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기념관] 18
전력난 해소
8 · 15광복 당시 남한의 전력 설비는 소규모의 수력발전과 낡은 화력발전 시설이 전부였다. 따라서 한반도 발전시설의 88.5%가 집중되어 있는 북한의 전력을 빌려 써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앞두고 정치적인 이유를 거론하며 1948년 5월 일방적으로 송전을 중단하였다. 6 · 25전쟁의 발발로 기존의 전력 생산 시설마저 파괴되면서 우리나라는 사상 최악의 전력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절전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전력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전력 생산시설 확보에 힘쓴 결과 1964년 제한 송전 조치를 해제할 수 있었다. 이후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전력 수요의 급증으로 저가의 전력생산과 전력공급의 다원화를 위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나섰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중 15개의 화력발전소와 19개의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고 고리 · 월성 · 영광 · 울진에 원자력발전소 10개를 건설 또는 추진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전력의 자급자족을 이루었다.
첨두출력 100만 KW 돌파기념(왼쪽)
해방이후 19년 동안 되풀이 됐던 제한송전이 해제되고 급속한 산업발전으로 전력수요가 해마다 늘어 1968년 최대출력 100만 KW를 돌파하였다. 1968. 10. 17.
전력수요 200KW 돌파기념(오른쪽)
4대강 유역의 다목적 댐건설로 전력수요 200만 KW 돌파 기념패. 1972. 11. 7.
농어촌 전화電化 사업계획
농어촌 전화電化 사업을 위한 현황파악 및 계획을 정리한 보고서. 1973. 5. 22.
농어촌 전화電化 사업
1960년대 우리나라 농어촌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 되면 호롱불을 밝혀 생활하곤 하였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농어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특별대책으로 성과를 거둔 것이 바로 농어촌 전화電化 사업이다. 농어촌 전화 사업은 1965년 12월 30일 '농어촌 전화 촉진법' 제정을 시작으로 새마을 운동 성과가 우수한 마을부터 전기를 공급해 준다는 원칙아래 실시되었다. 그 결과 1965년 농어촌 12%, 도시 51%에 불과하던 전화 사용률을 1979년 전국 평균 96.7%까지 끌어 올리며 우리 국토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포천지역 전화(電化) 사업 기공식 1965
민둥산의 기적, 산림녹화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6 · 25전쟁을 거치면서 산림의 50%가 민둥산이 되었다. 특히 겨울철에는 땔감용 나무를 구하기 위한 산림훼손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산림법과 사방사업법을 제정하여 산림녹화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였다. 총 12개의 국립공원을 지정하여 자연환경의 훼손을 막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였으며,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막기 위해 그린벨트도 지정하였다. 1973년, 10년 동안 남한의 산림면적 1/6에 나무를 심고, 2/3를 가꾸겠다는 목표 아래 추진된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은 1978년, 그 목표를 4년이나 앞당겨 달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민둥산이었던 전국의 산들은 푸른 산으로 바뀌었고 우리나라 산림녹화사업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발전보다 오히려 더 값진 평가를 받았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과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하나의 역작이자,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산림강국으로 만들어낸 인간승리의 역사였다.
양택식 경북도지사에게 보낸 친서
사방공사와 관련하여 박정희 대통령께서 양택식 경북도지사에게 보낸 친서
「귀도 월성군 입실역에서 울산으로 가는 기차로 약 1㎞쯤 가면 동측에 사방상태가 지극히 불량한 산이 보일 것입니다.
원래 산의 경사가 급하고 암석지대임으로 보통방법으로서는 사방을 하드래도 강우시에는 유실되고 초목의 활착이 잘 안되는 지형임으로 여기에 사방을 하자면 특수공법으로 기술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저 형편없는 산이 저처럼 훌륭하게 사방이 잘 되었구나 하는 소리가 나오겠금 연내라도 즉시 착수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을 희망합니다.」
"4대강이라는 것은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한강과 낙동강, 금강 그리고 호남지방을 흘러가는 영산강입니다. 이 4대강 유역의 농경지는 우리 남한에 있는 전 농경지의 약 7% 정도가 됩니다.
4대강 유역을 잘 개발하면 홍수를 조절할 수 있고, 이 유역에 새로운 공업지대를 개발할 수 있게 되며, 근대적인 영농방식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됩니다."
1972년 11월 25일
소양강 다목적댐 담수식에서
다목적 수자원 개발
우리나라는 연도별 · 지역별 강수량의 편차가 심하고 하절기에 집중된 강수량으로 인해 매년 가뭄과 홍수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여 수자원 관리가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특히 1970년대 발생한 전국의 홍수와 가뭄 피해의 60% 이상이 4대강(한강 · 낙동강 · 금강 · 영산강) 유역에 발생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4대강 유역에 다목적댐을 집중적으로 건설함으로써 가뭄과 홍수피해 방지는 물론 수력을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식량증산을 위한 농업용수와 생활 및 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활용하였다. 특히 아산만 방조제를 건설하여 1억4천만 톤의 농업용수를 담은 동양 최대의 인공 담수호인 아산호를 조성하였고 연인원 33만 6,000명이 동원되어 완공된 삽교천 방조제는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극심했던 충남지역의 농수를 해결하였다.
다목적 및 4대강 댐 건설
구분 | 댐 이름 | ||
다목적댐 | 소양강댐, 충주댐, 안동댐, 대청댐, 섬진강댐, 남강댐 | ||
생활 · 공업용수 전용댐 | 영천댐, 수어댐, 사연댐, 안계댐, 회야댐, 대암댐, 공산댐, 선암댐, 연초댐 | ||
농업용수댐 | 장성댐, 담양댐, 광주댐, 나주댐 | ||
하구둑 | 영산강, 안성천, 삽교천 | ||
4 대 강 댐 |
한 강 |
북한강 | 소양강댐, 춘천댐, 의암댐, 팔당댐 |
남한강 | 충주댐 | ||
금강 | 대청댐, 아산만 방조제 | ||
낙동강 | 남강댐, 영천댐, 안동댐 | ||
영산강 | 장성댐, 담양댐, 광주댐, 나주댐 |
홍수 및 한해 방지용 방조제 건설
구분 | 장소 | 공사기간 | 비고 |
아산만 방조제 | 충남 아산시 인주면과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을 잇는 방조제 |
1972.2~1974.5 | 1억4천만 톤의 농업용수 담은 동양 최대의 인공 담수호 아산호 |
삽교천 방조제 | 아산만 삽교천 하구인 충남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를 잇는 방조제 |
1976.12~1979.10 | 충남 당진, 아산, 예산, 홍성 4개 군과 22개 읍면 지역의 농수 해결 |
만일 우리가 오늘 하루를 허송하여 과학기술진흥을 소홀히 한다면 남보다 1년 뒤떨어지게 될 것이며, 1년을 아무 노력 없이 보낸다면 10년, 또는 20년 이상의 후퇴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1970년 4월 21일
과학의 날 담화문
국제기능올림픽 첫 종합우승
기술인력 양성과 국제기능올림픽
1970년대 우리나라는 중화학공업을 추진 중에 있었지만 기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과학자와 기술자의 연구와 발명만이 국가산업과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민족의 역량을 과사할 수 있는 국력의 척도가 된다는 신념에 따라 기술인력 양성에 힘썼다. 이에 따라 각 도별 기계공업고등학교와 공업전문대를 설립, 특성화 공대제도를 도입하고 초정밀기계 가공능력을 갖춘 전문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여 정밀기능사를 양성하였다. 또한 지방 출장 때마다 기계공고의 실습실을 들러 학생들을 격려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었다. 그 결과 매년 5만 명의 우수한 기능공이 사회로 배출되었다. 이들은 1977년 국제기능올림픽 종합우승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총 19번의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워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 계속
'박물관, 기념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20 (0) | 2021.03.14 |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9 (0) | 2021.03.12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7 (1) | 2021.01.17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6 (0) | 2021.01.17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15 (0) | 2021.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