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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14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2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2

 

 

 

문화예술의 기틀을 마련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문화재보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궤도레 오른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1971년 문화예술진흥법과 문예중흥 5개년계획이 수립되면서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는 물론 현대문학과 예술에 대한 진흥책을 제도적으로 추진, 문화 · 예술인들을 위해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 등을 건립하였다. 또한 태권도를 국기國技로 제정하고 세계태권도연맹을 창립,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여 태권도를 활성화시키는데 노력하였다. 그 결과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어 세계인의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88 올림픽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은 1977년부터 구상하고 준비해온 것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1980년대 국내 올림픽 개최를 목표로 국제 규모의 시설 확충을 위해 1979년 4월 서울 종합운동장을 완공하는 등 올림픽 개최를 위한 준비단을 결성하여 추진하였다.

 

천마총을 관람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6(위)

덕수궁 중화전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1968. 5. 4(아래)

 

신안 앞바다 해저 유물 발굴 1976(위)

발굴된 신안 해저유물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1977. 8. 23(아래 왼쪽)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유물들 1975(아래 오른쪽)

 

血盟의 友誼

 

197年 12月 20日

大統領 朴正熙

 

건군 이후 최초의 해외파병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과 월남정부로부터 공식파병 요청을 받았고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심의와 국회 동의를 거쳐 1964년 5월 21일 베트남 파병을 공식화하였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국군의 첫 해외파병인 베트남 파병은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도의적 책임과 정의감의 일환이었고 6 · 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준 16개의 자유우방국에 대한 보답이었다. 1964년 9월 11일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 파견을 시작으로 비둘기부대,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십자성부대, 은마부대, 백구부대가 파병되었다. 이렇게 파병된 국군들은 월남국민을 보호하고 농사지원, 교량 · 학교 · 도로건설, 의료지원 등 적극적인 대민지원으로 '평화의 십자군' 칭호를 받으며 국윌ㄹ 선양하였다.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국군은 미국에 동반자적 위치로 지위가 상승하였고 국내기업들이 베트남에 대거 진출함에 따라 고용증대 효과뿐만 아니라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기술력이 축적되어 일본과 태국 등과도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게 되었고 그 경험들이 이후 중동 진출까지 이어져 국가경제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월남에서 맹호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6. 10. 21(왼쪽)

당시 중앙청 앞에서 거행된 파월 백마부대 환송식 1966. 8. 27(오른쪽)

 

월남에서 맹호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6. 10. 21(오른쪽 위)

월남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을 맞는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 1966. 10. 21(왼쪽 위)

주월 백마부대를 시찰하기 위해 헬기에 탑승한 박정희 대통령 1966. 10. 21(오른쪽 아래)

주월 한국군 부대장병을 격려하는 박정희 대통령 1966. 10. 21(왼쪽 아래)

 

연도별 국군의 베트남 파병 규모

 

1 · 2차 파병   2,129명

    1964~1965

    이동외과병원 및 태권도 교관단, 비둘기부대(의무 및 공병)

 

3차 파병   18,094명

    1965

    수도사단, 해병여단, 지원부대

 

4차 파병   23,865명

    1966

    제9사단, 수도사단 26연대, 지원부대

 

보충병력   2,963명

    1967

    해병대대, 지원부대

 

증원   12명

    1969

    C-46 승무원

 

주월한국군의 모내기 대민지원 1966(위)

주월한국군 대민지원 1966(아래)

 

자유월남 패망일

대통령의 일기

 

"월남이 무조건 항복하는 과정을 똑똑히 목격했을 줄 압니다.

그동안 월남에서 反정부운동을 하던 인사들이 지금 피난길을 걸으면서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공산군은 처음에는

티우 대통령만 물러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더니 후임인 후옹 대통령도

물러나라고 했고, 그런 뒤 민 대통령이 들어서자 그와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월남의 反정부인사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지금 피난길을 걷고 있으면서

그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있는지 어떤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공산치하에서

그 反정부 인사들이 지금까지 했던 인권과 자유를 달라는 그 주장을

계속할 수 있을 지 주의깊게 지켜봅시다,"

 

1975년 4월 30일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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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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