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8 통영
2020-018 통영
이서후 지음
2020, 21세기북스
대야도서관
SB144511
981.18802
이54ㅌ
대한민국 도슨트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06
새로운 문화가 숨 쉬는
바다의 땅 통영은
언제나 푸르다
예술가의 고뇌와 장사치의 잇속이
뒤섞여 있는 게 통영의 골목들이다.
통영 도슨트 이서후
동피랑 벽화마을, 미륵산, 욕지도
세병관, 윤이상기념공원
봄날의 책방, 삼문당커피컴퍼니 등
종잡을 수 없는 '통영스러움'을 찾아
골목골목을 없는 '통영스러움'을 찾아
골목골목을 직접 밟으며
발견해낸 28곳의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기록되지 않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특히 정규 교과에서 깊이 다루지 않는 1970~80년대 이후의 한국은 젊은 세대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는 더 늦기 전에 한국의 오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서후
경상남도 토박이로, 지금은 창원에 살지만 바다가 고플 때면 언제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통영으로 달려간다. 지금은 <경남도민일보> 문화체육부 기자로 일하며 일상 속 소박한 풍경과 이야기를 발견하는 여행지로 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경남 남해를 1년간 걸으며 기록한 『남해 바래길』, 경남 둘레길을 소개하는 『경남을 걷다』(임용일 공저), 경남 유 · 무형 자산에 얽힌 스토리를 담은 『한국 속 경남』(남석형외 공저)이 있다.
차례
시작하며 ㆍ ‘통영 도슨트’ 이서후
통영의 짧은 역사 ㆍ 새롭게 피어나는 문화도시 통영
01 서피랑 - 통영이 한눈에 보이는 서쪽 벼랑
02 서피랑 99계단 - 서피랑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
03 박경리 문학동네 - 『김약국의 딸들』이 펼쳐지는 소설 속 동네
04 정당샘 -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던 우물가
05 세병관 -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조선시대 객사
06 삼문당커피컴퍼니 - 통영 힙스터들의 아지트
07 동피랑 벽화마을 - 철거 위기 달동네에서 통영 대표 관광지로
08 강구안 - 포구에서 먹는 충무김밥과 꿀빵
09 남망산 조각공원 - 15개 조각품과 두 팔 벌린 소녀상
10 울라봉·미륵미륵 - 쌍욕라떼 카페와 수제맥주 호스텔
11 윤이상기념공원 - 동서양 음악의 중개자 윤이상
12 통영옻칠미술관 - 한국 현대 옻칠 예술의 중심지
13 통영운하 -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 좁은 물길
14 봉숫골 - 봄날의 책방, 전혁림미술관, 내성적싸롱 호심
15 미륵산 - 통영 풍경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산
16 통영국제음악당 - 음악창의도시 통영에서 즐기는 클래식
17 박경리 묘소 - 작가의 성품을 닮은 소박한 무덤가
18 만지도 - 명품마을에서 먹는 전복해물라면
19 욕지도 - 신선한 고등어회와 장쾌한 바다 풍경
20 당포성지 - 이순신 장군이 되찾은 산성과 바다
21 사량도 - 대한민국 섬 트레킹의 성지
22 카페 배양장 - 멍게배양장과 아메리카노의 공존
23 평인노을전망대 - 굴과 멍게가 가득한 맑은 바다
24 시락국골목 - 서호시장에서 만나는 통영의 맛
25 항남동 도깨비골목 - 제철 해산물이 한 상 가득, 통영 다찌
26 김용식·김용익기념관 - 서양을 사로잡은 마술의 펜
27 중앙동우체국 - 청마가 부친 5,000통의 연애편지
28 견내량 - 거센 물살이 키운 진상품 돌미역
대한민국 도슨트 ㆍ 통영 인문 지도
대한민국 도슨트 ㆍ 통영 연표
참고 자료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 「통영(統營)」 중에서
* 백석, 『백석 시전집』, 지만지, 2012.
한낱 소금기가 많아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바닷가 항구로, 여우와 투끼가 뛰놀던 잡초 우거진 언덕으로 몇천만 년 동안 몇천 몇백 사람들을 겪어오다가 ···
두룡포기사비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던 두룡포에 통제영이 세워진 과정이 기록되어 있어 바다의 도시 통영의 뿌리를 살필 수 있는 사적비다.
타관의 영락한 양반들이 이 고장을 찾을 때 통영 어구에 있는 죽림고개에서 갓을 벗어 나무에다 걸어놓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것은 통영에 와서 양반 행세를 해봤자 별 실속이 없다는 비유에서 온 말일 게다.**
**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마로니에북스, 2013.
인구가 4만 여. 항구도시로 시가의 중심지는 모두 일본 사람이 차지하고, 우리 민족들은 변두리에 살고 있었다. 여기서 3 · 1운동 때 격렬한 만세 운동이 퍼졌고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예수교가 일찍 들어왔고(호주선교회 구역) 그를 따라서 서양문화가 들어와, 민족정신도 일찍 깨었다.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이기 때문에, 민족의 피에 줄기차게 깨끗한 정열이 생동하고 있었다.
- 윤이상 '회수록' 중에서
미륵산 케이블카 관광도시 통영의 전성기를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제 다른 지역에도 케이블카가 많이 생기고, 여행 문화가 변화하면서 통영 관광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서피랑, 통제영, 서포루, 동포루, 북포루, 세병관(국보 305호), 동피랑, 뚝지먼당, 통영 문화동 배수시설, 명정동, 통영시 문화동 328-1, 박경리 생가, 서문고개, 서피랑 99계단, 동피랑 벽화마을, 서피랑 일주도로, 피아노 계단, 200년된 후박나무, 유채 · 코스모스 동산, 서피랑 목장, 서호벼락당, 서피랑 떡복기집, 서피랑 공작소, 나전 카페 '새미', 전기불터, 삐삐책방, 한옥스테이 잊음, 충렬사, 서피랑 문학동네(박경리 문학동네), 공덕귀 여사 생가터(핍박받는 자의 울타리), 정당샘(명정), 충렬사 돌계단, 통영인디페스티벌, 두룡포기사비, 미륵산 케이블카, 한산도 제승당, 이순신공원, 문화동 벅수, 삼문당커피컴퍼니,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동피랑 할머니 바리스타, 강구안, 남망산 조각공원, 동호만, 청마 유치환 생가, 청마문학관, 울라봉 카페, 미륵미륵 호스텔, 윤이상기념공원, 도천음악마을, 통영옻칠미술관, 통영시립박물관, 통영옻칠미술관, 화삼리마을, 통영RCE 세자트라숲, 통영운하, 통영 해저터널, 착량묘, 봉숫골, 봄날의 책방, 전혁림미술관, 내성적싸롱 호심, 용화사, 빌레트의 부엌×봉수, 니지텐, 모노드라마, 릴리봉봉, 몸과 마음, 오월, 미륵산, 삼칭이길, 복바위, 박경리 묘소, 박경리 기념관, 만지도, 전복해물라면, 몬당길, 만지도 출렁다리, 욕지도, 빼떼기죽, 고등어회, 욕지도 모노레일, 대기봉, 고양이, 소매물도 등대섬, 장사도 해상공원 까멜리아, 서양 도래인 주앙 멘데스 기념비, 당포성지, 삼덕리마을제당, 할배 벅수, 할매 벅수, 달아공원, 통영 767, 수산과학관, 사량도 지리산, 최영 장군 사당, 사량도 일주도로, 카페 배양장, 어부박물관, 평인노을전망대, 평인노을길, 시락국골목, 도다리쑥국, 서호시장, 중앙시장, 북신시장, 거구장, 중앙시장 회초장집, 가두리, 항남동 도깨비골목, 통영 다찌,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건물, 김용식 · 김용익기념관, 당산, 태평동 언덕, 중앙동우체국, 초정거리, 김춘수 동상, 청마문학관, 견내량, 통영타워,
01 서피랑
통영이 한눈에 보이는 서쪽 벼랑
서포루 서피랑 정상에 서 있는 누각으로 이곳에 오르면 통영 시내뿐 아니라 바다 건너 미륵산까지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통영 지도 북포루, 동포루, 서포루와 세 누각을 잇는 삼각형 모양의 통제영 성곽이 보인다.
통영 문화동 배수시설 1933년 일제가 통제영 장군기를 모신 뚝소를 허물고 그 자리에 만든 것으로 당시로서는 최첨단 상수도시설이다.
자연은 인성을 풍요롭게 하고 감성을 길러주는 교사입니다. ······ 오늘날 자연은 더 이상, 물질이지 생명이 아닙니다. 흙 한 줌 나무 한 그루도 생명이고 나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 박경리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한실댁은 코를 풀고 멍멍한 소리로 말하며 마등으로 내려와 용란의 손을 잡았다.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그들은 서문고개를 넘는다.***
***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마로니에북스, 2013.
02 서피랑 99계단
서피랑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
서피랑 99계단
서피랑 떡복기집 통영시의 지원으로 지금은 가게 외관이 깔끔해졌다. 특별한 비법이랄게 없는 동네 떡복기집이지만, 할머니가 직접 만든 튀김과 국물 떡복기를 맛보려고 사람들이 줄을 선다.
03 박경리 문학동네
『김약국의 딸들』이 펼쳐지는 소설 속 동네
삐삐책방
한옥스테이 잊음
04 정당샘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던 우물가
정당샘 이순신 장군의 향사를 지낼 때 쓰였던 일정과 마을 주민들이 사용했던 월정,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빨래터였던 수로가 한눈에 보인다.
충렬사에 이르는 길 양켠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고, 아지랑이가 감도는 봄날 핏빛 같은 꽃을 피운다. 그 길 연변에 명정골 우물이 부부처럼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음력 이월 풍신제를 올릴 무렵이면 고을 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 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
*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마로니에북스, 2013.
한때 일정, 월정을 합하여 팔각정으로 개축하였더니 돌림병이 발생하는 이변이 생겨 팔각정을 허물고 명정으로 복원하였다. 이 샘은 햇빛을 받지 아니하면 물이 흐려지므로 지붕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오랜 가뭄에도 물이 줄어들지 아니하므로 몇 년 전만 해도 주민의 주요 식수원이 되어 왔었다.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 같고 /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이라는 이 같고 / 난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는데 /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 넷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 「통영 2」 중에서
** 백석, 『백석 시전집』, 지만지, 2012.
충렬사 돌계단
05 세병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조선시대 객사
세병관 일제강점기 학교로 사용된 세병관은 1872년 복원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세병관 현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현판으로 높이가 2m를 넘는다.
제일국민학교에 다녔는데 그때는 교실이 세병관에 있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 소설가 박경리가 2004년 마산 MBC 토지 완간 10주년 특별 대담에서 한 말
화살과 나전함 12공방에서는 군수품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물건까지 만들었다. 통영 나전칠기, 소반 등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06 삼문당커피컴퍼니
통영 힙스터들의 아지트
삼문당의 스페셜티 커피 윤덕현 대표는 직접 커피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고, 매번 계절에 어울리는 원두를 골라 직접 로스팅하고 블랜딩한다.
단골들은 커피만 마시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음악도 들어볼 겸 가수를 초대해 볼까 이야길 던지면 옆에 있는 친구가 인디밴드를 안다며 연락처를 건넨다. 좀 더 던지다 보면 그럴싸한 계획이 서고 결국 진짜 콘서트가 열린다.***
*** 밥장,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 남해의봄날, 2019.
삼문당의 풍경 표구사 시절 삼문당을 지키던 병풍과 액자가 여전하고, 창밖으로 사진 같은 통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07 동피랑 벽화마을
철거 위기 달동네에서 통영 대표 관광지로
"베르빡(담벼락)만 빌리주모 안 쫓기나도 되나?"
"그거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뭔가를 해보입시다."*
* 윤미숙, 『춤추는 마을 만들기』,남해의봄날,2015.
동피랑 벽화마을 2007년 마을 벽화를 그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참가자가 모였다. 동피랑 전국 벽화 공모전을 계기로 동피랑은 철거 위기 마을에서 통영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됐다.
한 달 정도 되었을까. 발 빠른 블로거와 카페쟁이들이 다녀가기 시작했다. 물론 언론에 난 기사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동피랑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묻는 이들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하고 그 후 두어 달 지나니 주말이면 제법 많은 사람이 오가기 시작햇다. 하나같이 카메라를 들고서**
** 윤미숙, 『춤추는 마을 만들기』,남해의봄날,2015.
여름이면 난닝구 차림으로 골목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던 노인들이 집 안으로 갇혔다. 사진기를 훈장처럼 가슴에 하나씩 매단 방문객들은 아무 데나 무턱대고 렌즈를 들이대고 찍어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속곳도, 낡은 화장실도,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집 안의 남루한 일상까지, 덥고 습한데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없는 짐 안에서 노인들이 너무너무 갑갑하고 힘들어졌다.***
*** 윤미숙, 『춤추는 마을 만들기』,남해의봄날,2015.
동피랑 할머니 바리스타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가게에서는 할머니의 손맛이 깃든 커피와 음료를 맛볼 수 있다.
08 강구안
포구에서 먹는 충무김밥과 꿀빵
고성반도에서 한층 허리가 잘리어져 부챗살처럼 퍼진 통영은 복장대 줄기를 타고 뻗은 안뒤산이 시가를 안은 채 고깃배가 무수히 드나드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뒤산 기슭에는 동헌과 세병관 두 건물이 문무를 상징하듯 나란히 자리 잡고 잇었다. ······ 동헌에서 남문을 지나면 고깃배, 장배가 밀려오는 갯문가, 둥그스름한 항만이다.*
*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마로니에북스, 2013.
통영항 일대 매립지도 항남동 도깨비 골목 바닥에 있는 지도로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꾸준한 매립으로 강구안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충무김밥(위)과 꿀빵(아래) 먼 뱃길에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김밥과 반찬을 따로 싸 판매한 데서 유래한 충무김밥과 팥앙금을 넣고 튀긴 다음 조청, 물엿을 입히고 깨를 뿌려 만든 꿀빵
강구안 강물이나 냇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입구로, 강구안은 오래전부터 배를 대던 포구였다.
09 남망산 조각공원
15개 조각품과 두 팔 벌린 소녀상
남망산 조각공원 남망산 조각공원 내 15개 작품은 1997년 통영에서 열린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 결과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정의비 남망산 소녀상은 전국 각지에 만들어진 소녀상과는 모양이 다르다. 돌로 만든 여성이 통제영 방향으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서 있다.
동호만 풍경 부두를 따라 정박한 수많은 어선과 항구 주변 공장들이 이곳이 삶의 엄중한 터전임을 증명한다.
10 울라봉 · 미륵미륵
쌍욕라떼 카페와 수제맥주 호스텔
울라봉의 쌍욕라떼 주문한 손님과 직접 인터뷰를 한 후 맞춤형으로 욕을 써주는 쌍욕라떼는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마친 울라봉 카페의 전매품이다.
울라봉 지하에서 열린 공연 울라봉은 단순한 카페를 넘어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미륵미륵 호스텔 1층은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2 · 3층은 객실과 명상을 위한 공간이다. 맥주와 명상은 미륵미륵이 추구하는 쉼의 중요한 요소다.
편한 오르막길에 냇물 흐르는 소리,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잇다는 안도, 담을 것은 단단히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마음 휴식을 찾아가는 느낌, 절에 찾아가는 기분을 담고 싶습니다.
11 윤이상기념공원
동서양 음악의 중개자 윤이상
윤이상기념공원 통영시가 윤이상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고자 2010년 그의 생가터가 있는 도천동에 기념공원과 기념관을 만들었다.
문득, 앞날이 불투명한 가운데 학업에 몰두하던 파리에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내가 부쳐준 돈이 다 떨어지면 식권이 없어 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암담한 날들도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독일로 건너와 악착같이 공부한 끝에 서베를린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다름슈타트 음악제에 참관하여 충격을 받고 나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던 일들이 모두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박선욱, 『윤이상 평전』, 삼인, 2017.
구라파(유럽)에 체재하던 38년 동안 나는 한 번도 충무(통영)를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가끔 파도가 칠 때도 파도 소리는 나에겐 음악으로 들렸고, 그 잔잔한, 풀을 스쳐가는,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도 내겐 음악으로 들렸습니다.
- 1994년 귀국이 좌절된 후 통영 시민에게 보낸 윤이상의 육성 메시지 중에서
나는 북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정치적인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남과 북이 갈린 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북한 사람도 동포입니다.**
** 윤이상 · 루이제 린저, 『윤이상, 상처입은 용』, 알에이치코리아, 2017.
윤이상 흉상 평양 윤이상박물관의 흉상과 같은 동상으로 한동안 창고에 보관되는 등 곤혹을 치렀다.
윤이상의 베를린 하우스와 승용차 독일 유학 시절 윤이상이 쓰던 소지품뿐 아니라 가구까지 그대로 옮겨 놓은 베를린 하우스 내부와 그가 생전 타고 다니던 벤츠 승용차를 볼 수 있다.
윤이상이 어릴 적 살던 통영 도천동 집은 조금만 나가면 바로 바다였다. 돌담 밑을 흐르는 물결은 먼 고장의 아련함을 쉼 없이 실어 날랐다. 밤이면 파도가 꿈결을 타고 부서졌다. 낮에는 파란 물이랑이 끝도 없이 출렁였다. 바다는 윤이상의 가슴에 넘실거렸다. 파도 소리는 맥박을 타고 흘렀다.**
** 박선욱, 『윤이상 평전』, 삼인, 2017.
12 통영옻칠미술관
한국 현대 옻칠 예술의 중심지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들도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 소설가 박경리가 『토지』 완간 10주년 기념 특별대담에서 한 말
「칠예의 문」 옻칠 재료에서 평면 회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김성수 관장의 작품으로 자개를 가공한 나전이 돋보인다. 그는 2002년 미국 이민 100주년 전시를 열면서 처음으로 고유명사 'Ottchil(옻칠)'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그림 중에는 '화삼리 풍경'이라는 제목이 자주 등장한다. 통영에서 거제로 넘어가는 길 끝자락을 화삼리라 부르는데, 언덕길을 넘어 내려가는 길을 따라 숲이 우거지고, 그 길 사이로 보이는 마을의 풍광이 작품의 구도로 안성맞춤이다.*
* 전영근, 『그림으로 나눈 대화』, 남해의봄날, 2015.
13 통영운하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 좁은 물길
통영운하 통영 시내와 미륵도 사이로 배가 지나가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1,420m 길이의 수로, 1932년에 완공된 이 운하로 부산-여수 간 항로가 짧아졌다.
통영 해저터널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잇는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1932년에 완공되었다. 길이 483m, 너비 5m인 이 터널은 방파제로 바닷물을 막고 건설했다.
전혁림 화백의 「한려수도」 청와대 인왕실에 걸려 화제가 된 「통영항」과 유사한 그림으로, 통영 바다를 닮은 푸른색을 사용하는 전혁림 화백의 화풍이 잘 드러난다.
2003년 2월 1일,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터를 닦앗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골격에 전시실은 최대한 넓게 하고 외부를 미로처럼 구성하여 외관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아버지의 그림을 넣어 구워 낸 타일 7,500장을 미술관 외벽에 장식하고 나니, 아버지의 평가가 궁금했다. '꿈을 꾸는 것 같다! 내 아들이지만 니 대단하다!' 새벽 어스름에 눈을 뜨고 깜깜한 밤의 장막 속에 잠들며 보낸 그해 겨울은 내 일생 가장 뜨거운 겨울로 남았다.그리고 아버지는 남은 여생을 전시실과 연결된 작업실을 오가며 더 왕성하게 작품 활동에 매진하였다.*
* 전영근, 『그림으로 나눈 대화』, 남해의봄날, 2015.
전혁림 화백(1916~2010)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서영화가 전혁림은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작업실에서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렸다.
2012년 7월 첫 책을 낸 이후 만 7년 동안 45권의 책을 출간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통영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북스테이 겸 작은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통영의 출판사입니다.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 부문 대상을 수상한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전국에 작은 책방 봄을 일으킨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영국 BBC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중략) 등을 출간하며 독자들과 함께 소통해왔습니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책을 만들고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지원바랍니다.
- 출판사 남해의봄날이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올린 글
봄날의 책방 출판사 남해의봄날에서 운영하는 동네 책방으로, 통영 사람들의 삶과 예술을 담은 책들과 아기자기하게 꾸민 공간 덕에 통영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됐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두 번째 집까지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골목 하늘을 채우던 벚나무 잎들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 바닥에 쓸린다. 흑백사진관 입간판과 모퉁이 카페를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작은 책방과 전혁림미술관이 나온다. (중략) 짧은 거리인데도 동네 사람 한둘은 꼭 만난다. 그때마다 가벼운 인사만으로 넘어가는 법이 없다. 정원에 줄 비료는 냄새 안 나는 지렁이 흙이 좋다거나 새로 생긴 일본식 튀김덮밥집 튀김은 바삭하기보다 촉촉하더라 같은 깨알 같은 이야기를 길바닥에서 주고받는다. 5분이면 충분한데 10분, 20분이 걸리는 건 예사다.**
** 밥장,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 남해의봄날, 2019.
내성적싸롱 호심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여행작가인 밥장이 운영하는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북토크나 그림 교실이 자주 열린다. 삼문당 원두로 내린 커피와 밥장이 까다롭게 고른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봉숫골의 봄 매년 봄 용화사 가는 도로 양쪽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봉숫골 꽃나들이' 축제가 열린다.
미륵산 용화사 신라 선덕여왕(632~646년) 때 지어진 용화사는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용화사, 미륵산 모두 불교 미륵 신앙과 관련 있다.
미륵산에서 본 통영 도심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통영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미륵산에 올라 이 풍경들을 만나야 통영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
미륵산에서 본 통영 다도해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푸른 바다 위 흩뿌려진 통영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6 통영국제음악당
음악창의도시 통영에서 즐기는 클래식
통영국제음악당 갈매기가 날아오르는 모양의 지붕 앞뒤로 언덕과 푸른 바다의 풍경이 선명하게 나뉜다.
나는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리고 어느 날 은퇴해 고향으로 돌아가 그저 조용히 바닷가에 앉아 물고기를 낚고 마음속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그것들을 써두려고도 하지 않으며, 위대한 고요함 속에 내 몸을 뉘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또 나는 그 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내 고향 땅의 온기 속에 말입니다.*
* 윤이상 · 루이제 린저, 『윤이상, 상처입은 용』, 알에이치코리아, 2017.
음악 교사 시절 윤이상(앞줄 오른쪽 세 번째)과 학생들 화양학원 음악 교사로 활동하다 독일로 유학을 떠난 윤이상은 한시도 고향 통영을 잊은 적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삼칭이길과 복바위 푸른 물빛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삼칭이길에는 옛 전설과 생긴 모양 탓에 남근 바위로 불리다 후세 사람들이 다시 이름 붙인 복바위도 있다.
17 박경리 묘소
작가의 성품을 닮은 소박한 무덤가
박경리기념관 내부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작품을 썼던 강원도 원주 집필실을 재현해 놓았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박경리, 시 「산다는 것」의 마지막 연
박경리 묘소와 주변 풍경 잔디와 소나무로만 조성한 무덤과 평화로운 주변 풍경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작가의 성품을 닮았다.
박경리 동상 박경리기념관 앞 선생의 전신 동상은 통영뿐 아니라 원주, 하동, 러시아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한반도 남단의 통영에서 태어나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수많은 소설과 시와 수필을 남겼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장대한 서사 속에 담아낸 대하소설 『토지』 가 대표작이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 존엄성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노래했으며 유려하면서도 대담한 문체로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문학적 기념비로 승화시켰다.
- 러시아 동상 받침대에 러시아어로 적힌 선생의 소개문
18 만지도
명품마을에서 먹는 전복해물라면
만지마을 전복해물라면 전복이 유명한 만지도에는 이를 다양하게 활용한 요리를 많이 파는데, 특히 전복해물라면이 유명하다.
만지도와 출렁다리 연대도에서 바라본 만지도. 만지도와 연대도는 길이 98m, 폭 2m의 출렁다리로 이어져 있다.
19 욕지도
신선한 고등어회와 장쾌한 바다 풍경
욕지도의 바다 풍경 아기자기한 섬들과 넓고 푸른 남태평양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욕지도 사람들에게 고구마는 참 소중한 작물이라. 고메로 뭘 해 묵냐꼬? 주식은 고구마 빼떼기죽이지. 고매를 납작납작 썰어 갖고 지붕이나 마당, 밭둑 사이에 널어 말리는 기라. 그라모 빼떼기가 돼. 그 빼떼기를 소죽처럼 가마솥에 푹푹 낄이 묵었지.*
* 김상현,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 남해의봄날, 2014.
빼떼기죽(위)과 고등어회(아래) 욕지도에서 키워낸 최고의 고구마로 만든 빼떼기죽과 신선한 고등어회는 욕지도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별미다.
욕지도 모노레일 모노레일은 욕지도 풍경을 감상하는 멋진 방법 중 하나다. 타는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경사가 제법 가팔라서 스릴이 있다.
욕지도 주변에 크고 작은 섬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탁 트인 남태평양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다. 다도해의 소담함과 대해의 장쾌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섬이다.**
** 강제윤, 『당신에게, 섬』,꿈의지도,2015.
20 당포성지
이순신 장군이 되찾은 산성과 바다
1604년 6월 14일 거대한 적선 한 척이 조선 수군의 본영인 통영 앞바다에 침입했다. 이경준 삼도수군통제사의 명령으로 전함인 판옥선이 출동, 평화적인 투항을 요청했으나 끝까지 저항하므로 치열한 접전 끝에 격침시켰다. 이 배는 당시 일본의 통치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캄보디아 왕국에 파견한 첫 외교무역선으로 캄보디아의 프놈펜항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귀항 중 풍랑 때문에 길을 잘못든 것이었다.
- 2006년 세운 최초의 서양 도래인 주앙 멘데스 기념비 옆 안내 표지석에 적혀 있는 내용
당포성 고려 시대 최영 장군이 병사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아 왜구를 물리친 곳이다. 정상에 이르는 완만한 언덕길이 매력이다.
할배 벅수와 할매 벅수 벅수는 돌장승을 이르는 통영 사투리다. 당포 마을 벅수 한 쌍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21 사량도
대한민국 섬 트레킹의 성지
사량도 지리산 등산로 지리산에서 옥녀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공룡 등뼈 같은 모양인데, 경사가 가팔라 오르다 보면 아찔하다.
사량도 지리산 능선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중앙으로 상도와 하도를 잇는 사량대교가 보인다.
카페 배양장의 외부와 내부 멍게배양장 건물을 그대로 살려 만든 카페. 일부는 지금도 멍게배양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20년 넘게 전복과 멍게를 배양해 온 건물의 높은 층고와 낡은 골조를 살린 인더스트리얼풍 공간. 이곳에서 그는 파나마, 온두라스산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 수제 디저트 몇 종류를 선보인다. 여느 리 사이클링 공간과의 차별점이라면 지금도 실제 운영하는 배양장의 일부라는 사실.*
* 오성윤 · 이기선, <어떤 조합들>, 《론리플래닛 코리아》, 2019. 09. 05. lonelyplanet.co.kr/magazine/articles
/AI_00002759.
어부박물관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박물관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투박한 박물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네 어부의 삶이자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촌의 진짜 모습이다.**
** 김장주, 『남자의 고향』,더난출판,2015.
명지마을 어부박물관 어부박물관은 가정집을 고쳐 만들었다. 명지마을 출신 김장주 씨가 애써 모은 어구와 곁들여진 이야기를 함께 구경할 수 있다.
23 평인노을전망대
굴과 멍게가 가득한 맑은 바다
양식장과 조개껍데기 푸른 바다 위 굴을 양식하는 부표가 빼곡하다. 통영에서는 새끼 굴을 빈 조가비 껍데기에 붙여 바다 깊숙이 넣는 수하식 양식을 한다.
굴무침, 굴전, 멍게비빔밥 통영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다양하고 싱싱한 굴 · 멍게요리를 즐길 수 있다.
24 시락국골목
서호시장에서 만나는 통영의 맛
참 달다 이 봄맛, 앓던 젖몸살 풀듯 곤곤한 냄새 배인, 통영여객선터미널 앞 서호시장 식당 골목, 다닥다닥 붙은 상점들 사이, 우리처럼 알음알음 찾아온 객이, 열 개 남짓한 식탁을 다 차지한, 자그마한 밥집 분소식당에서 뜨거운 김 솟는, 국물이 끝내준다는 도다리쑥국을 먹는다.*
- 「통영의 봄은 맛있다」 중에서
* 배한봉, 『주남지의새들』,천년의시작,2017.
도다리쑥국 영양 가득한 도다리와 쑥의 조합으로 탄생한 도다리쑥국은 봄철 통영에서 만날 수 있는 별미다.
시락국(위)과 우짜(아래) 시락국골목에서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통영 음식. 시락국은 장어 육수로 맛을 낸 시래깃국이고, 우짜는 우동에 짜장을 올린 것이다.
25 항남동 도깨비골목
제철 해산물이 한 상 가득, 통영 다찌
통영 다찌 한 상 다찌는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통영 특유의 음식문화다.
항남동 도깨비골목 도깨비골목은 항남동 골목 별명 중 하나로, 도깨비가 요술을 부리듯 골목의 변화가 심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카페와 술집이 많아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도깨비와 어울리는 골목이란 의미도 있다.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건물 현재 상가로 쓰이고 있는 양성소 건물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건물 입구 오른쪽에 이중섭이 머물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인다.
26 김용식 · 김용익기념관
서양을 사로잡은 마술의 펜
그 배는 계절과 함께 쭈그러든 것 같이, 고향으로 가지도 못할 것 같이 내가 기억했던 것보다 아주 작아 보인다. 많은 선객들을 보자 나도 그 틈에 끼었다. 배에 오르니 생선, 해초 냄새-이제야 고향에 들어선 것 같다.*
* 김용익, 『꽃신』, 남해의봄날, 2018.
김용식 · 김용익기념관 김용식, 김용익 형제가 태어나 자란 주소의 주택을 개조해 만든 기념관으로, 김용식의 아들 김수환이 통영시에 기부하여 2013년 문을 열었다.
별안간 비바람이 불던 다음 날, 마을을 둘러싼 네 개의 언덕과 푸른 하늘 사이에 공기는 맑고 풍성하여 꿈꿀 수 있는 그 거리, 농부들이 황금빛 새 짚으로 단장한 마을 초가들은 젊고 매끄럽게 보였다. 우리 집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사는 시끄러운 참새들이 수수밭으로 날아가기 전, 이른 아침 아버지는 암소를 사러 부산으로 떠났다.**
** 김용익, 『꽃신』, 남해의봄날, 2018.
태평동 언덕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당집이 있던 산으로, 능선을 따라 들어선 주택을 사이로 올라가 보면 통제영이 가까이서 보인다.
27 중앙동우체국
청마가 부친 5,000통의 연애편지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 「행복」 중에서
* 유치환,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시인생각,2013.
중앙동우체국 앞 조형물 유치환의 시 「행복」이 새겨진 이 조형물은 통영중앙동우체국(옛 통영우편국)을 자주 찾아 편지를 보내던 유치환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운, 당신을 생각하면 무한히 외롭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외로움이 얼마나 내게 즐거운지 모릅니다. 당신을 생각함으로 날마다 외로움에 잠기어 있을 수 있음이 행복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내게 가지가지 보배로운 것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 유치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중앙출판공사,1995.
사랑한 내 운! 당신이 아무리 외롭더라도 안심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애정이, 내 목숨이 더불어 있는 한 당신을 향해서 마르지 않을 터이니까요. 그리고 한 애정의 나무에 애정의 빗물을 줌이 또한 내가 나를 구원함이요, 그것을 줄 수 없는 날인 즉 나는 나를 죽이는 순간이고 말겠으니 말입니다.***
*** 유치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중앙출판공사,1995.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시인생각,2013.
28 견내량
거센 물살이 키운 진상품 돌미역
통영타워와 신 · 구 거제대교 붉은 신거제대교(1999). 푸른 거제대교(1971) 아래 좁은 바다가 견내량이다. 신거제대교를 건너기 전 통영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부산까지 볼 수 있다.
견내량 돌미역 임금님 수랏상에 진상하던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하고 있다. 이곳의 미역은 견내량의 빠른 물살 덕에 더욱 고들고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