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기념관] 08
서독 에르하르트 총리의 조언 2
박정희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총리와 단독회담에서 독일의 경제지원을 당부하였다.
이에 에르하르트 총리는 "각하, 일본과 손을 잡으시지요. 우리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상 42번이나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총리가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면서 이웃나라끼리 손을 잡았지요. 한국도 일본과 손을 잡으시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싸웠지요. 우리는 일본과 단 한 번도 대등한 입장에서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몰래 힘을 키운 일본이 침략했을 뿐입니다. 그래 놓고도 지금까지 사과도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나라와 어떻게 손을 잡으란 말입니까."
"그래요? 일본이 사과는 해야지요. 독일은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진적이 없지만 전쟁에서는 독일이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나의 전임자인 아데나워 총리는 참 훌륭하신 분이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그렇게 사이가 나빴는데, 그 분은 드골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각하, 지도자는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가야 합니다. 두 나라 사이에 협력관계를 만들어야 공산국가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 손을 잡으십시오."
"이렇게 눌려 싸웠는데도 말이오?"
"예, 각하, 눌려 싸운 것이나 대등하게 싸운 것이나 모두가 과거의 일입니다. 일본과 손을 잡고 경제발전을 이루세요. 우리가 뒤에서 돕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합심해서 살아갑시다. 우리가 돕겠습니다."
1시간이 넘게 진행된 회담이 끝난 뒤, 에르하르트 총리는 담보가 없는 차관 2억 5천만 마르크(약 4,770만 달러)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
서독의 에르하르트 총리의 조언 1
서독의 에르하르트 총리는 만찬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경제발전에는 도로, 항만 등 기간基幹시설의 정비가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나는 평소 아우토반에 진입할 때, 그리고 인터체인지 램프를 돌아 나올 때 마음 속으로 아우토반에 경례를 합니다. 1958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만 도로 사정이 썩 좋지 못한 걸로 압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고속도로 건설이란 엄두도 못 낼 사업이지만 독일국민은 한국민이 겪은 그런 시기에 산업동맥 건설을 성취한 자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하, 분단국으로서는 경제번영만이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입니다."
Lotus - Blume
"로투스 블루메"
동양에서 온 연꽃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 수(1963~1977)
7,936명
서독으로 파견된 간호사 수(1966~1976)
10,226명
결혼서약서(왼쪽, 1970.5.30.)
파독 간호사가 서독에서 결혼할 당시 작성했던 결혼서약서
결혼증명서(가운데, 1971.5.19.)
파독 간호사가 서독정부로부터 발급받은 결혼증명서
자녀출생신고서(오른쪽, 1970.8.28.)
파독 간호사 시절 자녀의 출생신고를 위한 서류
간호사 자격증(왼쪽, 1969.7.31)
서독에서 발급해 준 간호사 자격증
영한 사전(가운데, 1968.11)
파독 간호사가 사용했던 영한 사전
개인용 수첩(오른쪽, 1970)
파독 간호사가 사용했던 수첩으로 한국으로 송금한 내역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파독 간호사 엽서(왼쪽)
파독 간호사가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로, 서독 생활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독일에서 온 편지(오른쪽, 1986.6.25.)
파독 간호사로 근무할 당시 환자로 있었던 Prinz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받은 감사 편지
급여통장 / 저축통장(왼쪽)
파독 간호사로 근무할 당시 사용했던 서독은행 통장
단수여권(오른쪽, 1975.6.19.)
파독 간호사가 귀국할 당시 사용한 단수여권
독일어 타자기(왼쪽, 1970)
파독 간호사가 독일어 공부를 위해 사용하던 독일어 타자기
파독 간호사 퇴직기념패(오른쪽, 1966)
파독 간호사 퇴직을 기념하여 병원 동료들이 선물해 준 기념패
사진기(왼쪽, 1985)
파독 간호사가 사용했던 사진기
의료용 기구(오른쪽)
파독 간호사가 사용한 의료용 기구
간호사
서독 파견 간호사는 독일 마인츠 대학 의사였던 이수길 박사의 주선으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총 1만 226명의 간호인력이 파견되었다. 독일의 의료시스템은 '간호원 중심제'로 간호사들은 의료인으로서의 업무 외에도 환자 옷 갈아입히기, 병실 청소, 식사 보조 등의 일을 하였다. 이러한 고된 일과에도 연장근무와 주말근무까지 자청해 가며 모은 돈은 가족들에게 보내졌다. 이들의 성실과 친절함에 독일 언론은 "한국 젊은 여성의 친절, 상냥한 미소"등의 내용으로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 하였다. 서독에 파견된 근로자들이 송금한 돈은 당시 우리나라 연간 총 수출액의 2%에 가까웠으며 국제수지 개선 및 국민소득 향상, 나아가 한국경제성장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후 서독파견 근로자들 중 60%가 제3국에 정착하여 재외 한인사회 형성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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