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다? No! “사람이 꼴찌였다!"
[김광일의 입]
여러분, 다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 이 말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당시 ‘사람이 먼저다’라는 책을 냈다. 그게 책 제목이었다. 그리고 제19대 대통령 경선 때 당시 야당 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선거출범식 무대 뒷면 전체를 ‘사람이 먼저다!’라는 커다란 글씨로 장식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소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신선하기도 했다. 아니, 사람이 먼저라는데, 기계보다 사람이 먼저요, 이념보다 사람이 먼저요, 규제나 법률보다 사람이 먼저라는데, 다들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는 문 대통령이 대선에 실패하면서 사라졌다가 5년 뒤 다시 부활했고, 지금은 문재인 정권의 핵심 슬로건이자 국정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김동규 고려대 북한학과 명예교수가 작년 봄 이런 지적을 하고 나섰다. 즉 ‘사람 중심’이라는 말은 북한 헌법 제3조, 그리고 제8조에 나온다는 것이다. 북한 헌법 제3조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며(…)”라고 돼 있고, 제8조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사회제도는(…) 사람 중심의 사회제도이다”라고 돼 있다. 김동규 교수는 “북한 헌법상의 ‘사람’이라는 말과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사람’은 그 개념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고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상당히 근접해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교 교수는 이어서 1980년대 말 일부 공산주의 학자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새로운 공산주의론’을 들고 나왔던 것도 뿌리가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이후 어떤 지방도시는 ‘사람 중심 행정’이란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으며, 어떤 교육감은 ‘아이가 먼저다’란 구호를 내세웠고, 어떤 시에서는 ‘사람 중심, 걷고 싶은 ㅇㅇ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권이 내세우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에 대해 김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문제는 여기서의 사람은 필자가 보기에 대다수의 일반 국민 또는 대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 중심의 계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들만의 ‘사람’인 것이다.”
김동규 교수의 지적에 적극 공감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100% 공감하지 못하여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번 양보해서 문재인 정권이 말하는 ‘사람이 먼저다!’에서의 그 ‘사람’이 노동자 중심의 저들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최소한 그 ‘사람’들만은 항상 ‘먼저’로 으뜸 대접을 받는 그런 세상이 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이런 질문에 대해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 교수가 명쾌한 대답을 내렸다. 박명림 교수는 한 칼럼에서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제목을 달고, 출산, 자살, 비정규직, 산재(産災)사망 등 중요 인간지표들 모두가 완전 거꾸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사람이 꼴찌인 나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먼저 출산율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0점대로 접어들었다. 한국 역사가 아니라 근대 인류의 역사상 처음이다. 2018년 0.98로 떨어져 최초로 0점대를 기록하더니, 2019년에는 0.92로 더 떨어졌다. 금년 2/4분기에는 0.84까지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저출산 예산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천문학적 규모로 쏟아 붓고 있다. 2018년 26조3000억, 2019년 37조1200억, 올해는 40조1906억으로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100조를 훌쩍 넘는다. 그런데도 출산 예산과 출산율을 완전 반(反)비례로 가고 있다. 박명림 교수는 “현대 인류사에서 한국보다 더 오래 출산율 꼴찌를 기록한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자살률도 똑같아서 한국보다 더 오래 ‘1등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문재인 정권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은 노조가 먼저다, 노동자가 먼저다, 이런 속뜻도 있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산업재해 사망, 즉 산재 사망은 문재인 정권 들어와 다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2923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777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근년 들어 1957명, 2142명, 2020명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 참고로 말한다면 박근혜 정부 때는 단 한 번도 2000명을 넘은 적이 없다.
이번에는 문재인 정권이 그토록 온힘을 기울여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를 보자. 그들은 정말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구현된 세상을 살고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6년 615만6천, 2017년 657만8천, 2018년 661만4천이던 수준에서 2019년 작년에는 748만1천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은 36.4%까지 치솟고 있다. 박명림 교수는 비정규직 비율이 노무현 정부 때 2004년 37%, 2005년 36.6%를 빼고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단 한 번도 35%를 넘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지역균형발전, 남녀 고용평등 문제가 어떻게 거꾸로 가고 있는지 더 많은 통계 수치를 말씀 드릴 수 있으나 숫자가 많아지면 오히려 어지러우실 테니 이쯤에서 멈추겠다. 박명림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진보 기득세력과 86세대에게서 더 강고하게 지속되는 특권과 반칙, 세습과 특혜의 적폐가 청년들과 국민들의 희망을 앗아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출산·자살·부동산·비정규직·균형발전·산업재해의 영역들은 특별한 저항세력도 없었다. 정부 스스로 실패한 것이다.”
이 말이 폐부를 찌른다. “정부 스스로 실패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사람이 먼저다’,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불렀다던 민중가요 ‘어머니’ 가사를 보면 이렇게 돼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내리네.” 자, 박명림 교수는 묻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신들 말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왔다면, 지금 당신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이 ‘모순덩어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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