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들/2020년

2020-001 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드무1 2020. 7. 31. 14:19

2020-001 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김훈종 지음

2019, 한빛비즈

 

시흥시중앙도서관

SA280901

신천역스마트도서관

 

150

김96ㅇ

 

나답게 살자니 고전이 필요했다

 

공자께서 말씀했다.

"나이 마흔에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끝장이다!" - 논어

 

나 역시 어느새 나이 마흔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내 얼굴에 책임지기도 힘들고, 여전히 누군가의 미움도 사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정녕 끝장이란 말인가! 그저 겉으로 보기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된다고 나 같은 필부가 갑자기 성인군자로 변신할 수는 없으리라. 아무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생긴대로 살면된다.

 

≪논어≫ <위정>편을 요즘 시류에 맞게 개정 독해하시길비란다.

'열다섯에는 원래 공부가 안 됩니다. 놀고 싶은 게 당연하죠. 그러니 자식들에게 뭐라 좀 마시라.' '나이 서른에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자립하기 힘듭니다. 취직도 힘들고, 결혼도 힘드니 제발 좀 내버려두시라.' '나이 마흔에는 유혹이 빗발칩니다. 그러니 좀 흔들리는 게 정상이에요.' '쉰 나이에는 천명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간입니다.' '육십까지 당신은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제멋대로 살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사시오.' '나이 칠십이 되어도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자칫 그랬다가는 법무부에서 제공하는 숙식에 몸을 의탁해야 하거든요.' - 본문 중에서

 

흔들리는 마흔,

이제야 느껴지는 고전의 힘

고전의 맛

 

왜 수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찾겠는가.

유사 이래 결국 인간은 똑같고, 세상사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풀어낼 수 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이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놓은 제자백가 사상가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이다.

≪논어≫를 읽다 보면 이게 정말 유학의 '고전'인지 '현대생활백서' 같은 자기계발서인지 도통 구분이 안 간다. 공자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건 철학적 정합성과 정교함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논어≫에서 사람살이의 구린내와 세상살이의 고단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공자는 우리가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처럼 고결하고 구름 위에 올라 붕붕 떠다니는 유형의 성인聖人이 결단코 아니었다. 지극히 실리적이며 현실적인 인간이었다.

 

짜증나고 답답할 때, 나를 알아주는 이 없을 때, 어딘가 기대고 싶을 때, 이제 고전을 읽어보자.

 

지은이 김훈종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먹을 갈아 화선지에 붓으로 써가며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외웠고, 한글 반 한자 반 신문을 옥편 찾아가며 읽었다. 이미 윈도95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절에도 대학에서 《맹자》 원문을 한 땀 한 땀 필사하며 익혔다. 정이 떨어질 법도 하지만 삶의 굽이굽이마다 고전을 읽었고, 큰 힘을 얻었다. 이제는 어떻게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고전의 맛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 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을 공동 진행하고 있으며, 라디오 PD로 여러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는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을 즐겁게 연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빨간 책》, 《뭐라도 될 줄 알았지》, 《무비유환》, 《20세기 라디오키드》(이상 공저)가 있다.

 

 

차례

 

 

프롤로그

 


1부 마음을 다잡다

 


⊙ 아직 이룬 게 없어도 괜찮다
⊙ 내 안에 가득한 욕망을 어찌해야 하는가
⊙ 기껏해야 백 년, 영원한 건 없다
⊙ 내가 하기 싫으면 남도 하기 싫다
⊙ 무엇보다 내 마음이 먼저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공자가 살았다면
⊙ 당신의 혼밥을 응원한다
⊙ 사람과 사람이 통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일
⊙ ‘때’가 중요한 이유
⊙ 연대책임을 넘어 사람을 보다
⊙ 생명의 가치가 떨어질 때 일어나는 일
⊙ 우리는 이로움을 먼저 좇는 존재일까
⊙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
⊙ 눈물겨운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
⊙ 언제까지 구직활동을 해야 하나
⊙ 노오오오력자와 노심자
⊙ 사이비를 경계하라
⊙ ‘예’의 핵심은 경청
⊙ 질 때 지더라도 내용 있게 져야 한다
⊙ 인간이란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2부 나를 세우다 省

 


⊙ 누구의 힘으로 역사는 움직이는가
⊙ 역사 인식이 중요한 이유
⊙ 성찰 없는 권력은 잔혹하다
⊙ 기록의 무서움을 잊지 말 것
⊙ 권력의 속성
⊙ 나라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음식남녀조차 이루지 못하는 시대
⊙ 위대한 영도력의 비밀은 무엇인가
⊙ 어떻게 사는 것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일까
⊙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 탐욕도 굶주림도 없는 세상을 상상하다
⊙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말의 의미
⊙ 진정으로 이롭게 하는 ‘의’의 정체
⊙ 말을 잘해야 성공하는 시대?
⊙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다시 생각하다

 


⊙ 에필로그
⊙ 참고문헌

 

 

 

1부 마음을 다잡다

인륜 윤

 

 

파자하면, 사람人이 책侖을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한다는 뜻.

윤리나 도리라는 뜻도 있지만, 모여서 뭉친 무리라는 의미도 있다.

 

 

공자께서 말씀했다. "나이 마흔에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끝이다!"

⊙ 《논어》 <양화>편 중

 

아침이 돌아오면 날마다 전당포에 봄옷을 저당 잡혀

매일같이 강어귀에 나가 만취해서 돌아오네.

술 마신다고 진 빚이야 가는 곳마다 늘 있는 것이지만

인생 칠십은 예부터 드물다네.

⊙ 두보 <곡강이수>

 

공자께서 말씀했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 삼십 세에 자립했다. 사십 세에 현혹되지 않았다. 오십 세에 하늘의 명을 알았다. 육십 세가 되니 귀가 순해졌다. 칠십 세에 이르니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 《논어》 <위정>편 중

 

진시황은 말했다. "나는 진인眞人(신선이 된 자)을 흠모하여 스스로 '진인'이라고 할 것이며 짐이라 부르지 않겠다."

⊙ 《사기》 <진시황본기> 중

 

- 《사기》는 기전체 역사서의 효시로서 크게 본기本紀, 세가世家, 서書, 표表, 열전列傳으로 나뉜다. 본기는 황제에 대한 기록이요, 세가는 제후에 관한 기록이다. 서는 제도 문물에 관한 기록이요, 표는 말 그대로 연표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백이, 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은 이야기나 맹상군이 식객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탈출한다는 계명구도鷄鳴狗盜 고사 등은 모두 열전에 포함된다.

 

덕천가강은 꾀를 잘 써서 강자를 제압하는 일을 잘하니, 뜻을 이룬 뒤에 조짐을 자라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

 

괴팍스럽고 싸움질을 좋아한다. 하는 짓이 명랑하지 못하고 어둡다. 한번 비위에 거슬리면 반드시 죽이고 만다. 풍신수길이 살았을 때는 인심을 얻었으나, 그가 죽자 도리어 신망을 잃었다. 차분하고 말수가 적고 두툼한 몸집에 덕스러운 편이다.

⊙ 《간양록》 중

 

- 《간양록》 :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의병장 강항이 일본 현지 사정과 포로 생활 경험을 기술한 책. 1597년 9월부터 1600년 5월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를 필요 없다.

부자유不自由를 친구로 삼으면 부족할 것이 없다.

욕심이 생기면 궁핍했을 때를 걱정하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원이요,

분노는 무사장구의 적이다.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피해는 너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스스로를 탓하고 남을 탓하지 말라.

모자람이 지나친 것보다 낫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

⊙ 《논어》 <안연顔淵>편 중

 

진나라에 머물 때, 식량이 떨어졌다. 따르는 제자가 병에 걸려, 일어나게 할 수 없었다. 자로가 성을 내며 스승에게 말했다. "군자에게도 곤궁함이 있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군자는 곤궁해도 지키지만 소인은 곤궁하면 넘치게 된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연."

⊙ 《논어》 <위령공>편

 

'진채지액陳蔡之厄' : 공자가 채蔡나라에 있을 때에 초楚나라에 초빙되었다. 그러자 약소국인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대부들은 자신들의 결점이 노출될까 두려워하여, 국경지대에서 공자의 무리를 포위했다. 양식이 떨어져 굶고, 종자從者가 병을 앓는 재액災厄을 당했다하여 이를 진채지액이라 일컫는다. 공자의 가장 신산한 고생을 꼽힌다.

 

공자가 말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떠나려 한다. 나를 따를 자는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 자로가 이를 듣고 기뻐하자, 공자가 말했다. "자로는 용기가 뛰어난 점이 나보다 낫다. 하지만 취할 만한 자질이 없다."

⊙ 《논어》 <공야장>편 중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증삼아! 나의 도는 오직 하나로 꿰어진다." 증자가 대답한다. "예." 공자가 자리를 뜨자 다른 제자들이 묻는다. "나의 도가 하나로 꿰어진다는 저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증자가 대답한다. "스승님의 도는 오직 '충忠과 서恕'일 뿐입니다."

⊙ 《논어》 <이인>편 중

 

자공이 물어 말한다. "죽을 때까지 평생 실천할 만한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답한다. "그것은 '서恕'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 안 된다己所不欲 勿施於人."

⊙ 《논어》 <위령공>편 중

 

<설문해자說文解字> : 후한시대 허신이 편찬. 1만 자의 한자에 뜻, 발음, 본래 글자 모양 등을 기술해놓았다.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가 어렵다. 친하게 대하면 불손하게 굴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 《논어》 <양화>편 중

 

덕이 근본이다. 재물은 덕의 결과로 오는 말단지엽이다. 근본인 덕을 밖으로 내보내고 말단지엽인 재물을 근본으로 삼게 되면, 백성은 다투게 되고 서로 빼앗게 된다. 이런 이유로 백성에게서 재물을 모으려 포악하게 굴면, 백성은 바로 흩어지게 된다. 반대로 재물을 흩어 베풀면 백성은 곧 모인다. 그래서 거슬리는 말이 나가면 역시 거슬리는 말이 되돌아오듯, 재물도 백성들의 뜻과 거슬러 모으게 되면 역시나 군주의 뜻을 거슬러 흩어지게 된다.

⊙ 《대학》

 

공자가 말씀했다. "내가 듣건대, 국가를 소유한 자는 재화가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재화가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 대개 재화의 분배가 고르면 가난한 자가 없고, 조화로우면 적다고 느끼지 않으며, 안정되면 나라가 기울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 《논어》 <계씨>편 중

 

공사를 진행시킬 때에  품삯은 날수로 계산하지 말고 실적을 기준으로 삼되 원근遠近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힘이 센 자는 넉넉히 백 전錢을 가져가고 약한 자도 한 몸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부府의 백성들만 혜택을 받는 일이겠는가.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마땅한 거처를 정하지 못한 채 품팔이로 생활을 꾸려가는 자들 모두가 바람결에 소문을 듣고 다투어 달려올 것인데, 움집이나 상점을 차리고 술도 팔고 밥도 팔며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을 바꾸게 될 것이니, 이 또한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에게 이로운 일이라 할 것이다.

⊙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19년> 중

 

대압착시대Great Compression : 대공황의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으로, 폴 크루그먼이 저서 《미래를 말하다》에서 강조해 더욱 유명해진 말이다. 대공황을 이겨낸 1960년대 미국, 부유층과 노동자 사이의 간극이 좁아지고 노동자 안에서도 임금 격차가 줄어든 상황을 뜻한다. 그야말로 계층의 피라미드가 찌그러져 꼭지점과 맨 아래 기층의 간극이 압착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이상적 형태의 사회가 도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에는 정의로운 조세 정책, 강력한 노조 그리고 안정적인 복지정책이 그 근간에 놓여 있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 《논어》 <자로>편 중

 

경공이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안영이 천대라는 곳에서 모시고 있었다. 그때 양구거가 찾아왔다. 경공이 말한다. "오직 양구거만이 나와 더불어 화和의 관계로구나!" 그러자 안영이 대꾸한다. "양구거 역시 동同의 관계이지, 어찌 화和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까?" 이에 경공이 묻는다. "화和와 동同은 다릅니까?" 그러자 안영이 답한다. "다릅니다. 화和는 마치 국과 같습니다. 식초와 젓갈, 소금, 매실을 넣어 물을 넣고 불을 때어 어육을 삶되, 장작으로 불을 지펴 주방장이 화和의 원리로써 맛을 고르게 합니다. 부족하면 보충하고 지나치면 덜어내어 군자가 이를 맛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임금이 옳다고 하면 아니라고 간하는 신하가 잇어야 합니다. (중략) 그 때문에 《시경》에 '덕스러운 그 음성 흠 하나 없네!'라고 하였는데, 지금 양구거는 그러하지 못합니다. 임금께서 '옳다!'고 하면 양구거도 역시 '옳다!'고 합니다. 임금께서 '안 돼!'하면 양구거 역시 '안 돼!'라고 맞장구만 칩니다. 이는 물로써 물을 맞추는 것이니, 누가 그런 국을 먹겠습니까? 그래서 동同으로만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하다는 말씀이옵니다." 경공이 듣고 "옳구나!"라고 답했다.

⊙ 《춘추좌전》 중

 

공자께서 말씀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능력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

⊙ 《논어》 <헌문>편 중

 

공자께서 말씀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다."

⊙ 《논어》 <학이>편 중

 

귤화위지橘化爲枳 :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안영이라는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워낙 재주가 뛰어나 영공, 장공, 경공, 세 왕을 섬겼고, 온 천하에 이름을 드날리고 있었다.

 

그 명성을 들은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한다. 그러고는 짐짓 안영의 명성이 허명이 아닌지 심술궂게 시험을 해보았다. 영왕은 인사가 끝나자마자 이렇게 비꼰다. "제나라에는 인재가 없는가 보오. 하필 경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소?"라며 안영의 작은 키를 비웃었다. 안영은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대꾸한다. "다 이유가 있사옵니다. 우리 제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의 격에 맞는 사신을 면밀히 검토해 골라서 보냅니다. 큰 나라에는 큰 사신을 보내고,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신을 보내지요. 신은 특히 작고 작아 초나라에 보내진 것이옵니다."

안영의 달변에 코가 납작해진 영왕은 부아가 치밀어 올라, 제나라 출신 죄인을 하나 끌고 오라고 시킨다. 그러고는 안영이 들으라고 일부러 큰 소리로 죄인의 죄명을 낱낱이 밝힌다.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밥 먹듯이 하는군." 안영에게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었다. 그러자 안영은 이렇게 답한다. "제가 듣기에 귤나무를 회수 남쪽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회수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잎은 비슷하지만 그 과실은 맛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 가운데 제나라에서 나고 자란 자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에 들어오면 도둑이 됩니다. 초나라 땅과 물이 백성들을 도둑으로 만드는군요."

⊙ 《춘추좌전》 중

 

안영의 언변에 압도당한 영왕은 쓴웃음을 짓고는, 이내 사과의 말을 전한다. "성인聖人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농담을 지껄인 과인이 오히려 부끄럽구려." 말로만 사과한 게 아니라, 제나라 죄수를 안영에게 인계해 고국으로 돌아가게 한다. 안영을 망신 주려던 영왕이 오히려 톡톡히 당한 셈이다. 안영의 기지는 단순한 말재주가 아니다. 우리 인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기원전 522년, 진晉나라에 내분이 일어났다. 권력다툼에서 패한 난영이 초나라를 거쳐 제나라로 망명을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제 장공이 크게 기뻐하자, 안영이 간한다. "우리는 진나라와 맹방의 의리를 맺고 있습니다. 신의를 잃으면 나라가 스스로 설 수 없습니다. 이제 난영을 받아들이면 장차 어디에 쓰시려는 것입니까?" 제 장공이 웃으며 답한다. "우리 제나라는 진나라와 필적할 만한 나라요. 그러니 우리가 그들보다 약하다 말할 수 없소. 과인이 어찌 진나라를 섬긴단 말이오?" 제나라 장공 딴에는 난영의 세력을 이용해 진나라를 치고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제나라는 진나라와 상대가 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제나라 장공의 지원하에 난영은 반기를 들어 진나라 조정에 맞섰다. 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난영은 패배하게 되었고, 제나라 장공은 진나라의 침공을 번민하는 신세가 된다.

 

내우외환이라 했던가. 제나라 장공은 이 와중에 대부 최저의 아내와 사통하다 최저에게 딱 걸렸다. 분노에 찬 최저는 집으로 장공을 유인해 살해했다. 제나라이 대부들은 당황했다. 장공의 시신조차 최저의 집에 찾아가 수습하여 가져오지 못한 채, 자신들의 보신에만 급급했다. 이때 안영은 당돌하게도 최저의 집으로 찾아가 장공을 애도한다. 기실 장공은 주색에 빠져 있어 안영의 충간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늘 묵살했다. 하루는 장공이 "과인은 경이 보고 싶지 않은데 계속 찾아와 간하는 이유가 무엇인고?"라고 물었다. 안영은 이렇게 답한다. "군주가 어질지 못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면 필시 재앙이 닥칩니다. 정 그렇게 대왕께서 계속 주색에 빠져 계신다면 신은 떠나겠사옵니다." 실제 안영은 재상의 직을 내려놓고 낙향했다. 그러다가 장공이 시해를 당하자, 누구보다 먼저 용기 있게 나서서 조문을 했다. 최저가 안영을 죽이려 하자 안영은 특유의 달변을 늘어놓아 위기를 벗어난다.

⊙ 《춘추좌전》 중

 

사람과 사람이 서로 통하지 않으면, 예법과 풍류가 다 무슨 소용이냐人以不仁 如禮何 人以不仁 如樂何!

⊙ 《논어》 <팔일八佾>편 중

 

환관 조고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황제의 자리를 노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여러 신하들이 따라주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조고는 신하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이세 황제 호해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폐하. 이것은 말입니다." 이세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승상이 잘못 봤습니다. 사슴을 일러 말이라 하는구려." 조고가 대신들을 쭉 둘러보며 "이게 말이오? 사슴이오?"라고 묻자 어떤 사람은 말이라고 하며 조고의 뜻에 영합했다. 어떤 사람은 사슴이라고 대답했는데,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암암리에 모두 처형했다. 그 후로 대소신료 모두 조고를 두려워했다.

⊙ 《사기》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 중

 

그러는 사이 11월 중순이 되자 병사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만 갔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항우는 장막 안으로 들어가 송의의 목을 베고, 군대를 모두 이끌고 황하를 건너갔다. 그러고는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태우고, 사흘 치 양식만 지니고서 병졸에게 필사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누구 하나 마음을 돌이키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진나라 군대와 아홉 번 싸워 크게 쳐부수고 왕리를 사로잡았다. 이로써 초나라 군대가 제후군 가운데 으뜸이 되었고, 항우는 비로소 제후의 상장군이 되었으며, 제후군이 모두 그의 소속이 되었다.

⊙ 《사기》 <항우본기> 중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하구나.

때가 불리하여 나의 오추마도 달리지 않는구나.

나의 오추마마저 달리지 않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우희야, 우희야, 너를 어찌해야 할까.

- 항우

 

천하를 통일한 유방이 하루는 전장에서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운 한신과 담소를 나눈다.

 

유방이 묻는다. "공이 보기에 나는 군사 몇을 거느릴 수 있겠는고?" 한신이 답한다. "폐하께서는 십만도 쉽지 않습니다." 유방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대는 몇 명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소?" 한신이 답한다.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유방이 웃으며 되묻는다. "다다익선이라는 장수가 어째서 나에게 묶여 있소?" 한신이 답한다. "폐하께서는 군사를 거느리는 데 능하지 못하지만 장수를 거느리는 데는 능하십니다. 그래서 신이 폐하께 묶여 있는 것입니다. 폐하의 능력은 이른바 하늘이 주신 겁니다.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 《사기》 <회음후열전> 중

 

단언컨대, 한신은 문제적인 인물이다. 진이 망하고 한 제국이 세워지는 격동의 시기에 등장한 수많은 인물 가운데에서도 유독 튄다. 결국 돌고 돌아 유방을 드높이긴 했지만, 건방제게 '나는 다다익선'이라고 말하는 한신의 모습에서 장량이나 소하의 지혜로움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한신은 결국 토사구팽당한다.

한 고조 유방은 정리에 끌리고 의리에 움직이는 건달이었다. 결국 한신의 모반을 용서하고 회음후에 봉한다. 한신 역시 유방이 자신의 재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일부러 조회도 나가지 않고 한 고조를 원망하며 지낸다. 그러다 진희의 반란을 토벌하러 유방이 직접 나서게 되자, 그 틈을 이용해 여후가 소하를 시켜 한신을 장락궁으로 유인한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한신을 죽여버린다. 사마천은 이토록 파란만장한 한신의 인생을 이렇게 평한다.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다면 그가 한나라에 끼친 공로는 주공, 소공, 태공망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 《사기》 <회음후열전> 태사공자서 중

 

주공, 소공, 태공망은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왕의 폭정을 물리치고 주나라를 세운 주나라 건국의 아버지들로, 주나라의 시조 무왕의 사후에는 이세 성왕을 도와 공자의 이상향인 주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룬 인물들이다. 한신을 이들에 비유한 것은 사마천이 할 수 있는 최상급의 상찬이다. 그만큼 한나라의 성립을 위해 한신이 기울인 공은 지대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서삼경四書三經 : 《대학》《논어》《맹자》《중용》을 사서라 일컫고, 《시경》《서경》《역경》을 삼경이라 묶어, 흔히 '사서삼경'을 유학 경전의 정석으로 칭한다. 사서삼경이란 말이 낯익겠지만, 중국에서는 흔하게 쓰지 않는 말이다. 오히려 삼경에 《예기》와 《춘추》를 더해 '사서오경'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신은 삼가 아뢰옵니다. 정사는 때의 알맞음을 아는 것이 귀하고 일은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이 중합니다. 정사를 펼침에 있어 때의 알맞음을 모르고 일을 함에 있어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비록 성군과 현신이 만난다 해도 치적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 1574년(선조 7년) 이이의 상소문 중

 

공자가 말했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 사람이 도를 행하면서도 사람을 멀리한다면 그것을 할 수 없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도끼 자루 베네. 도끼 자루 베네. 그 기준은 멀리 있지 않네'라고 했다. 도끼 자루를 잡고 도끼 자루에 쓸 나무를 벨 때는 잡고 있는 자루를 자세히 보고 비슷한 것을 자르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보기가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군자도 사람을 다스리는 데 그 기준은 사람에게 있을 뿐이다. 사람이 잘못을 고치면 그친다."

⊙ 《중용》 중

 

공자께서 공명가에게 공문숙자에 대해 묻는다. "정말인가요? 공문숙자 그분은 말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남의 것을 취하지도 않습니까?" 공명가가 대답하여 말한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좀 과하군요. 그분은 때에 맞은 연후에 말하기에 사람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지요. 그분은 즐거워할 만한 이치가 있은 연후에야 웃기에 사람들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지요. 그분은 의로워진 이후에 취하기에 사람들이 그 취하는 행동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한다. "그런가요? 어찌 그럴 수 있죠?"

⊙ 《논어》 <헌문>편 중

 

중니왈仲尼曰 군자君子 중용中庸 소인小人 반중용反中庸

                  군자지중용야君子之中庸也 군자이시중君子而時中

                  소인지중용야小人之中庸也 소인이무기탄야小人而無忌憚也

자왈子曰 중용기지의호中庸其至矣乎 민선능구의民鮮能久矣

⊙ 《중용》 중

 

공자가 말씀했다. "군자는 중용이요, 소인은 중용에 반한다. 군자의 중용은 군자다우며 때에 맞는다. 소인의 중용은 소인다우며 거리낌이 없다." 공자가 말씀했다. "중용의 그 지극함이여! 백성 가운데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공자가 말씀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고 있음을 나는 안다. 지혜로운 자는 도를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도에 미치지 못한다. 도가 밝혀지지 않고 있음을 나는 안다. 현명한 자는 도를 지나쳐버리고 우둔한 자는 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는 사람이 모두 먹고 마시지만 맛에 정통한 사람이 적은 것과 같다." 공자가 말씀했다. "그 도가 행해지지 않음이여!"

⊙ 《중용》 중

 

방효유方孝孺 : 정난의 변으로 황제가 된 연왕 주체는 방효유를 회유해 즉위조서를 쓰도록 시켰다. 하지만 곧은 절개의 방효유는 주공과 성왕의 고사를 들며 영락제를 모욕했고, 진노한 영락제는 구족을 멸하다 못해 친구, 제자 등 지인들까지 처형했다.

 

"죄인을 처벌할 때에도 그 처자식은 연좌제로 벌하지 않았습니다."

⊙ 《맹자》 <양혜왕>편 중

 

진晉나라 위무자에게는 애첩이 있었는데 아들이 없었다. 위무자가 병이 들자 아들 위과에게 말했다. "반드시 애첩을 개가시켜라." 그런데 병이 위중해지자 말을 바꾼다. "애첩을 순장시켜라." 위무자가 죽은 후 아들 위과는 아버지의 애첩을 개가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병이 위중해지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나는 정신이 맑을 때 아버지가 내린 명을 받들겠다." 진秦 환공이 진晉나라를 침공하자, 위과는 옹명을 받고 출정해 두회와 결전을 벌인다. 위과는 불리한 전세에 몰려 쫓기는데, 두회가 말을 달려 쫓아올 때 누군가 풀을 엮어 두회의 말이 걸려 넘어지게 만든다. 덕분에 위과는 구사일생 위기에서 탈출하게 되고 도리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한 노인이 등장한다. "당신이 개가시킨 위무자의 애첩이 내 딸이오. 그대가 옳은 결정을 내려줘 내 딸이 순사殉死하지 않고 살아서 개가했으니, 그 지극한 은공을 갚고자 풀을 묶어 두회를 넘어지게 했소."

⊙ 《춘추좌전》 <선공 15년>편 중

 

여불위 : 한나라 양책 출신인 여불위는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거부가 되었다. 지방의 특산물을 싼 가격에 사서 장거리를 이동해 비싼 가격으로 되팔아 이문을 챙겼다. 《허생전》의 허생과 정확히 일치하는 방식. 불과 200년 전이나 저 멀리 2000년 전이나 상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재벌이 된 여불위는 권력을 잡기 위한 거대한 계획에 돌입하게 된다. 중원의 최강대국 진의 소양왕은 태자인 안국군의 아들 자초를 조나라에 볼모로 보내놓고 있었다. 자초는 소양왕의 손자이지만 조정에 세가 전혀 없기에 남의 나라에 볼모로 보내진 것이다. 그러니 한단에서 자초의 생활도 넉넉할 리 없었다. 자초를 만나본 여불위는 그에게 왕재가 있음을 간파하고 일생일대의 투자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여기서 여불위가 주목한 지점이 바로 '아들이 없는 애첩'이란 권력 구조다. 아들이 없는 애첩은 '대통령 출마를 할 수 없는 당대표'처럼, 지금 당장이야 공천권이다, 최고위원 임명권이다, 다양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지만, 임기가 절반만 지나도 레임덕에 시달리는 불안한 존재다. 왕의 총애를 받는 지금이야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존재가 애첩이지만, 왕이 아파서 눕기라도 하면 벌써 찬밥 신세가 되는 게 그들의 운명.

태자 안국군에게는 화양부인이란 애첩이 있었다. 여불위는 화양부인에게 접근해 이러한 정치적 메커니즘을 강의한다. 물론 어마어마한 뇌물을 들이미니 강의 내용에 화양부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초를 양아들로 삼아 미래 권력을 준비하라는 여불위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니, 화양부인과 자초 모두에게 윈윈게임이 된 것이다.

여불위의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안국군이 즉위하자 마자 죽고 이어서 등장한 아들 자초마저 즉위하자마자 죽는다. 독살설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안국군의 아버지이자 자초의 할아버지인 소양왕이 무려 56년간 재위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아무튼 연이은 짧은 재위 기간 때문에 여불위의 애첩으로 여불위의 아이를 잉태한 채 자초에게 바쳐진 조희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진시황이다.

 

공자가 말씀했다. "처음으로 용俑을 만든 자는 후손이 없을 것이로다."

⊙ 《예기》 중

 

양 혜왕이 말했다. "과인은 안온하게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맹자께서 물었다. "사람을 죽이는데 몽둥이를 쓰나, 칼을 쓰나 차이가 있습니까?" 양 혜왕이 답했다. "차이가 없습니다." 맹자가 다시 물었다. "정치로 사람을 죽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나 차이가 있습니까?" 양 혜왕이 답했다. "차이가 없습니다." 맹자께서 말했다. "부엌에 기름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에게는 굶주린 기색이 보이고 들판에는 굶어 죽은 자가 나뒹굽니다. 이것은 짐승을 몰아 백성을 먹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짐승이 서로 잡아먹는 것 또한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백성의 부모 노릇을 하며 정치를 행함에 있어서, 짐승을 몰아 사람을 먹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찌 그 부모 노릇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용을 만든 자는 그 후손이 없으리라' 이는 사람의 모양을 본떠 만든 인형을 파묻는 것에 대한 비난입니다. 나무인형도 그러할진대, 어찌 살아 있는 백성을 굶어 죽게 만든단 말입니까."

⊙ 《맹자》 <양혜왕>편 중

 

공자께서 말씀했다. "옛 사람들이 예악을 행하는 것은 거칠었고, 후세에 예악을 행하는 것은 세련되었다先進於禮樂 野人也 後進於禮樂 君子也. 만약 예악을 행해야 한다면 나는 옛 사람의 방식을 따르겠다如用之 則吾從先進."

⊙ 《논어》 <선진>편 중

 

공자께서 말씀했다. "본질이 무늬를 이기면 조악하고, 무늬가 본질을 이기면 번지르르하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무늬와 본질이 아름답게 조화하고 난 연후에 드디어 군자답게 된다文質彬彬 然後君子."

⊙ 《논어》 <옹야>편 중

 

공자는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송나라 사람으로 공방숙이라고 한다. 공방숙이 백하를 낳았고, 백하는 숙량흘叔梁紇을 낳았다. 숙량흘은 안씨 딸과 야합野合하여 공자를 낳았으니···

⊙ 《사기》 <공자세가>편 중

 

자공이 말했다. "그 예禮를 보면 그 정치를 알 수 있고, 그 악樂을 들으면 그 덕을 알 수 잇다. 백 세대가 지나고 백 명의 옹이 있어도, 공자님의 예악에 대한 원칙을 어기는 자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태어난 이래 공자님 같은 분은 없었다."

⊙ 《맹자》 <공손추>편 중

 

자로가 묻는다. "환공이 규를 죽이고 소홀이 그를 위해 죽었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습니다." 다시 묻는다. "이것은 인仁하지 않은 겁니까?" 공자가 대답하길 "환공이 아홉 번이나 제후들을 규합하면서도 군사력을 사용치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그러니 그는 인仁하다고 할 수 있다."

⊙ 《논어》 <헌문>편 중

 

자공이 여쭙는다. "관중은 인仁한 자가 아닌가요?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는데도 자결하지 않고 다시 환공을 도와주었습니다." 공자가 답한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들 가운데 우두머리로 만들고 단숨에 천하를 바로잡았다. 백성들은 오늘날까지 그의 은혜를 입고 있다. 관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었을 것이다. 어찌 필부필부가 작은 신의를 지키기 위해 도량에 목을 매고 자결해, 아무도 알아 주는 이가 없게 되는 일을 만들겠는가?"

⊙ 《논어》 <헌문>편 중

 

그래서 장차 큰일을 도모하려는 임금에게는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신하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계획이 서면, 그 신하에게 찾아갔습니다. 덕을 존중하고 도를 즐기는 바가 이와 같지 않다면 함께 일을 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리하여 탕왕은 이윤에게 나아가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신하로 삼았습니다. 그런 태도이기에 탕왕은 고생하지 않고 상나라를 세우고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제나라 환공도 관중에게 나아가 배우고 그를 신하로 삼았습니다. 고로 환공은 수고를 덜고 천하의 패자가 된 것입니다."

⊙ 《맹자》 <공손추>편 중

 

지금 천하의 땅은 비슷하고 임금들의 덕도 엇비슷합니다. 누구 하나 덕이 특출한 임금이 없는 이유는 '신하를 가르치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임금을 가르치려는 신하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나라 탕왕이 이윤을 대하는 태도, 제 환공이 관중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자면 함부로 그들을 오라 가라 하지 않았습니다. 관중도 함부로 오라 가라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관중처럼 하지 않는 자는 말해 뭐하겠습니까?"

⊙ 《맹자》 <공손추>편 중

 

제나라 선왕이 묻는다. "제 나라 환공과 진 나라 문공의 일을 들을 수 있을까요?" 맹자가 답한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환공과 문공의 일을 가르치는 자가 없으니, 후세에 전해진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만두지 말고 계속 말하라 하신다면, 곧 왕도 정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맹자》 <양혜왕>편 중

 

"힘으로써 인仁을 빌리는 자가 패자覇者요, 패자는 반드시 대국을 가진다. 덕德으로써 인仁을 행하는 자는 왕자王者요, 왕은 대국에 기대지 않는다. 탕왕은 고작 칠십 리 나라를 왕도 정치로 다스렸고, 문왕은 백 리 나라를 왕도 정치로 다스렸다."

⊙ 《맹자》 <공손추>편 중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의 복종이 아니다. 힘이 넉넉하지 못한 것이다.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이 진실로 기뻐 복종하는 것이다. 칠십 제자가 공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이와 같다. 《시경》에 이르기를 '동에서, 서에서, 남에서, 북에서, 그 어디에서도 불복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네'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진정한 복종이다.

⊙ 《맹자》 <공손추>편 중

 

주나라의 공식 아악곡집인 《시경》 <대아大雅> 가운데 문왕유성文王有聲을 인용한 구절이다. '대왕이시여! 아름답도다!' 찬양구가 바로 이어진다.

 

맹자가 양 혜왕을 뵈었다.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마다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길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 《맹자》 <양혜왕>편 중

 

"왕께서 내 나라를 어떻게 이롭게 할까?"라고 말한다면, 대부는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라고 말할 것이고, 선비와 백성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 것인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위아래가 서로에게 이익을 취하니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수레 만 대를 동원하는 나라에서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수레 천 대를 동원하는 집안이요, 수레 천 대를 동원하는 나라의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수레 백 대를 동원하는 집안입니다. 만에서 천을 취하고, 천에서 백을 취하는 것이 많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진실로 의를 뒤로하고 이익을 앞세우면 모두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인을 실행하면서 그 부모를 버린 자는 없고, 의로우면서 그 임금을 뒷전으로 하는 자는 없습니다. 왕께서는 오직 인과 의를 말씀하실 뿐이지, 하필 이롬음을 말씀하십니까?

⊙ 《맹자》 <양혜왕>편 중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일찍이 《맹자》란 책을 읽다가 양 혜왕이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 책 읽기를 멈추고 '아! 이익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로구나'라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다.

⊙ 《사기》 (맹자, 순경 열전>편 중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다워야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합니다. 아비는 아비다원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경공이 말했다. "좋은 말씀이시오. 진실로 만약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은들 내가 어찌 그것을 얻어먹을 수 있겠소!"

⊙ 《논어》 <안연>편 중

 

노나라 소공 20년, 공자의 나이는 아마 서른이었을 것이다. 제나라 경공이 안영과 함께 노나라에 와서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에 진秦나라 목공은 나라도 작고 사는 지역도 외졌지만 그가 천하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공자가 답했다. "진나라는 나라는 작아도 그 뜻은 원대했고, 처한 곳이 외졌어도 정치하는 것이 정도에 맞습니다. 목고은 몸소 백리해를 등용하고 그에게 대부의 직위를 주며 오랏줄로 갇힌 몸을 풀어주고 더불어 사흘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서 그에게 정사를 맡겼습니다. 이로써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설령 천하의 왕이 되어도 가능했을 터인데, 천하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자그마한 일입니다." 경공이 기뻐했다.

⊙ 《사기》 <공자세가>편 중

 

자로가 여쭈었다. "위나라 왕이 선생님을 우대하여 정치를 맡기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실 겁니까?" 공자께서 말씀했다.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자로가 여쭈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선생님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계시군요. 뭘 바로잡는다는 겁니까?" 공자가 말씀했다. "거칠구나! 자로야!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문으로 남겨두는 법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다.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날 수 없다.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들어맞지 않게 된다. 형벌이 들어맞지 않으면 백성들은 팔다리를 둘 데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명할 때에는 반드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자신의 말에 대해 대충하는 것이 없도록 할 뿐이다."

⊙ 《논어》 <자로>편 중

 

자장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벼슬에 머물 때에는 나태하지 않고, 법을 집행할 때는 충심으로 해야 한다."

⊙ 《논어》 <안연>편 중

 

승상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대해 주셨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처럼 대하였습니다. 곤鯀을 죽이고 우禹를 흥하게 한 뜻을 깊이 생각하시어, 평생의 사귐이 이로 인해 무너지지 않도록 하소서. 그렇다면 저는 비록 죽어서도 황천에서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마속이 제갈량에게 보낸 편지

 

공자께서 말씀했다. "3년 동안 학문을 익히고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 《논어》 <태백>편 중

 

제나라 경공이 말한다. "나도 늙었나 봅니다. 당신을 등용할 수 없소."

⊙ 《논어》 <미자>편 중

 

회해선사懷海禪師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 : 당나라의 고승 백장百丈 회해선사는 90세의 노구를 이끌고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수행에 정진햇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제자들이 농기구를 감추었다. 그러자 회해선사는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식사도 하지 않앗다. 제자들이 그 이유를 여쭙자 "하루 일하지 않았으니, 하루 먹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맹자께서 물었다. "허자는 반드시 곡식을 직접 파종하고 난 연후에 음식을 먹나요?"  진상陳相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맹자께서 물었다. "허자는 반드시 베를 직접 짠 연후에 옷을 입습니까?" 진상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러나 거친 베옷을 입습니다." 맹자께서 물었다. "허자는 관을 쓰나요?" 진상이 말했다. "관을 씁니다." 맹자께서 물었다. "어떤 관인가요?" 진상이 답햇다. "그냥 흰관입니다." 맹자께서 물었다. "스스로 그 관을 짜나요?" 진상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곡식으로 그 관을 바꿉니다." 맹자께서 묻는다. "허자는 왜 스스로 관을 짜지 않습니까?" 진상이 대답했다. "농사일에 방해가 되어 그렇습니다." 맹자께서 물었다. "허자는 솥과 시루로 밥을 짓습니까? 청제 농기구로 밭을 갑니까?" 진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맹자께서 물었다. "직접 그 솥과 농기구를 만듭니까?" 진상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농사지은 곡식으로 그것들과 바꿉니다."

⊙ 《맹자》 <등문공> 중

 

진상陳相 : 본디 유가를 공부하다가, 유가를 버리고 농가의 학설을 추종했다.

 

맹자께서 말씀했다. "대인의 일이 따로 있고, 소인의 일이 따로 있습니다. 또한 한 사람의 몸에는 백 가지 일을 다 할 수 있는 소질이 갖추어져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스스로 농사짓고 스스로 만들고 난 연후에만 그것을 이용하도록 한다면, 이는 천하의 백성을 길바닥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고생하고, 어떤 사람은 힘으로 고생합니다. 마음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힘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다스림을 당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다스림을 당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얻어 먹게 되는 것이 천하의 공통의 옳은 의리입니다."

⊙ 《맹자》 <등문공> 중

 

공자가 말씀했다. "군자는 자신의 말이 자신의 행동을 넘어서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 《논어》 <헌문>편 중

 

"건괘의 상구는 지위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하지만 지위가 없고, 높지만 백성이 없어, 항룡에겐 후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임금이 숭고함을 자처해 어진 이를 홀대하고 자신만 성인인 척하거나 자신만 지혜롭다고 생각하여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하고 아랫사람에게 자신을 낮추려는 의지가 없다면 재앙을 맞게 될 것입니다. 임금께서 이 점을 아신다면 큰 허물은 없으실 겁니다."

- 이황, 항룡유회亢龍有悔

 

공자가 말씀했다. "유由야! 자네에게 어떤 것을 안다는 것에 대해 말해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 《논어》 <위정>편 중

 

만자가 말했다. "한마을이 모두 성실한 사람으로 칭하면 어디에 간들 역시 성실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공자님께서 그러한 자를 '덕德의 적敵'으로 여기시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그 사람은 비난하려 해도 바난할 것이 없고, 찌르려 해도 찌를 구석이 없다. 세속에 동조하여 더러운 세상에 잘 살아간다. 평소 행실은 충성과 믿음에 비슷하고, 행동은 청렴하고 결백한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마을 사람이 모두 그를 기쁘게 맞이하고, 그 역시 자신을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요순의 길에 들어설 수 없다. 그리하여 '덕의 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했다. "비슷하나 아닌 것을 나는 미워한다. 가라지를 미워하는 것은, 벼와 비슷하게 생겨 벼의 싹을 해칠까 해서 그런 것이다. 아첨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의로움을 어지럽힐까 두려워 그렇다. 말 잘하는 입을 미워하는 것은, 그 말솜씨가 믿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나라의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정나라 음악이 아악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그렇다. 중간색인 자주색을 싫어하는 것은, 원색인 붉은색의 순수함을 해칠까 봐 그렇다. 향원鄕原을 싫어하는 것은, 그 향원이 덕을 어지럽힐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군자는 흐트러진 도리를 되돌려 바르게 할 뿐이다. 정도를 바로 세우면 곡 백성들이 흥하게 된다. 백성들이 흥하면 곧 사특함은 사라진다.

⊙ 《맹자》 <진심>편 중

 

재아가 여쭈었다. "3년상은 기간이 너무 깁니다. 군자가 3년 동안 예를 닦지 않으면 예는 반드시 무너질 겁니다. 3년 동안 음악을 팽개친다면 음악도 반드시 무너질 겁니다. 묵은 곡식이 없어지면 새 곡식이 올라오는 기간, 그리고 불씨 얻을 나무를 다시 바꾸는 기간으로는 1년이면 충분합니다." 공자가 말씀했다.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 편안하느냐?" 재아가 답했다. "편안합니다." 공자가 말씀했다.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하거라. 군자는 상을 치르는 기간에 기름진 것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음악을 들어도 즐거움을 모른다. 집에 있어도 편치 않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너는 편안하다고 하니 그렇게 하거라." 재아가 나가자 공자가 말씀했다. "그대는 인하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나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3년상은 천하에 통용되는 상례이다. 그대도 부모로부터 3년 동안 사랑을 받았을까?"

⊙ 《논어》 <양화>편 중

 

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서는 매사를 물어보셨다. 어떤 이가 말했다. "누가 추 땅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말했는가? 태묘에 들어가서는 모든 일을 묻더라."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말씀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예다."

⊙ 《논어》 <팔일>편 중

 

자공이 묻는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답한다. "괜찮다. 다만, 가난하되 즐거움으로 삼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 《논어》 <학이>편 중

 

자공이 이어 묻는다. "《시경》에서 '칼로 끊듯이切, 줄로 갈듯이磋, 정으로 쪼듯이琢, 숫돌로 윤을 내듯이磨'라고 한 것이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답한다. "사야, 비로소 나와 더불어 《시경》을 논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것을 알려주었더니 다가올 일을 아는구나!"

⊙ 《논어》 <학이>편 중

 

공자께서 말씀했다.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禮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서 존립할 수 없고, 말言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 《논어》 <요왈>편 중

 

초 장왕은 말馬을 특히나 아끼고 좋아했다. 사람도 먹기 힘든 대추와 육포를 먹이로 주고, 비단옷을 입혀주고, 잠도 침대에서 자게 했다. 그러다 말馬이 말語이 아니게 되어 비만으로 죽고 말았다. 초 장왕은 관을 잘 짜서 대부大夫의 예로 장사 지내게 명했다. 신하들이 과하다고 반대하자 장왕은 "감히 말馬을 가지고 말語하는 자는 참하겠노라"라고 엄포를 놓았다. 키가 8척이며 변설과 풍자에 능한 악공 우맹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조정에 뛰어와 통곡했다. 장왕이 연유를 묻자, 우맹은 이렇게 답한다. "말馬은 대왕께서 아끼시는 영물이온데 이 막강한 초나라에서 뭔들 구하지 못하겠습니까? 대부의 예로 장사 지내는 것은 너무 야박하옵니다. 임금의 예로 장사 지내야 합니다." 장왕이 그 상세한 방도를 묻자, 우맹이 답한다. "폐하, 옥을 다듬어 관의 속널을 만들고 무늬 가래나무로 바깥널을 만드십시오. 단풍나무, 느릅나무, 녹나무로는 횡대를 만드시면 됩니다. 군사를 동원하여 큰 무덤을 파게 하시고 노약자로 하여금 흙을 져 나르게 하십시오. 제나라와 조나라의 조문단을 앞에 세우시고 한나라와 위나라의 조문단을 뒤에 세우십시오. 사당을 세워 소, 양, 돼지를 한 마리씩 바치는 최고의 제사를 지내고 만 호의 읍으로써 받들게하소서. 제후들이 이 모습을 보고 듣게 된다면, 누구나 대왕께서 말을 사람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맹의 말을 듣고는 장왕은 장탄식을 한다. "내 죄가 이토록 크구나!" 반성하고는 평범하게 말을 장사 지내라 명하고 이 일을 비밀에 부쳤다.

⊙ 《사기》 <골계열전> 중

 

공자께서는 향당에 계실 때는 공손하게, 마치 말을 못하는 사람같이 말씀하셨다. 함께 서 있는 자에게 읍을 하실 때에는 마주잡은 양손을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 사람에게 읍을 하실 때에는 오른쪽으로 돌리셨는데 읍을 하실 때마다 옷깃이 앞뒤로 펄럭이게 하셨다. 궁궐 문을 들어가실 때에는 삼가고 공손하게 처신하며 마치 궁궐의 문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셨다. 군자는 감색과 검붉은 천으로 옷깃을 장식하지 않고, 붉은색과 자주색으로 일상복을 만들지 않는다. 밥은 잘 찧은 쌀이라야 싫어하지 않으셨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이어야 꺼리지 않으셨다. 사 온 술과 저잣거리의 육포는 드시지 않았다.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고 받은 고기는 밤을 넘기지 않고 드셨다. 그 외에 제사 지낸 고기는 사흘 안에 드셨고 사흘을 넘긴 고기는 드시지 않았다. 사람을 다른 나라에 전송할 적에는 두 번 절하고 보내셨다. 계강자가 약 선물을 보내자 공자께서 "제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오니 감히 맛보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씀했다. 수레에 오르면 반드시 바르게 서서 손잡이 끈을 잡으셨다.

⊙ 《논어》 <향당>편 중

 

자공이 물었다. "공문자를 일컬어 왜 '문文'이라고 칭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는 영민하고 학문을 사랑했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문文'이라 칭하는 것이다."

⊙ 《논어》 <공야장>편 중

 

공자께서는 괴이한 일, 위세를 부리는 일, 어지럽히는 일, 귀신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 《논어》 <술이>편 중

 

공자가 말씀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잇다. 그 가운데 좋은 점을 가려 그 점을 따르고 그 가운데 좋지 아니한 점은 가려서 고친다."

⊙ 《논어》 <술이>편 중

 

하늘의 명, 천명天命을 성性이라 한다.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도道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

도道는 잠시 떠나는 것도 불가하다.

떠날 수 있다면 도道가 아니다.

⊙ 《중용》 중

 

공도자가 말했다. "고자告子가 말하기를 '성性에는 선함善도 없고 선하지 않음不善도 없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성性은 선을 행할 수도 있고, 불선을 행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문왕과 무왕이 일어나면 백성은 선을 좋아하고, 유왕과 려왕이 일어나면 백성은 포악함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본성은 선하기도 하고, 선하지 않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요 임금이 다스려도 상과 같은 자가 생기고, 고수가 아버지인데도 순 임금 같은 성군이 탄생하기도 한다. 폭군 주왕을 조카로 두고 왕으로 섬겨도 미자계와 왕자 비간 같은 어진이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께서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하시는 데, 그럼 저 사람들의 주장은 모두 틀린 겁니까?"

⊙ 《맹자》 <고자>편 중

 

맹자가 말했다孟子曰. "그런데 그 마음을 놓고 보면, 선을 행하는 것이 가능하다乃若其情 則可以爲善矣. 그래서 본성이 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乃所謂善也. 무릇 선하지 않음을 행하는 것은 그 마음 본연이 저지르는 죄가 아니다若夫爲不善 非才之罪也. 불쌍한 자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惻隱之心 人皆有之.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역시 사람들 모두 지니고 있다羞惡之心, 人皆有之. 타인을 공경하는 마음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恭敬之心 人皆有之.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하는 마음 역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是非之心 人皆有之. 측은지심은 인이다惻隱之心 仁也. 수오지심은 의다羞惡之心 義也. 공경지심은 예다恭敬之心 禮也. 시비지심은 지다是非之心 智也. 인의예지는 밖에서 들어와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고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본래 내 자신이 지니고 있지만 그 사실을 생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我固有之也 弗思耳矣.

⊙ 《맹자》 <고자>편 중

 

《대학》이란 책은 옛날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다. 대개 하늘로부터 백성을 내릴 때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을 부여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그 기질의 타고남은 한결같을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 본성이 소유한 바를 알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을 모두 다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슬기로워 능히 그 본성을 다하는 자가 나온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만백성의 군주와 스승이 되게 한다. 그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고 가르치게 하여 백성의 본성을 회복케 만든다. 이는 복희, 신농, 황제, 요, 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법도를 세운 것이다. 사도의 직책과 전악의 벼슬을 이런 이유로 설치한 것이다.

⊙ 《대학장구》 중

 

측은, 수오, 사양, 시비, 사단은 어디에서 발동해 나온 것입니까? '인의예지'라는 본성에서 발동해 나온 겁니다. 희, 노, 애, 구, 애, 오, 욕. 일곱 가지 감정은 어디에서 발동해 나온 겁니까? 칠정은 바깥 사물이 우리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와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바깥 대상에 다가가서 나오는 감정이란 말입니다.

 

옛날에 맹자가 사단은 마음에서 발동해 나온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마음이란 분명 리와 기 둘을 합한 것입니다. 그런데 맹자가 주목한 것은 '리와 기' 가운데 '리'입니다. 왜냐하면, '인의예지'의 본성은 마음속에서 순수한 채로 있는데, 사단이 순수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마리이기 때문입니다.

 

칠정의 발현에 대해 주희도 칠정에는 본래 당연한 도덕적 원칙이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칠정에도 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희가 주목한 지점은 기입니다. 왜냐하면, 바깥 사물이 들어와 쉽게 먼저 감동을 주는 것은 우리 몸의 감각 기관을 이루는 기인데 칠정이 이런 과정을 보여주는 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속에 있는 순수한 리가 발현하자마자 기와 섞인 것도 있고, 또는 바깥 사물에 감동받은 기가 발현할 때 리로 변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해 발현되어 나온 근원을 무시하고 결과만 보고 리와 기 모두 본래 마음속에 있는 본체라고 둘을 구준하지 않으십니까?

⊙ 《퇴계집》 <답기명언>편 중

 

- 양계초 : 중국 근대 사상가이자 개혁가, 교유가, 사학자. 신문화운동을 이끌고 오사운동을 지지했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란 별명답게 동양, 서양 학문에 두루 밝았다.

 

- 초 장왕 솥 : 부국강병을 이룬 초나라 장왕은 장강을 넘어 낙수가에 진을 치고 열병식을 가진다. 장차 천하를 제패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자 허울만 종주국이던 주周나라는 사신을 파견해 초나라를 달래려 한다. 초 장왕은 종주국의 상징물인 솥에 대해 묻는다. "구정九鼎을 한번 보고싶소. 그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오." 대놓고 천하의 주인자리를 내놓으라는 불손한 언사에, 사신으로 온 왕손王孫 만滿이 답한다. "나라의 권위는 덕에 있는 것이지, 솥의 무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덕행이 이루어지면 솥은 아무리 작아도 움직일 수 없고, 세상이 혼란하고 간사한 무리가 들끓게 되면 구정은 아무리 커도 가벼이 옮길 수 있습니다."

 

- 장사태수 손견 옥새 : 타도 동탁을 기치로 모인 토벌군의 일원이던 장사태수 손견은 폐허가 된 낙양에서 옥새를 발견하게 된다. 이를 원술에게 바치자, 원술은 황제가 되겠다는 야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제위에 오르니 국명을 중㑖이라 하였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주석을 단 배송지는 이렇게 평한다. "티끌만한 공적도 없이 황제를 칭하니 의로운 자들이 분기탱천했다. 사치와 향락으로 망했다는 표현으로는 그 큰 죄악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

 

자사는 이른바 온전한 것을(칠정) 말했고 맹자는 사단을 정에서 골라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직 발동하지 않으면 본성이라 말하고 이미 발동했으면 정이라고 말하니, 본성은 선하지 않음이 없고 정은 선악이 잇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그러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비록 사단과 칠정을 구분하더라도 칠정 밖에 사단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선생께서는 '만약 사단은 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무조건 선하고 칠정은 기에서 나왔기 때문에 선악이 모두 있다'고 주장하십니다. 이것은 리와 기를 쪼개어 둘로 구분한 것이기 때문에 칠정은 본성에서 나오지 않고 사단은 기를 타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선생의 말씀에는 잘못이 있습니다. 그래서 후학인 저로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퇴계집》 <답기명언>편 중

 

내가 강릉에 있을 때, 기대승이 이황과 사단칠정을 논한 편지를 보았다. 이황은 '사단은 리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고 했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본디 둘이 아니다. 칠정 가운데 리가 발동한 것이 사단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오아복한 글이 만여 자가 되도록 서로 합치하지 않았다. 기대승의 주장이 바로 나의 뜻에 합치한다. 대개 본성에는 인의예지신이 있고, 감정에는 희, 로, 애, 락, 애, 오, 욕이 있을 뿐이다. 인의예지신 오성 이외에 다른 성이 없고, 칠정 이외에 다른 정이 없다. 칠정 가운데 인욕이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천리에서 나온 것이 사단이다.

⊙ 《율곡전서》 <논심성정>편 중

 

2부 나를 세우다

 

살피다 성

 

파자하면, 작은 것少까지 자세히 본다目는 뜻.

살피다, 반성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중국 고대 중앙정부를 뜻하기도 한다.

 

공자께서 말씀했다. "봉황새는 오지 않고, 황하에서도 상서로운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났구나!"

⊙ 《논어》 <자한>편 중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가 공자가 있는 곳을 지나가다가 말했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그토록 덕이 쇠하였는가, 지나간 것은 간언할 수 없고, 다가올 것은 오히려 좇을 수 없네. 그만두시게! 그만두시게! 오늘날 정치를 따르는 것은 위태롭다네." 공자는 수레에서 내려 접여와 말을 섞으려 했다. 그러나 접여는 종종걸음으로 공자를 피했다. 그래서 그와 말을 나눌 수 없었다.

⊙ 《논어》 <미자>편 중

 

맹자가 말씀했다.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사방 삼 리의 내성과 사방 칠 리의 외성을 포위하고 공격해도 이기지 못할 경우가 있다. 대체로 포위하고 긴 시간 공격하다 보면 반드시 천시가 유리해지는 시기를 맞는다. 그런데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천시가 땅의 유리함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곽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요, 해자가 깊지 않은 것도 아니다. 병기와 갑옷이 견고하고 날카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쌀과 조 같은 군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러할진대 땅을 버리고 달아나는 경우는 지리가 인화보다 못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백성이 사는 영역은 나라의 국경선으로 그 이동을 막을 수 없다. 나라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험준한 산과 계곡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천하에 위세를 떨치는 것은 병기와 갑옷이 뛰어나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를 얻어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그를 돕는다. 도를 잃고 방탕하고 포악해진 자는 도와주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도를 잃어 도움이 적어지다 보면 마지막에는 그 피붙이마저 그를 배반하게 된다. 도를 실천해 그정도가 지극해지면 천하의 사람들이 그를 돕고 그의 정치에 순종하게 된다. 천하의 사람들이 순종하는 군주가 자신의 피붙이에게도 배신당하는 군주를 공격하게 되면 싸우지 않아도 된다. 굳이 싸우게 된다 해도 반드시 승리한다.

⊙ 《맹자》 <공손추>편 중

 

- 사마천 : 중국의 한 역사학자는 사마천을 숭앙해 이렇게 표현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위대한 유산으로 추앙받지만 누가 유철이란 이름을 기억하겠는가!" 유철은 한 무제의 이름이다. 이 논평은 뭔가 사마천의 한 서린 슬픔을 조금이나마 신원伸寃하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한 무제가 사마천에게 궁형을 내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백학사모옥題栢學士茅屋> : 두보의 칠언율시

벽산의 학사가 은어 모양의 학사증서 불태우고

백마로 달려서 몸을 바위 속에 숨겼도다.

옛사람은 겨울 동안 독서에 몰두했다 하거늘

그대 젊은 나이에 만여 권을 읽었도다.

채색 구름이 집에 가득 차서 둥글게 덮개를 엎어놓은 듯하고

가을 물이 섬돌에 넘쳐서 도랑으로 떨어지네.

부귀는 반드시 애써 노력함에서 얻어지나니

남아로서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하느니라.

碧山學士焚銀魚

白馬却走身巖居

古人已用三冬足

年少今開萬卷餘

晴雲滿戶團傾蓋

秋水浮階溜決渠

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

 

제나라 환공이 대청마루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윤편輪扁이 마루 아래에서 수레를 깎고 있었다. 윤편이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대청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감히 묻겠사옵니다. 대왕께서 읽고 계신 책은 무엇입니까?" 환공이 답했다. "성인聖仁의 말씀이네." 윤편이 다시 물었다. "그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시옵니까?" 환공이 답했다. "이미 돌아가셨다네." 윤편이 말했다, "그렇다면 대왕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군요." 환공이 노해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수레바퀴나 만드는 놈이 감히 왈가왕부하는가! 나를 설득한다면 무사하겠지만,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무사치 못하리라!" 윤편이 대답했다. "제 평소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너무 많이 깎으면 헐겁고, 너무 적게 깎으면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너무 많이 깎지도 너무 덜 깎지도 않는 것은, 손의 감각으로 터득해 마음으로 느낄 뿐입니다. 입으로는 말할 수가 없으니 바로 거기에 비결이 존재합니다. 저도 이 비결을 제 자식에게 설명해줄 수 없고, 제 자식도 저에게 이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이가 일흔이 되었지만 아직도 수레바퀴 깎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옛 성인들도 마찬가지로 핵심적인 깨달음을 책에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왕께서 읽고 계신 책들이 옛 성인의 찌꺼기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 《장자》 <천도>편 중

 

- 포사 : 포사褒姒는 절세미인으로 유왕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포사는 웃지 않았다. 어느 날 비단 찢어지는 소리에 웃음을 터뜨린 포사를 보고, 유왕은 비단을 징발해 찢어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포사의 웃음을 더 많이 보기 위해, 유왕은 금단의 선을 넘게 된다. 적이 침범했을 때 올리는 봉화를 피워 제후들의 군사를 소집한 것이다. 유왕이 장난으로 봉화올린 걸 알게 된 제후들이 허탈하고 황당한 마음으로 돌아가자, 그 모습을 보고 포사는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이후, 유왕은 태자와 왕후인 신후를 폐하고 포사의 아들을 태자로 삼는다. 그러자 분노에 찬 신후 세력이 건융과 결탁해 유왕을 공격해 들어온다. 유왕은 다급히 봉화를 올려 제후들에게 원군을 청하지만 또다시 유왕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그 어떤 제후도 달려오지 않는다. 유왕은 결국 죽음에 이르고, 주 왕실은 막을 내리게 된다.

 

글은 말을 다 전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 전할 수 없다書不盡言 言不盡意.

⊙ 《주역》 <계사전> 중

 

맹자 말씀했다孟子曰. "왕의 자취가 사라지자 시가 없어졌다王者之迹熄而詩亡. 시가 사라진 연후에 《춘추》가 지어졌다詩亡然後春秋作. 진나라의 역사서 승, 초나라의 사서 도올, 노나라의 사서 춘추가 모두 한가지다之乘 之檮杌 之春秋 一也. 그 기록된 일은 곧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문공의 치적이다其事則齊桓 晉文. 그 문체는 곧 사관의 기록체였다其文則史." 공자가 말씀했다曰. "그 사관 기록의 의로움을 내가 몰래 취해 《춘추》를 적었다其義則丘 竊取之矣."

⊙ 《맹자》 <이루>편 중

 

함구몽이 말했다. "순임금이 요임금을 신하로 삼지 않았다는 것은 제가 이미 말씀을 들어 알겠습니다. 《시경》에 '넓고 너른 하늘 아래 왕의 영토 아닌 것이 없고, 땅의 끝까지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순임금이 이미 천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아버지 고수가 신하가 아닐 수 있는지 감히 질문드려봅니다. 어찌 그럴까요?" 맹자가 답했다. "그 말은 시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그 시는 왕이 일으킨 일에 수고가 너무 많아서 부모를 봉양할 수 없는 상황을 이르는 것이다. 이 시는 '하늘 아래 왕의 일이 아닌 것이 없겠지만, 왜 유독 나만 이렇게 힘들고 지쳐야 하는가!'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시를 해석하는 사람은 글자 자구 하나하나에 매달려 문장의 뜻을 해쳐서는 안 된다. 문장을 가지고 그 시의 전체 뜻을 해쳐서는 아니 된다. 그 시의 의도를 파악해 그 뜻을 맞이해야만 진정한 시의 내용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만약 자구대로만 본다면 《시경》 <대아운한>편에 '주나라에는 살아남은 백성 한 명도 없네'라고 했는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주나라에 남은 백성이 하나도 없어야 할 것이다."

⊙ 《맹자》 <만장>편

 

- 五經博士 : 한대에 시詩, 서書,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의 오경마다 박사관博士官을 두어 제자를 양성시키고 유학의 보급을 도모했다. 동중서의 건의로 한무제가 그 기틀을 세웠다.

 

- 좌전벽 : 지금으로 말하자면, '좌전 마니아' 혹은 '좌전 오타쿠'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좌전벽' 가운데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관우가 좌전벽이었다. 전장에서도 《춘추좌씨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암송할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고 하니, 《춘추좌씨전》은 관우의 인생 지침서 같은 책이다.

관우는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이다. 위대한 영웅 서사와 더불어 비극적 결말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조건이다. 개자추, 악비, 백이와 숙제 등등 중국 역사를 수놓은 인물들 가운데, 유독 후대에 사랑받는 영웅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도 관우를 신성시하는 관점에 단단히 한몫을 했다. 관우는 조조의 끝없는 환대를 뒤로 하고 유비의 소식을 듣자마자 떠난다. 보장된 부와 명예를 송두리째 버리고, 다섯 관문의 여섯 장수를 베어가며 유비에게 돌아가는 의리의 사나이 관우. 오관참장五關斬將의 전설을 만들어낸 그의 비극적 죽음은 관우의 영웅적 면모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버렸다. 관우를 벤 손권은 유비의 복수가 두려운 나머지 꾀를 낸다. 조조에게 관우의 참수된 목을 보내버린 것. 유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관우에 대한 흠모 때문이었을까. 조조는 향나무로 용俑을 만들어 관우 목에 붙여서 시신의 형체를 복원하고는, 제후의 예로 후하게 장사 지냈다.

낙양에 가면 관우의 사당인 관림關林이라는 명소가 있다. 관림은 극존칭이다. 일반인의 무덤을 '분墳'이라 하고, 제후의 무덤을 '총塚'이라 칭하며, 황제의 무덤을 '릉陵'이라 한다. 진시황의 무덤을 진시황'릉'秦始皇陵이라 부르고, 장수왕이나 광개토대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장군'총'將軍塚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 그 용례가 쉬이 이해간다. 그런데 관우의 무덤에 붙은 '림林'은 무엇일까. 림은 성인聖人의 무덤을 칭할 때 사용되는 용어다. 한마디로 관우는 중국 역사에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관림에 들어서 여러 관우상을 마주해보라. 의구심이 들 것이다. 하나같이 두꺼운 책 하나를 손에 꼭 쥐고 있다. 관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적토마와 청룡언월도가 아니던가. 그런데 마치 백면서생처럼 책만 주야장천 틀어쥐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그토록 관우가 애지중지하는 책이 바로 《춘추좌씨전》이다. 관우가 좌전 마니아란 사실이 중국인들에게도 꽤나 의미가 깊었나 보다. 정작 청룡언월도는 관우상 옆에서 시커먼 얼굴로 늠름하게 서 있는 한 장수가 꼬나들고 있다. 그가 바로 관우의 부장 주창周倉이다. 《삼국지연의》에는 여포, 장비, 황충, 위연, 조자룡, 마초, 하우돈, 서황, 허저, 감녕, 태사자 등등 이루 거명할 수 없이 많은 장수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유독 관우의 부장 주창의 존재만이 두드러진다. 다른 맹장들에게도 당연히 부장이 있었을 터인데 주창만이 《삼국지연의》에서 제대로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관우가 신격화되면서 부장인 주창과 관련된 신비로운 설화가 전해진다.

 

관우가 적토마를 타고 적진으로 달리면 주창은 그 무거운 청룡언월도를 들고 같이 뛴다. 그런데 오히려 주창이 먼저 도착해 있으니 그 이유는 주창의 발에 비모飛毛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신기한 털 비모 덕분에 관우는 전장에서 청룡언월도를 건네받고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괄목상대刮目相對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여몽이 주창이 고향 친구를 포섭해 첩자로 보낸다. 술이 거나해진 주창이 비모의 존재를 발설하게 되고, 첩자는 비모를 제거한다. 그 이후 관우는 때맞춰 청룡언월도를 받지 못해, 결국 손권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억울한 죽음을 맞은 관우는 신격화되었는데, 무려 세 분야의 신으로 섬겨진다. 삼국지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뒤이어 찾아온 위진남북조시대에 사상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도교에서 신으로 섬겨지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로 재물의 신으로 여겨진다. 관우가 도원결의를 하고 유비, 장비와 뜻을 합쳐 거병하기 전, 소금 장사를 했다는 기록이 그 근거다. 봉급을 뜻하는 샐러리가 소금에서 유래되었듯, 중국 전통 사회에서도 소금은 귀한 물품이었기에 재물의 신으로 추앙받는 듯하다. 산동 지방의 염상들이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강력하게 결속하기 위해 관우를 구심점으로 삼아 숭앙했다는 설도 설득력이 있다. 세 번째는 바로 유교의 신이다. 관우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인 의리와 충성심은 유교의 핵심 가치다. 그런 의미에서 관우가 끼고 살았다는 《춘추좌씨전》이야말로 유교 가치의 핵심을 담은 경전經傳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흔히 권위 있는 고전을 경전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성경현전聖經賢傳의 준말이다. 독음은 같지만 종교의 교리를 다룬 경전經典과 다른 말이다. 성경경전이란 말을 풀이하자면, '경전의 경은 성인이 지은 것이요, 경전의 전은 현자가 쓴 것이다'라는 뜻이다. 예컨대 《춘추》는 공자의 말씀으로 경이 되는 것이다. 성인의 저작이란 말이다. 하지만 좌구명은 성인의 반열에는 못 미치는 인물이기에 《춘추》에 주석을 달아 만든 책은 '춘추좌씨경'이 아닌 《춘추좌씨전》이 되는 것이다.

 

악사 광이 진晉나라 도공悼公을 공손하게 모시고 있었다. 도공이 묻는다. "위나라 백성들이 군주를 축출했다는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악사 광이 답한다. "어쩌면 쫓겨난 군주야말로 정말 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은 임금은 선한 자를 상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줍니다. 백성을 자식처럼 양육하고, 하늘이 만물을 품듯 품어주며, 대지가 만물을 껴안듯 안아줍니다. 백성은 군주를 부모처럼 받들고 사랑하고, 해와 달을 보듯 우러르며, 천지신명을 섬기듯 정성을 다하고, 천둥번개가 칠 때처럼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내쫓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임금은 신을 모시고 백성이 우러르는 존재입니다. 만일 백성의 삶을 곤궁하게 하고 신을 섬기는 제사를 거르면, 백성이 절망하고 사적에는 주인이 없게 됩니다. 그렇게 만드는 임금을 장차 어디에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제거하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 《춘추좌전》 <양공 14년>편 중

 

"하늘은 백성을 몹시 사랑합니다. 그러니 어찌 한 사람이 백성들 위에서 방자하게 굴고 악행을 일삼아, 백성이 하늘과 땅으로부터 받은 천성을 잃게끔 만들겠습니까? 결코 그렇게 놔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 《춘추좌전》 <양공 14년>편 중

 

맹자가 양梁 양왕襄王을 알현하고 나와서 말했다. "그를 바라보아도 임금 같지 않았고, 다가가서 바라보아도 외경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 《맹자》 <양혜왕>편 중

 

맹자가 제 선왕에게 물었다. "왕의 신하 한 명이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처와 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 다녀왔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처자식이 추위에 떨고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선왕이 답했다. "그 친구를 버립니다." 맹자가 물었다. "형벌을 관장하는 사사士師가 선비를 다스릴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 선왕이 답했다. "그만두게 하겠습니다." 맹자가 물었다. "나라의 사방 국경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제 선왕은 좌우를 돌아보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 《맹자》 <양혜왕>편 중

 

애당초 양공이 즉위한 이후 제나라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 포숙아가 말했다. "군주가 백성을 사악하게 만드니 곧 변란이 일어날 것이다."

⊙ 《춘추좌전》 <장공 8년>편 중

 

관중을 압송해줄 것을 청한 포숙아. 포숙아가 관중을 넘겨받자 제나라 당부 땅에 이르러 그를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돌아가서 고했다. "관중은 제나라의 상경인 고해보다 정사에 더 능하오니, 그에게 재상 자리를 맡겨도 될 것입니다." 환공은 포숙아의 말을 따랐다.

⊙ 《춘추좌전》 <장공 9년> 중

 

관중이 병이 드니 환공이 문병 와서 물어본다. "재상의 병이 악화되니, 비록 하기 싫은 말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그대의 병이 위중해지면 과인은 누구에게 정사를 맡겨야 합니까?" 관중이 말한다. "임금께서는 누구를 마음에 두고 계시오?" 환공이 답한다. "포숙아가 좋을 것 같소이다.." 관중이 말한다. "안 됩니다." 환공이 다시 묻는다. "그럼 누가 적임자입니까?" 관중이 답한다. "습붕입니다."

⊙ 《열자》 <력명>편 중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묻는다. "과인이 듣기로는 탕은 걸桀을 몰아내고 천자가 되었고, 무왕은 주紂를 쳐내고 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까?" 맹자가 답한다. "전해오는 기록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왕이 말한다. "신하 된 자로써 자신의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답한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지인殘賊之人을 단지 '그놈'이라고 하니 '무왕께서 그 주紂라는 놈을 처형하셨다'는 말은 들었어도 '누가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바가 없사옵니다."

⊙ 《맹자》 <양혜왕>편 중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다."

⊙ 《삼봉집》 중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 이 때문에 백성의 신임을 얻어야 천자가 되고, 천자의 신임이 잇어야 제후가 되면, 제후의 신임을 얻어야 대부가 되는 것이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바로 갈아 치운다. 희생이 이미 이루어지고 기장과 피가 이미 정결하여 제사 의식이 때에 맞게 되었음에도, 가뭄과 홍수가 일어난다면, 곧 사직을 갈아 치운다.

⊙ 《맹자》 <진심>편 중

 

-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 일제강점기, 그리고 바로 이어진 한국전쟁을 통해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지금의 경제대국으로 만든 것은 뭘까? 비정상적인 교육열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봐도 유태인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대한민국의 뜨거운 교육열에 대의명분이 되어주었던 금과옥조가 바로 맹모삼천지교다. '맹자의 엄마는 이사를 세 번이나 했다는데, 대치동으로 이사 한 번 가주는 게 부모 된 도리 아니겠어?'라는 자기합리화가 강남 8학군을 만들어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학벌 공화국으로 변질되는 데 중차대한 역할을 해낸 '맹자의 이사 세 번'에는 치명적인 오독誤讀이 숨어 있다. 유향이 지은 《열녀전》에 나오는 기록을 살펴보자.

 

맹자의 이름은 '가軻'다. 처음에 묘지 근처에 살던 맹가孟軻는 매일같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장례 치르는 놀이를 해댄다. 그 모습을 본 맹모가 이사를 결심한다. 두 번째 자리 잡은 곳은 시장 근처 도살장이다. 도살하는 행동과 상인들이 물건 파는 모습을 흉내 내는 맹가의 모습에, 맹모는 다시 좌절한다. 마지막으로 이사한 곳은 학교 근처다. 매월 초 하루가 되면 관원들이 문묘에 들어와 예를 행한다. 무릎 꿇고 절하고, 읍하고, 사양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를 행한다. 맹가는 그것을 보고 일일이 익히고 기억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은 진정 아이를 데리고 살 만한 곳이구나"라고 말했다.

 

여기서 '유儒'의 개념을 다시 상기해보자. 유학이 어디에서 비롯됐던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리던 사람의 형상 아니던가. 기우제에서 출발해 죽은 자를 장례 치르고 제사를 모시던 일에서 유학儒學은 비롯되었다. 비록 맹모는 아이를 기를 만한 곳이 못 된다며 이사를 결행했지만, 사실상 어린 맹가는 착실하게 유학의 엘리트 코스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간 것이다. 지금이야 대학 가기 전에 보람상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마트 정육코너에서 일을 하는 게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당시 맹가에게는 생활밀착형 교육이 되었던 것이다.

맹모는 자신도 모르게 완벽한 수행 평가 대비를 시키고 나서 시험 공부를 시킨 셈이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김주영쌤 뺨치는 어마어마한 코디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맹자의 단단한 공부는 전체 왕조 시대에 남들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는 도발적인 사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 이백 : 당대唐代 최고의 시인. <소년행> <월하독작> <조밭백제성> 등의 명작을 남겼다. 술을 워낙 좋아해 술 관련 에피소드가 여럿 전해진다. 어느 날 현종이 이백을 찾았는데, 이미 취해 있었다. 만취한 채 업혀 와 일필휘지로 갈겨 쓴 시가 <청평조사>라는 명시다. 이백은 죽음을 두고도 술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양자강 채석기采石磯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늘그랬듯이 술에 취해 있던 이백은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물속에 뛰어들었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 이 때문에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 이 때문에 백성의 신임을 얻어야 천자가 되고, 천자의 신임이 없어야 제후가 되며, 제후의 신임을 얻어야 대부가 되는 것이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바로 갈아 치운다. 희생이 이미 이루어지고 기장과 피가 이미 정결하여 제사 의식이 때에 맞게 되었음에도, 가뭄과 홍수가 일어난다면, 곧 사직을 갈아 치운다.

⊙ 《맹자》 <진심>편 중

 

하늘과 땅이 바뀌어 네 계절을 이루듯天地革而四時成, 탕과 무왕의 혁명은 하늘과 백성의 뜻에 호응한 것이다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 《주역》 <혁革>편 중

 

"임금은 배다君者舟也. 백성은 물이다庶人者水也. 물은 배를 띄우기도하고 뒤집기도 한다水則載舟 水則覆舟. 임금이 이 점을 염두하며 위험을 대비한다면, 위기가 닥치지 않을 것이다君以此恩危 則危將焉而不至矣."

⊙ 《순자》 <왕제>편 중

 

당 태종이 신하들에게 묻는다. "천자가 훌륭한 덕을 지니고 있으면 백성들이 그를 받든다. 그러나 천자가 무도하면 백성은 그를 천자의 자리에서 몰아낸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위징이 답한다. "옛말에 '임금은 배다.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라고 했습니다. 폐하께서 백성이야말로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계시온데, 진실로 그러합니다."

⊙ 《정관정요》 중

 

먹고 마시는 것과 남녀간의 사랑은 사람들이 무척이나 원하는 일이고飲食男女 人之大欲存焉, 죽음과 가난의 고통은 사람들이 크게 싫어하는 것이다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 《예기禮記》 <예운禮運>편 중

 

"아마도 주나라를 계승한다면 비록 백대의 왕조가 지나고 난 이후의 일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논어》 <위정>편 중

 

"주나라는 하와 은, 두 왕조를 거울로 삼았으니, 찬란하구나! 그 문화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

⊙ 《논어》 <팔일>편 중

 

공자가 말씀했다. "정치政治로 지도하고 형벌刑罰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반면,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

⊙ 《논어》 <위정>편 중

 

진晉나라의 도공이 즉위했다. 도공은 백관을 새로이 임명했고 사면령을 내려 백성의 부채를 탕감해주었으며 홀아비와 과부를 돌보고 방치되었던 인재를 등용했다. 널리 궁핍한 백성을 구제하고 재난에서 백성을 구해냈으며 사악한 행동을 금지했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죄를 가볍게 다스렸으며, 물자를 절약했다.

⊙ 《춘추좌씨전》 <성공 18년> 중

 

추나라와 노나라가 전쟁을 벌였다. 추나라 목공이 묻는다. "나의 부하 관리들 가운데 전쟁에 나가 싸우다 죽은 자가 33명이나 되는데, 백성은 죽은 자가 없습니다. 백성을 벌로 베어 죽이려 해도 그 수가 너무 많아 죽일 수 없소이다. 그렇다고 처벌치 않으려 하니, 윗사람들이 전장에서 죽는 걸 보고도 구하지 않는 백성들을 어찌 처단해야 옳단 말입니까?" 맹자가 대답한다. "흉년이 들어 굶주릴 때, 백성 가운데 노약자는 도랑과 계곡에 시신으로 뒹굴고 건장한 자는 사방으로 흩어져 유랑자 신세가 되었는데, 그 숫자가 거의 1,000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임금의 창고와 관청의 창고는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제대로 보고한 관리가 없었으니, 관리가 태만하여 백성을 해친 것입니다. 증자가 말씀하셨습니다.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너에게서 비롯된 것이 너에게로 다 돌아간다.' 저 백성들이 지금 와서 되갚음을 한 것이니, 임금께서는 원망하지 마십시오. 임금이 어진 정치를 하게 되면 백성은 그 윗사람을 친히 여기고 그 윗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 《맹자》 <양혜왕>편 중

 

등나라 문공이 나라를 위하는 방법을 물었다. 맹자가 답한다. "백성의 생업은 느긋할 수 없습니다. 《시경》에 '낮에는 지붕 이을 띠를 베어 오고 밤에는 새끼를 꼬아 어서 빨리 지붕을 이어라. 새해가 시작되면 백곡을 파종하세'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백성이 살아가는 방법론을 말씀드리지요. 일정한 생산이 있는 자는 일정한 마음이 있습니다. 일정한 생산이 없는 자는 항상심이 없게 됩니다. 인간에게 항상심이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스러워 못 하는 짓이 없게 됩니다."

⊙ 《맹자》 <등문공>편 중

 

양 혜왕이 물었다. "과인은 나라에 진심을 다했을 뿐이라오. 하내河內가 흉년이면 백성을 하동河東으로 옮기고, 곡식은 하내로 옮깁니다. 하동이 흉년이어도 마찬가지요. 이웃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소. 그런데 이웃나라 백성의 숫자가 줄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늘지 않습니다. 이건 어찌된 일이오?" 맹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임금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청컨대, 전쟁에 비유해 말해보겠습니다. 둥둥 북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 전쟁을 시작했는데, 갑옷을 버리고 병장기를 끌면서 도망칩니다. 어떤 자는 백 걸음을 도망치고, 어떤 자는 오십 걸음을 도망칩니다. 오십 걸음 도망친 자가 백 걸음 도망친 자를 비웃는다면, 어떠합니까? 이는 말도 안 되는 것이겠지요. 오십 걸음 도망쳐도 백 걸음 도망친 게 아닐 뿐, 역시나 도망친 것은 도망친 것입니다. 임금께서 만약 이 점을 아신다면, 백성이 이웃 나라보다 늘어나리라 기대하지 마시옵소서."

⊙ 《맹자》 <양혜왕>편 중

 

농사짓는 때를 어기지 않으면, 곡식은 다 먹어치울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코가 작은 그물을 연못에 넣지 않으면, 물고기와 자라는 다 먹어치울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도끼를 때에 따라 숲 속에 투입하면, 목재는 다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됩니다. '곡식과 물고기와 자라를 다 먹을 수 없고 목재를 다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곧, 백성이 살아 있는 자를 봉양하고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데 유감스럽지 않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잘ㄹ 봉양하고 죽은 자를 장사 지내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것'이 결국 왕도정치의 시작입니다.

⊙ 《맹자》 <양혜왕>편 중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는 것을 먹는데도 단속할 줄 모르고, 길에 굶어 죽은 자가 있어도 곡식 창고를 개방할 줄 모르면서 사람이 죽으면 그저 "내 탓이 아니오. 흉년이 들어 그렇소"라고 말한다면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는 "내 탓이 아니오. 칼이 죽였소"라고 말하는 갓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만일 왕께서 흉년이 들었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신다면, 천하의 백성이 위나라로 몰려들 것입니다.

⊙ 《맹자》 <양혜왕>편 중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참으로 큰 질문이구나! 예는 사치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함이다. 장례의 예는 수월하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함이 낫다."

⊙ 《논어》 <팔일>편 중

 

공자께서 말씀했다.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모든 별이 북극성을 만들어 따르는 것과 같다."

 

공자가 말씀했다. "정치政治로 지도하고, 형벌刑罰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반면,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

⊙ 《논어》 <위정>편 중

 

예는 아래로 백성들에게까지 내려가 적용되지 않고禮不下庶人, 형벌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 적용되지 않는다刑不上大夫.

⊙ 《예기禮記》 <곡례>편 중

 

- 상앙 : 상앙의 원래 이름은 공손앙公孫鞅인데, 왕에게 상 땅을 받아 상앙이라 불리게 된다.

 

공자께서 말씀했다. "공손하지만 예禮심가 없으면 수고롭기만 하다. 신중하지만 예가 없으면 두려움을 갖게 된다. 용감하면서 예가 없으면 질서를 어지럽힌다. 정직하면서 예가 없으면 박절하게 된다. 군자가 친족들을 잘 보살피면 백성 가운데 인의 기풍이 일어나, 옛 친구를 버리지 않으며 백성이 각박해지지 않는다."

⊙ 《논어》 <태백>편 중

 

"묵적과 양주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여,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

⊙ 《맹자》 <등문공>편 중

 

노나라 사람인 공수반은 그 재주가 뛰어나 초나라 혜왕의 초빙을 받는다. 공수반은 초나라에서 공격 기계인 운제雲梯를 만들었고, 초 혜왕은 이를 이용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한다. 묵자가 이 소식을 듣고는 100리에 한 번씩 쉬며 발이 부르트게 공수반을 찾아와 말한다. "송나라에서 듣자하니, 그대가 초나라에서 중용된다고 들었소. 나는 그대에게 송나라 왕을 직접 죽이라 말하고 싶소." 공수반이 답한다. "나는 의로운 사람인데 어찌 왕을 죽일 수 있겠소." 다시 묵자가 받아친다. "듣자하니 운제를 만들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데 송나라가 무슨 죄를 지었소? 의롭기 때문에 왕의 목숨 하나 죽이지 못하겠다면서 도리어 그 나라를 송두리째 공격하니, 이것은 적은 수의 목숨을 죽이지 않고 도리어 많은 무리를 죽이겠다는 말이군요. 감히 묻겠소이다. 송나라를 공격하면서 어찌 의를 논하시오?" 공수반은 그 논리에 할 말을 잃고 초 혜왕에게 묵자를 인도한다.

 

묵자는 왕을 보자 묻는다. "지금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훌륭한 마차가 있는데도 이웃의 낡은 수레를 훔치려 하고, 자신의 비단 옷을 두고 이웃의 낡은 옷을 훔치려 하며, 자신의 산해진미를 버려두고 이웃의 초라한 음식을 탐하려 합니다.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초 혜왕이 답한다. "틀림없이 도벽이 심한 자군요." 그러자 묵자가 답한다. "초나라는 영토가 5,000리에 달하지만 송나라 영토는 500리에 불과합니다. 마치 좋은 마차와 낡은 수레 같은 관계이지요. 초나라 땅에는 무소, 외뿔소, 사슴, 고라니가 가득하고, 초나라 강에는 물고기와 자라 등이 가득합니다. 반면 송나라에는 꿩, 토끼, 붕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이것은 산해진미와 초라한 음식의 관계와 같습니다. 초나라에는 다양한 목재가 많이 나지만, 송나라에는 변변한 나무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비단옷과 낡은 옷의 관계입니다. 초나라 왕께서 송나라를 공격한다면, 결국 도벽이 있는 자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초나라 혜왕이 답한다. "옳은 말이오. 송나라 공격을 멈추도록 하겠소."

⊙ 《전국책》 중

 

공벌을 좋아하는 군주가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한다. "과인이 금옥이나 자녀, 영토가 모자라 공벌을 행하는 게 아니다. 나는 천하에 의를 내세워 명성을 떨치고, 덕으로 제후들을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이에 묵자가 답한다. "지금 천하에 의를 내세워 명성을 떨치고 덕으로 제후들을 굴복시키는 자가 잇다면, 천하의 복종은 서서 기다릴 정도로 빠를 것입니다. 천하에 공벌이 벌어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비유컨대, 어린아이가 말을 기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금 서로 신의를 두터이 하며 천하를 이롭게 할 제후가 있다면 불의를 행하는 대국에 합세하여 대항하고, 대국의 침공을 받은 소국을 합세해 구해주고, 소국의 성곽이 허술하면 합세해 수리해주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다면 힘을 합쳐 보내주고, 예물이 부족하면 합세해 보내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대국과 맞서게 한다면 소국의 군주는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상대가 힘을 소진해 피로할 때, 내가 평온을 유지하면 아군은 강해집니다. 또한 백성을 은혜로운 마음으로 구해주면 백성들 또한 마음으로 귀의할 것입니다. 공벌의 정책을 바꿔 치국에 매진하면 오히려 그 공업이 배가 될 것입니다. 군사를 동원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제후들의 피폐함을 헤아려 사용하면 그 이득이 반드시 더 클 것입니다."

⊙ 《묵자》 <비공>편 중

 

맹자 말씀했다. "양주는 이기주의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털오라기 하나를 뽑아서 천하가 이로워진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묵적은 겸애의 마음으로, 자신의 이마를 갈아 발꿈치까지 다다른다 해도 천하를 이롭게 한다면 그렇게 하려고 했다. 자막은 중도를 잡았다. 중도를 잡았다는 것은 성인의 도에 가까운 것을 행하는 것이다. 중도를 잡았지만 저울추가 없는 것은 오히려 한쪽에 치우치는 것과 같다. 한쪽에 치우쳐 잡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성인의 도를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인의 도 하나를 드높이고는, 백 가지 도를 없애는 셈이다."

⊙ 《맹자》 <진심>편 중

 

"남을 해치는 사람은 자신의 몸은 사랑하면서 남은 사랑하지 않는다."

⊙ 《묵자》 <겸애>편 중

 

"심지어 대부들이 서로 남의 집안을 어지럽히고 제후들이 서로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데 이르기까지 역시 그러하다. 대부들은 각기 자기 집안은 사랑하면서도 남의 집안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의 집안을 어지럽힘으로써 자기 집안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제후들은 각기 자기 나라는 사랑하면서도 남의 나라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의 나라를 공격함으로써 자기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들은 전부 여기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 《묵자》 <겸애>편 중

 

"겸애란 남의 나라 보기를 자기 나라 보듯 하고, 남의 집안 보기를 자기 집안 보듯 하며, 남의 몸 보기를 자기 몸 보듯 하는 것이다."

⊙ 《묵자》 <겸애>편 중

 

"남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사랑을 받게 된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반드시 그를 사랑하게 된다."

⊙ 《묵자》 <겸애>편 중

 

"남을 사랑한다는 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들에 포함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기에 자기 자신도 사랑받는 것이다.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게 남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 《묵자》 <대취>편 중

 

"저와 선생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더불어 모두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이웃인 추나라 사람들을 저 먼 곳에 있는 월나라 사람들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노나라 사람들을 이웃인 추나라 사람들보다 더 사랑합니다. 또한 노나라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내 고향 사람들을 더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향 사람들보다 내 집안사람들을 더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 집안사람들 중에서도 내 부모를 더욱 사랑합니다."

⊙ 《묵자》 <경주>편 중

 

"내 부모를 받드는 마음을 미루어 남의 부모에까지 미치고, 나의 아이를 아끼고 기르는 마음을 미루어 남의 아이에까지 미친다."

⊙ 《맹자》 <양혜왕>편 중

 

성인聖人인 왕이 나오지 않으니, 제후들이 방자해진다. 선비들은 함부로 의견을 개진하니 양주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가득 찬다. 천하의 여론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양주는 극도의 이기주의자로서 오직 자신만 위하니, 이는 임금에 대한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묵적은 극도의 이타주의자로서 세상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리라 하니, 이는 부모에 대한 도리가 없는 것이다. 부모도 안중에 없고 임금도 안중에 없으니 이게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공명의가 말하길 "부엌에 기름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잇으나,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고 들판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가득하다. 이는 금수를 몰아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 《맹자》<등문공>편 중

 

- 자막 : 노나라의 현자.

 

- 형법 151조

  1항.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항.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맹헌자가 말했다. 말 네마리가 끄는 수레를 가진 대부는 닭과 돼지 같은 가축을 기르면서 가난한 서민과 경쟁하며 재산을 늘리려 해서는 안 된다. 장례에 얼음을 사용하는 경대부 지위에 이른 자는 소와 양을 길러 백성과 경쟁하려 들면 안 된다. 수레 백 대를 보유한 제후는 백성을 수탈하는 신하를 양성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백성을 수탈하는 신하를 두느니 차라리 도적을 신하로 두는 편이 낫다. 이는 국가란 금전적 이득을 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의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겨야 함을 말한다.

⊙ 《대학》 중

 

나라의 군주가 재물을 늘리는 데 힘쓰는 것은 반드시 소인이 국사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 소인을 선하다고 여기고 소인을 활용하여 국사를 처리하면 재앙과 해로움이 함께 오게 된다. 이럴 때 비록 선한 사람이 있다 해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국가는 이익을 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의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 《대학》 중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태산泰山의 명당明堂을 헐자고 합니다. 헐까요?" 맹자께서 대답했다. "명당은 왕을 위한 건물입니다. 왕께서 왕도 정치를 하고자 하시면 헐어서는 아니되옵니다." 제 선왕이 물었다. "왕도 정치에 대하여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께서 답했다. "옛날 문왕이 기岐 땅을 다스릴 때 농민에게 정전법을 시행해 9분의 1을 세금으로 받았고 벼슬하는 사람은 대대로 녹봉을 주었으며 관문시장은 단속했지만 세금은 안 받았고 물고기 잡는 시설을 못 하게 금지하지 않았으며 죄인을 처벌할 때에도 그 처자식은 연좌제로 벌하지 않았습니다. 늙어서 부인이 없는 것을 홀아비라 합니다. 늙어서 남편이 없음을 과부라 합니다. 늙어서 자식이 없음을 독신이라 합니다. 어려서 부모가 없음을 고아라 합니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천하의 곤궁한 국민들로서 고할 곳이 없으니 문왕이 정치를 폐하고 어짊을 베푸니 반드시 이 부류의 백성들에게 먼저 어짊을 베풀었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좋구나! 부유한 사람들 이 시름이 애달프고 슬프네'라고 나와 있습니다." 제 선왕이 말했다. "좋은 말씀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했다. "왕께서 그것을 좋게 여기신다면 어째서 실행하지 않으십니까?"

⊙ 《맹자》 <양혜왕>편

 

"화하華夏의 중원은 안정되었지만, 아직은 하늘과 땅에 제사 드리는 봉선의식의 비용을 부담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중략) 수년간 연속하여 풍성하게 수확을 거두었지만, 식량 창고는 텅 비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봉선을 거행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정관정요》 <납간納諫>편 중

 

- 관문시장 : 맹자는 일찍이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관문시장을 관리하되 세금은 매기지 않았다는 점은 시장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국가 통제력의 범주에 넣어두되 세금은 부과하지 않아 상인들과 백성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는 정책이었다. 건륭제 재위 기간에 영국 조지 3세는 조지 맥카트니를 특사로 보낸다. 건륭제를 알현하고 무역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친서로 전달했지만, 건륭제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우리나라는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여 영국과 통상이 필요 없다." 이 한마디가 결국 중국의 운명을 급전직하로 추락시켰다.

조선시대 명종 재위 시, 천하를 뒤흔들었던 간신 윤원형은 집권하자마자, 세 가지 원칙을 천명한다. 간척사업이 그 하나요, 서얼 철폐가 둘이다. 마지막이 시장의 활성화인데, 얼핏 보면 중상주의를 이미 명종 시기에 확립한 윤원형의 업적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가관이다. 윤원형은 시장을 자기 집 앞에 개설하려 했다. 한마디로 시장 경제의 활성화가 필요한 듯 주장했지만, 실상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 것이다. 뇌물로 받은 음식이 어찌나 많았던지 곳간에서 썩어나니, 이를 처리하기 위한 용도로 시장을 사용하기도 했다. 쌀이나 고기를 썩지 않는 유기로 교환해서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시장을 관리하되 세금은 부과하지 않은 맹자의 왕도 정치와는 대척점에 있는 악랄한 정책이다.

중국 고대사에서 생필품처럼 귀중한 물품은 늘 나라에서 관리하려 들었다. 소금과 철에 대한 전매 제도가 대표적이다. 한나라 선제 때 환관桓寬이 지은 정치 토론집 《염철론鹽鐵論》을 보면 국가 자원에 대한 군주와 백성의 역학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원전 81년, 조정에서 회의가 열린다. 회의 주제는 '민생의 고통'이다. 어사대부 상홍양을 상대로 수많은 문학(관리 후보생)과 현량들이 격렬한 토론을 펼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100분 토론>에 국무총리나 장관이 출연하고 그를 상대로 대학생 토론단이 국정 현안과 민생에 대한 질의를 벌이는 모양새다. 열띤 난상토론 가운데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코 한 무제 이래 시행된 일련의 경제 정책, 특히 소금, 철, 술의 전매가 옳은가에 관한 문제였다.

어사대부가 먼저 포문을 연다. "세상을 떠난 선제(무제)께서 오랜 세월 흉노의 침략에 고통받아온 변경의 백성을 가련히 여겨 성을 짓고, 망루를 세우고 병사를 주든시키며 방어력을 키워왔습니다. 그 결과로 재정 곤란에 빠지자 소금, 철, 술의 전매와 균수법을 실행하여 국고 수입을 확보했고, 그것을 방위비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논자들은 이러한 제도를 폐지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국고는 텅 빌 것이고 방위비를 확보하지 못해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은 굶어야 합니다. 대체 논자들은 이런 비용을 어디서 충당하란 말이오?"

이에 문학이 답한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재물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다만 그것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음을 걱정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안정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천자께서는 이익이 많고 적음을 말하지 않고 또한 제후나 대부도 이해득실을 입에 담지 않으며 오로지 인의와 덕행으로 백성을 교화해야 합니다."

관리가 되려는 문학들이 공자를 들먹인다. '이해득실을 입에 담지 않으며'란 표현은 '하필왈리'의 맹자를 연상케 한다. 오직 인의와 덕행만을 강조하는 그들은 철저한 유학의 신봉자다. 소금이나 철을 전매하여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는 한나라 정부는 맹자가 보기에는 왕도 정치에서 한참 모자란 나라일 수밖에 없다.

 

-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가던 길이다. 태산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부인 한 명이 무덤가에서 서럽게 울고 있다. 궁금해진 공자는 자로를 시켜 연유를 묻게 한다. 자로가 묻는다. "부인께서 슬피 우시는데, 필시 곡절이 있어 보입니다. 누구의 무덤입니까?" 부인이 답한다.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의 무덤입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모두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이제 아들까지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이에 공자가 묻는다. "호랑이가 이렇게 무서운데, 왜 이곳에 계속 사십니까? 떠나시지요." 그러자 부인이 흐느끼며 답한다. "여기 사는 게 차라리 괜찮습이다. 다른 곳으로 가면 세금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이에 공자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구나"라고 하였다. 태산 기슭의 이 호랑이는 동물원 호랑이가 아니다. 집안 삼대를 작살낸 괴물이다. 그런데 그 괴물보다 세금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애공이 유약에게 물었다. "어느 해에 기근이 들어, 재정이 부족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소?" 유약이 답했다. "어찌 철법을 행하시지 않습니까?" 애공이 물었다. "10분의 2의 세금으로도 나는 부족하거늘, 어찌 철법을 행하라 하시오?" 유약이 답했다. "만일 백성이 풍족하다면, 임금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다 여기시겠습니까? 만일 백성이 부족하다면, 임금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다 여기시겠습니까?"

⊙ 《논어》 <안연>편 중

 

- 철법 : 10분의 1을 과세하는 세법 제도.

 

옛날 미자하彌子瑕는 위나라의 왕에게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 법에 이르길 왕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는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들자 어떤 이가 몰래 와서 알려주었다. 그러자 미자하는 위나라 왕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왕은 이 일을 듣고는 미자하를 칭찬하여 말했다.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위하느라 발이 잘리는 형벌도 잊었구나!"

어느 날, 미자하는 위나라 왕과 함께 정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따 먹게 됐는데, 맛이 아주 달자 먹다 남은 반쪽을 왕에게 먹으라고 바쳤다. 왕이 말했다. "미자하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이 좋으나까 나를 잊지 않고 맛보게 하는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미모가 쇠하고 왕의 사랑도 식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왕에게 죄를 지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이놈은 옛날에 과인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타기도 하고, 또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먹으라고 주기도 했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한 게 없는데, 예전에는 상을 주고 지금은 벌하는 까닭은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왕에게 총애를 받을 때는 지혜를 내는 것마다 왕의 마음에 들고 더 친밀해졌다. 하지만 왕에게 미움을 받을 때는 아무리 지혜를 쥐어짜도 왕에게는 옳은 말로 들리지 않아 벌을 받고 더욱 멀어지기만 한다. 따라서 간언을 하거나 논의를 하고자 하는 신하는 군주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미리 살핀 뒤에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해 길들이면 탈 수 있다. 그러나 턱 밑에 한 자가량 되는 거꾸로 난 비늘, 즉 역린逆鱗이 있는데, 만약 누군가 그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다. 유세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 《한비자》 <세난>편 중

 

말을 잘 꾸미고, 얼굴빛을 좋게 하며, 지나치게 공손하게 구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다. 나 역시 이를 부끄러운 행동이라 여긴다. 원망을 감추고 그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역시 그러하다.

⊙ 《논어》 <공야장>편 중

 

군자는 말하는 데 있어서는 더듬거리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는 민첨하고자 한다.

⊙ 《논어》 <이인>편 중

 

- 교언영색巧言令色 : 《논어》 <공야장>편에서 공자는 "좌구명이 교언영색을 싫어하니, 나도 싫다"라고 언급한다. 굳이 좌구명을 업고 자신의 뜻을 펼친 것은 그만큼 그를 존경하고 있다는 의미다. 좌구명은 《춘추좌씨전》의 저작자로 알려져 있다. 흔히 좌구명을 공자의 선배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춘추》가 공자가 일생을 바쳐 이룬 저작이라면, 물리적으로 좌구명이 《춘추》에 주석을 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가 요절하고 선배인 좌구명이 장수를 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공자는 칠순을 훌쩍 넘길 정도로 오래 살았다. 도저히 앞뒤가 맞질 않는다. 이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좌구명 집안사람들이 사관 직책을 수행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 사관의 직무는 세습이었다. 따라서 《춘추좌씨전》을 좌구명 개인의 저작이 아니라, 좌구명부터 시작된 좌씨 집안의 집단 창작물이라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아버지의 뜻을 살피고···

⊙ 《논어》 <학이>편 중

 

오늘날 효도란 부모를 봉양하는 걸 말한다. 개나 말 따위도 모두 먹이를 주고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 《논어》 <위정>편 중

 

부모님을 섬길 때에는 완곡하게 간언하고, 설사 부모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해도 또한 공경하여 거스르지 않아야 하고 힘들더라도 부모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 《논어》 <이인>편 중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멀리 놀러 가지 않고, 놀러 가게 되면 반드시 가는 곳을 알려야 한다.

⊙ 《논어》 <이인>편 중

 

도응이 물었다. "순임금이 천자가 되고, 고요는 법을 집행하는 신하가 되어 있습니다. 이때 순임금의 아버지인 고수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맹자께서 대답했다. "그를 잡을 수밖에 없도다." 도응이 물었다. "그러면 순임금이 막지 않을까요?" 맹자께서 답했다. "무릇 순임금이 어찌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무릇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바가 있을 뿐이다." 도응이 물었다. "그렇다면 순임금은 어찌해야 합니까?" 맹자께서 대답했다. "순임금은 천하를 버리기를 헌신짝처럼 여길 것이다.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가 바닷가에서 숨어 지내면서 죽을 때까지 기뻐하며 즐기고 천하를 잊을 것이다."

⊙ 《맹자》 <진심>편 중

 

천하의 선비들에게 인기가 있는 건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하지만 순임금은 자신의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다 여겼다. 색色을 좋아하는 건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요임금의 딸 둘을 아내로 맞았으나 근심을 풀기에는 부족하다 여겼다. 부富는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천하를 소유했지만 자신의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다 여겼다. 귀함은 소유했지만 자신의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다 여겼다. 귀함은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귀하게도 천자의 역할을 했으나, 역시나 자신의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다 여겼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기와 호색, 부귀 역시 그의 근심을 풀기에는 부족했고, 오직 부모를 따르는 것만이 그의 근심을 풀 수 있었다.

⊙ 《맹자》 <만장>편 중

 

사람이 어리면 부모를 사모하게 된다. 호색을 알게 되면 어여쁜 처자를 사모하게 된다. 처자식이 잇으면 처자식을 사모하게 된다. 벼슬을 하게 되면 임금을 사모하게 된다. 사모하는 임금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열이 나게 된다. 큰 효는 죽을 때까지 부모를 사모하는 것이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도 부모를 사모하는 사람이 있는데, 순임금에게서 바로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맹자》 <만장>편 중

 

맹자께서 말씀했다. "인仁의 본질은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다. 의로움義의 본질은 형을 잘 따르는 것이다. 지혜智의 본질은 이 두 가지를 알고 꾸준히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예禮의 본질은 이 두 가지를 절도 있게 꾸며주는 것이다. 악樂의 본질은 이 두 가지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즐기게 되면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 마음이 생겨나면 그만두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 그만두는 것을 싫어하게 되면, 발이 저절로 뛰고 손이 저절로 춤추는 것을 모르게 된다."

⊙ 《맹자》 <이루>편 중

 

맹자가 말씀했다.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모두들 '천하, 나라, 집'의 순서로 말하는데, 사실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으며 집의 근본은 개인에 있다.

⊙ 《맹자》 <이루>편 중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고大學之道 在明明德.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에 있고在親民, 지극한 선에 머무르게 함에 있다在止於至善.

⊙ 《대학》 중

 

옛날에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다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그 집안을 다스렸다欲治其國者 先齊其家. 그 집안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닦았다欲齊其家者 先修其身.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다欲修其身者 先正其心.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뜻에 정성을 다했다欲正其心者 先誠其意. 그 뜻에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앎에 이르렀다欲誠其意者 先致其知. 먼저 그 앎에 이른다는 것은 사물을 연구함에 있어야 한다致知在格物.

⊙ 《대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