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코리안 미스터리’라고 붙였는데,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영국 프랑스 같은 유럽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뇌물 수수, 독직(瀆職) 사건이 터지면, 돈을 줬다는 사람은 있는데, 돈을 받았다는 사람은 없다. 흔히 노름판에서는 돈을 잃은 사람은 있어도 돈을 땄다는 사람은 없는 경우가 있다. 노름판을 벌인 조폭이나 큰손이 이미 상당한 돈을 뜯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뇌물 수수 사건은 노름판하고는 다르다. 분명 준 사람이 있으면 받은 사람도 있을 텐데, 받았다고 지목된 사람은 끝까지 안 받았다고 부인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두 사람 사이에 현찰로 돈이 오가기 때문이다.
‘옵티머스’라는 자산 운용사가 있다. 옵티머스는 원래 라틴어인데, “가장 좋은”, 그런 뜻이다. 이런 회사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몇 백, 몇 천, 혹은 몇 억 규모의 돈을 모아서, 그 돈이 수천 억 규모로 커지면, 자산 운용사의 투자 전문가들이 수익률 좋고 안정적인 곳에 굵직굵직하게 투자를 한다. 그렇게 해서 6개월이든 1년이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반 투자자에게 수익 배당금을 나눠주는 것이다. 이때 일반 투자자가 ‘나는 이제 당신네에게 내 돈을 그만 맡길 테니 내 돈을 돌려다오’ 하면 두말없이 그 돈은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투자 자금을 자산 운용사로부터 돌려받는 것을 ‘환매’라고 한다.
그렇다면 ‘옵티머스 사태’란 무엇인가. 바로 앞에 말한 ‘환매’, 즉 일반 투자자에게 원금을 돌려줘야 하는 ‘환매’가 불가능해진 상황, 회사에 있어야 할 수천 억 투자 자금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일반 투자자에게 원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을 말한다. 옵티머스사는 올해 6월17일 ‘환매 중단’을 선언했고, 회사는 사실상 공중분해 됐으며, 개인 928명을 포함해서 투자자 1166명이 투자 원금 5151억원을 대부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언론에서 ’5000억 규모의 환매 중단 사태'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렇다. 자산운용사인 옵티머스를 책임진 사람들이 ‘나쁜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기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좋은 뜻’을 갖고 운용했으나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무슨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져 큰돈을 날린 게 아니다. 이들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투자자를 속이고, 거짓투성이에, 서류조작에 온갖 사기행위를 벌였다고 봐야한다. 예를 들어 ‘부산시 매출 채권’처럼 “부산시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돈을 떼일 일이 없는 공공기관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비상장기업의 사모 사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코스닥 상장사 인수합병 같은 위험 자산에 돈을 넣었다는 게 드러났다.
한마디로 “그러다 망한 것”이다. 그 결과 아까 말한 것처럼 올 6월17일 환매 중단 선언이 있었고, 일주일 뒤인 6월25일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으며, 다시 일주일 뒤인 6월30일 옵티머스사의 영업 정지가 결정됐고, 다시 일주일 뒤 7월7일 김재현 대표, 이동열 대표이사, 윤석호 감사 같은 관계자들이 전격 구속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은 이런 사기꾼들이 활개 치도록 마냥 허술하기만 한 것일까. 물론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들의 자산 운용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기관들이 버젓이 있다. 이들이 네댓 개의 유령회사를 차렸고, 100장이 넘는 위조 서류를 만들었다고는 해도, 그런 사기 행각을 사전에 들여다보고 감시·감독하라고 국민세금으로 봉급을 주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예탁결제원 같은 기관이 있다. 이런 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자산 운용사를 감시해서 선량한 투자자들의 원금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가장 커다란 궁금증이 남는다. 이런 사기꾼들은 자신들의 사기 행각을 감추기 위해서, 그리고 일이 터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일종의 구명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했을 것이다. 특히 핵심 권력기관인 청와대, 집권 여당, 금융위원회, 검찰, 이런 곳에 갖은 인맥을 활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고, 일종의 보험금처럼 뇌물을 상납하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실제로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가 작성했다는 ‘대책 문건’이라는 게 이미 검찰에 확보돼 있다. 이 문건에는 청와대 실장급·비서관급 5명, 민주당 인사 7~8명을 포함해서 정·관계 기업인 등 20여 명의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검찰에서는 부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또 옵티머스의 감사역을 맡고 있는 윤석호 변호사가 ‘펀드 하자(瑕疵) 치유 관련’이란 문건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이사가 민주당과의 과거 인연을 매개로 국회의원, 민주당 유력 인사 및 정부 관계자들에게 거짓으로 탄원,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및 정부 관계자들이 당사(옵티머스)와 직간접적으로 연결”. 더 나아가 권력 실세들이 더 직접적으로 개입돼 있다는 정황도 나와 있다. 문건에는 이렇게 표현돼 있다. " ‘이혁진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줬던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돼 있고, 펀드 설정·운용 과정에서도 관여가 돼 있다." 정부 여당 사람들이 옵티머스의 ‘수익자’였으며, 그러니까 돈을 받아갔으며, 펀드 운용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 아침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옵티머스의 감사역 윤석호 변호사의 처 이 모 행정관(36)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하기 전부터 옵티머스의 지분 9.8%를 소유한 대주주였다는 게 드러났다. 또 이 모 행정관이 청와대에 근무할 때 추미애 법무장관은 서울남부지검에 있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했으며, 이 모 행정관은 자신이 보유한 9.8%의 주식을 김재현 대표의 비서가 소유한 것처럼 거짓으로 차명 전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행정관은 지난 6월 청와대를 사직했는데, 그녀가 청와대에 남아 있으려 한 이유는 “옵티머스에 대해 예상되는 금융당국의 조사와 검찰 수사를 저지·지연시키기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이와 별도로 서울남부지법 법정에서는 검찰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폭로가 나왔다. ‘옵티머스 사태’와 아주 흡사한 사건으로 무려 1조6000억원의 피해를 낸 ‘라임 사태’라는 것이 있다. 이 역시 ‘라임(Lime)’이라는 자산운용사가 좀비 기업에 투자하는 등 편법 거래를 일삼고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하다가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진 사건, 즉 파산해버린 사건을 말한다. 이후 구속된 그 관련자들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라임 자산운용사의 실소유주인 김봉현이라는 사람이 ‘당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현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법정 증언을 한 것이다. 광주MBC 사장을 지낸 이강세라는 사람을 통해서 줬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청와대 정무수석을 움직이고, 그가 다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움직이면, 김상조 실장이 금감원의 조사를 무마시켜줄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증언이 아주 구체적이다. 이렇게 돼 있다. “작년(2019년) 7월27일 이강세 대표가 강기정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러 간다고 하길래 집에 있던 돈 5만원권, 5000만원을 쇼핑백에 담아 넘겨줬다.”“이강세 대표가 전화를 해서 내일 강기정 정무수석을 만나기로 했는데 비용이 5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큰 거 1개는 1억원, 5개는 5000만원이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강기정 전 정무수석은 펄쩍 뛰고 있다. “완전 허위다. 민·형사를 비롯해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대응을 강력히 취하겠다”고 반박했다. ‘돈 전달’의 근거로 볼 수 있는 정황은 있다. 김봉현 씨가 이강세 씨에게 돈을 전달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이 있다. 호텔 이름까지 나와 있다. 그러나 강기정 전 수석은 한사코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이강세 씨를 만난 것까지는 인정하고 있는데, 돈 받은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배달 사고’가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뇌물사건에서 돈을 받은 사람이 자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돈을 준 사람은 위증일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법정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봉현 씨는 돈 받은 쪽에 대한 검찰 조사가 흐지부지될 기미를 보이자 법정에서 폭로를 한 것으로 보인다.
강기정 전 정무수석은 언론사 제소, 그리고 관련자 고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은 원하고 있다. 이왕 제소를 한다면 끝까지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돈을 준 사람은 있는데, 돈을 받은 사람은 없는, 코리안 미스터리가 마치 무슨 진실게임처럼 벌어지고 있는데,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권력형 게이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했다. 옵티머스 수사 과정에 드러난 정관계 실세 명단 20명, 그 내용을 밝혀야 할 것이고, ‘강기정 뇌물 수수 의혹’도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여러분, 다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 이 말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당시 ‘사람이 먼저다’라는 책을 냈다. 그게 책 제목이었다. 그리고 제19대 대통령 경선 때 당시 야당 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선거출범식 무대 뒷면 전체를 ‘사람이 먼저다!’라는 커다란 글씨로 장식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소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신선하기도 했다. 아니, 사람이 먼저라는데, 기계보다 사람이 먼저요, 이념보다 사람이 먼저요, 규제나 법률보다 사람이 먼저라는데, 다들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는 문 대통령이 대선에 실패하면서 사라졌다가 5년 뒤 다시 부활했고, 지금은 문재인 정권의 핵심 슬로건이자 국정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김동규 고려대 북한학과 명예교수가 작년 봄 이런 지적을 하고 나섰다. 즉 ‘사람 중심’이라는 말은 북한 헌법 제3조, 그리고 제8조에 나온다는 것이다.북한 헌법 제3조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며(…)”라고 돼 있고, 제8조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사회제도는(…) 사람 중심의 사회제도이다”라고 돼 있다. 김동규 교수는 “북한 헌법상의 ‘사람’이라는 말과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사람’은 그 개념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고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상당히 근접해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교 교수는 이어서 1980년대 말 일부 공산주의 학자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새로운 공산주의론’을 들고 나왔던 것도 뿌리가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이후 어떤 지방도시는 ‘사람 중심 행정’이란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으며, 어떤 교육감은 ‘아이가 먼저다’란 구호를 내세웠고, 어떤 시에서는 ‘사람 중심, 걷고 싶은 ㅇㅇ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권이 내세우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에 대해 김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문제는 여기서의 사람은 필자가 보기에 대다수의 일반 국민 또는 대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 중심의 계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들만의 ‘사람’인 것이다.”
김동규 교수의 지적에 적극 공감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100% 공감하지 못하여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번 양보해서 문재인 정권이 말하는 ‘사람이 먼저다!’에서의 그 ‘사람’이 노동자 중심의 저들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최소한 그 ‘사람’들만은 항상 ‘먼저’로 으뜸 대접을 받는 그런 세상이 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이런 질문에 대해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 교수가 명쾌한 대답을 내렸다. 박명림 교수는 한 칼럼에서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제목을 달고, 출산, 자살, 비정규직, 산재(産災)사망 등 중요 인간지표들 모두가 완전 거꾸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사람이 꼴찌인 나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먼저 출산율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0점대로 접어들었다. 한국 역사가 아니라 근대 인류의 역사상 처음이다. 2018년 0.98로 떨어져 최초로 0점대를 기록하더니, 2019년에는 0.92로 더 떨어졌다. 금년 2/4분기에는 0.84까지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저출산 예산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천문학적 규모로 쏟아 붓고 있다. 2018년 26조3000억, 2019년 37조1200억, 올해는 40조1906억으로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100조를 훌쩍 넘는다. 그런데도 출산 예산과 출산율을 완전 반(反)비례로 가고 있다. 박명림 교수는 “현대 인류사에서 한국보다 더 오래 출산율 꼴찌를 기록한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자살률도 똑같아서 한국보다 더 오래 ‘1등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문재인 정권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은 노조가 먼저다, 노동자가 먼저다, 이런 속뜻도 있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산업재해 사망, 즉 산재 사망은 문재인 정권 들어와 다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2923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777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근년 들어 1957명, 2142명, 2020명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 참고로 말한다면 박근혜 정부 때는 단 한 번도 2000명을 넘은 적이 없다.
이번에는 문재인 정권이 그토록 온힘을 기울여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를 보자. 그들은 정말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구현된 세상을 살고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6년 615만6천, 2017년 657만8천, 2018년 661만4천이던 수준에서 2019년 작년에는 748만1천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은 36.4%까지 치솟고 있다. 박명림 교수는 비정규직 비율이 노무현 정부 때 2004년 37%, 2005년 36.6%를 빼고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단 한 번도 35%를 넘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지역균형발전, 남녀 고용평등 문제가 어떻게 거꾸로 가고 있는지 더 많은 통계 수치를 말씀 드릴 수 있으나 숫자가 많아지면 오히려 어지러우실 테니 이쯤에서 멈추겠다. 박명림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진보 기득세력과 86세대에게서 더 강고하게 지속되는 특권과 반칙, 세습과 특혜의 적폐가 청년들과 국민들의 희망을 앗아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출산·자살·부동산·비정규직·균형발전·산업재해의 영역들은 특별한 저항세력도 없었다. 정부 스스로 실패한 것이다.”
이 말이 폐부를 찌른다. “정부 스스로 실패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사람이 먼저다’,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불렀다던 민중가요 ‘어머니’ 가사를 보면 이렇게 돼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내리네.” 자, 박명림 교수는 묻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신들 말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왔다면, 지금 당신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이 ‘모순덩어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서해 어업지도원 비극적 죽음… 현 정부 대북정책 맹점 폭로 北은 아무 관심 없는데 언제까지 求愛할 건가 차라리 그런 노력으로 우리 나라 부강하도록 힘 쏟자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한국, 한국인' 저자.
얼마 전 서해안에서 벌어진 어업 지도원 총격 살해 사건은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뭔가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덜 미안할 수 있다. 현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원하고 협력을 바라지만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다.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체제의 본색과 의도는 바뀌지 않는다.
2004년 나온 베스트셀러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그래서 읽어볼 만하다. 그 책은 사실 연인들을 위한 조언이지만 이 정부에도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빠져 정열적으로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만나자고 간청해도 상대가 무관심한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정신 차려, 그 사람은 너한테 관심이 없어. 시간 낭비하지 마.” 현 정부 인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들이 북한과 사랑에 빠져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사랑에 빠져있다’는 말의 의미를 좀 더 분명히 짚고 넘어가보자. 일부에선 주사파 출신 정부 일부 인사가 이념적으로 북한에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자이거나 친사회주의 성향을 지녔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부류는 극소수라고 본다. 주사파들도 알 건 안다. 이들이 북한과 사랑에 빠진 건 대부분 이념적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뿌리에서 나온다.
누군가 사랑에 빠졌다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미모 때문이야? 아니면 돈이 많아서? 성격이 좋아서? 학벌? 아니다. 전문가들 설명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도 기분이 좋아진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장담컨대 북한과 사랑에 빠진 이들은 북한 지도자나 체제를 경외하는 게 아니다. 주사파들도 바보는 아니다. 그들이 북한에 대해 느끼는 애정은 이를 통해 자신들이 해묵은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을 심어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분단 시대 영웅처럼 상상한다는 얘기다. 그런 공상이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북한과 대화를 시도해온 원동력이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가고 술잔을 기울이며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했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과 함께 소나무를 심었다. 한국 구세대들은 냉소적으로 이 장면을 바라봤고 신세대들은 관심도 없었지만, 내 좌파 지인들은 애정을 갖고 지켜봤다. 어떤 이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 멋지지 않아(cute)?”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이 ‘멋쟁이(Mr. Cute)’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일은커녕 화해도 원하지 않는다. 김일성은 박정희와 통일을 원하지 않았고, 김정일은 김대중과 통일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누군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유는 명백하다. 김씨 일가와 북한 집권층은 자유를 부정하고 발전을 막으면서 1960년대 군사기지처럼 북한을 다스리고 싶어 한다. 그 수단으로 남한으로부터 위협을 계속 활용한다. 긴장이 풀어지면 주민들이 봉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북한의 진정한 변화는 정권 교체 말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설사 북한이 정말 화해를 하려 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북한은 남한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리가 없다. 북한이 남한이 그들에게 보내는 미소가 거짓이라고 간주하는 건 한국 정치가 보여준 악랄함 때문이다. 북한은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후 2~3년 내에 감옥에 간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이다. 분노한 민심을 단두대 삼아 대단치 않은 구실로 전직 대통령들을 감옥에 보낸 게 한국 정치사다. 그럴진대 김정은과 북한 지배 세력이 통일 이후 자기들이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무슨 면책 특권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해도 그들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북한을 개선하려 노력하는 힘을 조국에 쏟으면 어떨까. 그런 노력은 그들뿐 아니라 다른 국민에게도 좋은 반응을 받을 수 있다. 자기 나라 역사와 과거 가치관, 이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열을 내지 말고 (북한이 아니라) 자기 나라와 다시 사랑에 빠져보는 게 어떨까. 그럴 때 비로소 지난달 비극적인 사고를 당한 어업지도 공무원의 죽음이 의미를 갖게 될 수 있다. 자기 나라 문화와 삶을 더 좋게 만들어 아무도 그 나라를 떠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게 남은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