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02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프랑스군 전사자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벽
프랑스군 참전 내용이 적혀 있는 벽
프랑스군 한국전쟁 참전기록
● 1950년 11월 29일 부산에 상륙 수원에서 집결한 대대 미군 제2사단에 배속됨
● 1951년 1월 7일부터 12일까지 원주에서 중국의 돌진을 총검으로 반격해 바어
● 1951년 2월 1일부터 16일까지 쌍터널과 지평리전투 참가 중국 4개 사단의 공격을 저지 제8군의 성공적인 반격 발판 마련
● 3주 뒤, 미국대통령 표창을 두 번 받은 대대는 1037 고지전투에 투입 영하30도 추위속에서 1037고지를 점령 38선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고 40명이 전사하고 200명 부상
● 1951년 봄 화천지방에서 38선을 넘었고 공병대의 희생으로 중국의 공격을 다시 한번 저지, 미국대통령이 3번째 표창수여 함
● 1951년 가을 크레브쾨르(단장의 능선) 전투에 참가 야간전투에서 다시한번 이름을 날리게 되고 60명 전사 200명이 부상 당함
● 1952년 가을 베르뎅 참호전을 연상케하는 진지전에서 북한청원으로부터 서울을 향한 공격을 방어 47명 전사 144명 부상 당하며 중국군에게 2000명 가량으로 추산되는 인명손실을 주었으며 미국대통령이 4번째 표창장 수여함
● 1952년 겨울 그리고 1953년 봄에 서울을 향하는 통로를 방어하는 전투에서 활약, 휴전 조약이 조인되었을 때한국전쟁에 참가한 3200명의 프랑스 군인 중 프랑스군에 배속된 한국인 병사 18명을 포함 288명이 전사함
원주 쌍터널 부근 전투 (원주 서북쪽25km, 1951.1.31~2.2)
이 전투는 프랑스 대대가 원주-양평 간 중앙선 철로상의 쌍터널 부근에서 중공군 제125사단과 치른 전투이다. 이 대대는, 유엔군의 재반격 작전시 미 제23연대의 제1대대 및 제2대대 정찰대가 원주로부터 지평리로 정찰을 실시하던 중, 그 중간에 있는 쌍터널 부근에서 공산군의 공격에 포위를 당하게 되자, 미 23연대 제3대대와 함께 이 공산군을 격멸하고 정찰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1월 31일 교전지점으로 진출하였다. 프랑스 대대는 미군대대와 협조하여 쌍터널 부근으로 진출하였으나 공산군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으므로 접촉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정찰대를 구출한 뒤 야간전투에 대비하여 그곳에서 四周(사주)방어를 실시하였다. 다음날 새벽에 중공군 제125사단 예하 2개 연대가 그곳을 공격하였다. 프랑스 대대는 이 전투에서 1개 중대진지가 돌파되고 대대본부까지도 위협을 받는 위기에 처하였으나, 선전분투하여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지평리 전투 (경기도 양평, 1951.2.13~15)
이 전투는 중공군의 1951년 2월 공세 당시에 프랑스 대대가 미 제2사단 제23연대로 배속되어 지평리에서 중공군 제39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공격을 막아낸 방어전투이다. 이 대대는 연대와 더불어 쌍터널 전투를 마치고 2월 3일 지평리로 이동한 후 지평리를 중심으로 편성된 前面(전면) 방어진지의 서쪽을 방어하였다. 2월 11일, 美 제23연대와 프랑스 대대는 좌우 인접부대가 철수를 하게 됨에 따라 중공군 제39군의 斜面(사면) 포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지형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진지 고수 명령을 받게 된 美 제23연대와 프랑스 대대는 철수하지 않고 고립된 상태에서 4일간에 걸친 중공군의 파상공격을 물리치고 진지를 고수하였다. 중공군은 2월 16일 후방으로부터 美 제5기병 연대가 지평리에 도착하자 포위망을 풀고 후퇴하였다. 이 전투의 결과 중공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2월 공세에 실패하였고, 유엔군은 중공군이 한국전쟁 참전 이후 최초로 제대로 된 勝戰(승전)을 거두었다.
斷腸(단장)의 능선 전투 (강원도 양구, 1951.9.13~10.13)
이 전투는 프랑스 대대가 양구군 동면 사태리 일대에서 美 재23연대, 네덜란드 대대와 함께 북한군(제6 · 12사단)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전투이다. 이 전투는 1951년 7월 10일 휴전회담이 개최되고 잇었으나 공산군측이 고의적으로 회담을 지연시켜 회담이 결렬되자, 유엔군 측이 공산군측을 회담에 응하도록 하는 한편 당시의 방어선을 보다 유리한 지역에 설치할 것을 목적으로 실시한 전투이다. 프랑스 대대는 사단의 지원하에 美 제23연대와 함께 9월 13일부터 929고지(단장의 능선)였다. 그 후, 10월 5일부터는 사단의 全(전) 부대가 투입되어 이 목표를 점령하였다. 이때, 단장의 능선 서쪽 문등리 계곡에서는 미 제38연대가 제72전차대대와 공격하였고, 미 제23연대와 프랑스 대대는 능선의 동쪽 사태리 계곡에서 기동한 제23 전차중대를 주축으로 한 특수임무부대와 보병전차 합동으로 단장의 능선을 공격하였다.
화살머리 고지 전투 (1952.10.6~10)
이 전투는 프랑스 대대가 철원 서북방 281고지를 방어 중 중공군 제113사단 제338연대와 치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10월 6일부터 9일까지 매일 야간에 대대 중대 규모의 부대를 파상적으로 투입하여 281고지를 공격하였으나, 프랑스대대는 지원 화력의 엄호하에 근접 전투를 벌이며 진지를 고수하였다. 같은 기간에 우측 백마고지에서도 한국군 제9사단이 중공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대대는 많은 인명의 손실을 입으면서 이 고지를 끝까지 확보함으로써 중공군의 의지를 꺾을 수 있었으며, 우측의 백마고지 방어에도크게 기여하였다.
국기 게양대
Insigne du bataillon français de l'ONU en Corée
프랑스군 대대의 마름모형 부대 마크<B. F. O. N. U>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288명의 전사자 명단
프랑스군이 소속되었던 미군 제2사단 마크
<계속>
'6.25전쟁 참전국 기념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03 (0) | 2020.11.16 |
---|---|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02 (1) | 2020.11.15 |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01 (0) | 2020.11.15 |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03 (0) | 2020.10.06 |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01 (0) | 2020.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