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03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03
유엔군 첫 전투의 시작, 죽미령전투
First Engagement by the UN Forces, Battle of Jukmiryeong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유엔군 지상군과 북한군의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7월 5일 새벽 3시, 빗속을 뚫고 죽미령에 도착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도로와 철로 부근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도로를 포함한 좌측 능선에 B중대를, 철로 좌측 편에 있는 진지 내 우측 고지에는 C중대를 배치하고, 105mm 포대를 죽미령 후방 수청리에 포진시켰다.
오전 7시, 수원근처에서 북한의 전차부대 모습이 드러났다. 8시 16분 첫 사격을 시작으로 스미스 부대는 포탄을 쏘아대며 공격하였지만 소련제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오전 10시, 약 10km에 달하는 긴 행렬의 북한군 트럭과 보병이 나타났다. 3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보병을 향해 스미스 부대는 박격포와 기관총을 쏘아댔고 아군, 적군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병사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북한군이 스미스부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동시에 전차가 중앙을 돌파하면서 방어선은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탄약과 병력이 소진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2시 30분 퇴각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540명 중 보병 150여 명, 포병 31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북한군 역시 약 5,000명 중 15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유엔군 지상군과 북한군의 첫 전투는 승패와 관계없이 유엔군의 참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북한군은 미군이 참전하지 않거나 적어도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 하에 남침을 감행하였는데, 남침개시 10여 일만에 미 지상군의 참전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또한 유엔군의 파병은 유엔 창설 이후 처음으로 유엔의 기본정신에 입각하여 유엔기를 앞세우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집단적 행동을 펼친 점에서 중대한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고 하겠다.(유엔군 초전기념관 안내책자에서)
스미스 부대의 참전
유엔의 확고한 전쟁방지 의지를 처음으로 실천한 나라는 미국이었어요. 죽미령 전투에서 참전했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미8군 제24사단 21연대 1대대와 제52포병대대 A포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부대로 일본 규슈에서 훈련을 받던 중 한국으로 파병되었어요. 7월 1일 부산의 공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는 2일 대전에 도착하여 5일 새벽 죽미령에 도착하게 된답니다. 현재 기념관에서는 6월 미 지상군이 참전하게 되는 과정과 스미스 부대원의 한국 이동을 시간대별로 전시하고 있답니다.(유엔군 초전기념관 안내책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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