서울 유재흥 클레멘츠(Clements) 차관 한반도에서의 긴장 완화 추구 강조
(7 · 4 공동성명)
제7차 '74. 9. 23~24 호놀룰루 서종철 클레멘츠(Clements) 차관 주한 미군 감축 계획 없음 천명,
연합 준비 태세 유지
제8차 '75. 8. 26~27 서울 서종철 슬레징거(Schlesinger) 장관 유엔의 유엔사 해체 결의안
('75. 6. 27) 제출에 유의
제9차 '76. 5. 26~27 호놀룰루 서종철 럼스펠트(Rumsfeld) 장관 한미연합군의 방위 능력과
준비태세에 관한 토의
제10차 '77. 7. 25~26 서울 서종철 브라운(Brown) 장관 한미 양국의 연합방위능력
신중히 재검토 등
제11차 '78. 7. 26~27 샌디애고 노재현 브라운(Brown) 장관 1978년내 설치될 한미연합사의
효율성 증대 합의
제12차 '79. 10. 18~19 서울 노재현 브라운(Brown) 장관 한미연합사 제1차 연도
업적 검토 등

 

박정희 대통령과 포드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1974. 11. 22

 

박정희 대통령 신년사

1962년 신년사 국가 재건을 위한 총력 경주

 

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 근대사상 일대 전환점을 가져온 변혁의 해를 보내고 의욕과 희망에 찬 혁명 제2년의 새해를 맞이하여 조국과 동포의 앞날에 행운과 영광이 있기를 기도드리고 새해는 국민 여러분들과 더불어 국가재건을 위해서 최대 봉사의 해가 되기를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거년(去年)은 총망(悤忙) 중에도 혁명과업의 정지 작업이 대체적으로 성공리에 끝을 마치고, 국가재건의 본격적 사업이 금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고하는 바입니다.

당면한 우리의 지상목표는 경제재건을 위한 산업개발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상으로 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확고한 경제적 기반 없이는 실현을 바라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서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강력히 결속하여 총력을 이에 경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의욕에 찬 경제 5개년 계획이 새해부터는 발족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계획에는 공업발전과 자원개발이라든지 이를 위한 자본 형성과 외자도입 문제, 또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세제의 합리화, 국제수지의 균형 등의 성안(成案)이 짜여져 있는 것입니다. 이 계획의 강력한 추진으로서 무엇보다도 시급한 실업자가 점차 해소될 것이고, 장차의 복지국가 건설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후진과 빈곤의 근원이라고 할 농촌의 부흥도 계획되고 있습니다. 농민의 생활 향상 없이는 경제재건도 민주발전도 바랄 수 없기 때문에 농촌 시책에 계속하여 주력할 것입니다.

둘째로는, 국방력을 더욱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경제재건과 방위력증강이란 일견 모순된 목표로 지적될지 모를 것입니다. 경제건설에 국방비가 과중하다는 것은 누구나 논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산위협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절대적인 방위력이 필요하거니와 그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 또한 경제재건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상치되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가능한 인적 · 물적 낭비를 절감할 것이고, 훈련을 더욱 정도(精到)히 해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원조 당국이 확약한 바 있는 계속적인 원조 강화와 장비의 현대화와 아울러 제도와 훈련과 운영의 묘로써 우리의 애로는 극복될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자조 · 자립의 정신을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과거 우리 민족은 너무나도 의타적이고 사대주의적이었으며,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고 극복해 나가겠다는 자조적인 정신이 너무나도 결핍했다고 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민족이란 영원한 생명체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이상이 있어야 하고 희망과 꿈이 있어야 하며, 시대적인 사회환경을 극복하고 생성 발전해 나갈 생명의 약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의타적인 인습과 숙명론적인 사고방식은 민족의 발육을 장해하고, 진취 활달한 민족적인 기상을 위축시키는 것입니다.

인류생활과 문화의 향상을 위해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고귀한 노력과 경쟁을 하고 있는 20세기 후반기에 우리 겨레는 언제까지나 개개인의 눈앞의 이해타산에만 사로잡혀서 파쟁과 출세주의와 이기의 화신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도 우리의 자립정신과 자조의 노력으로써 우리의 후진성을 하루속히 타파하고,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복지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강렬한 의식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국가재건이란 지상 목표를 위해서 거족적인 단결로써 총력을 결속하여 혁명과업 수행에 우리의 자조의 노력을 다한 연후에 우방의 원조를 바라야 한다는 것을 재삼 강조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자유민주주의사회는 결코 안이하게 실천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자주적인 정신과 자조의 노력, 자율적인 행동과 자립 경제의 기반 없이는 형식상의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혼란과 파멸의 길만을 약속한 지난날의 경험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국민들이 모든 정성과 노력이 5개년 경제계획 제1차 연도 목표 달성을 위해서 총동원되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1963년 신년사 제3공화국 건설의 해

 

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나라 역사에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온 재건과 부흥의 해, 임인년을 보내고 희망에 찬 제3공화국 건설의 해, 계묘년 새 아침을 맞이하여 본인은 조국과 동포의 앞날에 행운과 영광이 있기를 빌며 새해에도 더욱 힘찬 전진 있기를 국민 여러분과 함께 다짐하는 바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으니 이는 모두 국민 여러분의 줄기찬 의욕과 분발의 소치인 것으로 본인은 국민 여러분의 그 벅찬 노고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우리가 불철주야로 추진해 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1차 연도 사업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어 농촌 경제의 재건이나 도시 건설 산업부흥에 현저한 발전을 보았으며, 다시는 우리 겨레에게 빈곤이 없는 복지사회 건설의 기초가 됨에 충분하였고 또 혁명 후 처음으로 있었던 주권행사의 국민투표는 유례 없는 자유분위기 속에서 실시되어 새로운 민주 전통을 확립하였으며, 국민 여러분의 손으로 확정된 새 헌법은 정당법 · 선거법 등과 더불어 새로 탄생할 제3공화국의 굳건한 기틀이 되어 진정 자유 · 민주의 선정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획기적이고도 과감한 외교정책의 추진은 괄목할 성과를 거두어, 다년간 현안 문제이던 한일회담도 희망적인 전망을 보여 주고 있으며, 또 자유진영은 물론 중립국가들로부터도 전에 없는 많은 지지를 얻게 되어, 그 결과는 이번에 제1차 유엔총회에서 한국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여 주었으니, 혁명 한국의 외교적 승리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온갖 인습적인 폐단을 일소하고 새롭고 명랑한 사회기풍과 질서를 확립하는 등,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의 모든 부문에 있어서 실로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지난 1년동안에 우리가 거두었던 국내외적 업적은 모두 국민 여러분이 차지할 자랑인 것이며, 조국번영의 장래를 기약하는 것으로써 희망에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소성(小成)에 만족할 수는 없으며, 아직도 우리가 목표로 하는 복지국가건설과 그리고 공산치하에 남아 있는 동포의 구출을 위하여는 더욱 많은 인내와 더욱 큰 분발이 요구되고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금년이야말로 제3공화국을 탄생시키는 민주정치 재건의 해이며 경제재건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단계인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제2차 연도 사업을 추진하여야 할 해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2대과업을 지닌 올해에 우리가 치러야 할 노력들은 모두 민족 중흥에 직결되는 것임을 국민 여러분은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재건과 자립경제의 달성을 지향하는 혁명의 이념과 과업을 제3공화국으로 하여금 발전적으로 계승 추진하게 함으로써 부강한 민주조국을 건설하여야 함이 올해에 있어서 우리에게 부과된 민족적 사명이라는 것을 국민 여러분은 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이 길을 택함으로써만이 우리의 짧은 헌정사에 있어서 두 번이나 겪었던 혁명의 아픔을 오히려 보다 넓은 자유와 보다 높은 번영의 세계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며, 영광된 민족의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계묘년 새 아침에 있어서 올해가 갖는 이와 같은 중차대한 의의에 상도할때, 우리는 신년의 기쁨에 앞서 무거운 사명감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럴수록 더욱 보람찬 의욕으로 전진할 용기백배의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고로 사람은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새해에는 그 무엇인가 보다 낫고 보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이는 향상하고자 하는 사람의 끝없는 생명력의 발현이며, 이 고귀한 힘이 인류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이 사람의 막연한 희망만으로 이루어진 일은 없었으며, 이 바람이 자각으로 부각되고 의지적인 노력으로 제고되어 비로소 생명력이 약동하는 역사적 세계의 주체적 전개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새해는 분명코 민족의 번영과 행복을 건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리라고 믿는 우리의 희망은 밝습니다.

또한 새해가 지닌 역사적 사명을 기필코 다해야 한다는 우리의 자각도 뚜렷이 섰습니다. 이제 의지적인 노력으로 민주정치의 재건과 경제개발의 촉진에 매진하고 조국통일의 노정(路程)을 결정적으로 단축시켜야 할 우리의 행동만이 남아 있습니다.

본인은 우리가 그간에 끊임없이 쌓아 온 민족의 기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지난 해의 국민투표를 통하여 확립된 우리의 민주 전통을 더욱 높임으로써 계묘년을 민족 역사에 길이 빛날 금자탑으로 이룩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여 마지 않습니다.

새해의 모든 번영과 행복이 한결같이 우리 조국과 우리 민족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1964년 신년사 일하는 정부 일하는 국민

 

애하는 국내외동포 여러분!

혁명의 고된 시련을 겪고, 민정이양으로 매듭을 지은 다난하였던 해 계묘년을 보내고, 우리들 앞날에 새로운 희망과 광명을 안겨다줄 갑진년의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된 것을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충심으로 경하해 마지않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해는 혁명이 이룩하려고 하였던 많은 과업이 뜻하지 않게 겹친 천재와 정치적 동요로 말미암아, 다소의 차질을 불가피하게 하였던 <시련의 해>인 동시에, 군정을 종식시키고 새 공화국과 새로운 민주적 정부를 성공리에 수립한 뜻깊은 해였습니다.

나는 오늘 송구영신의 새 아침을 맞이함에 앞서, 지난 1년 동안 국민 여러분들이 갖가지 불편과 고난을 참고 이겨낸 크나큰 노고를 높이 치하하고, 또한 그 불우한 역경 속에서도 민정이양을 깨끗하고, 모범적인 분위기 속에 완수하여, 우리들의 민주역량을 내외에 과시한 자랑스러운 업적에 대하여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제 제3공화국에서 국정운영의 중책을 맡게 된 나는 희망찬 새해와 더불어 우리가 당면한 몇 가지 시급한 과제를 국민 앞에 제시하고,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우리들의 한결같은 자세와 굳은 결의를 가다듬고자 하는 바입니다.

우선 여야 모든 정치 세력의 일치된 협조로써 새로운 정치기풍 속에 <능률있는 정치>를 구현시켜 나감으로써 정국의 안정을 기하는 한편 제반 정치적 결정을 신속히 반영 시행할 수 있는 <행정의 능률>을 확보시켜야 하겠습니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모든 정부 기간 상호간의 유기적 협조와 조정으로써 국민 여러분의 의사를 정확하고 그리고 효과적으로 국정에 반영토록 할 수 있는 넓은 통로를 마련하여 놓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시급한 것은 경제를 안정시키고 하루속히 발전의 궤도 위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새 정부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물가고와 제반 경제적 난경을 타개하기 위하여, 모든 중지와 역량을 모아 시급한 해결에 임할 것이며, 5개년 경제 계획을 합리적으로 무리 없이 꾸준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심한 물가고에 시달리는 국민 여러분의 안타까움을 덜어 주고, 생활향상의 목마른 기대를 하루바삐 충족 시켜드리기 위해 새 정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열의와 역량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해 두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새 정부는 그 출발에 즈음하여 국민 앞에 많은 약속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명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건설과 번영을 위한 전진 앞에는 결코 요행이나 기적이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다는 뼈저린 역사적 교훈일 것입니다. 새 정부는 결코 요행을 바라지 않을 것이며, 또한 국민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서 기적을 고대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국정에 임한 새 정부의 자세는 한 마디로 <성실한 일군>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국민과 더불어 호흡하고 솔선하여 실천하는 <믿을 수 있는 정부>가 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해드립니다. 새 공화국의 앞날에 부정과 부패는 철저히 발본색원될 것이며, 공무원의 기강은 내실적으로 재확립될 것입니다. 깨끗하고 성실을 다하여 능률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의 기풍을 수립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조치와 철저한 감시를 부단히 계속코자 합니다. 허망한 약속과 구호에 앞서 새 정부는 하나하나 착실히 실천해 나가는 믿음직스러운 자세를 견지해 나갈 것을 뚜렷이 밝혀 두는 바입니다.

내가 제창한 바 있는 대혁신운동은 바로 이러한 정부 스스로의 자숙자계(自肅自戒), 공무원의 정신혁명에서 시발되어야 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조국이 처한 냉혹한 현실과 제반 여건 하에서 우리의 당면과제가 해결되어 나가고, 우리의 꿈이 실현되기 위하여서는 정부의 일방적 세력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함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 참여와 자발적인 협조 없이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는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불만족스러운 우리의 현실과 고달픈 우리들 생활난에 우리는 실의와 체념으로 비관하지 말고, 이 가혹한 시련을 참고 견디며, 끝까지 이겨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다시금 함께 일어서서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가 협조해 나가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허영과 낭비의 퇴폐한 기운을 말끔히 씻어 버리고, 내핍과 근면 속에 검소한 생활기풍을 세워 나갈 것을 국민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정부의 시책을 이해하고 또한 협조하는 건실한 태도와 함께 <근면한 생활인>의 자세를 살려나가는 한,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노력과 분발은 반드시, 그리고 하루속히 결실될 날이 올 것을 나는 확신해 마지 않습니다.

새 정부를 믿고 모든 협조를 아끼지 맙시다. 각자의 생활분야에서 땀흘려 일하고, 끈기 있게 그리고 착실히 하나씩 쌓아 올라갑시다.
<일하는 정부><일하는 국민>의 일치 단합으로써 희망 찬 새해를 발전과 번영의 발판으로 만들어 나갑시다.

끝으로 갑진년의 새 아침을 맞이하여, 해외에 계시는 모든 동포에게 나는 국내동포와 더불어 새해 인사와 격려를 보내 마지 않으며, 특히 공산학정 하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의 불운한 처지를 슬퍼하면서, 그들을 구원하려는 우리들의 결의를 새로이 하는 한편 국내외 우리 모든 동포의 앞날에 만복이 깃들기를 빌고, 하느님의 은혜와 가호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1965년 신년사 일하고 전진하는 해

 

애하는 국민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갑진년을 보내고 희망찬 을사년의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국내외 모든 우리 동포들에게 새해에도 많은 복과 영광이 깃들기를 충심으로 축원하는 바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무엇보다도 앞서는 생각은 정녕 이 을사년이야말로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보다 향상된 생활과 보람을 안겨다 줄 것인지 하는 한결같은 희원과 걱정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민정 1년은 초기의 혼란과 시련을 극복한 끝에 점차로 안정과 질서 속에 경제건설도 하나하나 꾸준한 진척을 가져왔고 전반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 국민 여러분들이 겪은 고달픔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잘 협조해 주신 결과로 생각하여 다행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은 분명히 우리도 좀더 분발하고 노력만 한다면, 본격적인 근대화작업을 꼭 성취할 수 있는 결정적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을 나는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에게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해에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변함이 없습니다.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안정과 성장을 도모하면서, 특히 증산을 하고 수출을 증가시키고 국토를 개발하여 번영을 향한 줄기찬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일하는 해]로 정한 정부의 결의는 이러한 우리들의 목표를 한 마디로 집약해 놓은 것입니다만, 한편 어떻게 이 결의를 실천에 옮기느냐는 매우 어렵고도 긴요한 과제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세계 속의 한국은 진정 크나큰 각성과 변혁과 진전이 요구되는 시련기에 처해 있습니다.
2차대전이 남기고 간 폐허의 잿더미 위에도 번영의 극(極)을 이룩하고 거치른 사막을 복지 사회로 건설한 강인한 민족들의 자랑스러운 모습도 장하려니와, 크고 작은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서로가 앞을 다투어 경제건설에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현대의 세계는 강렬한 경쟁의식 속에 자유와 번영의 영광된 역사의 피안에 힘써 도달하려는 여러 민족국가들의 몸부림으로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민족국가의 재건과 중흥에 뛰어난 업적을 쌓을 수 없었던 우리들이 지금 그리고 장차 이 치열한 경쟁과 몸부림의 세계 속에서 과연 어떻게 적응하고 전진해 나갈 것인가, 실로 안타깝고도 한없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가 각성하고 분발할 때는 온 것입니다. 격변하는 국제사회, 진보하는 현대에 살면서, 우리만이 낙후된 민족사를 원망하고 실의의 나날로 남의 구원이나 요행만을 무기력하게 고대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멀고 험준하며, 짐은 무겁고 걸음은 조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중도에서 길이 험하다 멈출 수 없고, 짐이 무겁다 벗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멀고 험한 길일지언정, 희망과 자신을 가지고 인내와 용기로써 헤치고 뚫고 나갑시다.
이제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우리 2천 7백만 동포의 힘을 하나로 뭉치는 일입니다. 인화와 단결로써 힘을 뭉치고, 검소와 근로로써 생산에 총 매진합시다. 그리하여 새해를 [일하고 전진하는 해]로 만들 것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을사년의 새 아침을 맞이하여 국내외 모든 동포에게 거듭 새해 인사와 격려를 보내는 바이며, 특히 불운한 북한동포의 처지를 슬퍼하면서, 그들을 구원할 결의를 새로이 하는 한편, 아무쪼록 우리 모든 겨레의 앞날에 만복이 깃들기를 빌고 하느님의 은총과 가호가 항상 우리와 같이 하시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1966년 또 일하는 해

 

애하는 국민 여러분!

을사년을 보내고 병오년 새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나는 국내외 모든 동포 여러분의 가정에 영광과 만복이 깃들기를 충심으로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1966년의 새해를 맞는 오늘, 나는 먼저 온 국민과 더불어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립경제건설과 국토통일에의 결의를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고자 합니다.

돌이켜 볼 때, 지난 1965년은 우리의 민족사에 국가의 발전과 민족의 영광을 위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기록될 실로 역사적인 1년이었습니다.

우리는 한일국교의 타결과 국군의 월남파병을 통하여 국위선양과 국제협력의 굳건한 바탕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자유와 평화와 번영이 충만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수립에 건설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립경제의 기반구축>을 위해 마련했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많은 사업은 제4차 연도인 작년 말 현재 이미 초과 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업도 성공리에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올해에는 이 계획을 완전히 매듭짓고 도약의 발판이 될 제2차 경제개발계획의 준비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작년을 [일하는 해]로 정하고, 저축과 근면과 검소로 증산 · 건설 · 수출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국의 방방곡곡 어디서나 그 성과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 2년 동안 우리가 건설한 공장은 과거 십여년 동안에 건설된 것보다도 더 많습니다. 최근 불과 3년 동안에 이룩한 수출실적은 지난 15년 동안에 이루어졌던 수출총액 3억 1천만 달러보다도 6천만 달러나 많은 3억 7천만 달러에 달하고 있습니다.

3년 동안의 업적이 15년 동안의 그것보다도 많다는 이 사실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조국근대화 작업도 얼마든지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40년대의 대한발에도 불구하고, 작년도 농산물 생산고를 풍년을 구가했던 64년도의 실적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농업생산능력이 지난 1, 2년 동안에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고무적인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최근 1, 2년간 우리는 과거 10여년을 두고도 이룩하지 못했던 발전을 우리 힘으로 거뜬히 이룩해 놓았습니다. 앞으로 2, 3년만 더 땀흘려 일해 나간다면, 우리도 남들이 다 이룩한 경제자립을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1, 2년처럼 앞으로 4, 5년만 더 전진해 나간다면 40년, 50년 동안의 <한 일 없는 과거>를 충분히 벌충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계는 변화의 시대이며, 발전의 시대이며, 동시에 경쟁의 시대입니다. 잘 사는 나라는 잘 사는 나라대로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분발하고 있는가 하면, 못 사는 나라는 못 사는 나라대로 잘 살기 위해 앞을 다투어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오늘의 세계는 크고 작은 모든 나라들의 <국가이익추구의 경기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세계 제일의 1등 국가이면서도 보다 큰 발전을 위해 <위대한 사회>의 건설을 부르짖고 있는 미국을 보십시오! 전화(戰禍)가 남기고 간 폐허의 잿더미 위에 경이적인 부흥을 이룩한 독일을 보십시오! 거치른 사막 위에 중동 제1의 복지국가를 건설한 조국 없던 유랑민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휘몰아치는 해풍과 불모지 위에 눈부신 번영을 이룩한 덴마크를 보십시오!
후진과 빈곤의 멍에를 벗어제치고 꾸준히 생산 · 발전하는 아시아 · 아프리카의 무수한 신생국가를 보십시오. 실로 격세지감이 있을 정도로 변화하고, 재기하고,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국가들의 이러한 발전과 성장은 무엇을 이룩하겠다고 굳게 결심한 민족에 의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이 이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이 이들 국가들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자립에의 의지가 충천하고, 자활하려는 의욕이 넘쳐흐르는 민족에게는 언제나 그러한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단결력과 협동심이 강하고 용기와 인내력이 뛰어난 민족에게는 언제나 그러한 성장이 가능한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발전하는 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과 용기를 가지고 일치 단결 전진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자립, 그리고 자주적인 국토통일의 그 날은 하루하루 우리의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손이 미치는 가까운 거리로 육박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것은 그 시간과 거리를 더욱 단축시킬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인 것입니다. 온 국민의 단결과 협동, 인내와 근면, 자신과 용기가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무장으로 우리는 선진국들이 수십 년을 걸려 이룩한 성장과 발전을 수년 내에 이룩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영영 낙오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에 비해 너무나 뒤떨어진 우리가 아닙니까? 우리는 그들이 한 시간 일할 때 열 시간 일해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한가지 일을 할 때, 열 가지 일을 해도 충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올해를 또 [일하는 해]로 정하고, 저축과 근면과 검소를 다시 우리의 행동강령으로 삼아, 증산 · 건설 · 수출에 총 매진할 것을 모든 국민에게 호소하고자 합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완결시키고,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준비 작업에 착수하여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을 작년의 1백 달러에서, 앞으로 수년 내에 적어도 그 2배로 끌어올리고 점차로 대량생산, 대량소비단계까지 끌어 올려서, 우리 사회에서도 [소비는 미덕이다]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선진 국가 대열에까지 빨리 좇아가야 합니다. 1970년대 후반기에는 거기까지 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1966년은 진정 민족중흥의 찬란한 이정표가 되었다고 회상할 수 있도록 만듭시다.
희망에 찬 병오년 원단에 즈음하여, 나는 모든 우리 동포에게 거듭 새해 축하의 인사를 보내는 동시에, 월남에 파병된 국군장병을 위시해서 해외 각지에 나가 있는 우리 동포들과, 그리고 노예생활을 강요받고 있는 북한동포의 앞날에 모든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끝으로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가호 아래, 조국의 근대화와 국토통일이 하루속히 이룩될 것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1967년 신년사 조국근대화

 

애하는 국민 여러분!

정미년 희망의 새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나는 먼저 새해의 모든 영광과 만복이 동포 여러분의 가정에 고루 깃들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1년은 중흥하는 민족으로서, 발전하는 국가로서 우리가 이룩하려 했던 많은 일들이 거의 뜻대로 이루어진 [성공의 해]였습니다.

우리는 국내적으로 많은 일들을 하였습니다만, 국제적으로도 역사에 기록될 자랑스런 일들을 성취했습니다.
15년 동안 외교숙제였던 한미행정협정을 타결하였고, 파월국군은 그 용맹을 중외에 떨쳤으며, 아시아 · 태평양지역각료회의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회의를 서울에서 주최하였습니다. 또 필리핀(比律賓)의 마닐라에서 월남지원정상회담을 개최하였으며, 동남아 3국과의 유대 강화와 존슨 미대통령의 역사적인 방한도 지난해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외교국방상의 노력은 조국의 국제적 위치와 국가적 위신을 향상시키고,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실력을 만방에 과시하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이 지역 자유민의 결속과 단합을 촉진하여 태평양시대의 개막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혼돈과 위기가 감도는 아시아에 우뚝 솟은 평화의 보루로서, 자유의 기수로서, 번영의 표본으로서 태평양공동사회 건설의 선도적 사명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한편, 근면 · 검소 · 저축을 행동강령으로 삼아, 온 국력을 총동원했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의존과 빈곤으로 얼룩졌던 이 나라에 자립과 번영의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촌락이던 많은 고장이 공장들이 들어선 공장지대로 발전해 가고 있으며, 수십만 정보의 바다를 메워 논을 만들었고, 산을 깎아 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식량 · 비료 · 시멘트 · 정유 · 전력 등 주요 물자의 대부분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업제품을 비롯한 수많은 우리의 상품이 세계 백여 개 나라로 뻗어 나가, 작년도 우리의 상품수출고는 4, 5년 전에 비해 10배가 넘는 2억 5천만 불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난관을 끝내 극복하였고, 제한된 자원으로 많은 성과를 올렸으며, 서구의 선진국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그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바로 그 서구의 선진공업기술을 습득하여 그들과 겨누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잘 살아 보겠다는 의욕과 희망을 가지고 인내와 용기로써 온갖 역경과 난관을 이겨낸 우리 국민의 근면 · 검소 · 저축의 결정(結晶)인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국민 여러분의 그간의 노고에 대해 만강의 경의와 지하의 뜻을 표하고, 모든 영광과 기쁨을 여러분에게 돌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은 현시점에서, 우리에게는 진실로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 사이에 이제는 무엇이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고, 우리도 노력하기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과 의욕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가 새롭고 희망에 찬 생활을 향하여 힘찬 전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더욱 높아가고, 미래에 대한 자신이 날로 굳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무형의 성과야말로 우리가 거둔 성과 중에 가장 값진 성과이며, 이것이야말로 보다 큰 발전을 확신케 하는 <전진의 추진력>이며 조국근대화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출발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수난과 빈곤의 역사는 끝나고, 번영과 영광의 새로운 역사가 이미 우리 앞에 전개되었습니다.
조국의 근대화와 세계사에 공헌하는 약진한국, 이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벅찬 희망입니까!
이것은 정녕 온갖 역경과 시련에 도전하여 민족의 활로를 자력으로 개척하려는 힘겨운 투쟁에서, 우리 민족이 쟁취한 승리의 보람이요 기쁨입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역사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역사적 시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각오가 한층 더 새로운 바 있어야 하고, 우리의 노력이 한층 더 비상한 바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치열한 경쟁과 눈부신 발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우리가 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는 더 큰 분발이 있어야 하겠고, 더 큰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의욕이 더욱 강렬해야 하겠고, 우리의 의지가 더욱 확고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금년은 제2차 5개년 계획에 착수하여, 이미 도약단계에 들어선 조국의 발전에 일대박차를 가해야 할 중대한 새 출발의 해인 것입니다.

앞으로 4, 5년 후인 1970년대에는 아시아에 빛나는 공업국가를 건설해 보자는 것이 이 계획의 목표인 것입니다. 물론 이 계획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는 난관과 시련이 허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경험과 교훈이 있고, 의욕과 자신이 있고, 인내력과 용기가 있는 한, 성공의 결실은 우리의 것이 될 것으로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살아 보겠다는 의욕에 불타고, 노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룩할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에 넘쳐흐르고, 어려운 난관을 끝내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력과 인내력으로 힘차게 전진한다면, 이 계획은 반드시 성공하고 말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나는 여기서 우리 국민이 지난 몇 년 동안 발휘했던 그러한 의욕과 자신과 인내와 용기를 다시 한번 발휘하여 증산 · 수출 · 건설에 총 매진함으로써, 조국의 근대화를 하루속히 이룩해 나갈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자 합니다.

조국의 근대화, 그것은 국토통일이라는 민족적 지상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기필코 이룩해야 할 국가적 과업이며, 우리의 후손에 물려줄 값진 유산입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노예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북한동포를 구출해야 하겠다는 우리의 염원이 절실하면 절실할수록, 그리고 우리의 자녀에게 살기 좋은 조국을 물려주어야 하겠다는 결의가 새로우면 새로울수록, 조국근대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더욱 더 크고 줄기차야 하겠습니다.

1967년의 새해를 맞는 오늘, 나는 국내외동포 여러분과 더불어 이 한 해가 진정 위대한 전진의 해가 되기를 빌고, 여러분의 앞날에 하느님의 은총과 가호가 같이 하기를 기원함으로써 이 날을 경축하는 바입니다.

 

1968년 신년사 건설의 해

 

애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희망에 넘치는 무신년 새해에 부디 복 많이 받으시고, 뜻하신 소망이 모두 성취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지난해에는 두 차례의 선거를 비롯하여, 북괴 무장 간첩의 준동과 70년대의 대한발등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부산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조국 근대화 작업을 꾸준히 촉진해 왔고, 제2차 5개년 계획의 제1차 연도 사업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건설 사업이 급속도로 진척되었고, 수출은 3억 6천만 불을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한해로 인해서 농산물의 예상 수확량이 감소했습니다만, 우리 경제는 10%라는 높은 성장을 지속했습니다. 나는 우리 국민이 만난을 무릅쓰고, 자주 경제 건설을 위해서 쉴 줄 모르는 노력을 해 온 것에 대해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국민 여러분의 그간의 노고를 높이 치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는 애로와 난관이 많았습니다.

한 과제의 해결 속에 새로운 과제가 태동하여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크고 많은 일 거리가 산적됨으로써 이미 이룩한 성과의 혜택을 누리기보다는 새로운 과제의 중압 앞에 영일이 없이 일하고 또 일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우리 다같이 옷깃을 여미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이며 무엇을 위한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결코 일부 국민만의 부귀 영화를 위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은 모든 국민이 함께 잘 살기 위한 공동 투쟁의 기록이며, 백년 낙후한 조국을 백년 앞선 선진국 대열에 앞장서 나가게 하기 위한 민족의 의지의 구현인 것이며, 제2차, 제3차 경제 개발 계획으로 경제 자립과 조국 근대화를 완수하여 통일을 성취하자는 우리의 궁극 목표를 향한 위대한 전진인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우리의 후손에게 값진 유산을 남겨 주기 위한 사명의 수행입니다. 한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나 한 세대를 통해서 이 이상 보람있고 영광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커다란 긍지를 가지고 가일층 분발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금년은 제2차 5개년 계획의 제2차 연도입니다.
이 한해의 수많은 건설 사업을 기필코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전국 방방곡곡에 건설의 새 물결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올해를 「건설의 해」로 정하고 자신과 희망을 가지고 인내와 용기로써 위대한 전진을 계속할 것을 온 국민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중단없는 우리의 조국 근대화 도정에 영광이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국내외 동포 여러분의 앞날에 하느님의 가호와 은총이 내리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1969년 신년사 싸우며 건설하는 약진의 해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희망에 넘치는 1969년 새해를 또다시 맞이하였습니다. 올해에도 부디 복 많이 받으시고, 뜻하신 소망이 모두 성취되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새해의 새 아침에 우리 국민 모두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자각과 긍지를 마음 속 깊이 다짐하면서 올해 1년의 설계를 꾸며야 하겠습니다.

금년은 우리 민족이 정체와 굴욕을 박차고, 조국 근대화를 향해 전진을 시작한 1960년대를 결산 짓는 해이며, 또한 민족의 중흥을 기약하는 대망의 70년대를 준비하는 해이며, 제2차 5개년 계획의 제3차 연도로써 우리 민족에 있어서는 실로 역사적으로 중대한 해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년이야말로 우리 모든 국민이 <싸우며 건설하자>는 각오와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하고 일면 국방, 일면 건설에 우리 민족의 저력을 발휘해야 할 해인 것입니다. 지난해 북한 괴뢰는 그 침략 행위를 더욱 노골화하여 빈번한 휴전선 침범 외에, 무장 공비를 서울과 울진 · 삼척 지구에 침공시켜, 무모하게도 게릴라 거점을 탐색하려 했는가 하면, 노소 남녀 구별없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등, 천인이 공노할 만행을 자행하였습니다.

적은 날이 갈수록 국제적인 고립과 내정상의 실패, 그리고 경제적인 침체로 말미암아, 이 이상 더 북한 동포들을 기만하면서 강압 정치로 끌고 나가기는 매우 어려운 형편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늘 호언 장담하던, 소위 1970년대 남북 적화 통일이라는 구호도, 이제 점점 그 허구성이 드러나자, 초조와 당황의 빛이 역력하면서도 괴뢰 정권의 연명을 위해서도 문자 그대로, 최후 발악적인 침략 행위를 도발하면서 민심을 긴장된 분위기로 몰고 가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연말 서울에서 전국의 국방 치안 책임자들을 소집하여, 적의 어떠한 침략에도, 능히 대응할 수 있도록, 전후방의 방위 태세 강화를 당부하고, 특히 군 · 경찰 · 향토 예비군 그리고 모든 국민이, 협조 체제를 강화하여 지역 방위에 만전을 기하고, 이 땅에 하나의 공비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방위와 경계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한 바 있습니다.

적이 지금 노리는 것은, 당장에 전면 전쟁을 도발하겠다는 생각 보다도, 훈련된 간첩과 무장 게릴라 부대를 계속 남파시켜서, 남한의 치안을 교란하고 파괴와 살인을 자행함으로써 사회와 민심을 불안케 하여, 현재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 건설의 속도를 둔화시키고, 나아가서는 대외적으로도 대한민국이 점차 제2 월남과 같은 불안한 지역이 되어 간다는 인상을 주자는 것이고, 그들의 이러한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확신할만한 시기가 온다면, 결정적인 시기를 선택해서 결정적인 무력 침략을 감행하자는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금년에도, 적의 이러한 침투 공작은 계속되리라고 예측이 됩니다. 틀림없이 침투해 올 것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에 대해서, 만반의 대비를 강구해야 하고, 침투한 적에 대해서는 군 · 경 · 향토 예비군 그리고 전 국민이 혼연 일체가 되어, 즉각적으로 분쇄한 수 있는 만반의 준비와 정신적인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작년 1월 21일, 서울 지구에 침입한 적 게릴라에 대하여, 우리 군 · 경의 신속 과감한 행동과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반공 정신은 참으로 훌륭하였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지난 11월 초, 울진 · 삼척 지구에 침입한 적 무장 공비에 대해서도, 우리 군 · 경 작전 부대와 특히 향토 예비군의 눈부신 활동은 길이 역사에 빛날 만한 업적을 남겼으며, 현지 주민들의 반공 투지는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미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후방 지역의 전 국민들이, 이들 군 · 경과 향토 예비군에게 보낸 물심 양면의 열렬한 성원과 협력은 또 한번 우리의 결의와 단결의 힘을 유감없이 과시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보여 준 이 장한 모습은 온 세계에서 우리 한국 국민의 투지를 다시 한번 재 인식케 했다고 자부합니다. 우리 국민들의 이러한 결의와 태세가 갖추어져 있는 한 북한 괴뢰 집단이 남한을 적화 통일 운운하는 것은 한낱 허망한 꿈이 되고 말 것이며, 그들은 부질 없이 북한의 젊은 청년들을 이 땅에 보내어 개죽음만 시키는 결과 밖에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무장 공비의 설교를 실컷 듣고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하며 무참하게 죽어 간 평창 지방의 10세 소년의 그 애절하고도 측은한 모습이 우리 3천만 국민들 가슴속에 철천지 원한의 못을 박았다는 이 사실을 김일성 도당들이 명심하고 대오 각성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구할 수 없는 자멸의 모혈을 스스로 파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싸우며 건설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또 하나의 과제는 경제 건설의 촉진입니다. 지난해 우리는 북괴의 저 발악적인 도발 행위와, 또 호남 · 영남 지방을 휩쓴 근래에 보기 드문 대한발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30%라는 높은 성장을 보였습니다.

5억불의 수출목표와 제2차 5개년 계획의 제2차 년도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하였고, 많은 건설과 생산을 이룩하였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 5개년 계획 사업 외에 경부 고속 도로와 한해 대책, 농업 용수 개발 사업과 농어민 소득 증대 특별 사업, 축산 진흥 사업 등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북괴의 침략에 대응하여 국방력을 강화화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와 같이 놀라운 경제 건설을 추진하였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 국력이 커졌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이 마음만 먹고 노력만 하다면 이와 같이 보람찬 성과와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금년이야말로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이 위대한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힘이 잘 미치지 못했던 중화학 공업, 종합 제철, 기계 공업 등을 중점적으로 건설 육성하고, 수출 산업과 전력이나 수송력 개발에 더욱 힘을 기울이는 한편, 중소 기업의 현대화를 기하여 제2차 5개년 계획 사업을 더욱 추진해 나갈 작정입니다.

그리고 또한 무엇보다도 농어민의 소득 증대, 농어촌의 근대화, 농공 병친 정책의 구현을 위하여 획기적인 해가 되도록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금년에 7억불, 5, 6년 후에는 적어도 25억 내지 30억불의 수출을 기어코 달성하여,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나라로서 세계 무대에 등장해야 하겠습니다.

국민여러분!

현 단계에 있어서 국방과 건설이라는 두 가지 과제는 결코 서로 떨어진 두 개의 임무가 아닌 것입니다. 국방이 즉 건설이요, 건설이 즉 국방인 것입니다. 우리가 북괴의 온갖 도발을 물리치고, 대공 투쟁에 승리하는 것이나, 치열한 경제 전쟁의 무대에서 승리하고 조국 근대화 과업을 촉진하는 것이나, 조국을 통일하고 민족의 중흥을 이룩하자는 목적은 같은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너와 나의 구별 없이 각기 맡은 바 직장에서 반공 전사의 일원이라는 신념으로 싸우며 건설하는 일군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개척하여 그것을 약진의 발판으로 삼고, 중단 없이 꾸준히 노력하는 자에게만 승리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나는 다시 한번 이 해가 싸우며 건설하는 우리 민족 「약진의 해」가 될 것을 바라면서 「국민 교육 헌장」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새해에 국민 여러분 복 많이 받으시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70년 신년사  자주 · 자립 · 자조

 

애하는 국민 여러분!

조국의 역사 위에 다양하게 기록될 다사다난했던 1960년대는 이제 그 막을 내리고 오늘 우리는 1970년대의 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나는 먼저 국내에서, 국외에서, 그리고 전방에서 후방에서 각자 그 생업과 책임에 충실하신 국민 여러분에게 더욱 다복하시기를 비는 새해의 인사를 드리며, 우리 조국과 만족이 더욱 영광된 새해, 더욱 보람 있는 새 연대를 맞이하게 될 것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기도드리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해방과 독립이후 오늘까지 전쟁과 불안, 혼란과 빈곤 등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우리는 끝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조국의 등불>을 지켜 나오며 전진을 계속해 왔던 것입니다. 오늘, 그 연대가 바뀌어 70년대를 맞이함에 있어서, 나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다시는 지난날의 불안과 혼란이 우리에게 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굳게 하면서 70년대의 설계와 포부를 생각해 볼까 합니다. 무엇보다도 1970년대에는 완전 자립 경제를 꼭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은 5백불 선을 훨씬 넘어야 하고, 수출은 적어도 50억불 선을 돌파해야 합니다. 경제의 규모나 단위, 그리고 평가의 기준은 모두 국제적인 수준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우리의 상품들은 국제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여 다른 나라 상품을 압도해야 하며, 그중에서도 몇몇 상업부분은 세계 제1위를 자랑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면에서 남보다도 몇 배 더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특히 과학 기술의 급속한 개발과 경영 기술의 국제 수준화는 무엇보다도 급선무로써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국제적 위치를 적어도 중진 국가군에서는 가장 상위권에 들어가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고속 도로의 건설과 국토의 종합적 개발로 모든 곳이 우리의 일상 생활권이 되게 하고, 균형 있는 지역 개발을 도모하여,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좁혀야 하며, 연간 1백억 불의 물자가 연안각 항구를 통해서 나가고 들어올 수 있는 항만 시설과 해운 능력도 갖추어야 하며, 농촌에서는 기와로 개량되지 않은 지붕을 찾아보기 힘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한 사람의 노동 대가가 한 가구의 생계를 능히 꾸려나갈 수 있게 하여 서민 생활에 보다 여유와 윤기가 돌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과연 누가 해야 하겠습니까. 너와 나의 구별 없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한마음 한뜻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런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남을 시기 · 질투하고 중상 · 모략하는 우리 사회의 나쁜 버릇부터 없애야 하겠으며, 부정을 해서 나만 잘 살아 보겠다는 그릇된 생각도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밝고, 곧고, 명랑한 사회 기풍이 이 과업 수행의 대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문화와 예술은 보다 국민 생활에 접근하여 국민 정서의 순화와 사회 정화의 활력소가 되게 해야 하겠고, 가정과 가족 단위의 건전한 오락과 국민 체육의 보급으로 이룩되는 건전한 기풍이 국력의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도 과거의 극한적인 수단과 투쟁 방식을 지양하고, 건설적인 토론과 경쟁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지향하는 민주 정치의 결실을 보게 하여야 합니다. 또한, 70년대에는 국토 통일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 추구해 나가는 일방, 평화적인 방법이든, 비평화적인 방법이든 어떠한 방식의 통일 방안에 대해서도 즉각적으로 대처하고 대응할 수 있게끔, 북괴에 비해 절대 우위의 힘을 항시 확보해야 하며, 특히 북괴 단독의 침공에 대해서는 우리 단독의 힘만으로도 능히 이를 분쇄할 수 있는 자주 국방력을 언제든지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내가 항상 말하는 자주 · 자립 · 자조의 정신인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이러한 일들은 1970년대에 우리가 기어코 실현해야 하며, 이것이 실현될 때 우리는 조국 근대화의 대부분의 작업들을 이 70년대에 끝내는 셈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이 70년대의 설계와 포부는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며, 우리의 지혜, 우리의 힘으로 능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들입니다.

어느 모로는, 우리가 겪어 온 지난날의 그 역경 속에서의 노력보다도 더 쉬운 노력으로 가능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것을 결코 새롭고 특별한 것도 아니며, 다만 지난 수년 동안 우리가 쏟아 온 그 정열과 우리가 실천해 온 그 근면과 노력을 보다 알차게, 보다 충실하게 계속해 나가기만 한다면 손쉽게 이룩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아직껏 버리지 못하고 있는 비생산적인 타성들을 하루 속히 하나하나 이를 시정해 나가면 된다고 믿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경술년 새해를 맞이하여 나는 각자 가정에서, 직장에서, 전방과 후방에서 소임 완수를 위해서 힘써 오신 국민 여러분의 구년의 노고에 대해 치하하면서 이 새해에는 「우리 모두 더욱 건강하고, 더욱 명랑한 기분으로 싸우며 건설하는 민족적 대열에 다함께 참여해서, 보다 알차게 전진합시다」하는 부탁의 말씀으로써 신년사에 대하는 바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가정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해 마지 않습니다.

 

1971년 신년사 중단없는 전진의 해

 

애하는 국민 여러분!

한 해가 또 가고 71년의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나는 먼저 국내의 동포 여러분들의 가정마다 새해의 희망과 기쁨이 넘치고 하느님의 축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면서, 이 한 해가 민족의 중훙을 위하여 다시 한번 거보 전진하는 역사적인 1년이 될 것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축원하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금년은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준비의 해인 동시에 민주 한국의 빛나는 전통을 세워야 할 선거의 해이며, 우리의 국가안보상 중대한 시련이 예상되는 해라는 점에서 실로 국운을 좌우할 중차대한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나는 이 어려운 한 해를 우리들의 새로운 각오와 가일층의 분발로 보람있게 넘김으로써 중흥을 향한 민족적 전진의 도정 위에 또 하나의 영광된 기록을 남길 것을 다짐하면서 새해를 맞는 나의 소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경제 개발을 촉진하여 하루속히 조국을 근대화하고, 자주와 자립과 번영의 토대 위에서 평화적으로 국토 통일을 성취하자는 것은 우리 세대의 지상 과제인 동시에 우리들의 뚜렷한 전진 목표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향한 전진에 있어서 우리는 기왕에도 국내외로부터 여러 가지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만, 우리의 전진이 줄기차면 줄기찰수록 앞으로 우리에게는 더욱 큰 시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련의 징후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의 새로운 움직임 속에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중공은 점증하는 국제적 비중을 배경으로 그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으며, 소련은 전통적인 극동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고 미국은 불개입 원칙의 정책 기조에 따라 아시아에서 점차 물러서려 하고 있는 등, 심상치 않은 변화의 물결이 우리들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가상 적국들이 「이 지역에 힘의 진공 상태가 생겼고, 공산 세력이 자유 진영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힘의 우위의 입장에 올라섰다」고 그릇 판단하기 쉬운 소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국가 안보에 일대 시련을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모든 전쟁 준비를 완료하고 초조하게 무력 적화 통일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북괴가 이러한 정세를 오판한 나머지 또다시 6 · 25동란과 같은 참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올해부터 앞으로 2, 3년간이 국가 안보상 중대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시기가 결코 위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할 하나의 시련이며, 이 정도의 시련은 우리의 자주적인 노력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힘, 즉 국력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국력이 약하면 나라가 기울고, 나라가 일어서려면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은 흥망 성쇠의 기복이 무상했던 인류 역사의 산 교훈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이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어제의 적국을 오늘의 우방으로 삼고, 피도 눈물도 없는 적자 생존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냉혹한 생존 경쟁의 시대에 있어서는 힘없는 민족은 세계 무대에서 영원히 낙오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의 이 시련을 극복하는 데는 우방의 지원이나 협력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굳센 결의와 분발과 단결이며, 피와 땀을 흘려가며 국력을 기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60만 국군을 보다 정예화하고 250만 향토 예비군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해야 하겠으며, 우방과는 동맹 외교를 추구하고, 중립국과는 유대 외교를 강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적성국이 아닌 공산 국가와도 실리 외교를 전개하여 되도록 많은 국가를 우리 우호 세력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평화를 지향하는 국방 외교 면의 노력과 함께 경제 건설에 더욱더 힘써 나가야 합니다. 경제 건설은 바로 국력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앞으로 민주 체제와 공산 체제의 대결은 정면적인 무력 대결의 차원을 넘어서 번영과 복지를 앞세우는 <개발 경쟁>에서 그 승패가 판가름 될 것임을 생각할 때, 성공의 첩경은 바로 경제 건설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10년 성장의 경험과 성과를 토대로, 완전 자립경제 건설을 위하여 고도 성장을 지속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경제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여 수출을 계속 증대시키고 중화학 공업의 육성으로 산업 구조를 빠른 속도로 고도화 시켜 나갈 것입니다.
고속 도로망을 완성하고 4대강 유역의 개발에 착수하여 지역발전과 지방 도시의 개발에 더욱 힘 쓸 것이며, 전국의 1일 생활권을 실현시킬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경제력을 농어촌의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단계에 왔습니다. 식량 증산과 농어민의 소득 증대 사업, 그리고 농어촌 생활 환경의 개선을 위한 정부의 참여는 보다 활발해질 것입니다.
한편, 민간 기업으로 하여금 개발의 주역을 담당할 수 있도록 그 체질을 능동적으로 개선 강화하는 노력을 권장 지원할 것이며, 물가의 안정과 소비자 보호 시책을 더욱 강화하고, <성실하고 근면한 자에게 노력의 대가가 돌아가는> 경제 질서가 확립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우수한 인적자원과 기술을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우방과의 경제 협력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우리의 국력이 중진국 수준을 넘어서고, 경제적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고, 굳건한 생활 기반이 확립되는 날을 내다보면서 나는 나 나름대로의 정열과 기대를 가지고 민족 문화의 융성을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나는 최근 우리의 주변에서 <문화 한국>의 토대가 착실히 구축되어 가고 있고, 새로운 전통의 수립을 위한 국민의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힘찬 기운을 뚜렷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체육분야에 있어서도 국민 개개인의 뛰어난 능력과 재질이 비상하게 개발되어 가고 있고, 예술 활동에 있어서도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인 예지가 자랑스런 선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우아하게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퇴영적인 누습과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의 개혁을 박력있게 실천하면서 일찍이 우리의 선조들이 화려하게 이룩했던 문예부흥을 다시 일으키고, 민족의 자질을 더욱 알차게 개발하여, 홍익인간의 이념과 화랑도의 정신을 이어받은 문화 민족의 긍지와 명예를 더욱 드높여 나가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국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경제적 자립과 국민 복지를 실현하며, 민족 문화의 개화를 꾀하여 대망의 조국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려는 우리의 역사적 대과업은 이미 줄기찬 전진의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들이 오직 새로운 각오로 일치 단결해서 더욱 더 분발하는 일입니다.

혼란이 없는 안정 속에 중단 없는 전진을 거듭하는 것만이 시련극복의 첩경이며, 민족의 활로입니다.
우리의 국력을 생산 그것에 직결시키고, 우리의 생활 태도와 관습을 생산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사회 기풍을 더욱 진작시켜 중흥 과업에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우리는 금년에 실시하게 될 두 차례의 선거를 질서 있는 분위기 속에서 치러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몇 개월 후에 있을 이번 선거는 어느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보다, 또는 어느 정당의 승리나 패배보다도 우리 국민의 정치적 성장도를 중외에 과시하는 민주 한국의 승리로 매듭지어야겠습니다.

나는 우리들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 함으로써, 금년의 선거야말로 4반세기의 헌정사 위에 빛나는 금자탑을 세우는 역사적 계기가 되도록 국민 여러분과 함께 다짐하는 바입니다.

그리하여 이 한 해야말로 조국 근대화의 민주적 기반이 반석 위에 올라섰다는 벅찬 환희를 안고 모두가 민족 중흥의 찬가를 우렁차게 합창하는 「중단없는 전진의 해」가 되게 합시다.

끝으로 지난해에도 그 전과 다름없이 일면 건설, 일면 국방의 민족적 대오에 함께 나서서 맡은바 직분에 충실해 주신 국민 여러분의 그간의 노고에 대해 심심한 치하의 말씀을 드리면서, 거듭 새해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부디 복 많이 받으십시오.

 

1972년 신년사 총력 안보의 해

 

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우리는 오늘 국가 비상 사태 하에서 조국의 영광된 새 역사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야겠다는 굳은 결의의 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나는 그 어느 해보다도 뜻깊은 이 새해를 맞아 그 동안 각자가 맡은 바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민족의 위대한 전진에 흔연히 참여해 온 국내외 동포 여러분과 또한 북녘 하늘 아래서 자유의 물결을 목마르게 기다려 온 북한 동포 여러분에게 이 해도 보다 다복하고 더욱 보람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의 조국과 민족의 앞날에 평화 통일의 영광이 하루속히 깃들도록 국민 여러분과 함께 기원하는 바입니다.

나는 이 새 아침을 맞아 우리가 그간 걸어 온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서, 온 국민의 힘찬 전진을 위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민족의 비극인 6·25 동란이 종전 아닌 휴전으로 끝을 맺고, 우리에게 평화와 통일 대신 긴장과 분단을 강요한 이래 그 비극은 더욱더 커지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농토를 기름지게 하고, 공장을 세우면서 평화롭고 복된 생활의 터전을 가꾸고 있을 때, 북괴는 불행하게도 총을 만들고 박격포를 만들고 전차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선거를 통해 국정을 서로 의논하는 민주 제도를 익혀 나가고 있을 때, 북괴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거듭하고, 개인의 우상 숭배로 광신적인 공산 독재 체제를 굳혀 놓았습니다.

우리가 비록 남북으로 흩어져 있을망정, 서로가 아끼고 사랑하는 동포임을 강조하면서 평화 통일의 길을 넓히며 다져나가고 있을 때, 북괴는 순수한 민족애와 고귀한 동포 의식을 포악한 공산주의로 짓밟고 평화 통일이라는 민족의 과업을 이른바 <인민 해방 전쟁>의 이용물로 삼아 적화 통일의 기회만을 노려 왔습니다.

북괴는 무력 남침의 야욕을 포기하라는 우리의 거듭된 요구를 이처럼 외면하고, 오히려 침략적인 전쟁 준비로 시종하여 왔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이렇듯 변하는 세계 속에서 오직 변하지 않고 있는 북괴와 대결하여 우리가 새해에 들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북괴의 침략을 미연에 방지하고, 이 땅위에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며, 평화로운 가운데 높은 경제 성장을 계속하여 우리 모두가 땀흘려 일한 만큼 응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복지 사회의 기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새해부터 민주 제도의 자율과 능률을 더욱 드높여, 모든 국력을 적시 적소에 즉각 총동원할 수 있는 만전의 비상 체제를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지난 십수년 동안 땀흘려 노력한 보람이 있어 민족의 저력은 크게 배양되었으며, 이 저력을 바탕으로 하여 민족의 긍지와 자신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저력은 아직도 흩어져 있으며, 우리의 자신은 아직도 행동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력이 아무리 배양되었다 하더라도 그 저력이 한데 뭉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말보다 실천을 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이 국민 교육 헌장에서 다짐한 그대로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때」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나는 흩어진 저력을 한시 바삐 총집결 시켜, 국가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자주 · 자립 · 자위의 정신으로 비상 체제를 확립하여 경제력을 더욱 증강시키고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는데 앞장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제 정세의 변화와 북괴의 남침 야욕으로부터 오는 이중의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평화와 번영과 사회 정의가 더욱더 구현되는 복된 생활의 터전을 다져 나아갈 것입니다.

밖으로는, 급격히 변하는 국제 정세에 의연하고도 신축성 있게 대처하여 우리의 국가 이익을 최대한으로 신장해 나가는 자주 실리 외교를 전개해 나갈 것이며, 변화하는 국제 조류를 역이용하여 적화 통일과 세계 평화의 길을 넓혀 나갈 것입니다.

안으로는 남북 적십자 회담을 적극 지원하여 북괴를 설득함으로써 새해에는 본 회담을 개최하여 이산 가족들의 인간적 고통을 덜어 주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비록, 북괴의 기만적인 책동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실천 가능한 것부터 착실히 해결해 나아가는 민주 사회의 성실성과 능률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남침 준비를 끝내놓고 평화의 가면 속에서 기습 공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북괴의 도발을 일격에 분쇄할 수 있는 만전의 방위 태세를 확립할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총을 만들고, 국군의 장비를 현대화하며, 전기 전술을 부단히 연마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새해는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난관과 시련이 닥치더라도, 이를 극복하여 3차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종합 제철을 비롯하여 기계 · 조선 · 석유 화학 등 중화학 공업을 크게 일으켜 우리 산업 구조를 근대적인 공업 구조로 전환시켜야 하겠으며, 4대강 유역을 널리 개발하여 농업을 기계화하고 농어민의 소득을 증대시켜, 그 동안 땀흘려 고생해 온 우리 농어민들이 한시 바삐 문화 생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입니다.

과학 기술의 연구 활동을 본격화하여 근대 산업 국가로서의 발전을 뒷받침할 기능을 적극 개발하고, 민족 문화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찬란한 민족 문화의 중흥을 이룩해야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은 몇몇 사람이나 어느 한 계층의 힘만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여야를 초월하고, 직업과 세대의 구별없이 일치 단결하여 강인한 의지력과 진취의 기상으로 이 시련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결의를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성취되는 것입니다.

공무원들은 안일한 관료주의의 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새로이 가다듬어야 하겠으며, 정치인들은 지난 4반세기의 귀중한 경험을 살려 무절제와 비능률을 몰아 내고 민주 제도를 우리의 현실에 알맞게 창조적으로 운용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지성인들은 이상과 현실을 고민 어린 조국애로 조화시켜, 생산하고 실천하는 참된 지성을 발휘해야 하겠으며, 기업인들은 성실과 능률을 바탕으로 삼아 경영의 합리화를 촉진하여 우리 경제의 체질을 더욱 강화하고, 눈앞의 영리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공익을 앞세우는 기업가 정신을 실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모든 국민은 사치와 낭비, 그리고 갖가지 부조리를 깨끗이 추방하고, 근면과 성실로 사회 기강을 바로잡아 근대 시민의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하고 이를 생활화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도전의 세대에 살면서도 건전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희망과 번영을 창조하였다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록해 나아갑시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1972년의 새해를 맞는 오늘, 나는 국민 각자가 내외의 생활영역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면서 조국의 영예를 위해 말없이 꾸준히 노력해 온 지난해의 노고에 다시금 심심한 치하를 드리며, 새해에는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총력 안보의 결의도 드높게 비상 체제 확립을 위해 더욱 힘찬 전진을 계속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1973년 신년사 유신이념 구현

 

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희망과 활기에 가득찬 유신의 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이 아침이 단순히 한 해가 가고 또 하나의 새해를 맞이하는 그러한 평범한 새 아침이 아니라, 번영된 통일조국을 이룩하려는 우리 민족의 보람찬 새 아침이며, 우리 민족사의 새로운 여명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 뜻깊은 유신의 새 아침을 맞이하여,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유신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구국결단에 적극 호응해 온 국내외동포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보내며, 아울러 새해에도 여러분의 가정마다 행복과 기쁨이 넘치고, 보람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새해의 인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972년은 문자 그대로 전진하고 또 전진을 거듭한 보람 있는 한 해였습니다.
우리의 주변정세는 숨조차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변화했으며, 우리들 또한 이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손에 손을 마주잡고 국력배양의 길을 달리고 또 달려 왔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대화의 길을 열었으며, 고질적인 인플레의 악순환을 단절하고 안정된 바탕 위에서 고도성장을 계속하기 위하여 <8 · 3긴급조치>를 강구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민족사에 일대전환점을 가져오기 위해 <10월유신>에 착수하였습니다.
나는 지난해의 모든 일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것이 바로 <10월유신>이었다고 믿습니다.
우리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유신의 결단을 내린 지 2개월만에 우리는 내외에 공약한 그대로 유신질서 위에 민주헌정을 떳떳하게 회복하였습니다.

유신헌법은 전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확정 공포되었으며, 조국의 평화통일을 바라는 민족의 염원은 이제 제도화되어 통일주체국민회의로 발족하였습니다.

지난해의 이 모든 유신과업이 국민 여러분의 절대적인 지지와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순조로이 진척되어 나간 것을 다시 한번 돌이켜볼 때에 나는 새삼스럽게 이 새해 아침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여명이 아닐 수 없다는 느낌을 실감하게 됩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이 새해가 진실로 우리 민족사의 새 아침일진대, 1973년에 우리가 해야 할 과제 또한 크고 무겁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새해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유신과업을 계속 과감하게 수행하여 유신이념을 착실히 구현하고 유신질서를 굳건히 정착시켜 놓아야 하겠습니다.

유신과업은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우리는 지난해에 보였던 그 신념과 그 용기, 그리고 그 단결을 다시 한번 과시하여 유신과업 수행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갑시다. 지난해에는 우리가 순조로이 유신과업에 착수하였습니다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도적 길을 마련한 데 지나지 않았습니다.

새해부터는 마련된 그 길을 따라 유신과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이 유신과업은 국력을 하루속히 증강하여, 작게는 나 자신과 나의 가정이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크게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겨서 민족의 영광을 드높이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유신과업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를 위한 과업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지상과업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저해하고 방해하는 요인이 있다면, 우리는 과감히 이를 제거하고 시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반면에 이 유신이념에 부합되는 모든 요인은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바로 <10월유신>을 계기로 단행해야 할 국정전반에 대한 일대개혁의 기본방향임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부터 정치활동의 재개에 뒤이어서 머지않아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게 됩니다. 나는 이번 국회의원선거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유신의 이념을 구현하여 깨끗하고 돈 안 쓰고 조용하게, 그리고 명랑하게 처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나의 이와 같은 생각은 비단 나 혼자만의 소망이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의 한결같은 열망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다 잘 알고 있듯이, 유신헌법에는 정당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명기된 이 조문은 우리나라의 기본질서가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지난날처럼 자유를 방지한 무질서와 민주를 빙자한 비능률을 그대로 허용하고 용납하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지난날 그와 같은 반유신적 작풍에 젖어 있었던 일부 정치인들도 지금은 유신이념을 체득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며, 또한 국민 모두도 앞으로 정치인들이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는 스스로 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구성되는 국회는 진정으로 국가이익을 생각하고, 국민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참신하고 진실한 민의의 광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국회가 진실하고 원숙해질 때에 비로소 우리나라의 정치도 안정되고, 정치가 안정되어야만 경제도 계속 고도성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안정되고 진실한 정치의 바탕 위에서 새해에도 계속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여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이룩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근면 · 자조 ·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농촌과 도시의 구별 없이 각기 자기의 생활영역에서 발휘하여 농촌에서는 소득증대에, 기업가는 경영합리화에, 그리고 근로자는 생산증강에 각기 전념함으로써 국력배양에 이바지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국민은 땀흘려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근검 · 협동하는 생활기풍 더욱 함양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경제도 크게 발전하여 작게는 개개인의 가계부에서부터 크게는 나라 전체의 살림살이에 이르기까지, 분수에 알맞는 건실한 살림, 남부럽지 않은 떳떳한 살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는 푸른 꿈을,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노후의 희망을 안겨 주는 안정되고 명랑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80년대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풍요한 복지사회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정도라고 믿습니다.
나는 또한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따뜻한 새해의 축복을 나는 보내면서, 북한동포 여러분과 함께 다시 한번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민족의 절실한 염원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는 새해에도 남북간의 대화를 계속 진전시키고 더욱 넓혀서, 서로가 전쟁 없는 평화 속에서 번영과 발전을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부강한 국력과 활달한 기상을 만방에 과시하여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크게 이바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이와 같은 노력은 생활의 터전이 국내에 있건, 또는 해외에 있건을 막론하고 국민 모두가 긍지와 자신을 갖고 유신과업을 꾸준히 수행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유신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힘차게 의젓하게 전진합시다.
그리하여, 유신의 이념을 만개케 하고 그 위에 통일조국의 영광을 길이 빛내게 합시다.


나는, 우리 민족사의 새 아침인 오늘 이 유신의 아침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들의 지난해의 노고를 깊이 치하하면서, 새해에도 더욱 다복하고 여러분의 가정마다 행운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1974년 신년사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정신 발휘

 

애하는 동포 여러분!

총화유신의 새 아침은 밝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희망찬 새 아침을 맞이하여, 먼저 국내외동포 여러분에게 따뜻한 새해 인사를 보내면서, 여러분의 가정에 한결같은 기쁨과 행복이 넘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새로운 마음으로 서로 믿고 협동하여, 국민총화로써 조국의 역사 위에 또 하나의 빛나는 금자탑을 세워야 하겠다는 결의를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지난 1년은 우리가 유신과업을 적극 수행함으로써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인 발전의 기록을 이룩한 전진의 한 해였습니다.
수출은 놀라울 만큼 신장하였으며, 새마을 운동의 세찬 고동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습니다.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려는 힘찬 건설의 메아리 소리는 능률을 극대화해 나가면서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또한, 이처럼 뻗어나는 국력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자주국방태세를 강화하고 총력안보태세를 더욱 굳게 다져 놓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국력과 안보태세를 배경으로 하여 <6 · 23평화통일외교정책>을 선언함으로써 긴장완화에 기여하고 평화통일의 현실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 거보를 내딛었습니다.

나는 이처럼 우리가 걸어 온 지난 한 해를 자랑스럽게 돌이켜보면서, 우리 국민의 절대 다수가 <10월유신>만이 우리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 그 슬기와 용기에 대하여 새삼 경의를 표시하는 바입니다.
만일, 국민 여러분들이 그와 같이 슬기롭고 용기 있는 결단으로 유신의 길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비능률과 낭비가 이나마도 제거되지 않았을 것이며, 국력배양은 고사하고 그나마 축적해 놓은 국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겨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이 새해 아침을 맞이하여 지난 1년 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유신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전국의 새마을 지도자와 근로자, 그리고 일선장병들을 비롯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치하를 보내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의 국제정세는 우리가 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주류로 하여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반도에는 불행하게도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은 있어도 아직 평화는 정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을 마치 평화의 정착으로 착각해서는 절대로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같은 착각은 또 하나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되며, 새로운 전쟁의 불씨를 뿌리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중동전쟁이 바로 그 한 실례였으며, <인 · 파전쟁>이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금 북한공산주의자들의 도발행위로 인해 고조되고 있는 서해상의 긴장태세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를 똑바로 직시하고 안보태세를 더욱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작년 말의 세계적인 유류파동은 자원전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으며, 국가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얼마나 무자비한가 하는 국제사회의 냉혹성을 한층 더 심각하게 피부로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 같은 내외로부터의 갖가지 도전은 우리 조국의 분단된 현실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욱 더 어려운 시련이 되고 있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외부로부터의 이 같은 도전을 극복하면서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유일체제와 맞서서 한편으로는 대화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발전과 번영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시련과 도전은 지금 우리의 국가적 현실이 그야말로 그 어느 나라와도 비길 수 없는 비상사태 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은 이 모든 시련과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튼튼한 국력의 배양이요, 이 국력의 알찬 조직화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시점에서 유신과업을 중단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북한공산주의자들에게 모든 면에서 우위를 빼앗기고 마는 것이 될 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조국통일의 기회마저도 일실하고 마는 것이 됩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패배를 자초하고, 영원히 세계사의 진운에서 낙후되고 만다는 것을 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는 잠시의 여심이나 촌각의 유예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약간의 불편과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내일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는 이 길을 참고 전진해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평화와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가장 안전하고도 착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월유신>은 결코 한 정권이나 특정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안정과 번영, 그리고 평화통일을 바라는 민족적 염원을 성취하기 위한 민족사적 소명에 의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주저하고 회의를 할 때가 아닙니다. 헌신적으로 참여하고 용기 있게 실천할 때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새해에도 우리 앞에는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많습니다. 이 많은 일들이 결코 손쉬운 일들만은 아닙니다.
국제정세는 우리에게 거센 풍랑을 몰고 올지도 모릅니다. 또한, 북한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발을 가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해의 그 노력과 헌신을 결코 헛되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노력의 열매를 계속 가꾸고, 그 헌신의 보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그와 같은 자신과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자신과 슬기를 새해에는 더욱 알차게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서로 믿고 서로 이해하는 총화체제를 더욱 굳게 다져 나가야 하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유신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리와 착오가 없지도 않았습니다. 정부는 앞으로 국민과 대화를 통해 보다 더 밀접한 일체감을 갖고, 유신체제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면서 이 같은 착오를 시정하는 데 결코 주저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해에도 국력을 계속 착실히 배양해 나가는 데 국민의 각계각층이 자율적으로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화와 번영의 기틀을 굳게 다져 놓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 기틀은 다름 아닌 국력입니다.
우리 모두 국력을 더욱더 착실히 배양해 나가기 위해 다같이 노력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도 발전의 혜택이 고루 돌아 갈 수 있는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나아갑시다.

또한, 우리는 아직도 정돈상태에 있는 남북대화를 하루속히 재개할 수 있도록 북한공산주의자들에게 꾸준한 설득을 계속합시다.
그리하여,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평화통일의 길을 넓혀 나아갑시다.

국민 여러분!

국력배양의 길은 어렵고 때로는 인내가 필요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과업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값진 일이며, 또한 보람찬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근면 · 자조 ·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발휘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각기 자기의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함으로써 유신과업을 더욱 알차게 추진합시다.
특히,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사치와 낭비를 배격하고 유신이념을 성실히 생활화하는 데 솔선수범합시다.
그리하여, 새해를 민족웅비의 발판이 되는 보람찬 총화유신의 한 해가 되게 합시다.

새해 아침을 맞이하여, 조국의 영광과 더불어 국내외동포 여러분의 가정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거듭 축원하면서, 새해 인사에 대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1975년 신년사 유비무환 총력안보태세 구축

 

애하는 오천만 동포 여러분!

나는 새해 아침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기 생업에 충실해 온 여러분의 노고에 대하여 먼저 따뜻한 위로와 정중한 치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새해에도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과 기쁨이 더욱 충만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는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세계 경제의 불황은 우리나라에도 물가고의 파도를 몰고 왔으며, 그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경제성장면에서 후퇴를 겪기까지 했으나, 우리나라는 8%가 넘는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또한 안보면을 보더라도, 북한공산주의자들은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시키고 갖가지 도발을 계속 했습니다. 심지어는 야만적인 8 · 15저격사건을 일으켰는가 하면,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지하 터널을 파내려오는 등, 무력남침의 야욕을 또다시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남북불가침협정체결을 제의하고, 평화통일 삼대기본원칙을 제시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성실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습니다.
우리의 이 같은 평화노력에 대하여 국제사회가 절대적인 지지와 찬사를 보내준 데 대하여 나는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오직 북한공산주의자들만은 우리의 평화정착에 대하여 찬성은 고사하고 도리어 비인도적이며 야수적인 행동으로 대해 왔던 것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이 새해도 결코 수월한 한 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난해에 못지않게 국가의 안전보장면에서나 또는 국제경제의 측면에서나 다같이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왜냐하면, 북한공산주의자들은 아직도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새해에도 군사적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 경제 · 사회 · 각 분야에 걸쳐서 계속 우리에게 각종 도발과 음모를 획책해 올 것이 명백합니다.

또한, 세계적인 경제불황은 당분간 더 계속될 것으로 보아야 하며, 작금의 세계적인 자원난현상은 앞으로 국제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긴장을 조성할 우려마저 엿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외정세로 미루어 볼 때 새해는 실로 커다란 난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국민 여러분과 같이 새해 인사를 나누는 이 자리에서 굳이 듣기 좋은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우리 조국이 당면하고 있는, 아니 우리 인류전체가 당면하고 있는 이 난국을 직시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이 과연 무엇인가를 똑똑히 알고 우리 모두가 이를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 조상은 과거에 수많은 난국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 자신이 그와 같은 커다란 난국에 처해 있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 난국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몇 가지 나의 소신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의 안전보장을 더욱 공고히 다져나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기본권을 확고히 수호해 나갈 것입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난국을 내다보면서도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과 당쟁 때문에 국가안보를 소홀히 하여 급기야는 민족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작금의 일부동태로 미루어 볼 때, 근본적인 사태는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하는 우려마저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중대 시국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국론의 분열만을 일삼게 된다면, 국가의 안전보장은 또다시 정권투쟁의 제물이 되어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재침을 자초하는 비극을 낳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사에 또 하나의 오점을 남겨 우리는 후손들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우를 또다시 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국가안보를 정쟁의 제물로 삼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직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총력안보의 태세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정부는 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도 국민 생활의 안정기조를 굳건히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는 우리 모두가 다같이 합심 협력하여 보다 더 많이 땀흘리고, 보다더 많이 노력해서 하나라도 더 많이 생산하고, 하나라도 더 많이 절약하여 국력배양을 가속화해 나가는 데 헌신할 것을 당부하고자 합니다.

셋째로, 정부는 국민정신의 진작과 국민윤리의 확립으로 국민총화를 더욱 공고히 다져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설사 우리의 살림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서로 돕고 서로 믿으면서, 기쁨과 어려움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존공영의 사회풍토를 만들어 나가는데 다같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정부는 새해에도 모든 국민의 절대적인 협조 속에 안정과 번영,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시책을 다각적으로 계속 추구해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이, 그리고 국민 각자가 너와 나의 구별 없이 서로 합심 협력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올해가 아무리 어려운 해가 될지라도 우리는 이를 능히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새해는 유신 제3차년도인 동시에 우리 겨레가 외세의 압박에서 해방되어 독립을 이룩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나는, 이 뜻깊은 새해를 우리가 올바로 맞이하는 길은 국력을 알차게 배양하며 명실공히 자주독립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국력은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게 우리의 발신권을 행사하고, 인류의 발전을 위한 국제협조에 기여하기 위해서도 국력의 뒷받침은 절대 불가결한 것입니다.

또한, 한반도에서 전쟁 도발을 미연에 방지하고 조국의 평화 통일을 이룩하며,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기하기 위해서도 국력의 배양은 초미의 과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살길은 오직 국민 모두가 유신이념으로 굳게 뭉쳐서 근면 · 자조 ·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철저히 생활화함으로써 국력배양을 가속화해 나가는 것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두는 바입니다.

국력배양은 먼저 정치 · 경제 · 사회 등 우리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낭비와 비능률을 추방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계의 지도층은 사치와 안일한 생활태도를 배격하고, 검약과 근면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기풍을 만드는 데 솔선수범해야 하겠습니다.

공무원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로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국민총화의 향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각계각층의 모든 국민들이 다 함께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 나갈 때, 새해는 난국을 극복하고 민족중흥의 기틀을 다지는 보람찬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나는, 새해를 맞이하여 다시 한번 지난 한 해 동안 동포 여러분이 각기 자기의 직분에 말없이 최선을 다해 오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새해에도 부디 복 많이 받으시고, 여러분의 가정마다 행복과 발전이 더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1976년 신년사 증산절약 · 자조자립

 

애하는 내외동포 여러분!

이제 병진년의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나는 희망과 의욕에 찬 새아침을 맞이하여 먼저 동포 여러분의 가정마다 만복이 깃들고 매사에 커다란 발전이 있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면서 축복의 새해 인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는 광복30주년이란 뜻깊은 한 해였습니다.

인도지나 반도에서는 수 개의 국가가 공산화됨으로써 동남아에서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의 세력균형은 크게 변하였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이 같은 충격적인 사태에 편승하여 무모한 불장난을 또다시 저지르고자 했으며 그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긴장이 급격히 고조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경제불황은 예외 없이 우리나라에도 그 영향을 미쳐서 우리 국민생활에 여러 가지 불편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

북한공산집단의 억압과 학정을 6 · 25동란 당시 한때나마 체험하고 목격했던 우리 국민들은 인도지나반도 사태에 자극받고 더욱 분발하여 총력안보태세를 한층 확고히 가다듬고 철통같이 단결하여 자주국방태세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진전을 보였습니다.

또한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땀흘려 일한 보람이 있어 농촌생활은 향상되고 몰라보리만큼 크게 변모하였으며 그 결과 유례없는 대풍을 거두어 주곡자급을 한 해 앞당겨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중화학공업을 계속 건설해 냈고 45억불을 넘는 수출실적을 거두었으며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정체 속에서 맴돌고 있었으나 우리만은 8.3%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국력은 과거 5년 전에 비하면 무려 2배로 대폭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북한측의 일방적 거부로 인하여 남북적십자회담은 그 동안 정체 상태에 빠졌으나 우리는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의 방한을 맞아들임으로써 우리들의 인도적 문제해결에 있어 획기적인 진전을 이룩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갖가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실로 많은 일을 지난 1년에 이룩해 놓았습니다.

이는 오로지 국민 여러분이 뜨거운 애국심으로 유신이념을 생활화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면서 불철주야 헌신적으로 노력해 온 결과라 믿고 여러분의 그간의 노고에 대하여 나는 다시 한 번 충심으로 위로와 치하를 보내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새해에도 우리 앞에는 작년 못지 않게 많은 시련이 닥쳐올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련과 도전이 중첩되어 있다 해도 평화와 발전과 번영을 위한 우리의 발걸음을 한시라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시련이 겹치면 겹칠수록 우리에게는 더 많은 용기와 슬기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저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경제발전을 촉진하여 분단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고 나아가서는 아시아와 세계평화, 그리고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려는 우리의 염원과 노력을 새해에도 계속 힘차게 추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민족중흥을 위한 우리의 위대한 전진이요 또한 우리 세대에 부여된 사명입니다.
그러나 북한 공산집단은 침략적 도발과 거짓 선전 그리고 중상모략으로 우리의 이 전진을 극렬히 방해하려 들것입니다.
국제경제는 앞으로 호전될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불황의 후유증은 당분간 더 계속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증산과 절약을 통해 자조, 자립체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자립하려면 그 기본은 다름 아닌 국력의 배양입니다.
국력이 막강하게 배양될 때 비로소 평화와 발전과 번영을 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오늘 새해 아침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국력배양을 위한 국민 여러분의 헌신적인 협조를 당부하면서 우리 모두의 실천적 생활지표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새해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고 제4차 5개년 계획을 준비하는 중요한 해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3차에 걸쳐서 성공적으로 추진해 온 경제개발계획의 목표도 다름 아닌 자립체제를 완성키 위한 것이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각 분야에서 낭비를 배격하고 능률을 더욱 극대화해서 국력배양을 가속화하여 자립체제의 달성을 앞당겨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맡은바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고 정부와 기업과 근로자가 혼연일체가 되어서 근면, 협동으로 증산을 기하고 자조, 검약으로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할 때 국력은 막강하게 배양되고 그 국력 속에서 우리 모두가 건실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침략주의자들의 재침망상을 단호히 분쇄하고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북한측의 일방적인 거부로 말미암아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대화를 조속히 정상화시키기 위해 새해에도 계속최선의 노력으로 북한측을 설득해야 하겠습니다.

남북대화의 진전이야말로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고 상호신뢰를 회복하여 평화를 정착시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첩경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실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는 기본방침에 따라서 새해에도 계속해서 조총련계 재외동포들의 방문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나날이 발전하는 조국의 품에 안길 수 있게 하고 성묘와 부모 형제 친지들과의 상면을 통해 잃었던 동포애를 되찾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에 따라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길을 넓히기 위해 새해에도 계속 인내심을 갖고 성실히 노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새해에도 우리가 해야할 일은 산적해 있으며 부여된 사명 또한 무겁습니다.
우리 모두 유신 제4차 년인 새해를 자립을 위한 도약과 긍지의 해로 삼고 서로 믿고 서로 돕는 견실하고 명랑한 사회기풍 속에서 국력배양을 위해 힘차게 매진합시다.
그리하여 하루 속히 자조, 자립체제를 성취하여 우리 모두가 건전하고도 번영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합시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는 격언이 있듯이 스스로 자조하는 국민에게는 반드시 하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민족중흥의 빛나는 새 역사를 우리 스스로의 창조해 나가는 영예로운 유신의 기수가 될 것을 오늘 이 새 아침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합시다.

그리고 공산학정과 우상숭배의 질곡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북한동포들에게 우리 모두 따듯한 새해의 축복을 보냅시다.
또한 조국의 발전 속에서 스스로의 기쁨을 찾고자 자기발전을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해외동포들에게 우리 다 같이 그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새해 인사를 보냅시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이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참아가면서 묵묵히 자기 직분에 충실해 온 노고에 대하여 위로와 치하를 보내면서 새해에도 부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1977년 신년사 수출 100억불 달성의 희망과 결의

 

애하는 국내외동포 여러분!

의욕과 보람으로 땀흘려 일했던 병진년을 보내고 이제 희망찬 1977년의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나는 먼저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훌륭히 이겨내고 국방과 경제 및 정신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애써 일해 온 국민 여러분의 노고를 높이 치하하면서, 따뜻한 새해 인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또한, 멀리 해외에서 생업에 열중하며 국위선양에 기여하고 있는 동포들과, 중동지역을 비롯 세계 도처에 이바지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 기술자, 수출역군, 그리고 원양어업 종사원들에 대해서는 나는 온 국민과 더불어 충심으로 격려와 축복의 새해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어느 해보다도 보람과 기쁨이 충만했던 한 해였습니다.
우리는 자원파동에서 비롯한 세계경제의 악조건과 싸워 이를 극복하고 격렬한 국제경쟁에 도전해 나섰으며, 주변국가들을 비롯한 국제정세의 변동 속에서도 안정과 성장의 길을 착실히 걸어 왔습니다.
한편, 여전히 대남 무력적화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공산주의자들은 극악무도한 살인만행을 저질러 일촉즉발의 긴장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시련 도전을 우리는 도리어 분발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온 국민이 근면 · 자조 · 협동의 정신으로 굳게 뭉쳐 건설과 국방에 매진해 왔습니다.

또한, 우리는 지난해의 극심했던 한 · 수해를 극복해 냈을 뿐 아니라, 일찍이 없었던 대풍의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온 국민이 쉬지 않고 박차를 가해 온 새마을 운동의 성과는, 이제 우리의 생활환경을 몰라보게 바꾸어 놓았으며, 도시와 농촌이 고루 근대적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지난해에 우리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리에 마무리지음으로써 전국 곳곳에 거창한 국토개조사업들이 이루어졌으며, 중화학공업도 크게 확충되고 내실화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작년 목표를 훨씬 웃도는 80억불 수출을 달성하여 연간 50%라는 경이적인 수출신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영산강유역 4개 댐과 안동 다목적 댐 건설 등, 국토개조의 근간이 되는 4대강유역개발의 대역사가 착착 준공되고, 또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물량면의 발전 못지 않게 정신문화의 창조적 개발에도 역점을 두어, 조상들의 슬기와 얼이 담긴 전통문화유산을 알뜰히 보살펴 가꾸어, 올바른 국가관과 투철한 애국심함양을 국민교육의 근간으로 삼아 자주국방의 긍지를 드높여 왔습니다.

이처럼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헤치면서 안정과 성장의 줄기찬 전진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 모든 자랑스러운 성과는 온 국민이 뜨거운 애국심으로 유신이념을 각자의 생활 속에 실천해 온 노력의 결실이라고 확신하면서, 국민 여러분의 노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위로와 치하를 보내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밝아오는 새해에도 우리는 계속 많은 일들을 해야 하겠고, 이에 따르는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난관이나 시련이 닥쳐온다 해도 날로 심해지는 국제경쟁을 뚫고 꿋꿋이 민족의 자존과 나라의 자주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야 할 시대적 사명을 우리는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힘에 겨운 전쟁 준비와 경제파탄으로 북한동포들을 굶주림 속에 몰아놓고 있는 북한전범집단이 우리 국력의 급속성장에 충격과 초조를 가누지 못하여 발악적인 불장난을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냉혹한 내외정세 속에서 우리는 지금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제1차 년도를 맞이할 것입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경제개발의 목표는 국력을 알차게 길러 국가를 튼튼히 보위하고, 이 땅에 민족정기와 사회정의가 바로 선 번영과 중흥의 신기원을 이룩하자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새해에 중화학공업의 확충과 농촌근대화에 더욱 힘써서, 당초의 목표를 4년이나 앞당겨 수출 100억불을 달성하겠다는 희망과 결의에 차 있습니다.

조국근대화의 획기점이 될 제4차 5개년계획의 첫 해를 훌륭히 장식하고, 자주 · 자립의 굳건한 기반을 하루 속히 앞당기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새해에는 자주국방의 확고한 기반 구축을 위하여, 국군정예화와 장비현대화를 촉진하고 방위산업육성에 박차를 가할 뿐 아니라, 전후방을 막론하고 범국민적 총력안보태세를 더욱 굳게 다져야 하겠습니다.
한편, 막강한 국력배양을 바탕으로 5천만 동포의 염원인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남북대화의 정상화에도 꾸준히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하겠으며, 북한측이 <7 · 4 남북공동성명>의 기본정신에 따라 하루속히 대화의 광장에 나와서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성의를 보이도록 거듭 촉구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새해에도 우리는 순수한 동포애로써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모국방문을 따뜻하게 맞아들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이념이나 체제를 달리하는 나라들에 대해서도 호혜평등의 원칙 아래 문호를 개방하고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상투적 계략선전을 분쇄하며, 온 세계에 우리의 평화의지와 발전상을 주지시키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금년에도 우리가 힘들여 이룩해야 할 과업은 수없이 많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든 국민이 새마을 정신과 유신이념을 생활화하는 데 더욱 힘써서, 낭비와 부조리를 몰아내고 근검절약하는 기풍을 진작하며 사회기강을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건전한 국민정신과 건실한 사회기강이야말로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을 앞당기는 원동력입니다.

국민 여러분!

부지런한 국민만이 번영할 수 있으며, 의욕과 용기와 신념으로 행동하는 민족이라야 난국을 극복하고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수많은 국난을 극복하면서 오천년의 유구한 민족사를 가꾸어 온 이 강토 위에 중흥의 금자탑을 굳건히 쌓아 올리는 일이야말로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고 확신합니다.
되풀이 강조하거니와, 우리의 안전을 지키고 번영을 이룩하는 책임은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새해 아침에 다시 한번 깊이 명심합시다.

우리 모두 대망의 고도산업국가 실현을 눈앞에 바라보며, 후손과 역사를 생각하는 책임감으로 힘을 모아 일하고, 또 일하는 민족의 위대한 전통을 창조합시다.
새해에도 국민 여러분의 가정마다 행복과 성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1978년 신년사 자립경제 자주국방 달성

 

애하는 국내외동포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람 있게 보내고 이제 1978년의 희망찬 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국가발전에 훌륭한 성과를 낳은 국민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따뜻한 새해 인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그리고 조국을 떠나 먼 타국에서 국위선양에 기여하고 있는 해외동포 여러분과 중동지역을 비롯 세계 여러 나라에 진출하여 우리 민족의 자질과 기상을 떨치고 있는 건설역군과 기술진, 그리고 수출요원과 원양어업 종사원들에 대하여 나는 온 국민과 더불어 충심으로 위로와 축복의 새해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겪었으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알찬 수확을 거둔 한 해였습니다.

불안정한 주변정세와 국제경제면의 배전(排戰) 등 난관을 뚫고 우리는 안정 속에 성장의 발걸음을 재촉했고 괄목할 전기를 이룩했습니다.
또한 지난해는 극심한 한수해(旱水害)와 이리, 장성지역의 사고, 그리고 동해어장침몰사건 등 가슴 아픈 재해가 겹친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국민은 불의의 재난에 의연하고 민첩하게 대처하였고 따뜻한 동포애로 사후수습에 서로 발벗고 나서는 등, 그야말로 국민적 일체감과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음은 지극히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발(旱魃)은 있으나 한해(旱害)는 없다는 결의로써 우리는 단보(段步)당 수확 평균 494킬로그램이라는 세계최고기록을 세워 쌀 4천170만 섬의 기록적 대풍을 거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땀흘려 일한 보람으로 민족중흥의 창업도정(創業道程)에 획기적 이정표가 될 100억불 수출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해이기도 합니다.
수출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중화학공업은 지난 한 해 동안에 크게 확충되었으며, 고리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됨으로써 우리나라도 마침내 원자력시대의 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하여 한민족의 굳센 기상을 온 세계에 자랑했던 일이나,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기능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고, 각종 국제운동경기에 출전해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일 등은 세계무대를 향하여 힘차게 뻗어나가는 우리 국력의 상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밖에도 우리는 조상의 슬기와 얼이 담긴 각종 문화재와 유적지 등을 대대적으로 보수 복원하여 자주정신을 함양하는 국민정신교육도장으로 삼는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한편, 산업발전에 따르는 자연환경의 단손(段損)이나 오염을 막고자 온 국민이 자연보호운동을 자발적으로 벌였고, 거센 산업화추세 속에서 자칫하면 잃어버리기 쉬운 국민도의와 미풍양속을 보전하고자 새마음갖기운동에 앞장서서 착실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근면 · 자조 · 협동의 실천철학으로 꾸준히 전개해 온 새마을 운동은 이제 국민생활 각 분야에서 뿌리를 내렸으며, 우리의 의식구조와 생활환경은 도시와 농촌을 가릴 것 없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물량적 발전뿐만 아니라, 정신문화면에서도 전진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각계 각층의 국민 여러분이 그 동안 유신적 가치관을 생활신조로 삼아 맡은 바 직분에서 성실히 실천 노력해 온 보람이라 믿고 그 노고에 대하여 다시 한번 따뜻한 위로와 치하를 보내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새해는 정부수립 제30수년이자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2차 년도로서, 1인당 국민총생산 1천불 달성을 기약하는 의욕의 해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주민족의 긍지와 자신을 더욱 드높여 자립경제와 자주국방 달성에 박차를 가해 나가는 해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가 평온 속에 살고 있다 해도 향상 불의의 사태에 대처할 결의와 대비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위난(危難)을 미연에 막고 우리의 끝없는 전진을 스스로 굳게 보장하는 요체(要諦)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겨레의 절실한 염원은 끝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평화와 번영을 굳건히 지키고 다질 힘을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와 번영, 그리고 궁극적으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향한 선의의 경쟁에 북한공산주의자들이 필경 응해 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이미 그들을 앞지르고 있는 국력배양의 진군을 더욱 재촉해 나가야만 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는 민족중흥의 중간 목표인 번영된 복지사회 건설에 또 한발짝 다가섰습니다.
오직 부강한 새 조국건설의 염원으로 그 동안 우리는 중첩된 난관을 용감히 헤쳐 왔으며, 긍지와 자신을 되찾은 우리의 앞길에는 그 어떤 시련도 배전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세대가 흘린 고귀한 피와 땀은 기필코 자손만대에 값진 유산으로 남을 것이며, 그 터전 위에 한민족의 새 역사는 밝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서는 새 역사창조의 우렁찬 전진, 또 전진이 있을 뿐입니다.

무오년 새 아침에 국민 여러분의 가정마다 만복이 깃들어 고루 소원이 성취되는 보람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1979년 신년사 민족 중흥의 분수령

 

애하는 국내외 동포 여러분!

희망과 의욕에 찬 1979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나는 새해에도 동포 여러분의 가정마다 발전과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하면서, 따뜻한 새해 인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아울러 새해에는 겨레의 숙원인 평화적 조국 통일 성취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 착실한 진전이 있을 것을 온 국민과 더불어 염원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돌이켜보면 지난 1년은 어느 해 못지 않게 많은 변화와 어려움이 있었지마는 우리는 이에 의연하게 대처하여 국가 발전에 뚜렷한 전진을 이룩한 보람찬 한 해였습니다.
주변 정세는 열강의 새로운 움직임과 더불어 매우 유동적인 변화 양상을 보였으며, 국제 경제면에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휴전선에서는 북한 공산 집단의 남침용 제 3땅굴이 또 발견되어 그들의 무력 적화 야욕이 다시 한번 백일하에 폭로되었습니다.
이처럼 착잡하고 긴장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지난해에 통일 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국회 의원 총선거 등을 평온하고 공명한 분위기 속에서 훌륭히 마쳤습니다.

이것은 우리 국민들의 투철한 시국관으로 총화 유신의 대열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증거로써 건전한 참정 의식과 민주 역량을 다시 한번 내외에 과시한 것이라고 믿어 매우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작년에 원자력 발전소와 포항 종합 제철 제3기 설비를 준공하는 등 중화학 공업에 괄목할 발전을 이루었고, 수출 목표 125억불을 무난히 돌파하여 대망의 80년대에 실현하게 될 고도 산업 국가의 기반을 더욱 튼튼히 다졌습니다.

신장 일로에 있는 우리의 국력은 비단 물량면에서 뿐만 나이라, 정신 문화면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을 개설하여 전통 문화의 계승과 창조적 개발을 위한 진일보한 기틀을 마련하였고 각종 호국 문화 유적의 복원과 보전에 힘쓰는 한편 충효 사상을 고취하고 새마을 · 새마음 운동과 자연 보호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하여 격조 높은 정신 문화 선양에 힘을 모았습니다.

한수해 등 어려움이 닥쳤을 때나 세모를 당하여 각계 각층에서 자발적으로 보여 준 이웃돕기의 훈훈한 정경은 문화 국민의 높은 도의심을 입증하고도 남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국가 안보면에서도 한 · 미 연합군 사령부의 창설로 평화 수호 역량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일취월장하는 우리의 방위 산업은 마침내 국산 장거리 유도탄 개발의 성공을 가져와 철통같은 자주 국방 태세 구축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우리 젊은이들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 기능 올림픽과 세계 사격 선수권 대회, 그리고 최근 태국에서 있었던 제 8회 아시아 경기 대회 등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는 등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약진하는 민족의 기상과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흐뭇한 성과들은 우리 모든 국민들이 투철한 국가관과 유신 이념으로 굳게 뭉쳐 각기 맡은 바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온 땀의 결정으로서 다시 한번 그 노고에 대하여 심심한 치하를 보내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새해는 약진의 70년대를 마무리하고 민족의 웅비를 기약하는 대망의 80년대에 대비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할 해입니다.
만난을 헤치며 꾸준히 고도 성장을 지속해 온 지난날을 차분히 되돌아보면서, 내일의 도약을 위하여 우리는 금년을 또 다시 값진 한해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세대가 굳세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유구한 민족하에서 볼 때 새 역사 창조의 천재일우의 기회요, 민족 중흥의 분수령입니다.

따라서 각계 각층의 국민 모두가 한 사람도 뒤지는 일 없이 국가 건설에 기꺼이 참여하고 다 함께 땀 흘려 일하는데서 시대적 사명을 느끼고 보람을 찾아 풍요한 고도 산업 사회 속에 인정과 의리가 넘치는 복지 사회를 기필코 건설해야 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보람찬 미래는 의지와 땀으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신과 긍지가 있습니다.
원대한 이상이 있습니다.

어떠한 난관도 슬기롭게 극복하고 우리 모두의 이상을 착실히 구현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밝아 오는 새해, 가일층의 분발과 정진을 약속하면서, 고국을 멀리 떠나 이역 만리에서 국위 선양에 헌신하고 있는 동포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새해 인사를 보냅니다.
또한 북한 동포들에 대한 따뜻한 기원을 잊지 맙시다.
새해에도 국민 여러분 다같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이 성취되도록 거듭 기원합니다.

 

인권, 민주 모두 다 좋은 말이오.

그러나 참다운 인권과 민주는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에서 나옵니다.

당장 배고파 죽어가는 국민들 앞에서 말장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인권이나 민주는 경제가 해결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두고 보시오.

모든 결실은 나보다 오래 사는 세대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대통령 박정희

 

어떤 사람은 자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큰 잔치를 베풀고

금시 국민을 호강시켜 줄 것 같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 하루 잘 먹고 아흐레 굶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1963년 9월 23일

중앙방송을 통한 정견발표

 

사회의 불의不義를 절차와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시민의 감정으로 시정해 보겠다는 조급성은

또 새로운 불의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967년 6월 16일

제7대 국회의원 총선 처리 특별담화문

 

공무원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또 듣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해결해 주어야 한다.

 

1968년 3월 7일

전국지방장관회의 유시

 

바르게 알도록 하고, 바르게 판단하도록 하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무거운 책임이 바로 우리 언론에 있다.

 

1967년 4월 5일

신문의 날 치사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5  (0) 2021.03.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4  (0) 2021.03.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2  (0)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1  (0)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0  (0) 2021.03.14
Posted by 드무1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2

 

 

 

문화예술의 기틀을 마련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문화재보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궤도레 오른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1971년 문화예술진흥법과 문예중흥 5개년계획이 수립되면서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는 물론 현대문학과 예술에 대한 진흥책을 제도적으로 추진, 문화 · 예술인들을 위해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 등을 건립하였다. 또한 태권도를 국기國技로 제정하고 세계태권도연맹을 창립,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여 태권도를 활성화시키는데 노력하였다. 그 결과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어 세계인의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88 올림픽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은 1977년부터 구상하고 준비해온 것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1980년대 국내 올림픽 개최를 목표로 국제 규모의 시설 확충을 위해 1979년 4월 서울 종합운동장을 완공하는 등 올림픽 개최를 위한 준비단을 결성하여 추진하였다.

 

천마총을 관람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6(위)

덕수궁 중화전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1968. 5. 4(아래)

 

신안 앞바다 해저 유물 발굴 1976(위)

발굴된 신안 해저유물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1977. 8. 23(아래 왼쪽)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유물들 1975(아래 오른쪽)

 

血盟의 友誼

 

197年 12月 20日

大統領 朴正熙

 

건군 이후 최초의 해외파병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과 월남정부로부터 공식파병 요청을 받았고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심의와 국회 동의를 거쳐 1964년 5월 21일 베트남 파병을 공식화하였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국군의 첫 해외파병인 베트남 파병은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도의적 책임과 정의감의 일환이었고 6 · 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준 16개의 자유우방국에 대한 보답이었다. 1964년 9월 11일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 파견을 시작으로 비둘기부대,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십자성부대, 은마부대, 백구부대가 파병되었다. 이렇게 파병된 국군들은 월남국민을 보호하고 농사지원, 교량 · 학교 · 도로건설, 의료지원 등 적극적인 대민지원으로 '평화의 십자군' 칭호를 받으며 국윌ㄹ 선양하였다.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국군은 미국에 동반자적 위치로 지위가 상승하였고 국내기업들이 베트남에 대거 진출함에 따라 고용증대 효과뿐만 아니라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기술력이 축적되어 일본과 태국 등과도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게 되었고 그 경험들이 이후 중동 진출까지 이어져 국가경제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월남에서 맹호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6. 10. 21(왼쪽)

당시 중앙청 앞에서 거행된 파월 백마부대 환송식 1966. 8. 27(오른쪽)

 

월남에서 맹호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6. 10. 21(오른쪽 위)

월남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을 맞는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 1966. 10. 21(왼쪽 위)

주월 백마부대를 시찰하기 위해 헬기에 탑승한 박정희 대통령 1966. 10. 21(오른쪽 아래)

주월 한국군 부대장병을 격려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6. 10. 21(왼쪽 아래)

 

연도별 국군의 베트남 파병 규모

 

1 · 2차 파병   2,129명

    1964~1965

    이동외과병원 및 태권도 교관단, 비둘기부대(의무 및 공병)

 

3차 파병   18,094명

    1965

    수도사단, 해병여단, 지원부대

 

4차 파병   23,865명

    1966

    제9사단, 수도사단 26연대, 지원부대

 

보충병력   2,963명

    1967

    해병대대, 지원부대

 

증원   12명

    1969

    C-46 승무원

 

주월한국군의 모내기 대민지원 1966(위)

주월한국군 대민지원 1966(아래)

 

자유월남 패망일

대통령의 일기

 

"월남이 무조건 항복하는 과정을 똑똑히 목격했을 줄 압니다.

그동안 월남에서 反정부운동을 하던 인사들이 지금 피난길을 걸으면서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공산군은 처음에는

티우 대통령만 물러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더니 후임인 후옹 대통령도

물러나라고 했고, 그런 뒤 민 대통령이 들어서자 그와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월남의 反정부인사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지금 피난길을 걷고 있으면서

그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있는지 어떤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공산치하에서

그 反정부 인사들이 지금까지 했던 인권과 자유를 달라는 그 주장을

계속할 수 있을 지 주의깊게 지켜봅시다,"

 

1975년 4월 30일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 계속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4  (0) 2021.03.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3  (0) 2021.03.15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1  (0)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0  (0)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9  (0) 2021.03.12
Posted by 드무1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1

 

 

 

대통령의 직책 중에서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이 곧 국가의 안전보장이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도 위임할 수 없으며, 전가轉嫁할 수도 없다.

따라서 국가안보상 위험도의 측정은 전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의무인 것이다.

또한 위험도 측정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적시에 강구하여야 할 책임도

바로 나의 안보상의 1차적 책임일 것이다.

 

1971년 12월 6일

특별 담화문

 

지대지 미사일 '백곰' 개발 성공

1972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ADD에 지대지 미사일 개발을 지시하였다. 기술도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최초의 국산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였다.

'항공공업육성사업'으로 이름 붙인 미사일 개발 사업을 위해 ADD연구원은 물론 육 · 해 · 공군사관학교 교수들이 선발되었고, 이들은 합숙을 하며 밤낮없이 미사일 개발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 1978년 9월 26일, 우리나라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진이 프랑스의 기술지원 아래 개발한 사정거리 180㎞의 지대지 미사일 '백곰'을 발사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세계 일곱 번째 미사일 개발국으로 미사일 개발 7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백곰 개발 과정

 

1970.   8.  6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 대통령령 제 5267 호

1971. 12. 26    박정희 대통령 ADD에 미사일 개발 지시 대통령 친필 메모

1972.  9.   5    미사일 개발 계획안(1차) 청와대 보고

1974.  5.  14    미사일 개발 계획(최종) 대통령 재가

1974. 12.        1단 무 · 유도 로켓(홍릉 1호) 발사 시험 대천 미 육군시험장

1976. 12.  2    미사일 개발을 위한 대전 기계창 창설 대통령 준공식 참석

1977.  9.        안흥 미사일 발사 시험장 완공

1978.  4.  11   미사일 시제품 완성

         4.  29   미사일 1차 시험발사 실패 안흥시험장

         5.   6    미사일 2차 시험발사 실패

         6.   3    미사일 3차 시험발사 성공

         6.   4    미사일 4차 시험발사 성공

         7.  25   미사일 5차 시험발사 실패

         8.  26   미사일 6차 시험발사 성공

         9.   6   미사일 7차 시험발사 실패

         9.  16   미사일 8차 시험발사 성공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참관

         9.  26   미사일 최종 시험발사 성공(대통령 참관) 세계 7번째 미사일 개발국

1979 이후      '백곰'이란 이름으로 생산 후 전력화

 

의료보험제도

우리나라는 1963년 12월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으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였다. 당시 국민들의 경제능력이나 의료실태 등을 고려했을 때 의료료보험제도 도입은 시기상조였으나 장기적 관점 아래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추진되었다. 의료보험제도를 처음 시행할 당시 국민경제를 감안하여 강제가입이 아닌 임의가입으로 인해 의료보험제도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의료비 지출 능력이 향상되면서 1976년 한국식 의료보험제도인 '의료보호법'과 '의료보험법'을 제정 · 시행하게 되었다. 의료보호법 시행으로 혜택을 받는 국민의 수는 7만 명에서 약 210만 명으로 늘어났고, 의료보험법을 강제가입으로 개정하여 그 범위를 단계적으로 전국민에게 확대해 나갔다. 또한 건전한 제도운영을 위해 사용자와 피고용자 간의 균할부담 방식을 채택하였다. 1970년대 정착된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에서 유례없는 우수한 사회보험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1961~1979]

 

교육제도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중, 역대 가장 많은 교육제도의 변화와 학교 교육의 팽창, 국민 보편교육이 실현되었다. 현재의 초, 중, 고 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교 무시험제와 고교평준화 정책으로 우리나라 교육 역사상 첫 평등교육의 획을 그었으며, 실용주의 교육정책을 추진해 이공계 인력이 대거 양성되었고, 이는 급속한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복지제도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중 제정된 사회복지 관련 법률들은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골격을 형성했고, 오늘날 복지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근로능력이 없는 극빈자를 보호대상으로 하여 최소한의 생계비를 제공하는 공공부조와 보험료 납입과 급여에 대한 법적관리를 연결하는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잔여적 · 선별적 사회보장체계를 도입하려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은 현재도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기본적 운영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교육의 성과는 비록 물질적인 생산이나 건설의 성과처럼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거목을 키워가는 면면한 지하의 물줄기처럼 국가발전의 밑거름으로서 영구불멸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1971년 4월 14일

종합교육센터 기공식 치사

 

국민교육헌장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발전계획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민들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대통령은 문교부장관에게 시민들의 건전한 생활윤리와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 우리의 근대화와 민족 만년의 대계를 위해 지극히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교육장전을 제정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393자로 된 국민교육헌장이다. 국민교육헌장의 기본정신은 '민족 주체성의 확립',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이며, 이는 새마을운동을 통한 국민정신 개혁운동의 밑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국민교육헌장은 각 급 학교 교과서 첫 장에 인쇄되어 학생들의 교육지표로 활용되었다.

 

문화재보호법과 보호제도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사라져 간 우리 민족문화를 발굴하여 보존 · 계승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1961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고 문화재보호제도를 통해 민족문화재를 유형 · 무형문화재 · 기념물 · 민속자료로 분류하고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유형문화재를 복원 · 보수하는 등 문화재 보호에 힘썼다. 1962년 12월 숭례문(남대문)을 비롯하여 116건의 문화재를 국보로 지정하였고, 1963년에는 흥인지문(동대문)을 비롯하여 386건의 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하였다. 또한 국난 극복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문화복원사업으로 낙성대와 현충사 등을 보수하였고 민족문화의 창조 및 계승 · 발전을 위한 문화재복원사업으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등 민족 성현 및 호국인물들의 유적지를 성역화 또는 정화하였다.

 

우리가 잘 사는 국민이 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우리 모두가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울 줄 아는 무언無言의 실천가가 되어야 하고,

후손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자신의 고통을 참을 줄 아는 떳떳한 조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1966년 9월 16일

한산대첩 기념식 치사

 

나의 조국

 

작사 · 작곡 박정희

 

1절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무궁화꽃 피고 져도 유구한 우리 역사

굳세게도 살아 왔네 슬기로운 우리 겨레

 

 

2절

 

영롱한 아침해가 동해에 떠오르면

우람할 손 금수강산 여기는 나의 조국

조상들의 피땀 어린 빛나는 문화유산

우리모두 정성 다해 길이길이 보전하세

 

 

3절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새마을 정신으로

영광된 새 조국의 새 역사 창조하여

영원토록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세

 

 

youtu.be/KcGF-xPieJc

 

 

 

 

새마을운동

 

작사 · 작곡 박정희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2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3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4절
우리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조국을 만드세

후렴
살기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cad=rja&uact=8&ved=2ahUKEwjdi7fx5q_vAhU0w4sBHUPcClcQ3ywwAHoECAQQAg&url=https%3A%2F%2Fwww.youtube.com%2Fwatch%3Fv%3DtxY_rzeSH-c&usg=AOvVaw1DlPNRgIpgVB8iIViSzP8h

 

https://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cad=rja&uact=8&ved=2ahUKEwjdi7fx5q_vAhU0w4sBHUPcClcQ3ywwAHoECAQQAg&url=https%3A%2F%2Fwww.youtube.com%2Fwatch%3Fv%3DtxY_rzeSH-c&usg=AOvVaw1DlPNRgIpgVB8iIViSzP8h

 

www.google.co.kr

 

 

 

잘 살아 보세

 

1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금수나 강산 어여쁜나라 한 마음으로 가꾸어 가면
알뜰한 살림 재미도 절로 부귀 영화는 우리 것이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2절


일을 해 보세 일을 해보세 우리도 한번 일을 해 보세
대양 넘어에 잘 사는 나라 하루아침에 이루어 졌나
티끌을 모아 태산 이라면 우리의 피땀 아낄까 보냐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3절


뛰어 가보세 뛰어 가보세 우리도 한번 뛰어 가보세
굳게 닫혔던 나라의 창문 세계를 향해 활짝 열어
좋은일 일랑 모조리 배워 뒤질까 보냐 뛰어가 보세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youtu.be/XYcIhD4mJuo

 

 

 

 

 

 

 

- 계속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3  (0) 2021.03.15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2  (0)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0  (0)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9  (0) 2021.03.12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8  (0) 2021.01.18
Posted by 드무1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9

 

기술자를 우대했던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과학기술개발과 고급기술 인력 육성에 앞선 나라가 국가간의 치열한 경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유능한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힘썼다. 과학자와 기술자 없이는 자립경제 건설과 근대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학자와 기술자에게 특단의 대우를 해주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해외에서 돌아온 기술자와 과학자들은 과학기술개발과 기술인력의 양성에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경제건설과 근대화를 이루게 되었고, 이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국가지도자의 강한 신념과 정책 그리고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나는 KIST가 자리잡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설립 후 3년 동안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씩은 꼭 연구소를 방문하여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눠 연구소의 사회적 위상을 높여 주었고 건설 현장에 직접 나와 금일봉을 주는 등 각별한 신경을 써 주었다. ······ 국가원수가 자주 연구소에 들른다는 것이 미치는 영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의 사기가 극도로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연구소를 지원하는 정부 관리의 사고나 행동이 완전히 달라졌다."

 

KIST 초대소장 최형섭

 

한국시그네틱스 전자부품 생산공정도

1966년 9월에 설립된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한국시그네틱스에서 제조한 전자부품 생산 공정도 1967. 9. 26

 

영남전문학교 기념조형물

전문 기술인 양성을 위해 설립한 학교(1973~1978)로 현재는 영남 이공대학교로 개칭되었다. 1975. 6. 26

 

정밀공업 진흥의 탑

정밀공업진흥대회에서 수여된 기념트로피로 2005년 대회까지 증정되었다. 제1회 수상은 금성사였다. 1972.

 

과학기술처와

과학기술진흥 5개년계획

 

박정희 대통령은 "한 국가의 부흥과 발전의 원동력은 과학기술과 그것을 이용한 산업기술에 있다"고 강조한 정도로 경제와 국가의 발전에 잇어 무엇보다 과학기술을 중시하던 지도자였다. 이러한 신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1966년 과학기술진흥법을 제정 · 공포하여 과학기술의 진흥에 관한 종합적인 기본정책과 계획을 수립하고, 과학기술전담 행정기구로써 1967년 과학기술처를 설립하여 정부주도의 과학기술 정책수립 및 연구개발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과학기술진흥 5개년계획은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인력개발, 연구개발, 기술도입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한다. 이 계획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처음 시도한 국가사업으로 오늘날 과학기술 선진화 및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는 원동력 역할을 하였다.

 

<사진> 과학기술처 개청식에서 현판을 거는 박정희 대통령 1967. 4. 21

 

과학기술개발계획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

 

1961.  7. 14 ● 원자력 개원

1962.  2.  2  ●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 발표

1962.  3. 19 ● 핵분열 연쇄반응 일으키는 원자로의 임계도달 시험 경기 양주군 노해면

1962.  9. 10 ● 남양 송신소 준공

1962. 11. 18 ● 과학자 우대정책 발표

1963.  3. 30 ● 원자로 가동식

1965. 12. 16 ● 국내 텔레스 개통

1966.  2. 10 ●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발족

1967.  3. 30 ● 원자력청 발족

                    과학기술처 발족

1967.  4. 29 ● 천체과학관 준공

1967.  5.  1 ● 국립광역연구소 설립

1969. 11. 29 ● 관악산 기상레이더 건설

1970.  6.  2 ● 금산위성통신지구국 개통

1971.  2. 16 ● 한국과학원 KAIS 설립 1981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으로 개칭

1973.  6. 26 ● 대덕연구단지 건설 10개 연구소

1978.  2. 20 ●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 확정

1978.  6.  5 ● 태양에너지연구소 발족

1978. 12. 30 ● 장거리 자동공중전화 시대 개막

 

한국과학기술연구소 69년도 사업실적 및 70년도 사업계획 보고 1969. 12. 24

 

과학 한국의 산실, KIST

1965년 5월 미국 존슨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전 파병에 대한 보답으로 공과대학 건설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로서는 공과대학보다 공업기술과 응용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였다. 이에 1966년 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가 설립되었고 초대 소장에 최형섭 박사가 임명되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는 경제개발을 촉진하고 산업발전을 선도하게 될 대형 장기연구개발 사업을 수행하는 산업기술연구소의 역할을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대통령보다 더 많은 급여를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하였다. 이들은 종합제철과 조선, 반도체 등 중화학공업의 발전을 뒷받침할 과학기술을 연구 · 개발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는 과학한국의 산실이자 주역이었다.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연구소로 도약하다!

 

현대사회에서 있어서 과학기술의 진흥은 경제발전의 동력이며, 국력의 척도입니다. KIST는 국내 · 외에서 우수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이 한데 모여 연구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연찬의 도장으로서, 다른 연구기관과의 협동의 광장으로서, 또한 산 · 학일체의 심장부로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진흥 · 경제개발 · 국력증강을 위해 실로 막중한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온 국민의 지대한 성원과 기대를 잊지 말고,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분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69년 10월 23일

KIST 준공식 치사 중

 

대표적인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소개된 KIST 1970. 3. 6

 

KIST 초창기 과학자들 1970. 1. 9

 

KIST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잇다!

 

 

 

- 계속

 

 

www.youtube.com/watch?v=2Y_mnS7KrfI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1  (0)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0  (0)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8  (0) 2021.01.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7  (1) 2021.01.17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6  (0) 2021.01.17
Posted by 드무1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7

 

새마을 모자(왼쪽)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사용했던 새마을 모자. 1970.

 

새마을 노래 LP판(오른쪽)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새마을 운동 당시 전국에 널리 불려졌다. 1972.

 

한국신문협회 창립 10주년 기념패(왼쪽)

한국신문협회 창립 10주년 기념패로 새마을 운동 노래 악보와 가사가 쓰여 있다. 1972. 10. 13.

 

새마을 교재 / 정신교육특별과정(오른쪽)

새마을 운동에 대한 교육용 교재로 새마을 운동 정신계발, 정책방향, 성공사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새마을운동

새마을 운동은 근면 · 자조 · 협동 정신을 생활화하는 국민의식 개혁과 사회구조 개선을 지향하는 운동으로서 대통령의 지속적인 관심과 정책적 지원, 새마을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어우러진 범국민운동이었다. 정부는 1970년 전국 3만 3,267개 마을에 시멘트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사업추진 성과가 뚜렷한 1만 6,600개 마을에 시멘트와 철근을 추가로 공급하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내세워 자발적인 협동 노력을 장려하였다. 새마을 운동은 공장과 도시, 직장 등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 운동으로 확대 · 발전되었고 농가부업장려, 영농의 과학화, 새마을금고 육성 등 소득증대사업으로까지 넓혀 갔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1970년대 경제 발전을 이루는 정신적인 힘이 되었다. 오늘날 새마을운동은 개발도상국의 국가발전 모델로 인정받고 있으며, 많은 개도국의 공무원과 학생들이 새마을운동을 배우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와 교육을 받고, 자국의 실정에 맞게 도입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기본방향

대통령 비서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새마을 운동의 기본방향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1972. 4.

 

새마을운동 취지문

새마을운동의 개념과 추진방법이 담긴 박정희 대통령 친필 원고. 1972. 4. 28.

 

67년도 대농어촌 지원계획

국가 차원의 농지 확대 개발 정책을 수립 시행하면서 농어촌에 대한 재정 및 금융 지원 계획.

 

주곡의 자급자족,

통일벼 개발

 

한국의 녹색혁명

벼 신품종의 개발과 보급. 1978. 5. 10.

 

성공한 한국의 녹색혁명(국제미작연구소)

필리핀 소재 국제미작연구소(IRRI)가 발행한 "국제미작연구보고서"(1976 추계호)에 우리나라 농업혁명에 관한 보고서가 있어 그 내용을 요약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서. 1967. 11. 3.

 

주곡의 자급자족,

통일벼 개발

1960년대 우리나라는 국민 대다수가 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보릿고개'는 배고픔의 대명사였다. 지긋지긋한 보릿고개의 고통을 해결하고 식량자급자족을 달성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매년 겪어야 했던 식량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주식인 쌀의 신품종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단위당 생산량이 다른 품종들보다 30%나 높은 통일벼였다. 통일벼는 1971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허문희 교수에 의해 개발된 품종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일반벼는 이삭 당 낱알이 80~90개인데 비해 통일벼는 40%가 더 많은 120~130개가 생산되었다. 통일벼는 '주곡의 자급달성과 녹색혁명 성취'라는 오랜 집념의 결실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1975년 주곡인 쌀의 자급자족을 이룰 수 있었다.

 

벼 신품종 육성결과 보고(제384호)

농림부에서 경제장관회의에 벼 우량품종의 육성경위와 보급 방안을 보고한 문서. 1969. 9

 

한강유역개발

 

여의도 개발 현장을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8.

 

여의도 윤중제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1968. 6. 1.

 

한강유역개발

1960년대 이전까지 수도 서울의 중심은 한강 이북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폭발적인 인구증가에 따른 교통문제와 주택난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서울 외곽지역의 개발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1967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강개발계획을 추진하였다. 먼저 한강의 홍수 피해를 막고 도심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 강변도로를 건설하였다. 이때 건설된 강변도로가 오늘날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이다. 또한 강남개발로 인한 교통량 급증을 해결하기 위해 1979년까지 한강을 건너는 총 9개의 다리가 건설되었고 시내 교통체증을 원활히 하기 위해 남산터널과 지하보도, 육교도 건설되었다. 한편, 한강변의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반포 · 압구정 · 잠실 등 총 19개 지구, 약 396㎢의 택지를 조성하였다. 오늘날 여의도공원도 원래는 1967년 한강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조성된 5 · 16광장이었다. 이렇듯 한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종합개발은 오늘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1960~70년대 한강의 교량건설

교량명 제2한강교
(양화대교)
제3한강교
(한남대교)
서울대교
(마포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천호대교 잠수교 성수대교 잠실철교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서울시 영등포구 양화동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서울시 마포구 마포동~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완공일자 1965.1.25 1969.12.25 1970.5.16 1972.7.1 1973.11.8 1976.7.5 1976.7.15 1979.10.15 1979.10.30

 

도시계획

서울도시계획 보고서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유의 및 지시사항을 적은 문서. 1969. 01. 26.

 

 

- 계속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9  (0) 2021.03.12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8  (0) 2021.01.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6  (0) 2021.01.17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5  (0) 2021.01.03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4  (0) 2020.12.20
Posted by 드무1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6

 

Kaiser,

Hardtop Jeep CJ5

지프 CJ5 모델은 1954년부터 86년까지 생산된 차량이다.

4륜 구동으로 군용차량으로 널리 쓰이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성능이 대폭 개선되어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건설현장을

시찰하며 이용한 차량으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차량이기도 하다.

 

기증 | 박지만 2014.4.9

 

경부고속도로 도로 단면

경부고속도로는 건설 당시 왕복 4차선에 편도 2차선으로 건설되었다.

차도와 배수로를 포함하여 도로가 점유하고 있는 전체의 폭은 40m이고, 차도의 폭은 22.4m이다. 중앙분리대를 기준으로 차도 한쪽의 폭은 7.2m로 차량 1대가 다닐 수 잇는 차선 폭은 3.6m이다. 부수 시설로는 중앙분리대 3m, 측대 0.25m, 갓길 2.5m이며 기초 지반은 노체, 노상, 보조기층, 기층, 표층의 5개층으로 이루어져 잇다. 도로포장은 보조기층에서 표층까지의 6.25m에 대해 실시하고, 그 밑에는 흙과 자갈로 다졌다.

 

1968년 2월 1일

대동맥의 중추인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첫 발파 소리

 

매일의 삶이 모여

기적과 열정이 모여

 

경부고속도로에는 전 구간이 완공된 1970년에 총 368만 9,000대의 차량이 몰려들었다. 이후 이용량이 꾸준히 늘어나 1985년에 3천 400만 대를 넘기면서 개통 당시에 비해 10배의 통행량을 보였고, 2017년에는 100배가 넘는 약 4억 9,000만 대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은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을 일일 생활권으로 만들고 항만과 주요도시를 연결함으로써 산업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또한 고속도로 인근 지역의 소득향상은 물론 도로건설 기술의 축적으로 해외건설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한 사람의 굳은 의지와

많은 사람의 땀과 열정이 합쳐

절망에서 희망을

희망이 곧 현실로

우리는 오늘도

그 길을 달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길을 만들고

길은 역사를 만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고 노력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농민은 하늘도 도와 주는 법입니다. 그러자 자조정신이 강하지 못한 농민은 하늘도 도울 수 없고 정부도 도울 수 없고 이웃도 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1970년 6월 10일

                                                                                               권농일 치사

 

새마을 운동 선포 1970년 04월 22일

 

근면 DILIGENCE  자조 SELF-HELP  협동 COOPERATION

 

"잘 살 수 있는 길은 남에게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며,

                               우리 스스로가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에서 우러나오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할 때 자연히 트이는 법입니다."

                                                               1962년 5월 2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농민에게 드리는 부탁의 말 중

 

새마을가꾸기 사업 추진현황 보고(2차)

1970년 7월 24일에 기보고된 새마을가꾸기 사업, 씨멘트 지원의 수송, 비축, 관리 등 추진상황 보고

 

 

 

 

- 계속

 

 

 

www.youtube.com/watch?v=rT3F_rhETT4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8  (0) 2021.01.1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7  (1) 2021.01.17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5  (0) 2021.01.03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4  (0) 2020.12.20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3  (2) 2020.12.20
Posted by 드무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