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01 목포

 

 

 

 

 

 

최성환 지음

2020, 21세기북스

 

 

배곧도서관

SM023815

 

 

981.19802

최54ㅁ

 

 

 

대한민국 도슨트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03

 

 

 

목포는 스스로의 힘으로

오랜 침묵을 깨고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목포는 별칭이 많다.

낭만 항구, 예향, 섬의 수도,

전남 근대문화 1번지.

 

다채롭고 역동적인 이 도시는

언제나 사람 사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목포 도슨트 최성환

 

 

목포 토박이 역사학자가 안내하는

깊이 있는 인문 기행

 

 

목포항, 유달산, 삼학도에서

근대역사문화공간과 연희네슈퍼까지

바다가 만들고 사람이 완성한 31곳의 이야기

 

 

 

최성환

한국지방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이다. 국립목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섬 전문 연구소인 도서문화연구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목포 남교동 큰 시장에서 태어나 자랐다. 지금도 목포 원도심에 살면서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목포와 관련하여 「목포의 해항성과 개항장 형성과정의 특징」, 「목포 고하도 일제강점기 역사유적의 내력과 그 성격에 대한 고찰」, 「1919년 목포 4 · 8독립만세운동의 전개과정과 주요인물」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문순득 표류 연구』, 『천사섬 신안, 섬사람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시작하며 ㆍ ‘목포 도슨트’ 최성환
목포의 짧은 역사 ㆍ 다도해를 품은 서남권의 거점 도시

01 목포역 - 남행열차의 종착역에서 대륙횡단열차의 출발역으로
02 김우진 거리 - 목포 1세대 모던보이가 살던 문학 동네
03 동명동 77계단 - 송도신사로 향하던 계단과 미로 마을
04 구 일본영사관 - 원형 그대로 보존된 120년 전 건축물
05 목포진 역사공원 - 목포 역사의 뿌리이자 항구도시의 시작점
06 노적봉 - 이순신의 전설이 깃든 목포의 자부심
07 연희네슈퍼 - 목포의 레트로 1번지 서산동 시화골목
08 창성장 - 도시재생의 상징이 된 목포 까사 1호
09 목포항 - 목포의 상징이자 신명 나는 항구축제의 현장
10 민어의 거리 - 바다의 맛과 목포 9미(味)
11 유달산 -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다도해 전망대
12 불종대 - 근대 소방시설의 기억이 담긴 원도심의 상징
13 삼학도 - 세 섬의 전설과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14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 시민운동으로 지킨 일제 수탈의 상징
15 목포의 눈물 노래비 - 유달산에 세운 국내 최초 대중가요 노래비
16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 - 이순신의 제사를 지낸 고하도 사람들
17 달성사 - 목포8경에 속하는 유달산의 전통 사찰
18 갑자옥 모자점 - 목포 멋쟁이들이 찾는 93년 역사의 모자 가게
19 고하도 감하원 터 - 아름다운 섬에 세운 소년감옥
20 갓바위 - 갓을 쓴 사람 모양의 신비로운 쌍둥이 바위
21 호남은행 - 민족자본으로 세운 목포 유일의 근대 은행
22 공생원 - 한일교류의 상징이 된 목포 최초 사회복지시설
23 보광사 미륵불 - 유달산 바위에 새긴 불상과 그 아래 신비의 샘
24 만인계 터 - 복권의 원조, 만인계가 열리던 곳
25 양동교회 - 근대문화 1번지가 된 최초의 교회
26 목포청년회관 - 근대 탐방의 필수 코스, 전남 노동운동의 성지
27 국제서림 - 서점 명가의 70여 년 역사
28 해양유물전시관 - 세계를 놀라게 한 해양유물의 보물창고
29 목포시사 - 목포 지식인들이 꾸린 문학결사
30 오거리문화센터 - 일본 사찰이 중학교와 교회가 된 사연
31 이훈동정원 - 호남 최대의 비밀 정원

대한민국 도슨트 ㆍ 목포 인문 지도
대한민국 도슨트 ㆍ 목포 연표
참고 자료

 

 

 

목포역, 김우진 거리, 동명동 77계단, 송도신사, 구 일본영사관, 국도 1 · 2호선 기점, 목포진 역사공원, 목포진 객사, 신광익 선정비, 약사사, 노적봉 예술공원, 시민의 종, 다산목, 연희네슈퍼, 서산동 시화마을, 보리마당, 다순구미 마을, 조선내화 공장, 창성장, 구 송촌 문구점(현 종일슈퍼), 목포항, 목포항구축제, 세계마당페스티벌, 문화재야행, 목포건맥축제, 북항노을축제, 크리스마스트리축제, 민어의 거리(영란횟집, 포도원, 유달, 중앙, 유림, 청자), 목포종합수산시장, 건어물상가, 백반골목, 북항, 선창가 성식당, 목원동 영암갈비, 곰집갈비, 나무포, 중화루, 태동반점, 코롬방제과점, 유달산, 이충무공 동상, 유선각, 흥법대사상, 유달산조각공원, 관음사(觀音寺), 난 공원, 자생식물원, 달성공원, 철거민탑, 유달산 어민동산, 해상케이블카, 불종대, 북교초등학교, 남교 중앙식료시장, 광생의원, 삼학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어린이바다과학관, 이난영수목장공원, 용해동 갓바위, 경북도민의 숲,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팔굉일우비(八紘一宇碑), 강제징용노동자상, 김우진 책방, 목포부립병원 관사(등록문화재 제718-5호), 구 목포 일본기독교회(등록문화재 제718-6호), 구 목포공립심상소학교 강당(등록문화재 제30호), 목포의 눈물 노래비, 양동교회, 정명여학교, 목포의료원, 목포극장, 평화관,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 조선육지면발상지비, 고하도 대형방공호, 고하도 탕건바위, 달성사, 유달산 미륵불, 빈야사, 관음사, 해봉사, 갑자옥모자점, 김은주 공방, 구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 구 동아약국 전시관, 구 목포화신연쇄점, 고하도 감화원 터, 평화공원, 목포문화원(구 호남은행), 공생원, 보광사 미륵불, 짓샘, 만인계 터, 만인계공원, 노라노미술관, 남농화실, 안저자거리, 양동교회, 박승희 열사 흉상, 가톨릭 목포 성지, 목포청년회관, 무안감리서 터, 구종명비, 국제서림, 해양유물전시관, 목포문화예술회관, 자연사박물관, 목포문예역사관, 남농기념관, 생활도자박물관, 목포문화관, 전통옥공예전시관, 목포시사, 오거리문화센터, 동본원사, 이훈동정원, 성옥기념관

 

 

 

목포의 눈물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 데 부두에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인가 목포의 서름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자취 완연하다 애닲은 정조 유달산 바람은 영산강을 아느니 임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눈물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 데 어찌다 옛상처가 새로워진다 못오는 임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의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작곡 : 손목인 작사 : 문일석 노래 : 이난영

 

당시 오케(Okeh)레코드에서 전국 10대 도시를 대상으로 한 '향토찬가' 공모작으로 선정되어 발표된 곡.

 

 

 

옛 목포의 모습  1930년대 목포항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1897년 개항과 함께 목포는 남도의 거점 항구도시로 발전하였다.

 

 

 

등록문화재 718호로 등록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선과 면을 중심으로 한 공간 단위 등록문화재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근대 문화유산이 밀집해 있고, 1897년 개항 후 조성된 신시가지의 경관이 보존된 공간이다.

 

 

 

목포 해상케이블카  2019년 유달산과 고하도를 잇는 해상케이블카가 개통되어 해양관광 거점 도시 목포의 활기를 더하고 있다.

 

 

 

01 목포역

남행열차의 종착역에서 대륙횡단열차의 출발역으로

 

 

 

02 김우진 거리

목포 1세대 모던보이가 살던 문학 동네

 

 

 

일본 유학시절 김우진  농업학교 재학 시절부터 김우진은 문학을 꿈꿨다.

 

 

 

목포문학관에 전시된 김우진의 육필 원고  1925년에 쓴 희곡 『두덕이 시인의 환멸』 육필 원고를 김우진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어느 날 우리는 올케를 따라 감자를 캐러 가면서 작은 대궐 같은 김장성 집 앞을 지나 성(城) 같은 담을 돌아갔다. 감자밭은 바로 산 중턱 그 집 뒤에 있었다. 장성 원님을 지냈대서 김장성이라고 호칭 되는 그의 장남이 연극계의 선구자인 김우진 씨로 훗날(1924년) 여기에서 먼 양동 꼭대기에까지 눈 속에 빗속에 꼬박꼬박 걸어 다섯 달 동안이나 내게 영어를 가르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

- 박화성, 성취원과 김우진에 대해

 

* 박화성, 『나의 삶과 문학의 여적』, 한라문화, 2005년, 142쪽

 

 

 

김우진 거리의 조형물  김우진이 집필 활동을 했던 북교동 성취원 터 인근에 조성된 김우진 거리에서는 그의 작품, 평론, 3형제 이야기 등을 조형물로 만날 수 있다.

 

 

 

03 동명동 77계단

송도신사로 향하던 계단과 미로 마을

 

 

 

사진으로 남은 송도신사의 모습  1921년 목포 안내 책자에 들어 있던 송도신사의 전경(위)과 송도신사 앞 77계단 앞에서 찍은 노행순 할머니의 기념사진(아래). 일제강점기 목포에서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야 했다.

 

 

 

77계단의 현재 모습  중앙의 보행보조시설과 우측의 77계단 기념비는 2007년 정비 사업 때 설치되었다.

 

 

 

04 구 일본영사관

원형 그대로 보존된 120년 전 건축물

 

 

 

근대역사관으로 재탄생한 구 일본영사관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로 아직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로 영행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구 일본영사관의 외관 장식  1932년 목포사진첩에 실린 목포부청 건물(위)을 보면 2층 중앙에 일본 천왕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이 있다. 해방 후 목포시청으로 사용할 당시에는 국화가 있던 자리에 태극문양을 새겨 넣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이 사라지고 원형의 틀만 남아 있다. 또한 창트(아래) 위에 붉은 벽돌과 흰 벽돌을 이용해 원형으로 장식한 모습도 눈에 띈다. 마치 욱일승천기를 연상하게 한다.

 

 

 

국도 1 · 2호선 기점

 

 

 

05 목포진 역사공원

목포 역사의 뿌리이자 항구도시의 시작점.

 

 

 

복원된 목포진 객사  객사는 조선 시대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건물로 조선 지방 관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건물이었다.

 

 

 

신광익 선정비  목포진 역사공원 내 객사 마당에 있는 선정비로 머릿돌에 새겨진 문양에서 목포사람들의 소박함과 예술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약사사

 

 

 

하늘에서 본 목포진 주변 풍경  개항 후 목포진 주변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후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유달산 자락과 연결된 목포진과 선창 주변에는 근대문화유산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앞쪽에는 삼학도가 보인다.

 

 

 

06 노적봉

이순신의 전설이 깃든 목포의 자부심

 

 

 

무안현목포진지도  수군 기지인 목포진과 주변의 형세를 추상적으로 표현해 놓은 지도로, 노적봉이 크고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위에 노인암이 있고 가운데에는 노적암이 있다. 아래에는 도적암이 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노인이 적으로부터 노적을 지키고 있는 형상이라 한다."

- 오횡묵, 『지도군총쇄록(智島郡叢鎖錄)』에서

 

 

 

목포시민의 자부심 노적봉  유달산 등산로 정문 앞에 호국 전설이 담긴 노적봉이 자리하고 있다. 맨 위쪽의 바위를 자세히 보면 마치 사람의 얼굴과 닮았다. 이를 두고 목포사람들은 이순신의 모습이 노적봉에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07 연희네슈퍼

목포의 레트로 1번지 서산동 시화마을

 

 

 

서산동 마을 전경  목포의 옛 모습과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골목길 일부가 목포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생활상이 담긴 독특한 경관유적으로서 특징적이다.

 

 

 

영화 '1987'의 촬영지  서산동 시화마을의 인기를 높여준 연희네슈퍼 모습. 제작진은 평범한 소시민의 주인공의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언덕이 있는 작은 마을을 찾으러 전국을 다냈는데, 1980년대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목포 서산동의 풍경이 영화와 가장 잘 어울렸다고 한다.

 

 

 

조선내화 목포공장의 지붕 철거 전 모습  1947년에 회사를 설립한 후 만든 공장시설이다. 공장의 철골구조와 벽돌을 굽던 가마, 공장 굴뚝 등 해방 후 산업시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지붕을 철거한 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의 활용을 고민 중이다.

 

 

 

08 창성장

도시재생의 상징이 된 목포 까사 1호

 

 

 

창성장 2층 테라스와 별채  옛 건물을 살려 건물 구조를 만들었다. 도심 속의 붉은색 건물이 강렬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준다.

 

 

 

구 송촌 문구점  창성장 앞 교차로에는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현재 종일슈퍼로 사용되고 있는 송촌 문구점도 그증 하나다.

 

 

 

09 목포항

목포의 상징이자 신명 나는 항구축제의 현장

 

 

 

목포항 전경  현재 목포 여객터미널에서는 많은 항로가 운영되고 있고, 신안, 진도, 완도 등의 주변 해역에서 어업 활동을 마친 고깃배들이 모여든다. 목포항의 또 다른 자랑은 이곳에서 목포의 대표축제인 '목포항구축제'가 열린다는 점이다.

 

 

 

목포항구축제의 파시 경매  목포항구축제는 2006년부터 열린 목포의 대표적인 축제다. 축제 기간 동안 배 위에서 열리는 생선 경매를 체험할 수 있다.

 

 

 

세계마당페스티벌의 풍경  세계마당페스티벌이 열리면 목포 구도심은 활기가 넘친다. 최근 이 축제의 스타로 떠오른 '옥단이' 복장을 한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10 민어의 거리

바다의 맛과 목포 9미(味)

 

 

 

목포 9미(味)

 

홍어삼합, 세발낙지, 민어회, 꽃게무침, 갈치조림, 우럭간국, 병어회(찜), 아구탕(찜), 준치무침

 

 

 

민어회  일반 생선은 알을 밴 암컷이 더 맛있는데, 민어는 반대로 수컷이 더 찰지고 고소하다.

 

 

 

홍어삼합  홍어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돼지고기, 김치와 함께 '삼합'으로 먹는 것이다. 홍어를 처음 먹어봐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삼합으로 먹으면 비교적 쉽게 홍어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육회탕탕이(위)와 연포탕(아래)  붉은색의 소고기와 흰색 낙지가 어울려 비주얼도 좋고, 식감이 다소 질긴 낙지와 부드러운 육회가 조화를 이룬다. 생으로 먹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연포탕을 추천한다.

 

 

 

쑥꿀레  목원동 빛의 거리에는 '쑥꿀레'를 간판으로 내건 유명식당이 있고, 이 집 외에도 원도심의 여러 죽집에서 쑥꿀레를 판매하고 있다.

 

 

 

11 유달산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다도해 전망대

 

 

 

유달산 안내도  시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과 역사가 있는 문화유적이 유달산 곳곳에 분포해 있다.

 

 

 

 

유달산 이충무공 동상  이 동상은 우리나라에 세워진 많은 이충무공 동상 가운데 문화부(문공부)에 등록된 제1호로 알려져 있다.

 

 

 

유달산 오포대  현재 오포대는 유달산을 찾는 관광객과 이 지방 후손들의 역사교육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유달산 유선각  유선각의 볼거리 중 하나는 누각의 정면에 걸려 있는 유선각 현판이다. 이는 해공(海公) 신익회의 글씨다. 이 글씨는 1951년 신익희 선생이 목포를 방문하는 길에 유달산에 들렸다가 남긴 것이다.

 

 

 

"흰 구름이 쉬어 가는 곳입니다. 세 마리의 학이 고이 잠든 푸른 바다의 속삭임을 새벽 별과 함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 유선각 표비(標碑), 다목동 차재석(車載錫)이 쓴 글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 흥법대사가 새겨진 바위  마당바위에 오르면 흥법대사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마당바위 아래로 내려가 일등봉 등산로 방향으로 가면 바로 앞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목포 해상케이블카  세계에서 가장 높은 155m의 콘크리트 지주 타워의 모습(위)과 금빛 낙조가 눈부신 해 질 무렵 해상케이블카의 풍경(아래)이다.

 

 

 

12 불종대

근대 소방시설의 기억이 담긴 원도심의 상징

 

 

 

불종대 공원의 모습  불종대의 옛 모습을 재현해 화재를 감시하기 위한 망루(위)와 초기 소방조에서 사용한 수동 펌프(아래)를 설치해 놓았다.

 

 

 

13 삼학도

세 섬의 전설과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유달산에 한 청년이 수련하고 있었는데, 유달산 아래에 사는  세 처녀가 유달산에 있는 샘으로 물을 길러오면서 이 청년을 보았다. 이후 세 처녀가 함께 이 청년을 사모하게 되었다. 세 처녀가 자신을 사모하고 있음을 알아버린 청년은 수도에 방해가 되므로 하루는 세 처녀를 불러 이르기를 "내 수련이 끝날 때까지 바다 건너 섬으로 건너가 살고 있으면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세 처녀는 이 약속을 믿고 배를 타고 바다 건너로 떠나는데, 뒤늦게 청년이 자신도 세 처녀를 매우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 소리가 들리지 않자, 청년이 신호를 보내기 위해 활을 쏘았는데, 그만 이 활이 세 처녀가 탄 배에 명중했다. 배에 구멍이 뚫렸고,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자 세 처녀는 학으로 변하여 솟아오르다가 지금의 삼학도 자리에 내린 뒤 세 개의 섬으로 변했다.

- 삼학도의 전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화합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 김대중, 2009년 1월 6일 일기

 

 

 

노벨평화상 기념관(위)과 김대중 전 대통령(아래)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여 2013년에 개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지난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4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시민운동으로 지킨 일제 수탈의 상징

 

 

 

1932년 『목포사진첩』에 실린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그동안 1920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혼란이 있었으나, 당시 <매일신보>(1921년 11월 5일 기사)에 '오는 7일에 낙성식 피로연을 개최한다'는 기사가 남아 있어 설립 시기는 1921년임이 명확하다.

 

 

 

목포 근대역사관 2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현재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4년 구 일본영사관에 본관이 새로 조성되면서 이곳은 현재 2관(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5 목포의 눈물 노래비

유달산에 세운 국내 최초 대중가요 노래비

 

 

 

이난영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로 전국민에게 목포를 알린 목포의 예술인이다.

 

 

 

"나의 고향은 남쪽 목포항입니다. 어디든지 그렇지만 항구에서 자라난 처녀들은 노래를 무척 즐겨하지요. 나도 그랬습니다. 망망한 대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외로운 바위 위에 홀로 앉아서 석양이 어물어물 떨어지는 서쪽 하늘을 우러러 희망의 노래를 부른답니다. 그러면 비단결 같은 푸른 물결은 나의 노래를 싣고 하느적 하느적 이 항구에서 저 항구, 저 항구에서 또 다른 항구, 이렇게 전 세계의 항구란 항구에는 모조리 들려서 나의 노래를 전해 준답니다. 아니 전해 주는 것 같이만 생각되지요."

- 이난영, 1939년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고향에 대한 추억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 데

부두에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인가 목포의 설움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자취 완연하다 애닲은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눈물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 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 「목포의 눈물」

 

 

 

유달산 중턱에 있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  노래비 상단에 「목포의 눈물」가사가 새겨져 있고, 하단에는 '살아있는 보석은 눈물입니다. 남쪽 하늘 아래 꿈과 사랑의 열매를 여기 심습니다. 이난영의 노래가 문일식 가사 손목인 작곡으로 여기 청호의 넋처럼 빛나고 있습니다'라는 추모의 글귀가 있다.

 

 

 

 

16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

이순신의 제사를 지낸 고하도 사람들

 

 

 

옛 이충무공기념비(위)와 현재의 이충무공기념비(아래) 사진  일본인이 총을 쏴 훼손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충무공비를 모신 모충각  모충각은 이충무공을 기린다는 의미로, 서예가 김정재의 글씨로 된 편액이 걸려 있다. 현재 모충각 내부에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 제작된 4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은 대부분 196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기념비와 비각의 건립 연혁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17 달성사

목포8경에 속하는 유달산의 전통 사찰

 

 

 

목포 8경

 

유산기암(儒山奇巖) 용당귀범(龍塘歸帆) 아산춘우(牙山春雨) 학도청람(鶴島晴嵐)

금강추월(錦江秋月) 입암반조(笠岩返照) 고도설송(高島雪松) 달사모종(達寺暮鐘)

 

 

 

달성사 극락보전에 모셔진 범종  현재 달성사 경내에 별도의 종각이 조성되어 있어, 그것을 목포8경에 나오는 종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주인공은 극락보전 내에 보관된 작은 범종이다.

 

 

 

달성사 목조 지장보살상  달성사의 지장보살상은 우측 다리를 밑으로 내리고 좌측 다리만 가부좌한 반가 상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고려 말로 추정되는 광양 중흥사 석조 지장보살상 등의 몇몇 예에서만 볼 수 있는 드문 경우다.

 

 

 

달성사 인근의 미륵불  달성사의 창건 주지인 노대련이 창건 1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달성사 극락보전에 모셔져 있는 삼존불과 같은 구성이다.

 

 

 

18 갑자옥 모자점

목포 멋쟁이들이 찾는 93년 역사의 모자 가게

 

 

 

설립자 문공언 씨의 사진이 실린 갑자옥모자점 개업 10주년 기사  상호가 '갑자옥'이어서 갑자년인 1924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고 전해오고 있는데, 1937년 <동아일보>에 개업한 지 10년이 되었다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1927년 무렵 개점한 것으로 짐작된다.

 

 

 

1932년의 갑자옥 거리(위)와 현재의 갑자옥 모자점(아래)  갑자옥 모자점은 9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목포의 대표적인 근대 문화 공간이다.

 

 

 

갑자옥 모자점 종이 가방  갑자옥 모자점(대전지점)에서 판매하는 모자를 담아주던 가방이다. 중절모를 쓴 남성의 모습과 가게 이름, 주소 등이 인쇄되어 있다.

 

 

 

구 동아약국 전시관  예전 사진을 근거로 당시의 간판 모습을 재현하고, 안철 장로가 약사이자 민주화 운동 투사였다는 점을  반영한 인물 캐릭터를 그려서 전시관을 꾸렸다.

 

 

 

구 목포화신연쇄점  목포 근대 상점 중 가장 화려한 건물로 방송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목포 편에 백화점 건물로 소개되어 더 유명해졌다. 원래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현재는 외벽에 색깔이 덧칠된 상태이다.

 

 

 

19 고하도 감화원 터

아름다운 섬에 세운 소년감옥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인 원생들이 도망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2년 동안 10명이나 된다. 배가 고파 아무 풀이나 먹은 탓에 위염, 위궤양으로 고생하는 아이가 많았다. 폐결핵 환자도 10명이나 됐다. 도망치다 잡혀 온 아이는 손을 뒤로 묶은 뒤 죽도로 미친 듯이 두들겨 팼다. 등과 허벅지 엉덩이에서 쏟아진 피가 순식간에 마당에 있는 돌을 적셨다. 마침내 (매를 참지 못해) 스스로 혀를 깨물고 죽은 아이도 있었다.

- 이하라 히로미쓰, 『아 선감도』(김양식 역), 행림출판사, 1995.

 

 

 

20 갓바위

갓을 쓴 사람 모양의 신비로운 쌍둥이 바위

 

 

 

아주 먼 옛날에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소금을 팔아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살림살이는 궁핍하였지만, 아버지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착한 청년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부잣집에 머슴으로 들어가 열심히 일했으나 주인이 품삯을 주지 않아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의 손과 발은 이미 식어 있었다.

젊은이는 한 달 동안이나 병간호를 못 한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저승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도록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그만 실수로 관을 바다로 빠뜨리고 말았다. 불효를 후회하며 하늘을 볼 수 없다며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키다가 죽었는데, 훗날 이곳에 두 개의 바위가 솟아올라 사람들은 큰 바위를 아버지 바위라 하고 작은 바위를 아들바위라고 불렀다.

- 갓바위전설

 

 

 

목포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자 지질자원인 갓바위  아름다운 갓바위는 풍화와 해식 작용의 영향으로 암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지질학적 가치도 크다.

 

 

 

갓바위의 야경  해상보행교가 설치되고 야간 경관 조명이 설치되어 밤에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갓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21 호남은행

민족자본으로 세운 목포 유일의 근대 은행

 

 

 

호남은행의 과거(위)와 현재(아래)  위는 1932년 발간된 『목포사진첩』에 실린 호남은행 목포지점의 모습이다. 이 건물은 현재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22 공생원

한일교류의 상징이 된 목포 최초 사회복지시설

 

 

 

윤학자와 윤치호의 결혼 기념 사진  공생원의 두 주역인 윤학자와 윤치호는 1938년 10월 15일 목포공회당(현 상공회의소)에서 결혼하였다.

 

 

 

공생원 사랑의 샘  공생원 앞마당에는 오랜 역사를 상징하는 각종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윤치호 선생과 윤학자 여사의 흉상이 조각된 '사랑의 샘'이라는 기념비도 그중 하나다.

 

 

 

23 보광사 미륵불

유달산 바위에 새긴 불상과 그 아래 신비의 샘

 

 

 

"4월부터 5월 중 전남 죽동 보광사의 돌로 6척 높이의 미륵 좌상을 만들다. 주지는 만성스님이고 화주는 차보살이며 석공은 2인이다."

- 금용 일섭의 일기 형식의 『연보』

 

 

 

보광사 석조 미륵불  이 불상은 외부에서 만들어서 법당에 안치한 것이 아니라 유달산의 바위 줄기에 불상을 새긴 것이라 법당과 미륵불의 건축 순서와 방법 등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해동 조선 전라도 목포 ○○동 모씨의 남녀 산신님께서 굽어살피사 젖을 태워주시고 수명 장수하게 하시고 두루두루 살피시어 많은 복을 내려주소서"

- 짓샘에 올렸던 축원문

 

 

 

24 만인계 터

복권의 원조, 만인계가 열리던 곳

 

 

 

복권 추첨기  옛 복권 추첨기의 모양을 복원하여 만든 조형물로 만인계 공원에 설치되어 있다.

 

 

 

마을 축제로 부활한 만인계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에 만인계 복권추첨 행사를 하고, 공연, 벼룩시장, 문화체험 등을 곁들여 지역민들이 함께 가꾸어나가는 작지만 소중한 문화 축제를 지속하고 있다.

 

 

 

25 양동교회

근대문화 1번지가 된 최초의 교회

 

 

 

양동교회 전경  전면부 구조가 일부 변형되었지만 전체적으로 건물의 원형이 잘 남아 잇고, 건물에 담긴 역사적 가치가 커 2004년에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114호로 등록되었다.

 

 

 

저희집이 완성되면 이 집은 하나의 예배실로 변할 것입니다. 침실은 남자들이, 식당은 여자들이 들어갈 공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많은 여자를 포함해 큰 회중이 모여 저는 대단히 고무되었습니다.

- 유진벨, 1898년 5월의 편지에서

 

 

 

양동교회에 적힌 마지막 연호와 태극 문양  융희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사용한 연호다. '대한융희사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 역사 마지막 연호라 할 수 있다.

 

 

 

26 목포청년회관

근대 탐방의 필수 코스, 전남 노동운동의 성지

 

 

 

목포청년화관의 현재 모습  해방 이후 목포청년회관 건물은 엠마누엘 제일교회로 오랫동안 이용되다가 목포시에서 매입하여 현재는 소극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집 속에서는 날로 때로 열리는 각종 합법단체의 삶을 요구하고 해방을 부르짖는 외침이 얼마나 힘 있게 흘러나왔든가? 각 단체 주최의 학술강연이나 사회문제 강의는 얼마나 자주 잇었든가? 청년들의 공동의 집이요. 그들을 가장 옳은 길로 인도하며 가르치든 위대한 사명을 가졌던 이 집의 오늘의 헐어진 이 몰골의 비참함이여"

- 박화성, 목포청년화관의 가치에 대해

 

 

 

27 국제서림

서점 명가의 70여 년 역사

 

 

 

원래 위치로 돌아온 국제서림  모든 목포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국제서림은 목포사람들에게 책을 사는 서점 이상의 의미가 있다.

 

 

 

28 해양유물전시관

세계를 놀라게 한 해양유물의 보물창고

 

 

 

29 목포시사

목포 지식인들이 꾸린 문학결사

 

 

 

 

목포시사 건물  목포시사는 목포 예향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몇몇 유명 예술인의 업적이 아니라, 문화 예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었던 곳이 목포시사다. 그 역대 구성원의 면모를 보더라도 근현대기 목포의 다양한 지식인들이 망라되어 있다.

 

 

 

30 오거리문화센터

일본 사찰이 중학교와 교회가 된 사연

 

 

 

동본원사 목포별원의 현재 모습  1930년대 초반 신축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붕에는 일본 기와가 사용되었고, 건물 출입구 포치는 마치 일본 사무라이의 투구 형태를 띠고 있다.

 

 

 

목포중앙교회로 사용되던 동본원사의 모습  해방 이후 교회 설립이 화발해지면서 일제강점기 일본 불교 건물이 교회 건물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목포제일교회, 성산교회, 시온교회 등이 일본 불교 사찰 건물에서 예배를 시작했다.

 

 

 

31 이훈동정원

호남 최대의 비밀 정원

 

 

 

이훈동 정원  다양한 수종과 함께 일본 정원 양식과 후대에 가미된 한국 정원 양식이 복합되어 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이 구경하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내가 읽은 책들 > 202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13 화순이 좋다  (0) 2021.03.20
2021-006 신안  (0) 2021.01.24
2021-005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0) 2021.01.22
2021-003 춘천  (0) 2021.01.10
2021-002 태고의 시간들  (0) 2021.01.02
Posted by 드무1
,